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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07)화 (107/200)

107화

해가 바뀌어 2011년.

일론이 우후에 합류함으로써 좋은 게 또 하나 있었다.

바로, 그가 SNS를 즐겨 한다는 사실이었다.

전생에서 일론은 주당 100시간 이상 일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는데, 이번 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 잠을 적게 자면서도, 눈만 뜨면 일을 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SNS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휴식 시간에 SNS에 글을 남기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한데 그 내용이 보통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것들, 즉 회사 우후와 사업 내용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Sun and Moon rendezvous. (태양과 달의 랑데부).

이 글은 작년, 우후가 엔티를 합병하고 일론의 영입을 밝힌 직후에 올린 일론의 표현이다.

정확히 누가 태양이고 누가 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는 정우현과 본인이 함께하는 것을 태양과 달의 만남이라고 언급했다.

-Public officials have now learned how to work. (공무원들이 이제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 글은 미국의 몇몇 주 정부가 전기차에 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일론이 남겼다.

정우현은 친환경 기업의 대표로서 전세계 기후 변화와 관련된 세미나나 국제 모임에도 이따금 참석했다.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을, 요목조목 각종 자료를 토대로 효과적으로 주장했다. 실제 그는 우후의 전기차가, 기존의 내연 기관 자동차에 비해 얼마나 많이 환경을 보호하며서도 효율적인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내세우며 펼쳐 보였다.

이에 맞춰 정우현의 팬클럽도 친환경 운동을 계속했다. 그들은 정우현이 회사를 설립한 이래 수없이 운동을 펼쳤고, 그 결과 일종의 환경 단체처럼 되었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특히 전기차 판매량이 가장 많은 미국의 공공 부문에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끝내 실현까지 됐다.

-The era in which we cannot live without Woobots is approaching. (우봇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온다.)

이 글은 우후가 로봇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뒤 남긴 글이다. 정우현과 일론은 우후가 만들 로봇을 Woobot이라고 명명했다.

정우현은 조금 민망하다며 다른 이름으로 하자고 했지만, 일론이 나서서 이름을 확정했다. 제품에는 사명이 들어가야 한다며 그가 강력히 주장했다.

-The only way to become a new human being=Becoming a shareholder of Woohoo. (신 인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우후의 주주 되기)

이 글은 우후가 우주와 인공 지능, 그리고 뇌 신경 과학 등 여러 첨단 분야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고 밝힌 뒤 일론이 남겼다. 정우현과 일론은 일찍이 그들이 토의한 대로 사업을 하나씩 준비했고, 상당 부분 현실적인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일론은 나중에 화성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면 우후 주주들에게 우선적인 우주선 티켓을 줄 거라고 껄껄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했다.

-If the end of mankind comes, it will be when all of Woohoo's projects have failed. (인류에게 종말이 찾아온다면, 우후의 모든 사업이 실패했을 때다.)

이 글은 정우현과 새벽까지 일을 한 일론이,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시고 취하고서는 남긴 감성 글이다. 취해 버린 그는, 인류의 앞날이 우후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처럼 일론이 사업과 관련해 온갖 SNS를 마구 남기다 보니, 때로는 회사 차원에서 따로 홍보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언론까지 일론의 SNS를 조명했기 때문이다.

다소 극적이고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론의 SNS는 우후에 관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입수할 수 있는 경로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홍보 효과가 꽤 있었다.

* * *

그렇게 우후가 전기차 이익을 늘리고, 다른 사업 진출에도 속도를 내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2011년 하반기가 되었다.

정우현이 좀 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올해는 그에게 무척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인 열아홉 살로서 대학 입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영재 학교 조기 졸업 및 NIT 교수직 거절을 끝으로 더 이상 학교와 연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 입시와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친구, 즉 구태호와 권유라가 있기 때문이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서울의 한 스터디 카페 안.

구태호가 문제집과 노트를 펼치고 정우현 앞에 앉아 있다.

“당연하지!”

“…그래, 나는 세계 최고 KGI 재학생이니까.”

구태호는 올해 경찰 사관 학교에 지원했다. 올해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내년 사관 학교에 입학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경찰학교는 총 세 번의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1차는 학교 자체 필기시험, 2차는 신체검사 및 면접 등 실기 시험, 3차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이 중 가장 어려운 건 역시 1차 학교 자체 시험이다.

장차 고위 경찰이 되어 조직을 이끌 엘리트 학생들을 뽑는 시험이다 보니, 자체 시험이 수능보다 훨씬 까다롭다.

구태호는 이 1차 시험을 앞두고 정우현과 만났다. 자신이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정우현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국어랑 영어는 거의 완벽하네.”

정우현이 경찰 학교 기출 및 구태호가 푼 문제를 보고 말했다.

거의 만점이었다. 아주 가끔 하나씩 틀리는 게 있었지만, 구태호의 단순 실수에 불과했다. 한데 그마저도 풀이가 계속되며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학이었다. 물론 영재 학교 출신답게, 대학 입시용 수학 정도는 구태호도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고난도 문제였다. 수능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어려운 문제가 기출마다 조금씩 출제됐는데, 이런 문제에서 구태호가 가끔 오답을 냈다.

“…권유라라면 다 맞혔겠지.”

구태호가 자신이 틀린 수학 문제를 보고 말했다.

“하하, 그 대신 너는 언어를 훨씬 잘하잖아! 어디 역사 문제는 없어? 역사라면 태호 너가, 출제자들보다 잘할 텐데.”

“으음, 우현아.”

