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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15)화 (115/200)

115화

양평의 최고급 풀빌라.

정우현과 구태호, 그리고 권유라는 실내 수영장에서 마치 어릴 적 KGI 운동장에서 뛰어놀 듯 신나게 놀았다.

그러고는 드디어 저녁이 되어 각종 만찬을 준비했는데, 메인은 음식이 아니었다.

바로 술이었다.

다 함께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같이 술을 먹게 된 자리.

십수 년 함께한 사이임에도 이 순간 그들 사이에 묘한 설렘과 긴장감이 있었다.

음식과 술 등 모든 세팅을 마치고, 구태호가 먼저 말했다.

“나, 솔직히 고백할게.”

“응?”

권유라가 곧장 답했다.

“술, 이미 먹어 봤다.”

그러자 즉각 권유라가 소리쳤다.

“뭐야, 나는 이날을 기다리며 얼마나 참았는데. 미국은 고등학생 때부터 먹는 애들이 많다고. 근데 너희만 생각하며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미안. 근데 어쩔 수 없었어. 아버지가 몇 잔 주신 거라.”

“…아.”

권유라가 뒤늦게 조금은 이해한다는 듯 소리를 내더니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좀 아쉽지만….”

그리고 빠르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근데 어땠어? 취했어?”

“아니,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아서.”

그리고 구태호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또 아버지가 술이 세셔. …그러니까 나도 좀 세지 않을까?”

개인의 주량은 한편으로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에, 구태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여간에 자, 먹자!”

구태호가 들고 있던 소주잔을 앞으로 내밀고서는 말을 이었다.

“우현아, 고맙다! 네 덕분에 경찰 학교 수석 입학생 구태호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구태호는 2차 체력 및 면접은 물론, 3차 수능 시험에서도 거의 만점을 받아 당당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래, 진짜 고마워, 우현아!”

하고서 권유라도 술잔을 내밀었다. 그녀 또한 만점에 가까운 SAT 성적표를 제출해 NIT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을 하게 됐다.

“하하하, 축하해, 애들아.”

하고서 정우현도 술잔을 내밀었다.

“오늘 잘 먹고 잘 놀게!”

약속대로 오늘은 정우현을 제외한 구태호와 권유라가 모든 것을 쏘는 날이다.

정확히 하면 권유라는 교통편과 숙박 시설을 책임졌고, 구태호는 술과 음식 등 먹는 것을 책임졌다.

“짠!”

그리고 셋은 드디어 잔을 마주치고 소주를 마셨다.

권유라와 구태호는 건배하자마자 단숨에 원샷을 했다.

이에 반해 정우현은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자신의 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소주를 목으로 넘겼다.

비록 한 잔이지만 이대로 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인 이들과의 첫 술자리에서 술잔을 빼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금세 인사불성이 되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취해 버리면, 친구들이 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음?”

한데 이상했다.

소주가 전혀 쓰지 않았다.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술이, 술 같지가 않았다.

“…뭐지?”

“왜, 우현아?”

권유라가 난생처음 먹는 소주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 정우현에게 말을 붙였다.

자신의 첫 음주보다는, 정우현의 상태가 더 중요한 권유라였다.

“…아, 아니야.”

하고는 정우현이 테이블 위에 있는 소주병을 바라봤다.

전생에서 먹어 본 소주와 똑같았다. 즉 일반 소주보다 약한 술이 아니었다.

“그래? 걱정했잖아!”

하고 권유라가 정우현을 다시 챙겼다.

“…음”

구태호가 가만히 술을 음미하다가는,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군들. 생애 첫 소주의 맛이 어떤가. 100자 이내로 설명해 보도록.”

“아.”

이에 권유라가 여전히 얼굴을 찡그린 채 답했다.

“…쓴데? 엄청 써. 아니, 어른들 보면 그렇게나 좋다고 이걸 먹던데, 왜 그러는 거지? 맛없잖아!”

“하하하하하.”

구태호가 크게 웃고는 답했다.

“그건 먹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하고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아직 모르겠어.”

정우현이 답했다.

“생각했던 그런 맛은 아니야. 솔직히 이게 술인지도 잘 모르겠고.”

정우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전생과 비교해 보면, 도무지 술 같지가 않았으니까.

“하하하하하.”

