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정우현은 엄규환과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브래드 퍼트와는 잠시 작별을 했다. 브래드가 영화 차기작 준비로 인해 바빴기 때문이다.
“히야, 그나저나 브래드 퍼트. 참 멋지더군요.”
엄규환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그는 이곳 미국에서의 운전을 위해 한국에서 미리 국제 운전면허까지 준비하고 왔다.
“그쵸? 하하!”
정우현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 기분 좋게 답했다.
브래드 퍼트라면 예나 지금이나 너무 좋으니까.
“예. 저 역시 오래전 영화에서만 봤고, 물론 도련님이랑 같은 영화에 나와 연이 있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함께 있어 보니 와우. 유쾌한 동네 형 같았습니다!”
“하하하, 좀 짓궂을 때가 있지만, 하여간 엄청 잘 챙겨 줘요!”
브래드는 엄규환을 처음 보고 즉각 정우현의 경호원 및 운전사임을 알아봤다.
그럼에도 자신의 오랜 친구인 정우현과 살갑게 지내는 것을 보고, 브래드 또한 엄규환을 친근하게 대했다. 또한 잠시나마 함께 있어 보니 그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저, 모처럼 도련님이 부러워졌다니까요? 그렇게 멋진 사람이 친구라니!”
“하하, 실장님도 멋지세요!”
“에이, 브래드 퍼트에 비하면 저는 발가락에 때만도 못하죠!”
“아니에요! 저는 학교에 다녔을 때부터 실장님과 함께하게 된 걸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아.”
정우현의 말에 엄규환이 탄성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그러고는 엄규환이 잠깐 고심하다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예?”
“도련님이 좋은 사람이라서.”
“….”
“저도 그렇고 브래드 퍼트도 그렇고 여러 사람이 도련님 곁에 있는 거 아닐까요?”
“으음….”
옳은 말이었다.
정우현이 <겨울 방학>으로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래, 김도진과 장필도를 시작으로 숱한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하고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정우현 본인 덕분이었다.
만약 그가 사람들 앞에서 천재적인 재능만 드러낼 뿐, 그들을 부당히 대하는 등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면, 결코 지금처럼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을 테니까.
“으음, 다 왔군요!”
엄규환이 차를 세운 곳은 작은 회사였다.
“정말 여기서 중요한 미팅이 있다는 겁니까?”
그가 회사의 외관 여기저기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무려 한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인 에이치 자동차의 기술 이사이자 세계 최고의 엔진 상까지 받은 정우현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
“으음….”
엄규환이 정우현과 차에서 내려 간판을 올려다봤다.
영어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그도 대강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영어였다.
“엔티 모터스? (NT Motors?)”
“하하, 예, 맞아요!”
정우현이 말을 받고는 곧장 회사의 이름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니콜라 테슬라! 엔티는 니콜라 테슬라의 약자로, 천재 전기공학자인 세르비아계 미국인의 이름을 따 붙인 이름이에요.”
“…아아. 그럼 오늘 이 테슬라라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겁니까?”
“하하하, 아뇨, 실장님. 테슬라라는 사람은 꽤 오래전에 죽었어요.”
“…아, 그렇군요.”
엄규환이 이제는 조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테슬라라는 양반. 이렇게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 회사를 만들 정도니.”
하고서는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의 강릉도 삼국 시대에는 하슬라라고 했는데. 이 슬라라는 이름이 뭔가 좀 있는가 봅니다.”
“와우, 실장님….”
정우현이 엄규환의 아저씨 개그에 말을 잃었다.
최근 엄규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부쩍, 이상한 말장난을 했다.
“하하하, 강릉은 초당 순두부가 맛있는데!”
하고 그가 계속 말을 하는데, 건물 밖으로 한 명의 남자가 나왔다.
바로 엔티 모터스의 창립자였다.
“오우,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정우현이 즉각 영어로 인사했다.
“아이고, 이렇게나 먼 길을 어떻게 이사님이 직접….”
하며 창립자가 정우현을 데리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정우현 또한 화답했다.
“아닙니다, 마침 NIT에서 볼일도 있어 겸사겸사 올 수 있었습니다!”
엄규환이 그런 둘을 뒤따라갔다.
한데 그의 시선으로는, 마치 회사의 외관처럼 창립자 또한 다소 평범해 보였다.
신생 자동차 회사의 사장답게 열의는 넘쳐 보였지만, 카리스마나 번쩍이는 기지 하다못해 배짱 같은 게 그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 회사가 아직 작은 회사에 머물고 있나 보다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우현이 굳이 이런 곳까지 직접 방문한 이유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그가 모시는 정우현은 이미 다방면에서 유명 인사가 된 지 오래인 데다, 특히 자동차 업계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기 때문이다.
즉, 그의 공식적인 행보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한데 그런 그가 미국의 한 무명 신생 자동차 회사에 직접 방문했다.
“이겁니다!”
이러나저러나 창립자는 정우현에게 회사가 만들고 있는 차량 모델을 보여 줬다.
“오우, 멋진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경량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디자인이 유려한 것 말고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차였다.
“영국의 한 스포츠카 브랜드를 기반으로 만들었죠! 전륜 구동이고요, 무엇보다 이차 전지를 이용해, 계획대로만 잘 된다면 최대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대단한데요!”
그러자 창립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했다.
