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한편 2008년 하반기.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금융 위기가 닥쳤다.
바로 리만 브라더스 사태였다.
미국의 4대 투자 은행이었던 리만 브라더스가 과도하게 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상품을 판매했다가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약 6,130억 달러, 한화로 하자면 750조 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른 사건이다. 이는 곧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다.
전생에 경제에 관심이 없던 정우현은 지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리먼 브라더스 사태도 뒤늦게 뉴스 및 경제 지표를 통해 확인했다.
이에 그가 주목한 건 미국의 부동산이었다.
그러잖아도 우후의 첫 해외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예정이었는데,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정우현은 곧장 미국으로 이동해, 여러 지역을 둘러보다가 캘리포니아 프레몬트의 한 넓은 부지를 헐값에 매수했다.
“…저희야 고맙지만….”
계약 중개를 마친, 선글라스를 낀 부동산 업자가 광활한 땅 한복판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시국에, 왜 이런 허허벌판의 땅을… 무슨 남다른 뜻이 있는 겁니까, 정우현 님?”
“하하하!”
정우현이 이렇다 할 설명은 않고 그저 웃다가는 한마디했다.
“그냥, 뭐, 보시면 압니다! 하여간 감사합니다!”
* * *
그리고 수개월이 흘러 해가 바뀌어 2009년 초.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몬트.
정우현이 사람들과 함께 새 공장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우후의 첫 해외 공장이자 북미를 공략할 1호 공장이기도 했다.
짝! 짝! 짝!
사람들이 박수를 크게 치는 가운데, 정우현이 단상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서는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우리 회사의 첫 해외 공장을 이곳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짓게 되어서 대단한 영광입니다!”
“와아아아!”
정우현이 사람들을 둘러보고서는 말을 이었다.
“이 공장은, 장차 전기차 업계의 심장과 같아질 것입니다. 나아가 캘리포니아는 세계적인 친환경 지역으로 거듭나는 것은 물론, 경제가 활성화되어 더욱 부유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이에 정우현은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단상에서 내려와 공장을 둘러봤다.
거대한 대지 면적에 비해 공장은 작았다.
아직 전기차에 대한 수요 자체가 적기 때문에 공장을 크게 짓지 않았다.
다만 대지는 비할 수 없이 넓은 부지를 확보했는데, 장차 늘어날 수요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즉 정우현은, 공장을 차근차근 증설할 계획으로 광활한 땅에 우선은 작게 공장을 지었다.
“대단하군, 우현.”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이에요.”
이에 정우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일론.”
“…아까 봤구나.”
“그럼요.”
하고 정우현이 뒤로 돌며 말했다.
“일론처럼 키가 큰 사람은 어딜 가나 눈에 띈다고요!”
* * *
일론은 오늘 정우현이 이곳 프레몬트에서 우후의 첫 해외 공장을 여는 것을 알고서 일찌감치 참석했다. 그러고는 정우현이 단상에서 말을 할 때 청중 가운데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을 정우현이 놓치지 않았다.
“…대단하구나, 벌써 모델을 양산한다니.”
“하하, 감사합니다. 엔티는 요즘 어떤가요?”
둘은 일종의 라이벌이었지만, 딱히 서로에게 개인적인 악감정 같은 건 있지 않았다.
우선 정우현부터 웬만해서 특정인을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일론은 일론대로 이런저런 괜한 소리를 하는 등 괴짜이긴 했지만, 역시 사람과 벽을 쌓고 지내는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론은 그저 과거 너무 쉽게 엔티 모터스의 초기 모델을 정우현에게 무상 양도하는 등 스스로를 과신하다가 업계에서 추월 당한 사실에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엄밀히 하면 정우현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었다.
“…우리도 이제 곧 첫 양산형 모델을 발표할 거다.”
“오, 축하 드려요!”
“…고맙다, 한데.”
일론이 정우현을 따라 프레몬트의 우후 공장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후의 기술은 그새 더 진보했구나.”
“감사합니다! 엔티의 모델도 뭐, 만만치 않겠죠!”
실상 정우현은 경쟁사의 사장인 일론이 우후의 공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에 일론이 감사를 표하며 정우현과 동행을 하게 됐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다.”
그러고서 그는 정우현과 함께 공장을 더 둘러보다가는 걸려 오는 전화에 잠시 통화를 했다.
그러기를 몇 분, 전화를 마치고는 정우현을 보고 입을 열었다.
“우현. 회사에 일이 생겨, 나는 이만 가 보겠다. 오늘은 참 고맙다. 다음엔 우리 쪽에서 좋은 소식을 낼 수 있게 노력해 보마.”
이에 정우현이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잘 가요, 일론!”
정우현이 일론에 관해 이토록 여유가 넘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는,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엔티의 기술을 초월하고서는 전방위적으로 특허를 등록하고서도 계속 연구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해,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는 곧 사업에서도 훨씬 빠른 속도를 내게 해, 모델을 발표하고 드디어 해외에까지 공장을 설립했다.
아직 모델조차 발표하지 않은 엔티에 비하면 엄청 앞선 상태였다.
더군다나 우후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양산형 전기차인 모델 W를 생산한 회사다. 즉,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전기차 전문 회사다.
사실 정우현은 그간 이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왜냐하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역사에 길이 남아, 그대로 하나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우후는 이대로 영영 전기차의 대명사이자 신기술의 상징이 될 터였다.
