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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16)화 (116/200)

116화

보름, 딱 보름만에 정우현은 그의 첫 장편 상업 영화가 될 시나리오의 집필을 마쳤다.

그간 조금씩 줄거리를 생각해 두었기에 빨리 쓸 수 있었다.

장르는 액션 스릴러였다. 즉 정우현은 어두운 분위기에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썼다.

줄거리는 이랬다. 평범한 중년의 남자가 하나뿐인 귀여운 딸과 놀이공원에 갔다가, 그만 딸을 잃어버린다.

이에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단순 실종이라며 사건을 종결짓는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다해 딸을 찾아 나서고, 이내 한 범죄 조직이 딸을 납치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경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결국 남자 홀로 범죄 조직에 맞서기로 한다. 그 과정상 평범했던 남자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이런저런 훈련을 거듭하며 차차 인간 병기로 변모한다.

“할 수 있겠어요?”

우후 본사 정우현의 사장실.

정우현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공개했다.

김도진이었다. 정우현은 삼촌 김도진을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일찌감치 낙점했다.

“…으음.”

김도진이 시나리오를 찬찬히 보더니 한마디 했다.

“근데 우현아.”

“예.”

“나는 네가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와서 정말 너무 기쁘지만.”

“….”

“왜 직접 출연하지 않는 거냐? 이 정도 배역은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중년이라 하기엔 네가 너무 젊지만, 뭐 그건 인물들을 삼촌이나 조카 또는 오빠나 늦둥이 여동생 정도로 충분히 설정을 바꿀 수 있는 거니까.”

“아니에요.”

정우현이 단호하게 답했다.

“이 배역은 오로지 삼촌을 생각하고 썼어요.”

“…으음.”

하더니 김도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뭐, 그랬다면 나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배역이 너무 어둡지 않니? 나는 이렇게 어두운 인물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정우현의 단편 영화 <자승차>로 진지한 연기에 눈을 뜬 김도진이지만, 이미지가 워낙 대중적이다 보니 그 이후로도 거의 밝은 역할 위주로 캐스팅이 들어왔다.

이에 김도진도 비교적 무난한 배역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다.

한데 정우현이 만든 인물은 분노에 가득 찬 아버지였다. 나아가 복수까지 직접 나서니, 그야말로 극단적인 수준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 줘야만 했다.

“아니에요, 삼촌. 삼촌은 할 수 있어요.”

사실 정우현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이번 영화가, 그가 처음으로 연출하는 장편 상업 영화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찍이 단편 영화를 만들어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지만, 이 상업 영화에서도 그가 메가폰을 잡고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오로지 감독으로서만 영화에 집중하고 싶었다. 따라서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에 직접 출연까지 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으음….”

김도진이 계속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는 어쨌든 배우는 배우.

배우가 배역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적당히 이 선에서 만족하고 고만고만한 배역만 하며 인기를 유지하기보다는, 한층 더 큰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면 당연히 정우현의 캐스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더군다나, 오랜 연이 있는 정우현이, 그러니까 세상 최고의 천재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인물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 점만 생각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알았다!”

그가 끝내 고개를 돌리고는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열심히, 한번 해 보지!”

“좋아요!”

그러고서 김도진이 계속 시나리오를 훑어봤다.

“근데 우현아.”

“예?”

“이 사람은 누구냐. 거의 끝에 나오는 요원. 이 사람도 캐스팅 됐어?”

이에 정우현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당연하죠.”

* * *

촬영 준비가 순식간에 진행됐다.

단편 영화를 찍을 때처럼 스태프든 뭐든 수소문해서 이것저것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정우현의 자본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즉 그는 제작비를 위해, 애써 투자자 및 국내 대형 영화사에 잘 보이는 등 이런저런 영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정우현 개인 자산을 들여 모든 걸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역으로 정우현의 영화에 투자를 희망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정우현의 네임 밸류와 그의 영화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정우현은 그런 사람들의 투자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발적으로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의 투자만 받았다. 그 이상의 투자는 필요하지도, 받고 싶지도 않았다.