“하하하…. 2010년에 안에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만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아직 기술적으로 더 손을 좀 봐야 하고요. 더군다나 생산 설비는커녕 장차 고객이 될 사람들의 잠재적인 수요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하면서 그가 정우현과 얘기를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그러다가는 창립자에게 전화가 걸려와, 그가 정우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통화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엄규환이 즉각 정우현에게 물었다.
“…도련님.”
“예?”
“이 차를 보려고 여기 미국까지 온 건가요?”
“하하, 예!”
“…음,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정우현이 의아한 눈빛으로 엄규환을 보다가는 답했다.
“…당연하죠!”
“좀 실망스럽네요. 물론, 외관상 멋진 차입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애들이 좋아하게 생겼네요. 근데 정작 도로 위에서 잘 달릴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닙니까? 결정적으로 고작 이런 차를 보러, 무려 세계 최고의 엔진 상을 받으신 도련님께서 굳이 여기까지….”
“아.”
하고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전기차예요.”
정우현의 짧은 한마디에 엄규환이 놀란 눈이 되었다.
마치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는 듯.
“…예?”
“전기차라고요. 이 차. 석유가 아닌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
“아….”
하고서 엄규환이 잠시 생각하다가는 천천히 되물었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휘발유나 경유는 안 넣고, 마치 선풍기에 전기 코드 꽂듯, 자동차를 그렇게 굴린다고요?”
“하하, 맞아요!”
때는 2006년. 전기차에 관해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시기다.
그 시기에 정우현은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일단, 학교에는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 시설에서의 공부는, 그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정 학교를 다니고 싶다면, 이번 NIT 교수직을 받아들여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부터 풍부한 지원을 받으며 이런저런 연구를 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짧지만 왕성히 활동했던 회사 생활과 자동차 연구가 훨씬 재밌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에 남은 길은 언뜻 하나처럼 보였다. 바로 에이치자동차에 매일 출근하는 등 아예 상무 이사로 근무하기.
하지만 그 역시 내키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한편으로는 자신으로 인해 회사가 성장하는 가운데 기술이 진보하고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을 보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긴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가 부족함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최근 그는 KGI의 졸업과 맞물려 그에 관해 집중적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일터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그가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를 자신이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수년 전 러시아에서 에이치 그룹의 손녀인 권유라를 도운 이래, 자의 반 타의 반 에이치 자동차의 이사가 된 그다.
즉 오롯이 그가 원해서 이 자리에 있게 된 건 아니었다.
한데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있는 곳에서 즐거움을 찾고 최선을 다하다 보니, 현재의 드높은 위치에까지 있게 됐고, 이제 다니던 학교의 졸업과 함께 진로를 선택도 할 수 있게 됐다.
결정적으로 에이 치그룹 회장이 정우현에게 에이치 자동차 내 자신의 지분을 전부 증여하기로 한 조건, 즉 에이치 자동차의 주식을 처분할 수 없는 2년의 기간이 지났다.
한마디로 이제 정우현은 에이치 자동차를 떠나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회사를 떠나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새롭게 설립하기로.
그것도 전기 자동차 회사를.
“…아니, 도련님!”
엄규환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무슨 전기로 자동차가 굴러가요? 그리고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왜 진작 그런 차가 없었습니까? 전기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에 있었는데.”
“으음, 뭐 기술적인 측면도 있었을 테고요. 무엇보다 석유와 관련된 산업이 훨씬 커서, 내연 기관 자동차가 그간 우위를 점했던 게 아닐까요?”
하고 말했지만, 정우현 또한 전기 자동차의 의의에 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전생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이 지금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모습을.
미래를 아는 만큼 굳이 그 미래에 관해 왜라는 물음표를 달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마음을 먹은 이상, 괜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기술 발전에 매진하는 게 정답이었다.
“아이고.”
마침 엔티 모터스의 창립자가 전화를 마치고 정우현이 있는 곳으로 왔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길어졌군요.”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사님. 어떻게, 모델 구경을 더 하실래요? 아니면 마침 우리 회사의 최대 주주가 지금 여기로 온다는데.”
“아아.”
최대 주주라는 말에 정우현의 두 눈이 몹시 커졌다.
“같이 만나보실래요? 참고로 그분은 이사님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도 만나 n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좋죠! 저 역시 얼른, 얼른 만나고 싶네요!”
정우현이 엔티 모터스의 전기차 모델을 볼 때보다 더 흥분해서는 크게 말했다.
* * *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덩치가 크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괴짜 같은 백인 남성 한 명이 회사에 도착했다.
엄규환과 비슷한 또래로 30대 중반의 나이밖에 안 되어 보였지만, 정우현은 즉각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생의 2020년대에, 티브이와 인터넷에서 숱하게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일론 마스크(Elon Mask)였다.
애초 전기차 투자자였던 그는 전생에서 아예 직접 회사를 경영까지 하게 된다. 그러고서 천재적인 두뇌와 뛰어난 사업 수완, 그리고 무지막지한 배짱을 앞세워, 회사를 시가 총액 기준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키우며 급기야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기에 이른다.
현재 정우현의 자산 규모가 약 4조 원인데 반해 전생의 2022년 기준으로 일론의 자산은 270조 원에 달했다.
그런 사람이 드디어 정우현 앞에 등장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하하하!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