이에 구태호가 또 크게 웃었다.

“우현이는 허세 같은 거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기서 있네. 우현아, 술인지 모르겠다니? 너, 그러다가 이제 엄청 취한다.”

하고는 자신과 정우현의 잔에 다시 소주를 따르고 말을 이었다.

“자, 우리끼리 원샷!”

“어, 뭐야?”

이에 권유라가 자신의 빈 잔도 내밀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무얼 하든, 자신만 쏙 빼는 걸 참지 못하는 권유라였다.

“나도, 나도!”

구태호가 그러는 권유라를 보고 말했다.

“…음, 유라.”

“응?”

“너, 빨리 취하기 없기다. 우리 다 같이 재밌게 오늘 밤늦게까지 놀아야 해.”

“흥, 여자라고 무시하나! 알았으니까, 빨리!”

그러고서 셋은 다시 원샷을 했다.

구태호는 익숙한 듯 소주를 먹고 안주를 바로 하나 먹었고, 권유라는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고, 그리고 정우현은 또다시 물처럼 소주를 가볍게 목으로 넘겼다. 물론 이번에도 술이 술 같지 않았다.

“아, 근데 아까도 말했지만….”

한데 권유라가 테이블 위 안주를 하나 집어 먹으려다가 말했다.

“안주가 치킨에 닭발에 닭똥집에… 무슨 순 닭밖에 없어?”

하고는 그녀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구태호를 바라봤다.

오늘 모든 음식 및 주류는 구태호가 책임을 지고 준비했으니까.

“…왜 또?”

구태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권유라가 해명하라는 듯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응? 구태호! 왜 닭밖에 없냐고, 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하고서 구태호가 보란 듯이 닭다리 하나를 집어 한입 뜯어 먹었다.

“준비했는데, 왜 그러냐.”

“이씨!”

어릴 때나 지금이나 치킨을 사랑하는 구태호였다.

“하하하하하하!”

정우현은 모처럼 오랜 친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크게 웃었다.

* * *

네 시간 후.

구태호는 정신을 잃어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혼자 음주 경험이 있다며 시종일관 마치 선배처럼 행동했던 구태호는, 급기야 가장 주량이 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먼저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결국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구태호를 정우현은 번쩍 들어 침실로 옮겼다.

“태호, 괜찮아?”

그러고서는 권유라와 단둘이 계속 술을 마셨다.

둘은 자리를 옮겨 숙소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권유라는 의외로 술이 셌다. 하지만 역시 꽤 취해 있었다.

“자, 먹자.”

하고 권유라가 정우현에게 다시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우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권유라를 보고 말했다.

“너, 좀 취한 것 같은데 괜찮아?”

이에 그녀는 평소보다 더 혀를 굴리며 영어로 답했다.

“…오브 커얼스! 돈 워리!”

그러고서 권유라가 먼저 원샷을 하기에, 정우현 또한 단숨에 술을 마셨다.

“하아….”

권유라가 쓰디쓴 소주를 목으로 넘기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제 좀 알겠네. 왜 술을 마시는지….”

정우현은 재밌다는 듯 답했다.

“하하, 왜 마시는데?”

“…그냥, 뭔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괜히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하더니 권유라가 다소 의아한 눈으로 정우현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넌.”

“응?”

“우현이 넌? 안 취했어? 하나도?”

“아….”

안 취했다. 정우현은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는 곧 놀라운 점을 하나 깨달았다. 바로 알코올이 자신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염라대왕에 의해 두 번째 삶을 살게 되며 받은 선물 중 하나였다.

즉 그의 신체와 정신은, 알코올은 물론 어떤 약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 좀 취하지.”

하지만 정우현은 거짓말을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술을 잔뜩 마시고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치?”

하고서 권유라가 말했다.

“그렇게나 많이 마셨으니까 말이야….”

그러고는 권유라가 머리를 살짝 옆으로 하며 정우현의 어깨에 기댔다.

“….”

그리고 둘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우현아.”

“응?”

“나, 하나 뭐 물어봐도 돼?”

“뭐?”

하고 정우현이 답했다.

“너, 이번에 재단 출범했잖아.”

“아, 응.”

“거기 보면 관리인이 엘라 로렌츠라는 독일 여자던데.”

“….”

