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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08)화 (108/200)

108화

곧장 구태호는 정우현의 예상 수학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한 문제 한 문제가 다 어려워서, 중간중간 정우현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기를 약 며칠, 드디어 구태호는 정우현의 열 가지 수학 문제를 모두 숙달했다.

즉, 경찰 학교 입학시험을 볼 만반의 준비가 됐다.

“할 수 있겠지?”

“그럼, 그럼, 할 수 있다.”

시험 전날 밤.

집에 있는 정우현에게 구태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현아.”

“응?”

“고맙다.”

“하하, 고맙긴 뭘. 친구끼리 당연한 거지.”

“만약 내가 수학 시험을 망쳐도.”

하고서 구태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관없어. 내 수학 성적보다 중요한 건 너와의 우정이니까.”

“하하하하하!”

정우현이 크게 웃었다.

“구태호,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유치하게!”

“…음, 좀 그랬나.”

이에 정우현이 다시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을 테니까.”

“….”

“너는, 무조건 잘 보고 온다.”

정우현의 말에 구태호가 잠시간 말이 없더니 천천히 답했다.

“그래, 나도 알아.”

* * *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경찰 학교 입학시험.

첫 번째 과목인 국어는 구태호의 전공답게 순식간에 풀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과목인 수학.

드디어 수학이다. 이 과목에서 구태호의 입시 결과가 판가름 난다.

구태호는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문제지를 받았다.

그러고서는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청담동 정우현의 집.

정우현은 오전에 잠깐 회사에 출근해 상황을 살피고 집으로 왔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아니, 순조롭다 못해 하루하루 회사가 성장하는 게 눈에 띄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의 밑에 있는 일론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 생산 공장을 하나 더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그리고 심지어 중국에까지 공장을 신설했다.

그만큼 모델 W와 모델 H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일보다 신경이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구태호의 입시였다.

정우현은 아침부터 시계를 자주 보며 구태호를 떠올렸다. 지금쯤 어떤 시험 과목을 보고 있을지, 준비한 만큼 잘하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시각, 정우현은 또 시계를 보고 있었다. 한데 곧장 핸드폰이 울렸다.

구태호였다. 구태호가 시험이 끝나자마자 부모도 선생도 아닌 친구 정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현아!”

심지어 몹시 흥분한 목소리였다.

“나, 됐다!”

“응?” 

“만점! 거의 만점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와아, 잘됐다!”

그제야 정우현의 마음도 놓였다.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수학은? 어렵지 않았어?”

“어려웠지!”

“…그래?”

“응! 엄청 어렵게 나왔어! 수학 시험 때 여기저기서 한숨 쉬고 장난 아니었다니까? 심지어 시험실에서는 한 명이 도중에 짐 싸고 그냥 나갔어!”

“장난 아니었나 보네.”

“그렇지, 하지만 난! 끄떡없었다!”

하고서 구태호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현이 네가 가르쳐 준 문제에서 정확히 일곱 개! 일곱 개가 나왔거든!”

“오, 정말?”

“응! 완전히 같은 문제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푸는 문제가 총 일곱 개나 나왔다는 거야!”

“하하하, 다행이다!”

라고는 했지만, 정우현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역대 기출을 쭉 분석하며, 수학 출제 방향에 있어 일종의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열 문제를 만들어 구태호에게 가르쳐 줬고, 그중 일곱 문제나 적중했다.

즉, 그는 강남의 내로라 하는 강사들보다 더한 족집게 선생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박이야, 대박! 진짜!”

구태호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던 거야, 진짜? 나, 너 아니었으면 그중 몇 개는 손도 못 댔을 것 같은데! 아아, 하여간, 진짜 고맙다, 우현아!”

“하하, 네가 열심히 한 거지, 뭐.”

그렇게 통화를 하고서 구태호는 곧장 채점해 봤다.

100점이었다, 그의 약점 과목이었던 수학에서 무려 100점을 맞았다.

그리고 국어도 100점, 영어에서는 아쉽게도 한 문제를 틀렸다. 그의 장기인 영어는, 지나치게 방심한 나머지 문제를 건성으로 읽다가 실수로 하나를 틀렸다.

