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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97)화 (97/200)

97화

서초동 우후 본사 사무실.

정우현은 곧장 비트코인의 새 암호화 기술에 집중했다.

해당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정우현이 발견한 소수의 법칙을 적용해야만 풀릴 수 있는 암호 체계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장차 개발될 양자 컴퓨터의 공격에도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양자 컴퓨터가 특정 알고리즘이나 법칙을 자체적으로 발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 단 하루만에 새 암호화 시스템을 만들고 해당 기술을 비트코인에 적용한 뒤 곧장 암호화된 계정을 통해 엘라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토시. 새 암호화 시스템을 만들어 비트코인에 적용했습니다. 속도나 이런저런 편의성 등, 비트코인은 다른 기술 측면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무궁무진합니다만 우선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했으니까요.’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엘라에게 곧장 답 메일이 왔다.

‘…세상에.’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메일은 온통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이 순간 신을 믿고 싶어지네요. 어떻게 헤어진 지 단 며칠 만에 이렇게나 완벽한 암호화 시스템을 만들고, 심지어 온전하게 비트코인에 적용할 수 있죠?’

그러고서 그녀가 글을 이었다.

‘저는 5년. 정확히 하면 4년 10개월 하고 13일이 걸렸습니다. 비트코인을 만들기까지요. 한데 어나니머스 님은 제가 만든 비트코인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군요… 신이 있다면, 어나니머스 님의 천재성이야말로 신의 작품이 아닐까요?’

하고 엘라가 몇 문장을 더 쓰고는 이메일을 마쳤다.

‘하여간 감사합니다. 이 시점 그 옛날 거기서, 제가 어나니머스 님을 만난 건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하. 세상이 모두 우연이고,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제가 이제는 운명론자가 되려고 하네요. 어쨌든 모두 어나니머스 님 덕분입니다. :D 또 메일 나눠요.’

* * *

“보오스!”

우후 작업장.

정우현이 모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업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작업장으로 나왔다.

실내에는 이탈리아 엔지니어만이 홀로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그는 에이치 자동차에서 WH-X를 만들 때처럼 이곳 작업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이제 볼일은 다 끝난 거야?”

“예!”

“오, 잘됐군.”

물론 정우현은 사무실에서 비트코인에 집중할 때도 이따금 작업장에 내려와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다시 완전한 엔지니어로 돌아온 건 몇 달 만이었다.

“보스가 말한 대로 이미 다 해 놓았지.”

이탈리아 엔지니어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정우현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며 모델의 세밀한 부분을 직접 보여 주기도 했다.

“자, 이것 봐.”

“오.”

이탈리어 엔지니어가 새롭게 만든 차량 배터리를 보여 주자 정우현이 탄성을 내뱉었다.

“우리가 논의해서 만든 거야.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음극재.”

“새롭네요. 성능은 어떤가요?”

“당연히 좋지. 기존 흑연 음극재보다 에너지 밀도가 4배나 높아!”

이렇듯 정우현의 엔지니어팀은 자체적인 학습을 통해 내연 기관이 아닌 전기차에 관해서도 세계적인 기술자가 되고 있었다.

모두 정우현의 지도 덕분이었다.

“…근데 문제는….”

하고 엔지니어가 실리콘 음극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수명이 짧아. 실리콘은 소재 특성상 부피가 팽창하며 조직이 빠르게 파괴되니까 말이야.”

“…으음.”

정우현이 엔지니어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렇다면.”

“응?”

“이론적으로 실리콘을 최대한 쪼개서 산화물 또는 탄소나 합금 등으로 감싸면 되지 않을까요? 물리적으로 팽창을 아예 막아 버리는 거죠.”

“…으음.”

하더니 엔지니어가 답했다.

“한번 시도해 봐야겠군.”

“예.”

그러고서 정우현이 말했다.

“필요한 설비 있으면 말해 주시고요. 결과가 나오면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그래!”

이런 식이었다.

정우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러면 빠르게 토의를 거쳐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다음 과업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은 선순환이 지속되니 우후의 기술력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그리고 2008년 말, 서울의 한 컨벤션 센터.