이로써 그는 엔티를 상대로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우후가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는다면 이대로 전기차 업계의 선두를 굳힐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한편 이와 같은 상태가 되다 보니, 일찍이 일론이 말한 대로 전기차 업계의 생태계 또한 슬슬 고려해야 했다.
우후가 비록 전기차 업계에서는 글로벌 선두 주자로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을 놓고 볼 때 기존의 내연 기관 자동차에 비하면 무척이나 미미했다. 따라서 일론의 엔티를 포함한 다른 전기차 회사들도 나름의 성과를 내야했다.
* * *
시간이 좀 더 흘러 엔티가 드디어 그들의 첫 모델을 발표했다.
북미 내 현지 법인의 첫 전기차이기에, 적잖은 관심을 받았으나,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우후의 모델 W에 비해 뒤늦게 출시됐음에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후보다 떨어졌다는 사실이 금세 밝혀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우후의 이름으로 워낙 수많은 특허가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엔티는 우후의 기술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전기차를 개발해야만 했다.
한데 문제는 그게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최적의 기술이 엄연히 있음에도, 엔티는 굳이 다른 기술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는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길이 있음에도 애써 우회로로 돌아가는 격이었다.
심지어 그럼에도 배터리나 충전 등 특정 핵심 기술에선 특허 등록된 우후의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기술이 없는, 독적점인 영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엔티는 장차 그들의 모델이 히트를 쳐도, 그에 따른 기술 이용료를 우후에 계속 지급해야 했다.
이에 어느 날 일론이 머리를 굴리다가는, 한 언론과 이렇게 인터뷰했다.
“…으음, 우리 엔티는요.”
“예, 일론.”
“우후의 부모 같은 회사입니다.”
“…예?”
“정우현이 이끌고 있는 우후의 부모 같은 회사라고요, 우리 엔티가.”
“…그게 무슨 말이죠?”
백인 여 기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하하.”
이에 일론이 짐짓 껄껄 대고 웃고서는 말을 이었다.
“기자님은 오늘 특종 하나 건진 겁니다. 제가 전기차에 관해 최초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공개할 테니.”
“오오, 그게 뭐죠!”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정우현은 비밀리에 저의 회사, 물론 당시엔 제가 사장이 아니라 투자자였지만, 하여간 그때 엔티의 전신인 엔티 모터스를 방문했죠.”
“…왜요?”
“전기차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요.”
“아아!”
“그래서 저는 당시 엔티 모터스의 초기 모델 한 대를 무상으로 정우현에게 양도했습니다. 이로써 정우현이 전기차를 연구하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죠. 즉, 정우현의 우후는 우리 회사로부터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엄청난데요?”
“그렇죠! 그러니 전기차의 원조는 우후가 아니라 우리 엔티인 것입니다!”
“으음.”
여기서 기자는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지는 않았다.
과거야 어땠든 현재 전기차 업계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그녀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때요? 기자님? 대단하죠? 특종인 겁니다! 그럼요! 특종이죠!”
“아, 하하….”
그러고서는 쉴 새 없이 말하는 일론의 모습에 기자가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한데 일론의 기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서서는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굽혔다 펴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기 때문이다.
"엔! 티! 엔! 티!"
그리고 중간 엔티를 외치기까지 했다.
“….”
그 모습을 기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봤다.
이렇듯 일론은 언론 앞에서 심심치 않게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는 SNS도 무척 좋아했는데, 종종 엔티의 모델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 우후는 엔티에서 비롯된 회사고 정우현은 자신의 제자라는 글까지 남기고는 했다.
기술에서 뒤처졌으니, 언론을 통한 노이즈 마케팅으로라도 정우현의 우후를 넘어서고 싶은 심산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가 ‘Elon, Stop Being A Clown. (일론은 광대짓을 그만하라.)’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냈다.
논평의 내용은 이랬다.
‘일론은 과거 자신이 전기차 연구를 먼저 시작하고 정우현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 하나를 들어, 정우현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우습다. 현재 전기차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세 살짜리 아기가 봐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신문은 날카로운 투로 글을 이었다.
‘솔직히 일론의 엔티가 정우현의 우후를 뛰어넘으리라고는 생각 않는다. 그보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전기차를 생산해 판매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니 일론은 괜스레 언론 노출을 통한 광대짓은 그만하고, 경영인 및 기술자의 본분으로 돌아가 자신의 일에 힘써 주길 바란다.’
한편 이 기사는 한국의 우후에서도 곧장 모니터링됐다.
우후는 이제 제품도 생산하고 매출이 발생해, 그에 따른 홍보팀도 따로 있는 어엿한 회사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우후와 모델 W에 관한 기사라면 24시간 내내 모니터링 되는 한편 사장인 정우현에게 보고가 됐다.
“…하하하!”
정우현이 신문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우리 측에서도 코멘트를 할까요?”
홍보팀장이 곧장 물었다.
“아니요!”
정우현이 곧장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럼, 가만히 있습니까?”
“예.”
“….”
홍보팀장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걸 애써 참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이에 정우현이 말을 이었다.
“일론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제품에서 우리가 확실히 앞서고 있다면, 굳이 이런 일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브랜드 가치만 떨어지게 되죠.”
“…아, 알겠습니다.”
“또한.”
하고서 정우현이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이제 큰 이벤트가 있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아아.”
이에 홍보팀장이 뒤늦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소리를 내고선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는 순간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도시로 시선을 돌렸다.
빌딩 사이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다니는 모습을 보는 가운데,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곧 우리 우후는, 증권 시장에 상장될 것이니까요. 그것도, 한국과 미국에 동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