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해외의 우현스가디언 또한 국내의 우현수호단과 함께 친환경 운동을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거리의 쓰레기를 줍기.
이 모두 정우현의 회사 우후를 위한 조직적인 활동이었다.
워낙 세계 각국이, 더군다나 팬덤 활동이 발달한 서구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운동이 활발해지다 보니 언론에서들 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우현으로 인해 친환경 운동이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번졌다고 조명했다.
이는 물론 자연스레, 아직 이렇다 할 연구 및 개발조차 하지 않은 신생 전기차 회사 우후를 몹시 홍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하하! 잘됐군! 잘됐어!”
윤수정이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는 티브이 뉴스를 보고 크게 웃었다.
정우현을 보호하고 그에게 힘을 주는 단체.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국내외 팬클럽의 모습이었다.
* * *
사람들의 관심 속에 정우현이 회사에서 일할 인재들을 모집하려 했다.
경영 및 관리 쪽으로는 아직 이렇다 할 사람들이 필요치 않았다.
스타트업 회사이니만큼 당장 영업을 하고 판매를 해야 할 제품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역시 연구 및 개발을 할 인재들이 필요했는데,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그의 회사에 찾아왔다.
“헤이, 보스!”
바로 정우현과 WH-X를 함께 만든 에이치 자동차의 다국적 엔진 개발 팀이었다.
“와우, 안녕하세요!”
“우리만 두고 가는 게 어딨어!”
개발 팀의 리더 격인 이탈리아인 엔지니어가 짐짓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세계 각국에서 우릴 불러 모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
이에 일본인 엔지니어도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보스가 회사를 관뒀다고 하기에, 저는 이대로 대한 해협을 다시 건너 열도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아아….”
정우현이 감격해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는 뒤늦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물었다.
“하지만, 여러분. 에이치 자동차와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잖아요?”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이탈리아인 엔지니어가 곧장 답했다.
“우리는 보스. 보스의 천재적인 재능과 새 기술만을 믿고 이곳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보스가 기존 회사를 나가 새 회사를 설립하니, 그깟 계약이 무슨 의미가 있어?”
하고서 그는 속사정을 밝혔다. 무려 고용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까지 주고서 나왔다고 했다.
“…아니.”
정우현은 조금 당황하다가는 잠시 생각을 하고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그러고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우선 위약금의 배 이상을 드리겠습니다.”
“…뭐요!”
엔지니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 냈다.
“손해를 감수하고 저를 따라오신 거잖아요. 그럼 그 이상의 보답을 해 드려야죠.”
“…보스, 그러라고 온 게 아닌데….”
“아니에요. 그러잖아도 인재를 영입하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여러분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 제가 직접 모시고 와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스스로들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만큼의 액수를 받으셔야 합니다.”
하고선 그가 머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제가 더 확신이 생겼어요.”
“…하하하, 그럼.”
이탈리아인 엔지니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게 받겠네…!”
“예, 그러셔야 합니다.”
“…하하하. 그럼 더 열심히 일해야겠구먼. 밥값은 해야지!”
“하하하하!”
순간 사람들이 모두 웃는 가운데 일본인 엔지니어가 정우현을 슬쩍 보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보스. 이제는 진짜 보스가 됐군요. 무려 한 회사의.”
“그렇습니다. 저 또한 기대감이 큽니다!”
“으음, 한데 어떡하죠. 우리는 내연 기관의 엔진만 주구장창 만들어 봤지. 전기차는 까막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하하하, 누구는 만들어 봤나요?”
하고서 정우현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들을 작업장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오오!”
그곳에는 자동차 한 대가 있었다.
바로 일론이 무상으로 양도한 엔티 모터스의 초기 모델이었다.
“…이게 뭐지?”
“말 그대로 전기 자동차입니다!”
“오….”
“현시점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전기 자동차 회사가 만든 제품이에요!”
그러자 엔지니어들이 해당 모델을 이모저모 살펴보고 만져 보기도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이게 어떻게 여기 있지?”
“보스가 훔쳐 온 건 아닐 테고.”
“그럼 비싼 돈 주고 사 왔겠군!”
“하하하하!”
정우현이 엔티 모터스의 초기 모델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엔지니어들이 재밌어서 크게 웃다가는 입을 열었다.
“하여간!”
그러고서는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오늘부터 이곳 새 작업장에서 이 차를 뜯고 분해하고 관찰해서, 함께 전기차를 연구하게 될 거예요!”
“오오.”
“저 또한 전기차는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모델을 가지고, 모든 힘을 다해 함께 연구해요!”
“좋았어!”
그렇게 정우현과 과거 엔진 팀은 새 회사 우후에 모여 전기차를 연구하게 됐다.
마치 지난날 밤낮으로 새 엔진 WH-X를 연구 개발했듯 그들 모두 전력을 다해 전기차에 매달렸다.
그중 발군은 역시 또 정우현이었다.
전기차라는 관념 자체가 거의 새로운 것이니만큼 아직 세상엔 해당 기술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었기에 이번 연구에선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즉 세상에 없는 개념을 새로 만들며, 수식으로 검토하고 때론 도면까지 그리며 실제적인 기계로 구체화해야 했다.
이는 실상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기존의 엔진 팀은 정우현을 거의 일방적으로 따르게 됐다.