“그, 우리 옛날에 학교에서 유럽 여행 갔을 때 해킹 대회에서 한번 붙어 본 애더라. 챔피언.”

정우현이 잠자코 있었다. 권유라가 엘라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말을 아껴야 했다.

“와, 그때 나는 손도 못 쓰고 걔한테 그냥 졌는데… 물론 너는 이겼지만. 근데 우현아.”

하고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보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 여자가 네 재단에 들어오게 된 거야? 그것도 총괄 관리자로?”

“아.”

사실 권유라는 엘라에 관해 정우현과 대화를 나누기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호가 있어서,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정우현과 오로지 단둘이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 구태호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따라서 분위기도 그렇고 이래저래 지금이 그 얘기를 하기에 딱 적기라고 판단했다.

“응? 우현아. 나 궁금해. 말해 줘, 빨리.”

엘라의 존재를 무척 신경 쓰는 권유라였다.

이에 정우현이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개발자를 추적하다가 그녀를 알게 됐다고는 절대 밝힐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했다. 우후에서 전기차 플랫폼 등 IT 관련 사업도 준비 중인데, 그러다가는 몇몇 인재를 알게 됐고, 엘라는 그중 한 명이었다고.

한데 알고 보니 엘라가 과거 해킹 대회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던 그녀였기에, 당시의 얘기를 하며 가까워졌고, 이내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또 알게 된 끝에 재단 일을 맡기게 됐다고.

“….”

말을 마치고 보니 권유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정우현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가 조금은 삐진 말투로 답했다.

“…그러니까, 결국 그 여자랑 친해져서 일을 맡겼다고?”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능력이 뛰어났다는 거지.”

순간 권유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정우현을 내려다봤다.

한데 술에 워낙 취해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애써 한마디를 했다.

“…너랑 제일 친한 여자가 누군데?”

정우현은 가만히 그런 그녀를 보다가 짧게 답했다.

“너지, 유라야.”

어찌 됐든, 만취한 권유라를 달래야 할 것 같았다.

“그치?”

하고서 권유라는 금세 안도하는 표정을 짓다가, 놀랍게도 한순간 거의 쓰러지다시피 정우현을 안고서 그의 얼굴에 냅다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입맞춤이었다. 권유라가 갑작스레 정우현에게 키스하려 했다.

하지만 정우현이 머리를 뒤로했다.

뭐가 어떻든, 이 순간 권유라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그녀 역시, 구태호처럼 얼른 쉬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과연, 정우현을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서 한순간 힘이 풀렸다. 그러고서 권유라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이에 정우현이 일어나, 그녀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번쩍 들고서 침실로 가 누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발코니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취하지 않는 술을 마셨다.

이것으로 오랜 세 친구의 첫 음주 파티가 끝이 났다.

* * *

그러고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우현의 우후는 일론에 의해, 우 재단은 엘라에 의해 잘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재단은 출범한 지 초기이니만큼 정우현 또한 자주 출석하며 신경을 썼는데, 이내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없게 됐다.

엘라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원체 머리가 좋았던 것은 알았지만, 그녀가 일에 대한 머리도 이렇게나 있을 줄은 정우현도 생각지 못했다.

“참 즐겁고 보람차네요.”

종로에 위치한 우 재단 의장실.

평소엔 비어 있지만 정우현이 온 날은, 엘라 역시 이곳에 와 그간의 일을 알리며 재단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그에게 보고한다.

“먼저 이곳 한국에서의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고 있고요. 그리고 아프리카에 의료 지원을 시작할 참입니다.”

“좋아요, 엘라.”

정우현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이에 엘라도 한껏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루하루가 바쁘지만, 너무 좋아요. 왜 진작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입니다.”

“하하, 엘라. 엘라는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했으니 괜한 자책은 마세요. 과거는 과거대로, 또 현재는 현재대로 아주 멋지게,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엘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우현 님.”

이렇게 사업은 물론 재단도 걱정할 일이 없으니, 정우현은 더욱더 여유로워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시간에 새롭게 무언가를 할 때였다.

* * *

청담동 정우현의 집 그의 방 안.

정우현이 모처럼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하얀,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무언가를 빠르게 타이핑하고 있었다.

시나리오였다.

드디어 정우현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첫 영화가 될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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