이로써 그는 국어, 수학, 영어 세 과목 시험 중 단 한 문제를 틀렸는데, 다행히도 세 과목 모두 만점자는 없었다. 즉 현재로서 구태호가 1등이었다.

이로써 그가 2차 실기 시험과 3차 수능만 잘 보면 계획대로 수석 입학을 할 수 있게 됐다.

* * *

한편, 이 소식은 그들의 친구인 권유라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그녀가 곧장 한국으로 왔다.

정우현이 구태호를 도와줘 한국 경찰 사관 학교 1차 시험의 수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권유라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학기 중에.

“…아니, 유라야. 근데 너 진짜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초동 우후의 본사, 정우현의 사장실.

정우현은 불과 한 시간 전 갑자기 권유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 왔으니 당장 만나고 싶다고.

이에 그녀가 곧장 정우현이 있는 회사로 찾아왔다.

“괜찮아, 학교는. 한국에 좀 급히 가 봐야 한다고 손 좀 써 놨어.”

하면서 그녀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역시 올해 열아홉 살인 권유라는 이미 성인의 느낌이 물씬 났다.

특히 중학생 때부터 미국 생활을 한 그녀는, 어릴 때보다 훨씬 서구적이면서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정우현이 입을 열었다.

“근데 갑자기 왜?”

“치, 정우현. 너는 친구를 거의 반년 만에 봤는데 반갑지도 않아?”

둘의 만남은 지난 겨울 방학 때 이후 처음이었다.

“아, 반갑지, 유라야. 물론 반갑지. 근데 네가 학기 중에 이렇게 갑자기 한국에 와서는 날 보는 건 낯설어서 그러지. 심지어 회사까지 찾아오고.”

“음.”

하고서는 권유라가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태호한테 수학 문제 가르쳐 줬다며.”

“그렇지.”

“그래서 걔가 수학 만점 맞고 경찰 사관 대학교 1차 1등 했다며.”

“맞아. 근데, 내가 가르쳐서 그랬다기보다는 태호가 잘한 거야.”

이에 권유라가 조금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하여간, 너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뭐가?”

정우현의 겸손함이 때론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권유라였다.

하지만 또 그녀는 정우현의 그런 점을 좋아하기도 했다.

“…됐어, 실은 나도 그 때문에 왔어.”

그러고서 권유라가 가방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두꺼운 문제집이었다. 바로 영어가 빼곡히 쓰여 있는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즉, 미국 대학 입학시험 문제였다.

“나도 수험생이라고. 그러니까 나도 좀 도와줘.”

“아아.”

그러니까 권유라는, 구태호의 소식을 듣고 자신 또한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정우현의 도움을 받고자 미국에서 무려 한국까지 왔다. 그것도 학기 중에.

“근데 SAT는 여러 차례 볼 수 있잖아?”

정우현이 곧장 되물었다.

옳은 얘기였다. SAT는 한국의 수능 시험과 달리 여러 번 기회가 있다. 그래서 그중 가장 잘 나온 성적을 대학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 입학의 당락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이 시험을 치른 모든 SAT 점수를 제출하게 하기도 한다.

“응, 그건 그런데.”

권유라가 우후의 직원이 갖다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 커피 맛 좋다. 너희 회사.”

“하하,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를 채용했다고!”

정우현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그는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사내 복지에 큰 신경을 썼다.

그 일환으로 직원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것을 보고서는, 미국에 있는 세계 최고의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북스(Starbooks)에서 책임 바리스타를 스카우트해 왔다. 뿐만 아니라 원두 또한 항상 최고급만을 사용했다.

물론 적지 않은 자금이 들었지만, 직원들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지출이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뭐,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지.”

권유라가 계속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어디 지원하는데?”

“NIT.”

권유라가 당연하다는 듯 짧게 답했다.

그녀는 과학 영재이니만큼 세계 최고의 공과 대학인 NIT를 갈 계획이었다.

이에 정우현이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다.

“유라야, 너 정도면 그냥 갈 수 있지 않아? NIT라도.”

“갈 수 있지. 근데 문제는 입학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왜?”

역시 또 궁금했다. 권유라는 한국 굴지의 재벌 외동딸이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받기는커녕, NIT의 학비가 지금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로 비싸져도 권유라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아.”