“…대단하군.”

김도진이 첫 촬영 씬의 세트장을 보고 말을 했다.

세트장엔 충무로의 대형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무려 할리우드의 스태프들도 나와 있었다.

정우현의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력이 모였다.

“…우현아, 이게 다 우리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냐?”

“하하, 당연하죠!”

그러자 김도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더 두리번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감당되겠니? 제작비도 네가 거의 다 부담하는 거로 아는데.”

“에이, 삼촌!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걱정해요!”

“….”

김도진이 말을 않더니 정우현의 눈치를 살피다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만데?”

“예?”

“얼마냐고. 예상 제작비가.”

“아, 500억이요.”

“…아.”

“…왜요?”

아무렇지 않게 거액의 제작비를 말하는 정우현의 모습에 김도진이 말을 잃었다.

할리우드도 아니고 한국에서 500억 원을 들이는 영화라면, 엄청난 블록버스터다.

전생의 2022년 작품까지 통틀어도 5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한국 영화는 채 세 편이 되지 않는다.

한데 정우현이 그만큼 엄청난 돈을 들여 자신의 첫 장편 영화를 찍는다.

“무척 큰돈이라서 말이다.”

하고 김도진이 대답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손익분기점도 보통이 아닐 텐데… 괜찮겠니, 우현아?”

“하하하하!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나요! 무조건 그냥 천만 관객 찍으면 되는데!”

“….”

너무나 쉽게 말하는 정우현의 모습에 김도진이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삼촌! 설령 망하더라도, 뭐,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죠. 근데,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하고 정우현이 스태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영화 <격분>의 촬영이 진행됐다.

제목은 정우현이 김도진의 의견을 참조해 결정했다.

김도진이 제목은 최근 트렌드에 맞춰 간단한 명사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정우현이 받아들였다.

주인공이 워낙 분노한 인물이다 보니, 간단히 ‘격분’이 제목으로 적합해 보였다.

“레디, 액션!”

정우현의 소리에 맞춰 카메라가 돌아간다.

놀이공원에서 김도진이 자신의 어린 딸과 함께하는 극 초반의 씬이었다.

행복한 아빠의 모습이다. 딸과 함께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아빠의 모습.

“오케이, 컷!”

단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실상 이와 같은 연기는 김도진의 장기였기 때문이다.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 이는 데뷔 이래 김도진이 반복적으로 펼친 연기고, 이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지금의 김도진이 될 수 있었다.

한데 이후부터가 이제 관건이었다.

딸이 사라졌다. 딸내미를 줄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약 수초 간 한눈을 판 사이, 잠자코 있어야 할 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곧장 주인공은 두리번거리며 딸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이에 그가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는 모습으로 인파 속으로 뛰어든다.

즉 이제부터가 진짜 연기고, 영화의 성패가 결정될 시점이다.

“삼촌.”

“응…?”

정우현이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한 김도진답지 않게 사뭇 긴장한 그를 따로 불러 말했다.

“잘할 수 있죠?”

“…그럼, 잘해야지.”

김도진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감독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정우현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한국은 물론 미국 할리우드에서 온갖 고급 인력들이 역시 최고급 카메라 등 값비싼 장비를 갖고 여기 촬영장까지 왔다.

이래저래 무조건,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굳게 생각했다.

“예, 그럼 부탁드려요.”

그런 김도진을 보며 정우현이 말을 하고서는 본격적으로 촬영을 재개했다.

“레디, 액션!”

정우현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고, 김도진이 곧장 연기를 시작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딸을 찾아 헤매며 크게 외친다.

“예슬아아아아아아! 이예스으으으을!”

하고 김도진이 계속해서 뛰어다니며, 자신의 딸내미만 한 여자아이는 무조건 잡고 확인해 본다.

“예슬아!”

“….”

물론 그의 딸은 어디에도 없다.

“이예슬!”

“…뭐 하시는 겁니까?”

