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아아!”
우후의 주주들이 무대 뒤에서 등장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쟁사인 엔티의 사장 일론 마스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텍사스 지방에서 주로 쓰는 카우보이모자를 착용한 상태였다.
즉, 일론이 우후의 첫 주주총회에 깜짝 등장했다.
이에 주주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
일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무대 앞으로 걸어오더니, 놀랍게도 카우보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말을 타는 시늉을 하며 다리를 굽히고 들썩거렸다. 그러고서는 한순간 무대 한구석으로 가 준비한 밧줄까지 한 손으로 들고 허공 위로 휘휘 돌리다가, 다시 무대 중앙으로 와서는 전방을 향해 휙 던졌다.
“하하하!”
이에 몇몇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아직 꽤 많은 사람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쨌든 여전히 경쟁사의 사장이기 때문이다.
한데 일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던 정우현이 마이크를 들고 다시 주주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예!”
“일론이!”
하고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일론을 향하고는 팔까지 뻗어 그를 가리켰다.
“오늘부로 우리 우후에 합류했습니다.”
“….”
주주들은 갑작스러운 정우현의 말에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듯 전방을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우후가 엔티를 합병했습니다. 즉, 우후와 엔티는 이제 하나입니다!”
아주 잠시 사람들이 가만히 있더니, 한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빅 뉴스였다. 북미 최초의 현지 전기차 법인인 엔티가 우후에 합병되었으니까.
일론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무대인 양 더욱더 현란하게 춤을 췄다.
그러고서는 흐느적거리며 정우현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손에 쥐고서 말을 했다.
“우현.”
“예?”
“너도 춰라, 춤. 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니.”
일론의 말에 주주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외치기 시작했다.
“댄스! 댄스! 댄스!”
“…하하하.”
정우현이 조금 머뭇거리자, 놀랍게도 맨 앞줄에 있던 턱수염 수북한 남자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제각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춤이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그저 즐거운 몸짓이었다.
“우현.”
정우현 옆에서 일론이, 이번에는 마이크를 입에 대지 않고 작게 말했다.
“봐라, 다들 기뻐하고 있어. 그러니 이런 자리에선 좀 풀어져도 된다.”
“음.”
정우현이 찬찬히 전방을 둘러봤다.
계속해서 춤을 추는 사람들.
주주 총회가 아니라 마치 댄스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 같았다.
이에 그가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오오!”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정우현이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아!”
춤이었다. 그것도 완벽한 브레이크 댄스에, 심지어 팝핀까지 하는 등 몸을 마구 꺾고 튕겼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아주 오래전,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 앞에서 춤을 춰 직접 액션 씬을 할 수 있다고 어필한 정우현이다. 거기에 우현수호단 팬클럽 모임에서도 그는 완벽한 춤을 췄었다.
그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다만 남들 앞에 보이지 않았을 뿐.
거기에 이제는 성인과 다를 바 없는 신체가 되어, 즉 팔다리가 길어지는 등 비율이 좋아져 춤을 추니 그야말로 아이돌이 따로 없었다.
여성 주주들은 벌써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정우현만 바라봤다.
실상 우현스가디언이면서 우후의 주주가 되어 이번 주주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즉 주주 총회는 실제 일종의 정우현 팬클럽 모임이기도 했다.
“…와우.”
일찌감치 자신의 동작을 멈춘 일론이 놀란 기색으로, 춤을 추는 정우현과 열광하는 주주들을 바라봤다.
그러고서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가 이런 엄청난 회사와 경쟁을 했던 건가.”
* * *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의 춤도 멈췄다.
달아오른 분위기도 좀 가라앉으면서, 일론이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인사를 하게 됐다.
“안녕하십니까, 일론 마스크입니다.”
짝! 짝! 짝!
이에 사람들이, 사장인 정우현을 대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실상 이제는 일론도 우후의 소속이었기에, 주주로서 그를 딱히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분은, 저 일론이, 얼마나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 것입니다.”
“….”
특유의 자극적인 화법에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런 제가, 저의 천재적인 능력을 십분 더 발휘하기 위해, 이번에 새롭게 우후에 합류하게 됐음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조용했다.
“…으음.”
그러자 일론이 두리번거리며 다행히도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물론 정우현 사장과 함께하게 되어 크나큰 영광이기도 합니다…!”
“와아아아!”
이에 주주들이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로서는 일론이 합류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장인 정우현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하하하.”
자신은 안중에 없이 오로지 정우현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일론이 조금 멋쩍게 웃고는 옆에 있는 그에게 작게 말했다.
“우현, 우후는 역시 너의 회사구나.”
“아니요, 일론. 우리 모두의 회사죠! 일론이 왔으니 이제 더욱더 크고 멋진 회사가 될 거예요!”
“…하하, 그래.”
하는데 순간 주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과하시오!”
트럭 운전사인, 문신을 한 주주였다. 그가 맨 앞에서 벌떡 일어나 일론을 보고 소리쳤다.
