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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11)화 (111/200)

111화

“와우! 정말입니까, 정우현 님?”

사회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토크쇼 호스트답게 분위기를 몰아 한번 쓱 찔러보다시피 질문을 했는데, 놀랍게도 정우현이 굉장한 정보를 줬다.

“예, 어릴 적 영화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정우현이 방청객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물론 돈도 좀 벌었고요.”

이에 사람들이 웃었다.

“하하하하.”

“그 돈으로, 참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죠.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영화가.”

하고서 사회자가 곧장 말을 받았다.

“어릴 적 정우현 님을 일으켜 세웠다는 건가요?”

“예, 그런 셈이죠.”

그러고서 정우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영화를 아예 떠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지금도 가장 즐기는 취미가 영화 감상인데.”

“하하, 그렇군요.”

사회자가 순간 조금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한데 그렇다면 이 시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요?”

“그동안 왜 영화를 안 하신 겁니까? 아, 물론 단편은 제외하고요. 그건 정우현 님이 학교 과제를 위해 만드신 거니까.”

“하하, 잘 아시네요.”

“예, 우리 아들은 학교 과제로 영화 한 편 보고 감상문을 쓰고 있는데, 정우현 님은 과제로 무려 단편 영화를 만들고 깐느 상까지 받았죠!”

“하하하하!”

사회자의 농담 어린 말에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하여간 궁금합니다. 그렇게 영화를 사랑하면서, 왜 영화를 하지 않은 거죠?”

이에 정우현이 수 초간 입을 다물다가는, 천천히 말을 했다.

“어려서요.”

“예?”

“나이가 어려서 그랬습니다. 미성년의 나이로 영화를 하기에는 알게 모르게 제약이 있거든요.”

“아역 배우의 고충, 뭐 그런 걸 얘기하시는 겁니까?”

“하하, 뭐 꼭 아역 배우 출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예, 사회자님의 말이 아예 틀린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좀 참은 게 있었죠.”

“오, 기다렸다는 거군요!”

“예. 또 솔직히 학교 다니고 지금은 일하는 등 바쁜 것도 있었고요. 그래도 말씀하셨다시피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오! 그럼 차기작! 차기작 생각이 있으시면 얘기 좀 해 주세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팬들에게요!”

“…음.”

정우현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 했지만, 일단 한국에서 촬영할 계획입니다.”

이에 사회자가 조금 놀라며 곧장 되물었다.

“아니, 할리우드가 아니고요?”

“예, 제가 첫 영화를 한국에서 찍었거든요.”

“아, 저도 봤습니다, <겨울 방학>!”

“와, 보셨군요!”

“그럼요! 아, 그것도 무지 감동적으로 잘 봤어요. 제가 성인이 된 후로 딱 두 번 울었는데, 한 번이 <겨울 방학>을 봤을 때.”

“오.”

“그 다음 한번이 우리 와이프의 쌩얼을 처음 봤을 때입니다.”

예상치 못한 사회자의 농담에 정우현은 물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이는 쇼 호스트 지미의 또 다른 강점이었다. 쇼에 나오는 게스트를 어떻게든 띄워 주는 한편 자신은 낮추며 즐겨 희화화하고 분위기를 살렸다.

정우현이 한참을 웃다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 하여간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되고 첫 영화는 뭔가 우리나라인 한국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미국인으로서 아쉽지만, 정우현 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뭐, 자막으로 또 보면 되니까요.”

그러고서 사회자가 또 질문했다.

“그러면 차기작은 어떻게, 출연하시는 겁니까? 또 글도 직접 쓰고, 메가폰도 잡으시나요? 단편 영화를 만들 때처럼?”

차기작에서의 역할이 배우인지 감독인지 묻는 지미 킹이다.

“음, 거기까진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으로서는 성인이 되면 영화를, 그것도 한국에서 다시 해 봐야겠다 이 생각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고서 사회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무대 옆 스태프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뭐라 속삭이기까지 했다.

그러고서 방청객들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아, 피디가 시간이 부족하다네요. 왜 순서대로 안 하냐고.”

“하하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사회자가 활짝 웃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냥 이대로 정우현 님과 1박으로 토크하면 안 될까요?”

* * *

사회자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고는 본디 계획한 대로 정우현의 사업에 관해 한참 얘기를 주고받았다.

“와우, 그러니까 정우현 님의 말대로라면 미래가 몹시도 달라지겠군요.”

“예, 그렇게 될 겁니다. 그중 자동차 즉 내연 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으음….”

사회자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하고 사회자가 정우현의 눈치를 살피다가는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후의 주가가 계속 오르면서, 이번에 정우현 님의 자산이 무려 100조 원을 돌파했지 않습니까?”

사실 이것이 이번 쇼의 핵심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영 앤 리치 정우현.

이야말로 관심사와 취향을 떠나,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니까.

“아, 예, 예.”

정우현이 괜히 조금 멋쩍어하며 답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음….”

하고 그가 천천히 답했다.

“뭐, 소감이랄 게 있을까요. 그저 저희 회사의 제품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죠.”

“으흠.”

사회자가 듣기엔 대답이 다소 밋밋했는지, 그가 몇 번 헛기침하고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도 무슨 100억 원도 아니고, 100조 원인데 남다른 생각이나 느낌이라든가….”

하다가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아, 우현 님!”

“예?”

“이른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셨고, 또 앞으로 더 큰 부자가 되실 것 같은데, 하하. 그 돈으로 뭘 하고 싶나요?”

“아.”

“그러니까 저는 사업 이외에, 그 무지막지하게 큰돈을, 정우현 님이 어디다 쓰고 싶은지 그런 게 궁금한 겁니다. 예컨대 뭐 슈퍼카나 요트를 수집한다든지, 세계 최고의 별장을 짓는다든지, 뭐 태평양의 섬 하나를 통째로 사서 나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다든지,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이래, 그는 염라대왕의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기.