우후의 시범 모델이 드디어 완전한 첫 제품이 되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모델 W였다. 사명인 WooHoo의 첫 글자를 따왔다.

정우현은 물론 엔지니어까지 모두 모처럼 근사한 정장을 입고 자신들의 첫 전기차인 모델 W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에 언론은 무진장 사진을 찍었다.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들까지 많이 왔는데, 모두 정우현 덕분이었다. 사실 그들은 신생 자동차 회사가 처음으로 전기차를 출시했다는 소식보다는, 세계적 유명인인 정우현이 회사를 만들고 처음으로 제품을 생산했다는 것에 더 초점을 두고 있었다.

“정우현 님!”

“예.”

“미국의 팍스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곱슬머리의 흑인 기자가, 날렵하면서도 매끄러운 외관의 은빛 모델 W를 잠시간 바라본 뒤 정우현에게 질문했다.

“대단하십니다, 에이치 자동차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멋진, 새 자동차를 출시하게 됐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고 기자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조금 의아해하고도 있어요. 이 시점에 웬 전기차냐고요. 많은 사람이 현재 자동차를 구매하면 당연히 내연 기관의 차를 구매하는 데 말입니다.”

“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이에 정우현이 답했다.

실상 전기차에 관해 공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것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요. 예, 사람들은 내연 기관차를 선호하고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전기차를 향한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 우후가 자리매김할 것이고요.”

“…으음, 확신이 있으시군요.”

“예, 하지만 말뿐만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의 제품, 제품에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차를 타 보시는 고객들은 분명 만족할 것입니다. 그것도 오래 타 볼수록 만족감이 커질 거예요. 비록 현재로서는 한국에서만 판매할 예정이지만 장차 세계 곳곳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몇 가지 행사와 식순을 모두 거치고는, 모델 W의 출시 및 홍보회가 끝이 났다.

* * *

정우현은 곧장 모델 W의 생산에 들어갔다.

우후의 첫 모델이고, 그것도 전기차이니만큼 아직 많은 생산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소수의 사람 및 몇몇 공공 기관만이 전기차에 관한 관심과 약간의 실험적인 의도로 모델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공장은 경기도 양주에 설립했다.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넓은 부지에, 공장을 만들고 설비를 갖춰 수십 명의 생산 직원을 고용했다.

그에 맞춰 우후 본사에서도 모델W 판매와 관련된 여러 직원을 고용했다.

즉, 이제 우후는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다운 회사였다. 물론 아직은 판매량이 저조해서 매출이 있어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243대?”

“예, 아빠.”

정우현의 아버지 정기석이 정우현에게 말했다.

정우현은 퇴근 후 집에 와 생산 후 첫 달 간, 모델 W의 판매 수량을 가족 앞에서 밝혔다.

“…너무 적은 거 아냐? 그래도 2년 가까이 거기에 집중해서 처음으로 만든 모델인데….”

“하하, 아빠, 말 그대로 처음이니까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네가 거기에 투자한 게 얼마냐. 건물이며 땅이며 인건비까지 무지막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 않냐.”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전기차인 모델 W의 강점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해요!”

“그래, 그렇긴 한데… 이백 몇십 대 정도 팔아서 대체 뭘 알릴 수 있겠냐는 거지….”

“광고.”

“응?”

“광고할 거예요, 아빠.”

“아아….”

“그것도 제가 직접.”

“…오, 정말?”

“네!”

정우현은 아주 오랜만에, 상업 광고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상 한국 영재 학교 입학 후에는 광고를 하지 않았었다. 딱히 돈에 부족함을 느끼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공부와 친구들에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우현이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어서, 직접 제품을 책임지고 판매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즉, 모델 W의 판매와 회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했다. 자신만 믿고 따라온 엔지니어 팀은 물론 우후에 채용된 직원만 해도 벌써 백 명 가까이 되었다.

즉, 그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게 바로 사장이니까.

따라서 이제는 광고고 뭐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현이가 다시 광고를 찍는다니!”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근데 좀 걱정이다.”