급기야 한 소녀의 아버지가 성난 얼굴로 김도진을 노려본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

“애, 놀랐잖아요, 지금!”

그럼에도 김도진이 괜스레 미련이 남는지 아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자 소녀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린다.

“으아아아아앙!”

“당신 뭐야, 지금! 우리 애한테 안 떨어져?”

결국 소녀의 아버지는 김도진을 밀치고, 그는 바닥에 넘어진다.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지금 없어져서….”

하고 김도진이 그 모습 그대로 대사를 하는데 정우현이 크게 외쳤다.

“컷!”

촬영이 중단됐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감독인 정우현만 바라봤다.

“삼촌.”

정우현이 김도진을 불렀다.

“…응?”

“좀 더 절박하게, 절박하게 해 주세요. 하나뿐인 딸이 없어졌으니까요.”

“…알았다.”

하고 재개된 촬영에서도 계속해서 만족스러운 씬이 나오지 않았다.

김도진이 딸을 잃어버린 것치고는 다소 긴장감이 덜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카메라 속 김도진은, 실제 자녀가 사라진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정우현이 스태프들에게는 아예 휴식 시간을 갖게 한 뒤, 김도진과 단둘이 있게 됐다.

“…미안하다, 우현아.”

김도진이 정우현을 앞에 두자마자 말했다.

“아니에요, 삼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원해서 이 이야기를 썼고, 제가 원해서 삼촌을 주인공으로 하게 됐어요. 즉 이와 관련한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삼촌이 아니라 저예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하고서 김도진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니. 촬영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분위기가 다운됐다. 그것도 모두 나, 나 때문이지. 내가 연기를 잘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삼촌.”

정우현이 김도진을 불렀다.

“응?”

“삼촌 말대로, 촬영은 이제 시작입니다. 끝은커녕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소리를 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일러요.”

“….”

그러고서 정우현이 김도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삼촌, 해피는 잘 있어요?”

그러자 김도진이 당황하면서도 답했다.

“…해피? 잘 있지. 왜?”

“아뇨, 갑자기 생각나서요. 너무 착하고 이쁜 해피.”

“…아, 하하. 그러잖아도 얼마 전부터 숨소리가 좀 거칠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다녀오긴 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 것 말고는 다행히 괜찮다더라.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산책도 너무 오래 시키면 안 된다고 하시네….”

해피는, 김도진의 반려견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김도진을 알고 지냈던 정우현은 김도진의 집에도 방문해 당시엔 아직 새끼였던 해피와 함께 논 적도 있었다.

김도진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김도진과 그의 아내 둘 중 누군가가 불임이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작정하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일찍이 둘은 해피와 셋이서 그저 행복하게 지내기로 서로 합의를 봤고, 실제로도 변함없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해 보겠습니다.”

정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김도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이번 영화에서요, 예슬이를 삼촌의 딸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뭐라고?”

김도진이 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말 그대로예요. 삼촌이 연기하실 때, 사라진 예슬이를 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대신 해피라고 생각해 보세요. 딸이 아니라, 삼촌이 몹시도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시라는 얘기입니다.”

정우현은 절박함이 부족한, 김도진의 연기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어쩌면 김도진이 자녀가 없는 데다 자녀를 원치 않기 때문에, 딸이 실종된 아버지의 배역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만약 그렇다면 그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으음.”

감독인 정우현의 말에 김도진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잠자코 있더니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그러고서 전에 없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른, 얼른 다시 해 보자.”

* * *

그리고 다시 시작된 촬영.

“예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도진이 무지막지한 표정으로 얼굴까지 벌게진 채 몹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눈이 거의 동그래지는 것을 넘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급기야 동공이 충혈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붉은 얼굴 아랫목의 핏줄마저 터질 듯 도드라졌다.

이에 스태프들은 깜짝 놀랐다. 아까 전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예스으으으으을!”

세상이 찢어질 것만 같은 절박한 외침이 연이어 그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고서 그는 두리번거리며, 절박함을 넘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정우현이 가만히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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