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알았어.”
동생이 오빠 정우현의 말에 잠시간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빠 말 들을게."
“그래, 그래!”
이에 정우현이 곧장 답했다.
“그래야, 내 동생 정다현이지!”
그러자 동생도 바로 말을 이었다.
“오빠 말대로 가까운 사람한테.”
“응?”
“잘해야 하는데.”
하고 그녀가 자책하듯 말했다.
“고민 있다고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던 것 같아. 엄마, 걱정하시게.”
정우현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 동생은 이제 반성을 하고 있었다.
“하하.”
정우현은 그런 동생을 웃으며 그저 지켜볼 따름이었다.
“오빠.”
동생이 정우현을 불렀다.
“응?”
“나, 오빠가 주는 돈 있잖아.”
“아, 응.”
정우현은 여전히 자신이 소유하는 빌딩 임대료의 10%를 관리비 명목으로 어머니를 통해 동생에게 주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흘러 임대료도 계속 올라가, 한 달에 거의 3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 됐다.
즉, 동생은 매달 정우현에게 약 3천만 원을 받고 있었다.
“그거 다달이 어디에 쓰고 있는지 알고 있어?”
“…아니?”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애초 그 돈은 어머니에게 맡긴 지 오래였고, 또 그렇게 동생에게 줬으면 엄연히 동생의 돈이었기에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와 동생을 믿고 있기도 했고.
“어디에 쓰는데?”
궁금해진 정우현이 곧장 되물었다.
동생은 비록 사춘기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옷이나 화장품 등을 거의 사지 않았다.
어릴 적 선물을 사 준다고 해도 젤리만 고집하던 동생은 청소년이 되어도 큰 변화가 없었다. 즉 알뜰했다.
근데 그런 그녀가 그렇게 큰돈을, 그것도 다달이 어디에 쓰고 있다고 말하니 몹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치병.”
동생이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어, 국내외로.”
“…아아.”
생각도 못 한 말에 정우현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생이 착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에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쓴다니.
한데 이내 또 궁금한 게 생겨 다시 물어봐야 했다.
“…잘했어! 근데.”
“응?”
“그 돈을 전부? 그러니까 오빠가 주는 돈을 다달이 전부 난치병 아이들을 돕는 데 기부하고 있어?”
이에 동생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니.”
“….”
“반만.”
하고서는 동생이 강조하듯 한 번 더 말했다.
“딱 반만 기부하고 있어. 매달 오빠가 주는 돈에서.”
그러니까 대략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동생은 매달 좋은 일에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정우현이 이제는 대강 다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렇지, 매달 적은 돈도 아니고 그렇게 기부를 한다는 게 대단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잘했다, 다현아.”
“고마워, 근데 다 오빠 덕이니까.”
하고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이제야 좀 동생이 동생 같아졌다. 사춘기를 겪고 있어도, 그녀는 변함없는 정우현의 착한 동생이었다.
“엄마한테는 일부러 따로 오빠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 기회 되면 내가 직접 얘기하고 싶었거든.”
“그래, 그래.”
“근데 그렇게 밖으로는 좋은 일을 한다면서, 안에서는 정작 고민에 빠져 가족들 속 썩이고.”
하고 동생이 여전히 자책하며 말을 이었다.
“나빴다, 정다현.”
“하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알았으니까 됐어.”
정우현의 말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고마워, 오빠, 정말. 아까 진로 상담부터 해서, 좋은 말도 많이 해 주고.”
“그래, 그럼 다현아. 이따, 엄마 집에 오시면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면서 격하게 한 번 안아 드려.”
어머니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밖에서 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알았어.”
안아 드리라는 정우현의 말에, 동생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이에 정우현이 동생에게 몇 마디 더 말을 하고서는, 이제 됐으니 그만 방으로 돌아가 보라고 했다.
“….”
한데 어쩐지 동생이 쭈뼛쭈뼛하고서는 좀처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정우현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서 말했다.
“안 가?”
“오빠.”
“응?”
“…오빠는 내가 왜, 병원을 좋아하는지 알아?”
알 것 같았다. 알 것 같았지만, 정우현은 아는 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 너 어릴 때 그 뭐야! 무슨 병원 놀이 세트 보고 좋아서는 그 후로 계속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것처럼 답했다.
“사람들.”
“응?”
“사람들을 돕고 싶었어. 오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 아주 어릴 때 티브이에서 뭘 봤단 말이야. 막 아프리카 같은 데서 의료진들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약을 나눠 주고 그랬어.”
“….”
“그러면 그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던 사람들이… 웃어. 해맑게 웃어.”
동생이 오래전 티브이 영상을 떠올리며,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잠시 말을 않았다.
해당 영상과 그 기억이야말로, 동생의 인생을 결정 짓는 중요한 무엇인 게 틀림없었다.
“…그게, 난 좋았어. 아팠던 사람들이 환히 웃는 게.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흰옷을 입은 의료진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던 거야.”
“…그랬구나.”
“응, 아주 어린 나이라서 당시엔, 그저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상을 떠올리면, 선명해져. 장차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하고서 동생이 뒤늦게 현실로 돌아오고서는,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말을 한 것에 얼굴을 붉힐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 미안. 괜한 말을 하느라 계속 여기 있었네. 오빠, 나 이제 가 볼게.”
