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정우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어쨌든 잘됐어요. 지금 일론은 저와 함께 있고, 일론이 이끌던 엔티의 모든 것도 우리와 함께하게 됐으니까요.”
일론은 얼마 남지 않은 투자자 명단 중 우후 법인을 보고 생각 끝에 정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와 달라는 얘기였다. 정확히 하자면 파산만큼은 막게 해 달라고.
그러기 위해선 정우현이 또 거액의 투자를 해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렇게 되면 우후가 엔티의 비상장 주식 중 과반을 점하게 된다.
즉, 엔티의 주인이 정우현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 정우현은 이 점을 강조했다. 도와줄 수는 있으나, 일론이 더 이상 엔티의 최대 주주로 남을 수는 없게 된다고.
그러자 일론이 고심 끝에, 놀랍게도 역으로 합병을 제안했다. 이대로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진 채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후의 모델을 직접 보니, 솔직히 상상 이상이었다.
일론이 전력을 다해 만들고 있는 엔티의 전기차보다 훨씬 앞섰으니까.
이에 일론은 처음으로, 정우현이 자신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시간과 함께 더욱 굳혀졌다. 우후의 기술은 더욱더 빠르게 진보했고, 자신의 엔티는 그에 비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회사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마침내 그는 엔티의 모든 것과 함께 우후에 속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일론이 그동안 정우현에게 배척당하기만 했다면 결코 하지 못할 결심이었다.
하지만 정우현은 시종일관 일론을 정중하게 대했다. 심지어 그가 언론 플레이를 할 때도 그랬다. 이 같은 정우현의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오히려 일론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우현과 함께라면, 일론 자신은 물론 그가 이끌던 엔티의 모든 게 훨씬 더 빛을 발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일론의 이 같은 역 합병 제안을, 정우현은 물론 놀라면서도 몹시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여간 저는, 일론이 합류해서 너무 좋아요.”
“나도 좋다. 물론 내 회사인 엔티가 온전히 있을 수 없게 된 건 안타깝지만… 뭐, 어쩌겠니,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지. 그래도 버젓이 나는 이렇게 있고, 앞으로 너를 따라….”
하는데 일론이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러다가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아, 미안하다. 사장(President)이라고 해야 하는데, 계속 너무 편하게 말을 했군.”
“아니에요.”
이에 정우현이 즉각 답했다.
“그냥 하시던 대로 하세요.”
“으음, 아니다. 그래도 엄연히 나는 이제 우후의 직원인데.”
“…우리 엔지니어 팀은.”
정우현이 말했다.
“저를 그냥 보스라고 해요. 훨씬 이전부터요.”
“…아아, 그래?”
이에 일론이 조금 생각하더니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보스!”
그러고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새롭게 보스를 따라, 내가 뜻한 바를 맘껏 펼쳐 볼 수 있을 테니, 나로서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예, 일론, 저번에도 말했지만.”
하고 정우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론은 앞으로 우리 회사 내에서 굉장히 자율적으로 일을 하게 될 거예요. 제가 그만큼 일론의 능력을 믿으니까요. 또한 그에 따른 성과도 당연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정우현과 일론이 합의한 업무 방식이었다. 일론은 전기차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술 부문에 있어, 자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딱 내가 원하던 바다!”
사실 이 또한 일론이 먼저 제안했다.
이에 정우현은 전생에서 일론의 행보를 떠올리고 금방 승낙했다. 일론이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에너지 넘치게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론 같은 사람이야말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곧이곧대로 일을 시키기보다는 자율성을 주는 게 여러모로 나으리라 판단했다.
한편 엔티의 비상장주식은 우후에 합병되면서 특정 비율로 모두 우후 주식으로 교환되었다.
이로써 일론은 우후의 주식 중 약 5%의 지분을 점하게 됐다.
이와 함께 우후의 시가 총액은 더욱 커졌다. 역시 캘리포니아에 있던 엔티의 전신인 엔티 모터스의 사무실과, 그리고 프레몬트에 있는 우후의 공장만큼 큰 텍사스의 엔티 공장 또한 모두 우후의 것이 됐다.
나아가 그동안 일론이 기를 쓰고 개발한 모든 기술 또한 우후에 속하게 됐다.
이로써 정우현의 우후는 더욱더 커지고 탄탄해졌다.
특히 전기차 업계에서는 명실공히 독보적으로 세계 1위였다. 실상 우후를 제외하고는 전기차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그럴듯한 회사가 세계적으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특허 등록된 전기차 기술의 95% 이상이 우후의 소유였다.
* * *
한편 시간이 조금 지나 미국 캘리포니아 우후 사무실.
정우현이 일론과 얘기하고 있었다.
정우현은 주로 한국에 있었지만, 틈틈이 이렇게 미국을 오고 가며 북미에서의 사업도 총괄 지휘하고 있었다.
“보스. 그런데 말이야.”
일론이 짐짓 미간에 힘을 주고 말했다.
“예?”
“이제는 슬슬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해.”
“…뭐요?”
“특허. 특허 등록된 기술.”
“아.”
일론의 말에 정우현이 즉각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소리를 냈다.
“기술을 나눠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
“예, 저도 그럴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 보스가 더 잘 알겠지만.”
하고서 일론이 전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정리된 표를 꺼내 들었다.