이번 생에서 일찌감치 읽은 온갖 책들과 자신의 생각으로도, 올바른 삶이란 염라대왕의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결과, 꽤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딱히 부족한 게 없게 됐다.

즉, 행복하면서도 완전했다.

물론 나날이 자산이 더 풍족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업을 제외하면 딱히 그 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정우현은 불어나는 자산에 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하지만 아직 토크쇼가 진행 중이다.

카메라와 방청객들이 주시하고 있는 이 무대는 그의 내면을 비추는 마음의 거울이나, 생각과 감정을 낱낱이 적는 일기장 같은 곳이 아니다.

“좋은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예.”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냥, 솔직히 말했다.

생각지도 않은 계획을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부자연스러울뿐더러 무엇보다 진실하지 않았다.

정우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 아주 어린 나이부터 쉼 없이 뜻한바 모든 것을 다 이뤄 이 위치에까지 오르신 분이,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요? 그렇게나 큰 자산을 갖고요?”

“예.”

그러고선 정우현이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 말을 했다.

“아마도 성인이 되기 전,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 같네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회자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방청객과 카메라를 향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불러 주셔서. 예상치 않은,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에 사회자가 당황하다가는 고개를 돌려 역시 방청객들을 둘러보고 빠르게 말했다.

“하하하!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가 고맙죠!”

그러고는 그 역시 일어나 말을 이었다.

“여러분! 세계 최고의 영 앤 리치 정우현 님에게 큰 박수를 주십시오! 오늘도 그는 성장하며, 더욱더 큰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짝! 짝! 짝!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뜨겁게 손뼉을 쳤다.

* * *

정우현이 미국에서의 토크쇼를 마치고 현지 우후 회사와 공장을 살핀 다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청담동 자신의 방에서 생각에 빠졌다.

미국 토크쇼 사회자의 질문은 그야말로 허를 찔렀다.

정우현의 자산은 100조 원을 돌파해서 앞으로 더욱 늘어날 일만 남았다.

그럼,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100조 원이 200조 원이 되고, 500조 원을 넘어 1,000조 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할까?

그러면 그 다음은? 2,000조 원, 5,000조 원 만들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있어 오로지 돈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단적으로 하자면 재미도 그렇다고 의미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랄라라.”

순간 거실로부터 한 사람의 콧노래가 정우현의 방문 너머 살며시 들렸다.

평화롭고 듣기 좋은 허밍이었다.

정우현은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즉 어머니가 꽃꽂이를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창틈으로는 햇빛이 살짝 들어와, 공간을 밝게 채우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이 있을까?

“어?”

순간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봤다.

“아들, 어디 또 나가게?”

“아.”

정우현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는 천천히 답했다.

“아니요.”

“그래? 그럼 답답해서 문 열었니?”

“아, 예, 하하.”

하고서 미소 짓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응?”

“엄마는… 지금 행복하시죠?”

“어머!”

어머니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놀라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고서는 천천히 다가와 팔을 올려, 자신보다 키가 훌쩍 큰 아들 정우현의 양 볼을 어루만졌다.

“왜, 아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근데 왜 그럴까? 보석 같은 우리 왕자님이 어딘가 좀 수심에 잠겨 있는 것 같고?”

“하하, 아니에요.”

설령 그렇다 해도,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걱정하시니까.

“엄마.”

“응?”

“엄마는 뭐 따로 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음.”

어머니가 아들 앞에서 짐짓 생각하는 척을 했다.

“글쎄? 그런 거 없는데.”

“….”

“하하, 엄마는 우리 아들이랑 다현이, 그리고 아빠만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그랬다. 어머니는 정말 그게 전부였다.

“그러면.”

정우현의 말은 계속됐다.

“응?”

“저한테는 뭐 딱히 바라는 것 없으세요? 제가 앞으로 뭘 했으면 한다든가. 어떻게 지내길 바란다든가.”

“아.”

이번에는 어머니가 곰곰이 진짜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는 한순간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너무 완벽한데.”

“…하하.”

“그런데 그런 걸 좀 했으면 좋겠네?”

“뭐요?”

궁금했다. 어머니의 말에서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왜, 예전에는 영화 촬영하고 들어오는 돈으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사회에 환원도 하고 그랬잖아.”

“…아, 예. 그때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서 번 돈이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

“아니, 아들. 사업한 이후로 훨씬 큰돈을 벌고 있잖아.”

“맞아요.”

“그러니까 그것 또한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냐 이 말이지. 사람들이 아들이 만든 물건을 사랑해서 큰돈을 거리낌 없이 쓰는 거니까.”

“….”

정우현이 생각에 빠졌다.

“결국, 똑같다는 거야. 그렇게 사랑을 받아, 아들은 예전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됐어. 한마디로 훨씬 큰 힘을 갖게 됐다는 거지. 그래서 그 힘을 가지고,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베푸는, 그런 좋은 일을 하면 엄마는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아….”

정우현이 탄성을 내뱉자 어머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엄마 생각이야. 아들이 물어봐서 얘기한 거고. 사실 엄마는, 아까 얘기했다시피 이대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거든. 그리고 우리 아들은 이미 너무 완벽해서….”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응?”

“엄마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하고는 고개를 숙여 어머니의 볼에 뽀뽀까지 했다.

“어머, 얘가!”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 커서도 뽀뽀를 하네! 하하하하.”

그리고 정우현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잠시 동안의 고민이 말끔히 해결됐다. 이에 창문을 덜컥 열고 밖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창밖 하늘은 몹시도 맑고 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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