“왜요?”

“우현아, 이제 네가 좀 나이를 먹었으니까 하는 말인데, 아빠 얘기 고깝게 듣지 말아라.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네.”

정우현은 아버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궁금해졌다.

“일단 세상 그 누구보다, 아빠가 잘 알지. 너는 스타야, 엄청난 스타지. 예전에 아빠랑 머나먼 할리우드까지 가서 영화까지 찍고 대 히트를 쳤으니.”

“…하하, 예.”

“근데 이제는 그 모든 게 좀 과거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현이,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연예 활동한 게 언제지?”

“….”

정우현이 잠깐 생각했다.

그러고서는 답했다.

“일곱 살 때니까 9년 전이네요.”

“…그래, 9년!”

그러고서 아버지는 무슨 큰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9년! 9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거지! 물론 너의 팬클럽이 있어서, 여전히 널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연예인으로서의 넌 꽤 잊혀지지 않았을까 우려가 되는 거다.”

“으음.”

“그러니까 아빠 말은, 광고할 거면 연예인을 쓰라는 거다. 요즘 잘 나가는 배우라든가, 아니면 아이돌이라든가, 왜 많지 않니.”

정우현이 아버지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는 답했다.

“좋아요!”

“…역시 그렇지? 너는 어디까지나 모델 W를 생산한 회사의 사장이니까 광고만큼은 다른 사람을 쓰는 게….”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아빠 말대로 다른 배우를 출연시킬게요! 그런데 저도 같이할 거예요!”

“…응?”

“다른 배우랑 같이 출연할 거라고요.”

“…아, 그래?”

“예. 물론 아빠 말대로 꽤 많은 사람이 저의 모습을 잊었겠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저는 또한 아빠 말대로 한편으로 경영인이기도 하니까요.”

“….”

“즉 제가 직접 설립한 회사에서, 그것도 제가 직접 연구하고 생산한 제품을 자신 있는 모습으로 광고에 나와 소개한다면 사람들에게 더 신뢰감을 줄 거예요.”

“으음.”

“거기에 아빠 말대로 다른 배우까지 나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생각해 보니 다른 배우가 꼭 필요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 그래. 그럼, 좀 생각나는 배우가 있니?”

하는 아버지의 질문에 정우현이 싱긋 웃어 보였다.

* * *

그리고 보름이 조금 지나 우후의 모델 W 광고 촬영장.

정우현은 일찌감치 나와 스태프들과 무대를 둘러본 뒤 모델 W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현아!”

정우현이 곧장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아, 삼촌!”

김도진이었다. 배우 김도진이 우후의 첫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하하하, 이거 우현이가 아니라 정우현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에이, 아녜요! 한번 삼촌은 영원한 삼촌이죠!”

“하하하하하!”

그렇게 김도진이 웃더니 촬영장에 있는 광고의 콘티를 빠르게 살폈다.

“근데, 이게 먹힐까?”

“예, 충분히 먹혀요!”

“그러니까 광고 콘셉트가 영화 <겨울 방학> 이후 10년이 지나, 삼촌과 조카인 나와 너의 즐거운 드라이브라는 거지?”

“맞아요!”

김도진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오래전 영화인데….”

“삼촌.”

이에 정우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다시피 영화 <겨울 방학> 후 실제 시간이 10년 넘게 흘렀어요.”

“그렇지.”

“이 말은 그 당시 영화를 사랑했던 성인들은 물론 미성년도 어느덧 성장해 성인이 되어 차량을 소유하고 운행하는 주요 고객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정우현의 말에 김도진이 그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주요 공략층은 그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모델 W는 전기차라서 아직 대량의 판매를 목표로 할 수는 없어요. 그보다는 소수의 확실한 타깃을 공략하고 그들을 기점으로 천천히 판매를 늘리는 게 중요하죠. 이번 광고는 그들을 목표로 합니다. 국민 영화였던 <겨울 방학>을 보고 울고 웃었던 사람들. 그들이 우리 회사의 첫 번째 고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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