어릴 때의 하얀 피부는 온데간데없이, 성장하며 구릿빛의 얼굴을 하게 된 구태호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 시험, 잘 보고 싶다.”

“하하, 잘 봐야지!”

“수학, 수학도 잘 보고 싶어.”

그러고서 그가 다시 빗금이 그어진 자신의 수학 문제를 보고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알고 있어, 나도. 내게 너나 유라에게는 있는 수학적 재능은 거의 없다는 걸. 하지만 그래도, 잘, 하고 싶어.”

“그래, 태호야.”

“아버지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교 친구와 후배들도 나를 보고 있어. 우현아, 내가 예전에 말한 거 기억나?”

“뭐?”

“너랑 유라가 KGI를 졸업하고 나갈 때, 나는 남아서 우리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만들고 나는 KGI 최고의 학생이 되겠다고 한 거.”

“그럼, 기억나지.”

“응, 지금이 딱 그 시기야. 물론 현재까지 나는 완벽했다고 자부한다. 너랑 유라 없는 KGI에서, 내신이고 교내 시험이고 전체 1등을 단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내가 이제 KGI를 졸업해 진학을 눈앞에 두게 됐어. 그것도 국내 최고의 사관 학교인 경찰 사관 학교로.”

“….”

한껏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구태호를, 정우현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시점, 그가 얼마나 진지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나의 목표는 단순히 한국 경찰 사관 학교 합격이 아니야.”

“그럼?”

“바로 수석 입학이다.”

“오!”

“무조건, 무조건 경찰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해야 해.”

그러고서 구태호가 강렬한 눈빛으로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현아, 너의 도움이 절실하다. 솔직히 선생님들이 그러기를 지금 내 수준으로도 경찰학교 합격은 무리가 없다고 해. 한데 문제는 내가 수석으로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그래야 아버지와 선생님, 그리고 KGI 학생들은 물론 무엇보다 나,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구태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과거 어린 시절 KGI에 입학했을 때 워낙 정우현이 압도적인 실력자인 데다 어른스럽기도 해 금세 그를 받아들이게 됐지만, 본디 그는 승부욕이 엄청나다.

이는 검찰총장 출신의 국내 최고 법조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게 한몫했다. 무얼 하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있었다. 역시 정우현과 함께할 때였다. 일찍이 정우현을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와 친구가 되었기에, 오직 그와 함께할 때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반면, 권유라와 함께할 때는 알게 모르게 경쟁심이 있었다. 예컨대 권유라가 비록 수학은 잘하지만, 자신이 언어는 더 잘하는 등 그녀와 자신을 종종 비교하며 생각할 때가 있었다.

결국, 그래서 오늘 구태호는 정우현에게 만남을 청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우현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탁할 수 있었다. 입시 준비와 공부 좀 봐달라고.

“나도 알아, 문제는 수학이지. 항상 그랬으니까.”

구태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아마 수석을 하려면 수학에서도 거의 만점을 받아야 할 거야. 한데 이대로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지. 그래서 널 만나자고 한 거고.”

하고서 구태호가 뒤늦게 표정을 고치고는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나저나 미안하다, 우현아. 너 엄청 바쁜데 이렇게 시간 내줘서.”

“아니다, 태호야.”

정우현이 곧장 답했다.

“네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눈앞에 뒀는데, 당연히 내가 와야지.”

그러고서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회사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어. 예전보다 업무량도 훨씬 줄었고.”

“오, 그래? 다행이다.”

“응, 그러니까 걱정 마! 야, 솔직히 나한테 연락 안 했으면 내가 서운할 뻔했다. 태호, 수학 봐줄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냐, 나밖에 없지!”

“하하하, 맞다, 맞아!”

하고서 둘이 본격적으로 문제 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우현이 보니, 사관 학교의 수학 문제는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창의력이 중요했다.

즉, 교과서에 충실한 단계적 접근보다는 발상의 전환과 그에 따른 아이디어가 풀이의 핵심이었다. 아이디어를 찾기만 하면, 의외로 단번에 풀리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봐봐, 이렇게 역수를 취해서 로그함수로 만들면 되는 거야. 어때 바로 풀리지.”

“…응.”

이렇게 정우현은 구태호에게 일일이 문제 풀이를 가르치며 며칠간 계속 함께했다.

한편 정우현은 혼자 있는 시간에 틈틈이 경찰 사관 학교의 역대 기출문제를 모두 모아 따로 분석했다.

그러고서는 대략 올해 나올 문제의 방향성까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일 후.

“…이게 뭐야?”

정우현이 구태호에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문제지였다. 그것도 수학 문제가 프린팅된.

“예상 문제야.”

“…응?”

“내가 예상 문제를 몇 개 만들어 와 봤어. 분명 이 중에서 문제가 나올 거야.”

“…와.”

구태호가 입을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순히 수학 공부 좀 도와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문제까지 만들어 오다니.

심지어 열 개나 됐다. 즉 정우현은 오로지 구태호를 위해, 경찰 학교 입시 수학 예상 문제를 열 개 만들어왔다.

“태호야, 결국엔 난도가 높은 고득점짜리 문제로 희비가 엇갈릴 거야. 내가 만들어 온 문제는 모두, 아무리 경찰 학교라도 입시 수준으로는 무척 어려운 수준이니까, 이것만 잘 공부하고 대비하면 네가 뜻한 바에 한결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다.”

“…아.”

구태호가 탄성을 내뱉으며, 정우현의 예상 문제지를 손에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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