“전기차 시장이 아직도 너무 작아. 물론 우리 회사는 계속 매출이 늘고 있지만, 전 세계 자동차 수를 놓고 보면 역시 미미하다는 거지.”
“맞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모든 기술을 공개해서, 전 세계 다른 회사들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게 해야 해.”
우후의 전기차 특허 등록 기술이 워낙 광범위해서, 실상 다른 회사들은 전기차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하, 괜히 미안한데요. 예전에 일론이 철회해 달라고 할 땐 안 했다가, 지금 그러려고 하니까.”
“아니야, 보스.”
일론이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당시 보스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 장기적으로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계에서 우위를 점했을 때의 얘기지.”
“맞아요.”
“나야 당시 엔티가 뒤처져 있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그런 말을 했던 거니까. 하여간, 이제 다 과거의 일이고, 나는 보스를 이해한다.”
하고서 두 천재는 다시 기술 공개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마침내 우후는 특허 등록된 모든 기술을 전격 무료로 공개했다.
이에 전 세계의 언론이 놀라움과 찬사를 표했다.
‘The world’s number one electric car company. They disclose their know-how for free. (세계 1위의 전기차 회사. 그들만의 노하우를 무료로 공개하다.)’
‘天才とオタクの合弁? 特許電撃公開!(천재와 괴짜의 합작? 특허 전격 공개!)’
‘Woohoos erstaunliche Strategie: Den Kuchen für Elektrofahrzeuge wachsen lassen.(우후의 놀라운 전략: 전기차 파이 늘리기.)
‘Woohoo edistää vähähiilisen päästön ja ympäristöystävällisyyden aikakautta. (저탄소배출 및 친환경 시대를 앞당기는 우후.)’
동시에 우현수호단과 우현스가디언 또한 친환경 운동을 재차 이어 나갔다.
이에 대중 및 언론들은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를 더욱 조명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전기차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됐다.
이와 같은 흐름에 힘입어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드디어 하나둘 전기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연 기관 자동차처럼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별도로 전기차를 연구하는 작은 프로젝트 팀을 하나씩 두는 수준이었다.
물론 모두 무상으로 공개된 우후의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이에 어느 날 정우현에게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장님!”
“하하, 오랜만이다.”
바로 에이치 자동차의 사장, 즉 권유라의 아버지였다.
그는 정우현이 회사에서 떠난 이후, 그가 만든 엔진 WH-X를 탑재한 HX시리즈에 집중해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즉 에이치 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 중 점유율을 더욱 높였다.
“잘 계셨어요?”
“그럼, 그럼 잘 지냈지!”
하더니 그가 말을 이었다.
“아아, 우현아, 축하한다. 너의 전기차 회사가 짧은 사이 무척 성장했더구나.”
“에이, 에이치 자동차에 비하면 아직 멀었죠!”
“하하, 아니다, 아니야. 사업이란 언제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 그러니까 너나 나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지.”
그러고서는 그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우현아.”
“예?”
“이번에, 너희 회사가 전기차 기술을 모두 공개했더구나?”
“아, 예! 다른 자동차 회사도 전기차를 개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그래? 음, 나 같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하고서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여간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다. 이번에 우리 에이치 자동차도 전기차 개발 팀을 만들게 됐거든.”
“아아, 잘됐네요.”
“이렇게 되고 보니, 그때 너를 어떻게든 남게 해서, 진작 우리 회사에서 전기차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럼 특허를 공개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기존 내연 기관 자동차 라인이랑 같이 생산하면서, 훨씬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전기차 점유율을 늘려가면 되니까.”
“음, 아니에요!”
정우현이 즉각 답했다.
“가정은 쉽죠, 사장님. 하지만 당시엔 당시의 상황이 있었고, 지금은 또 이렇게 많은 게 달라졌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하하.”
하면서도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냐마는… 하여간. 우현아.”
“예.”
“우리 에이치 자동차도 이제 수년 안에 전기차를 생산하게 될 거다.”
“예, 그렇게 되겠죠.”
“이 뜻은 너와 내가 이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얘기지.”
“하하, 그런가요? 어쨌든 저는 에이치 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얼른 전기차를 만들기를 원해요! 사람들이 내연 기관 자동차 못지않게 전기차를 많이 타길 바랍니다!”
“…으음, 그래, 그래.”
하고서 사장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여전히 그에 관해서는 의문이지만, 하여간 목소리도 듣고 싶고 해서 오랜만에 전화해 봤다.”
“감사합니다!”
“아, 우현아.”
“네?”
“일이랑 관계없이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렴. 유라 엄마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해요.”
“아아.”
그리고 사장이 조금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나도.”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서 둘은 몇 마디를 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 * *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2010년 하반기.
미국에 있는 일론이 한국에 있는 정우현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헤이, 보오스!”
“예, 일론?”
일론의 목소리는 무척 다급하면서도 기쁜 기색이었다.
“우리 매출 기록 봤어?”
“아, 하하하, 예!”
정우현은 일론이 왜 그토록 기분이 좋은지 단번에 알았다.
“드디어 흑자야! 북미에서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고!”
“일론.”
“응?”
정우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아!”
정우현이 전기차 개발을 마음먹은 지 어언 5년.
5년 만에 그의 회사 우후는 드디어 처음으로 반기 흑자를 달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