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정우현이 일론의 도발에도 잠자코 있는 이유가 또 있었다.
전생에서 일론이 어떤 사람인지 미디어로나마 보고 왔기 때문이다.
악의는 없어 보였다. 악의는 없이, 남 눈치 안 보고 그저 자신이 하고픈 대로 다 하는 괴짜.
특히 그는 SNS를 무척 좋아했는데, 정우현이 과거로 돌아간 시점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2022년 5월 한 유력 SNS 회사를 인수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여간 정우현은 그런 일론의 성향을 알고 있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일론이 이끄는 엔티의 모델은, 우후의 모델 W에 비하면 확연히 떨어진다. 그리고 정우현의 계획대로라면 그와 같은 격차는 앞으로 커지면 더 커졌지 좁혀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우현은 하던 대로 하며 스스로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 * *
그리고 또 반년이 흘러 2009년 하반기.
정우현이 청담동 집 안, 자신의 방에서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의 나이 17세, 이제 성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키가 컸고, 변성기도 완전히 지나 목소리도 굵어졌다.
정우현은 이번 생에도 당연히, 2차 성징을 겪어 어렸을 때 비해 훨씬 더 남자다운 체형을 갖게 됐다. 다만, 두 번째 삶이기에 사춘기 특유의 고민이나 방황은 하지 않았다.
“아들.”
그런 정우현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예, 엄마.”
“아아, 내 아들이지만, 참 멋있다.”
어머니가 정우현을 바라보고 지그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에 정우현이 화답했다.
“하하, 엄마 아들이니까 그렇죠!”
“음.”
어머니가 넥타이 등 정우현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근데 아들.”
“네?”
“아들은 뭐, 별일 없지?”
“예, 없어요.”
정우현은 어머니가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의아해졌다.
“…아니, 요즘.”
심지어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다.
“예.”
“다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잘 안 나오네.”
“…아.”
그제야 어머니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하지만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하하, 엄마!”
“…응?”
“사춘기! 사춘기라서 그렇죠, 다현이! 올해 열다섯 살이잖아요! 그럼 뭐, 한창 그럴 때죠! 혼자 있고 싶고, 괜히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아들은 안 그랬잖아.”
“….”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말에 정우현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응? 우현이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엄청 어른스럽고 한결같은데, 다현이는 왜 그럴까?”
“아, 하하….”
당연한 얘기였다. 신체의 변화와 관계없이 심리적으로는 따로 사춘기를 겪지 않은 정우현이니까.
그래서 그는 다현이가 정상이고, 자신이 좀 특이 케이스라고 말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 했다.
“뭐,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하하.”
“…그래?”
어머니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고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게네들은 어때?”
“…누구요?”
“유라랑 태호. 아들 친구.”
“아….”
하고서 곧장 그들을 떠올렸다.
당연히, 그들 모두 사춘기를 겪었다.
예전처럼 항상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핸드폰을 통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방학 때면 몇 번 만나기까지 해서, 그들의 변화 또한 정우현은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권유라는 실상 한국 영재 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춘기였다. 친구 정우현을 향한 마음에 알게 모르게 고민을 하다가는 미국으로 훌쩍 건너가 한때는 세상에서 자신만 혼자라는 울적한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미국 생활에 적응해 현지 친구들과 매일 즐겁게 놀고 파티도 종종 하는 등 완전한 미국 하이틴 학생이 되었다.
한데 구태호는 이보다 훨씬 심했다. 그는 사춘기를 맞아 일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굉장히 남자다워지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말투가 투박해지고 말수까지 줄었다.
그러다가 KGI에서 한 후배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지만, 아쉽게도 슬픈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후배 여학생이 권유라처럼 이른 나이에 해외 진학을 그것도 유럽 쪽으로 가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첫사랑의 좌절에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는 사춘기가 지나갔는지 안 지나갔는지 하여간 어렸을 때 비하면 훨씬 진중한 성격이 되었다.
한데 그런 권유라와 구태호가 어느 날 정우현에게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정우현은 왜 어렸을 때와 똑같냐는 의문이었다. 그들 각자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심히 느끼고 있었기에, 한결같은 정우현이 더 신기하게 생각됐다.
물론 당시에도 정우현은 대강 웃으며 넘어갔지만, 친구 권유라와 구태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진짜 천재는 사춘기를 따로 겪지 않는가 보다 하고.
“…게네도 뭐, 비슷했어요! 다현이랑!”
정우현이 뒤늦게 어머니에게, 역시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래?”
“네!”
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는 동생 정다현이야말로 처음으로 겪는 사춘기 자녀였기에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엄마는 좀 걱정이 되네.”
하더니 어머니가 정우현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
“아들.”
“네?”
“아들이 한번 동생이랑 얘기해 보면 안 될까?”
“아, 제가요?”
“응. 다현이, 옛날부터 오빠인 네 말이라면 다 듣잖아.”
“…네, 그렇죠.”
하지만 사춘기 여자애는 좀 내버려 두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워낙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기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한번 얘기해 봐. 엄마, 아빠는 몰라도 왠지 아들 말이면 무조건 들을 것 같네.”
“으음.”
하고 정우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곧장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어머니가 다시 밝은 표정이 되더니 되물었다.
“오늘 중요한 일 있다고 했지?”