“언론에, 우후는 엔티로부터 시작됐고 정우현 사장이 당신의 제자라는 등 그런 소리를 한 것에 사과하시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주주들도 따라 소리쳤다.
“맞아!”
“사과해! 사과해!”
그 모습을 보고 일론보다는 정우현이 앞장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아, 여러분!”
“…예!”
“저는 괜찮습니다! 당시 제가 일론에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고요, 또 어쨌든 지금 이렇게 잘….”
하고 말하는데 순간 누군가가 크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론이었다. 일론이 마이크를 들고 불쑥 외쳤다.
“주주분들의 뜻대로, 이 자리를 빌려 정우현 사장과 여러분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겠습니다!”
“….”
이에 주주들은 물론 정우현도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당시 저는 제가 이끌고 있던 엔티가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소 자극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에 상심하신 모든 분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심지어 허리까지 숙여 보였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과 달리, 사죄의 의미로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한데 우후가 본사를 한국에 둔 한국 회사이니만큼 동양 문화를 따라 그가 허리를 숙였다.
이는 일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과의 의미였다.
“….”
이에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다가는 누군가가 손뼉을 치더니, 차차 다른 이들도 따라서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이윽고 모든 사람이 손뼉을 쳤다.
그럼에도 일론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정우현이 옆에서 작게 말했다.
“됐어요, 일론.”
그러고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됐어요.”
이에 일론이 허리를 펴고, 몸을 돌리더니, 정우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고서는 다시 한번 머리를 숙여 정우현에게 인사를 한 뒤 오른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정우현이 한껏 미소 짓고는, 역시 손을 뻗어 일론의 손을 잡았다.
두 천재이자,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 함께하게 됐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주주들은 손을 맞잡은 정우현과 일론의 모습에 다시 한번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 * *
일론이 우후에 합류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엔티는 우후의 투자금으로 텍사스에 공장을 신설하고, 드디어 본격 모델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한데, 판매가 저조했다. 정말 처참할 정도로 저조했다.
왜냐하면 북미 시장은 이미 우후가 선점했기 때문이다.
아직 전체 자동차 시장을 놓고 볼 때 전기차의 점유율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 작은 파이를 이미 우후가 거의 선점하게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뒤늦게 출시된 엔티의 모델이 선전하려면, 그들의 제품이 우후의 것보다 확실히 더 좋거나 최소한 비슷하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명백히 우후가 엔티보다 기술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이에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엔티의 모델은 재고가 쌓이고, 애써 신설한 공장은 결국 가동이 중단됐다.
이 얘기는 가뜩이나 적자인 엔티가 더욱더 큰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에 엔티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면서까지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엔티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처음부터 너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주주 총회 후 일론이 우후의 미국 현지 본사인 캘리포니아 지점에서 정우현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같은 기술 성장 회사는 매출의 상승세가 중요하지. 현재로서 적자는 면할 수 없으니, 미래의 판매량이야말로 회사의 명암을 결정 짓는다.”
“그렇죠.”
“그래서, 기다렸다. 하반기 예약 판매 차량이 눈에 띄게 상승할 수도 있으니까.”
“….”
정우현이 햄버거를 한입 베어 먹으며 일론의 말을 경청했다.
“기존 예약 대수의 딱 1.5배. 1.5배만 예약이 늘면, 난 어떻게든 사업을 지속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당장은 힘들어도, 어쨌든 성장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발을 뺀 투자자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한데….”
순간 일론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결과가 나왔다. 더 감소한 거다, 예약 차량이.”
“…아아.”
“그래서 내게 남은 선택은 오로지 하나로만 보였다. 자본금이 바닥나 큰 빚이 생기기 전에, 공장이고 모델이고 사업을 중단하고, 남은 모든 것을 헐값에 넘겨 버리는 것.”
일론이 콜라를 한 모금 먹고 말을 이었다.
“근데 그런 생각을 하자니 너무 안타까운 거다. 어떻게 이룬 회사인데… 거기에 뭐랄까, 그래, 인생에 진 것 같기도 해서 오기도 좀 생겼지.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는….”
“저한테 전화를 거셨죠.”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하하, 그래.”
일론이 짧게 답하고서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남은 투자자들의 명단을 살폈다. 역시나 크고 작은 투자자들이 대부분 손을 털고 나갔지. 한데, 얼마 남지 않은 투자자 중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그들 중 가장 큰손이었어.”
일론의 말에 정우현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바로 우현, 너의 우후였다.”
“예, 저 또한 엔티의 재정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니, 우현? 우후의 5,000억 원이 까딱하다가는 휴짓조각이 될 수 있었는데….”
“일론을.”
이에 정우현이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믿기 때문이에요.”
“….”
“저는 일론이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결국 이번에 저에게 전화했던 것처럼요.”
그러고서는 그가 햄버거를 식탁에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말 그대로, 그 투자금은 예전 제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입니다. 보답해 놓고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다시 철회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보답이 아닐 것입니다.”
“…우현.”
일론이 감동 어린 얼굴로 정우현의 이름을 그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