“회사는 물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입증할 거야. 내가 실력이 있다는 것을. 사실 한국 영재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금 미국에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어. 유라, 쟤는 돈 많은 집에 태어나서 그리 좋은 학교를 다니는 거라고.”

“….”

“그래서 이번엔 내 힘으로 입증할 거야. 진짜 대단한 건 내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정우현은 NIT에 진학하는 것부터가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척 진지했기 때문이다. 마치 구태호가 경찰대를 무조건 수석으로 입학해야 한다고 한 것과 꼭 같았다.

“그러니까 꼭 입학 장학금을 받아야 해.”

“그렇구나.”

“응, 근데 내 성적이 그러기까지는 조금 모자라.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온 거고.”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대학이기에 그녀보다 더 뛰어난 학생도 물론 있었다. 즉 권유라라고 해서 어딜 가든 항상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또 마시고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금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정우현에게 내밀었다.

SAT 성적이었다. 즉 그녀가 이제까지 치른 모든 SAT 성적이었다.

정우현이 빠르게 성적을 살폈다.

역시나 어릴 때와 비슷하게 구태호와는 정확히 반대의 점수였다. 한마디로 수학은 만점이었으나, 언어 쪽에서 점수가 조금 떨어졌다.

“…으음.”

정우현이 권유라의 성적표를 계속 살피며 소리를 냈다.

이에 권유라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

그래도 정우현이 말이 없자 권유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현아, 왜? …힘들 것 같아?”

“유라야.”

정우현이 그 자세 그대로 권유라를 불렀다.

“응?”

“너, 언제까지 다시 미국에 가야 해?”

“아, 다음 달 안으로는 가야지. 또 SAT 시험이 있으니까.”

“…그럼, 약 한 달 남았군.”

“…맞아.”

정우현이 고개를 들고서 다시 권유라를 불렀다.

“유라야.”

“…응?”

한데 정우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친구라기보다는 엄한 선생님 같았다.

“너는 태호와 상황이 좀 달라. 수학은 알다시피, 출제 범위가 정해져 있는 시험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요령이 있어. 해당 시험의 기출과 패턴을 파악하고 예상 문제들을 어느 정도 유추해 대비할 수 있지.”

“…그건 그래.”

“근데 이 독해 쪽은 그게 불가능해. 세상 거의 모든 학문의 지문을 바탕으로 문제를 낼 수 있으니까. ”

“….”

“이 얘기는 아무리 기출을 분석해도 예상 문제 같은 걸 뽑기가 어렵다는 거야. 더군다나 문학이나 철학 같은, 네가 자신 없어 하는 분야의 지문에서도 분명 문제가 나올 테고.”

하고서 정우현이 굳은 목소리로 권유라를 재차 부르며 말을 이었다.

“유라야, 너 진짜 입학 장학금을 받고 싶어?”

그러자 권유라가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받고 싶은 게 아냐, 받아야만 해.”

하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나,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

그러더니 정우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당장 내일, 내일부터 시작할게. 아침 여섯 시, 정확히 여섯 시까지 이곳 우리 회사의 사장실로 와. 올 때는 지금처럼 괜히 꾸미지 말고, 그냥 가장 편한 복장을 하고 와. 그렇게 여기서, 준비가 되면 너는 나한테 교육을 받고 학습하게 될 거야. 네가 자주 쓰는 노트와 펜, 그것만 들고 와. 나머지 교재라든가 음식, 하다못해 음료 같은 것도 내가 다 준비할 거니까.”

“….”

“그리고 정확히 자정, 그러니까 밤 열두 시까지 너는 공부를 하고 집으로 간다. 그게 하루의 일과야. 그렇게 딱 30일, 30일만 시험을 준비하고 너는 다시 미국으로 가서, SAT 시험을 치르고 NIT를 입학하며 장학금을 받게 된다. 이게, 앞으로 너와 나의 시나리오야.”

그러고서 정우현이 우뚝 서서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이 있으면 지금 하도록. 내일부터는 공부 외의 질문은 받지 않을 테니.”

무지막지한 정우현의 교육 방침에 권유라가 말은 하지 못하고, 잠자코 그를 올려다봤다.

예전에 비해 키가 훨씬 커진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나 큰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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