정우현은 자나 깨나 온갖 상상과 추상(抽象), 그리고 계산을 섞어 가며 전기차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떠올리고 작업했다.
그러고서 하나의 실제적인 개념을 완성하면 엔진 팀에게 교육하고 해당 지식을 전파한 뒤 함께 숙련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약 반년의 시간이 흘러 2007년.
정우현과 엔진 팀은 드디어 엔티 모터스의 초기 모델을 기술적으로 따라잡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하하하하하! 이렇게 보니, 뭐 별거 아니구먼!”
일찌감치 분해되어 작업장 여기저기에 흩어진 엔티 모터스의 모델 잔해를 보며 이탈리아인 엔지니어가 크게 말했다.
“모두.”
정우현이 그 모습을 뒤에서 뜻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힘써 주신 덕입니다.”
“보스!”
이에 엔지니어가 곧장 답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전부 보스가 애썼기 때문이잖아! 일 주가 멀다 하고 또 새로운 개념과 기술을 들고 와서는 이리저리 실험해 급기야 성공시키는 게 누구야? 전부 보스지! 우리는 그저 옆에서 거들고 시간을 조금이나마 단축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에이, 아니에요.”
하며 정우현이 겸손하게 답하고선 새 전기차 모델의 구성 요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여러분 때문에 이렇게 빨리 작업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서 그는 크게 외쳤다.
“자, 자, 좀 더 속도를 냅시다! 엔티 모터스의 기술을 넘어서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거예요!”
그리고 다시 수개월 후.
정우현과 엔지니어들은 드디어 그들의 첫 전기차 모델을 완성해 냈다.
정우현을 중심으로 한 신기술 개발 및 이미 기존의 자동차를 숱하게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들의 노하우가 빚은 합작이었다.
“…아아.”
일본인 엔지니어가 감격스러운 눈으로 그들의 첫 모델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자, 작동해 보세요.”
정우현 또한 긴장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초기 모델에 탑승한 이탈리아인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그러자 엔지니어가 굳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걸었다.
띠딩.
내연 기관과는 확연히 다른 전기음이 차에서 울리더니 곧장 무리 없이 시동이 걸렸다.
“오오!”
그러고서 엔지니어는 저속으로 전진과 후진 주행을 했다. 모두 매끄럽게 움직였다.
“좋았어!”
“성공이야아아아!”
엔지니어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아….”
정우현도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안도했다.
실은 이 첫 시범 운전을, 정우현이 개발한 또 다른 기술인 원격 조종으로 하려 했다.
초기 모델이니만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탈리아 엔지니어가 원격 조종은 실제 운전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며 직접 해 보겠다고 자진해서 나섰다.
이에 만반의 안전 장비를 한 채 이뤄진 첫 운전이었고, 다행히 결과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좋아요!”
정우현이 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탈리아인 엔지니어를 격려한 다음 곧장 사람들을 보고 크게 말했다.
“엔티 모터스가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리도 뒤처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개발한 모델이 아직 주행에 성공했다는 얘기는 없으니까요!”
하고 그는 곧장 엔티 모터스의 일론을 떠올렸다.
일론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길 좋아한다. 그런 그가 만약 전기차의 주행에 성공했다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해당 소식을 널리 알렸을 게 뻔했다.
하지만 아직 잠잠하다는 것은 여태 어떤 모델도 완벽하게 주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뜻했다.
즉 이대로면 정우현의 우후가 일론의 엔티 모터스를 넘어선다.
“이제 우리는 더 바빠질 겁니다!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하는 한편, 회사 차원에서 드디어 공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예요.”
정우현이 말에 엔지니어들이 잠자코 그를 바라봤다.
왜냐하면 경영과 관련된 일은 그들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특허!”
“…으음?”
“특허! 이 우후 초기 모델 개발과 관련된 모든 낱낱의 사항들을 특허 등록할 거예요! 전기차 배터리부터 해서 모터, 충천 등 핵심 기술은 물론 자잘한 보조 기술까지 모조리 특허를 출원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선 전치가 업계의 선두로 자리매김을 해야 합니다!”
즉, 일론 마스크와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는 얘기였다.
일론은 스스로 자신의 기술이 세계 최고임을 과신하고 정우현에게 무상으로 모델을 양도했다.
이는 실상 전생에서라면 몰라도 이번 생에서는 크나큰 패착이었다.
왜냐하면 정우현이 일론을 훨씬 능가하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론이 이번에 모델을 양도한 시점은 2006년, 즉 아직 기술이 압도적으로 앞서지 못한 시점이었다.
사실 일론이 전생에서 모든 특허를 무료로 공개한 시점은 2014년이었다. 그때는 그가 이끄는 회사가 모델을 본격적으로 3개나 출시하는 등 전기차 업계에서 선두를 확고히 했을 때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회사가 후발 주자로 일론의 회사를 따라잡기에는 격차가 이미 많이 벌어진 후의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기차 개발 자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일론은 정우현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모델을 그냥 줘 버렸다.
그 결과 2007년 하반기 정우현이 일론을 추월하게 된다.
* * *
이내 정우현의 전기차 특허 등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론이었다.
“오, 안녕하세요, 일론!”
정우현이 밝게 인사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밝지 못했다.
“…오랜만이구나, 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