“아, 네!”
“오후엔 미국도 갔다가 내일 온다고?”
“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피곤하지 않겠어?”
“아니에요, 엄마! 저는 무적이라고요, 무적!”
하더니 정우현이 오른팔을 굽혀, 어머니에게 근육을 보여 줬다.
진짜 근육이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틈틈이 운동도 빠트리지 않고 했다. 한데 2차 성징 이후엔 근육이 또 눈에 띄게 커졌다.
“…와아, 아들 진짜 다 컸네.”
어머니가 정우현의 근육을 조금 놀란 눈으로 보며 말했다.
“하하하하.”
* * *
정우현은 평소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출근을 한다.
정우현뿐만이 아니었다. 우후의 모든 직원이 그랬다.
회사의 방침이었다. 자유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해야 훨씬 창의적일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정장을 입은 이유는 단 하나.
회사 우후의 주식이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먼저 아침 일찍 엄규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초동 우후 본사 앞으로 향했다.
이미 회사 직원 몇이 나와 단상도 설치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각종 언론사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정우현의 차량을 발견하고 우르르 몰려들었으나 이내 회사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윽고 정우현이 차에서 내려 단상 앞에 섰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마구 터졌다.
“정우현 사장님!”
기자들이 마구 외쳤다.
“전기차의 미래에 관해 한마디 해 주십시오!”
“우후가 최고의 성장주가 될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등등 여러 질문 세례 속에 정우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우선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이렇게나 큰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보다는 실적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주가는 결국 기업의 이익에 수렴합니다. 지속적인 성장으로 주주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주식회사 우후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서 정우현이 다시 머리를 숙여 보였다.
짝! 짝! 짝!
이에 사람들이 크게 손뼉을 쳤다.
그러고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몇 마디를 더하다가는, 자리를 빠져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곧장 미국으로 가야 하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 * *
태평양 상공 정우현의 전용기 안.
엄규환이 이제는 익숙한 모습으로 전용기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는 정우현을 한번 살피다가 말을 걸었다.
“도련님.”
“예?”
“이제 그….”
하더니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에 정우현이 곧장 물었다.
“…뭐가요?”
“아, 이 시점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괜찮아요, 해 보세요.”
“저는 잘 모르지만, 그, 상장이란 걸 하게 되면 회사의 자산이 엄청나게 불어나지 않습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도 투자할 수 있는 등 자본이 훨씬 쉽게 유입되니까요!”
“…그럼.”
하더니 엄규환이 다시 정우현의 눈치를 슬쩍 보고 말을 이었다.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게 아닙니까? 도련님이요. 뭐, 지금도 부자지만, 지금보다 훨씬….”
“으음.”
정우현이 잠시 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하하, 그렇겠죠. 근데 그 무엇보다 기업의 실적이 뒷받침되는 게 중요해요. 주가란 오른 것 이상으로 한순간 얼마든지 내릴 수 있어서 일희일비하면 안 되고요. 또 아무래도 우리 회사는 이제 막 시작된 신생 회사이다 보니,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해요. 즉 회사를 매각하거나 투자금을 회수할 게 아니라면, 당장 회사의 시가 총액이나 주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으음, 그런 건가요.”
그러고서 엄규환이 다시 생각을 좀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주가가 오르는 게 내리는 것보다 훨씬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그렇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회사가 되면 좋겠네요, 우리 회사가 그, 이름만 들으면 남녀노소 다 아는 데 있지 않습니까? 그런 회사들처럼요!”
“맞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회사나 모델 W에 관해 한 번 더 알아보고 그럴 테니까요!”
그리고 참석한 뉴욕 나스닥 거래소.
미국에선 거래소 차원에서 이미 우후의 상장 기념식을 준비해 놓았다.
정우현은 한국에서부터 곧장 시작된 오랜 비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기념식에 참석했다. 전용기에서 눈을 좀 붙이고 푹 쉰 덕이었다.
물론 애초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따라, 증권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다르기에 참석할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성대히 기념식이 열리고 드디어 증시가 시작되는 순간.
정우현은 긴장된 마음으로 나스닥 시장의 전광판을 바라봤다.
공모가는 10달러. 즉 우후의 주가는 10달러로 시작한다.
“…아아!”
거래소 직원 및 투자자, 그리고 기업인 등 온갖 사람들이 나스닥 본 장이 시작되자마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후의 주가가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그러다가는 결국 우후의 거래만 중단이 됐다. 나스닥은 특정 주식의 주가가 5분 안에 10% 이상 급변동할 때 과열된 거래를 식히기 위해 잠시 거래를 중단한다. 한국 증권 시장의 변동성 완화 장치와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증권 시장은 한국과 달리 주가의 일일 제한폭이 없다. 즉 단 하루 만에 30%는 물론, 300% 이상의 급등과 급락을 기록할 수 있다.
한데 정우현의 우후는 놀랍게도 장이 시작하자마자 40% 즉 14달러로 거래됐다. 이에 거래가 잠시 중단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
이내 다시 거래가 재개되고 우후가 거침없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러다가는 다시 거래가 중단되고 재개되고, 다시 중단되고 재개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아아아….”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내지르며 말을 잃었다.
우후의 주가가 110달러, 즉 장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1,000%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