“…하하, 그래.”
그러고서 정우현은 자신의 방에서 나가는 동생을 한 번 불렀다.
“다현아.”
이에 동생이 문 앞에서 뒤를 돌며 답했다.
“응?”
“고맙다, 오늘. 오빠 얘기도 잘 들어 주고, 또 이런저런 얘기를 솔직하게 다 해 줘서.”
“고마운 건.”
그러자 동생이 짧게 답했다.
“나지. 내가 누굴 믿고 용기를 내고 이렇게 꿈을 꾸는데.”
하고 그녀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사춘기의 열병은 잠시뿐, 기특한 동생이었다.
* * *
해가 바뀌어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몬트의 우후 공장 대강당.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후의 첫 주주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우후의 주가는 현재 약 200달러.
즉, 상장 이후 2,000%에 가까운 놀라운 수익률을 보이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놓고 보면 하락하는 날도 물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세 상승 중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인 모델 W가 사람들의 호평 속에 계속해서 매출이 상승했고, 정우현은 정우현대로 CEO로서 투명하게 회사의 재무 정보를 공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이에 맞춰 미국에 있는 그의 팬클럽 우현스가디언은 줄기차게 친환경 운동을 했다. 심지어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모델 W를 직접 구매해 엄청난 홍보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가 탄탄하고 앞길은 창창하니, 주가 또한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아아!”
정우현이 무대에 등장하자 주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계 최고의 회사와 함께하고 있는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되어 대단한 영광입니다!”
하고 정우현이 주주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욱더 소리를 질렀다.
정우현의 나이 어느덧 열여덟 살. 그는 올해 키가 180센치미터가 넘었다.
이로써 아직 미성년이지만, 외관상으로는 성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에 배우 출신답게 잘생긴 것은 물론, 심지어 얼굴은 작고 다리는 길어 비율 또한 완벽했다. 즉 누가 봐도 멋졌다.
한데 그런 그가 근사한 정장을 입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잘나가는 회사 사장의 모습으로 주주총회를 여니, 주주들은 더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우후의 첫 주주총회입니다. 오늘은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의 신 모델을 공개하는 날이기도 한데요!”
“와아아아아!”
신 모델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더욱더 흥분했다.
새 모델이 출시되어 또 히트를 치면 주가는 더욱더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모델 H입니다!”
정우현이 순간 몸을 옆으로 돌리며, 커다란 강당 옆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두웠던 공간에 불이 들어오며 위풍당당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커다란 차량이 한 대 모습을 드러냈다.
트럭이었다. 승용차인 모델 W 출시 후, 그와 엔지니어 팀이 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 트럭이었다.
모델 명인 H는 정우현의 회사 WooHoo의 H를 땄다.
정우현은 장차 모델 W 시리즈는 승용차로, 그리고 이 H 시리즈는 계속해서 트럭으로 출시할 계획이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생각지도 못한 신 모델의 모습에, 사람들이 이제는 아예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맨 앞줄에 앉은, 덩치가 크고 배가 불뚝 나온 데다 양팔에 진한 문신을 한 턱수염의 백인 중년 남자는 아예 온몸을 흔들며 춤을 췄다.
트럭 운전사였기 때문이다. 일을 위해 오랫동안 트럭을 끌고 다녔다. 한데 우후의 전기차는 승용차밖에 없었기에 아쉬워했는데, 드디어 트럭차가 출시됐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워낙 커, 정우현은 거의 소리를 지르듯 말해야 했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 버튼을 한번 눌렀다.
타닥.
그러자 전기차 트럭에 불빛이 들어오더니 시동이 걸렸다.
“오오!”
사람들이 놀랐다.
원격 시동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우현이 또다시 버튼을 누르자, 모델 H가 천천히 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강당에서 공장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향했다.
“아아아아!”
사람들은 이미 입을 벌리고 말을 잃기 시작했다.
정우현은 직원들에게 지시해, 공장 내부의 시험 주행용 도로에 장애물을 놓은 상태였다.
한데 이 모델 H가, 안에 그 어떤 사람도 없이 주행하는 것을 넘어, 해당 장애물을 매끄럽게 피하기까지 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경악을 했다.
때는 2010년.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차가 스스로, 그것도 장애물을 피해 주행한다는 것은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한데 여기, 이번 생에서는 정우현에 의해 일찌감치 현실이 되었다.
“이번에!”
정우현이 스스로 잘 주행하는 모델 H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우후가, 세계 최초로 상업용 자율 주행 기술을 개발해 모델에 탑재했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처음엔 물론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완벽합니다!”
그러고서 그가 주주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 모델에 탑재된 기술은, 천 번에 가까운 시험 주행 중 단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죠! 즉, 잘 굴러간다는 얘기입니다! 그것도 아주 똑똑히요!”
그러고서 그가 씨익 웃었다.
“저는 아직 미성년이라 운전을 할 수 없지만.”
“….”
수많은 주주가 고요해졌다.
오로지 정우현의 말을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고 듣기 위해.
“20년이나 운전대를 잡은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델 H의 운전 실력이 자신보다 낫다고 하더군요!”
“하하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사실, 축제 같은 주주총회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두두둥!
순간 카우보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서부 음악이 강당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다들 뒤를 봐 주세요!”
하고 정우현이 무대 한편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