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81)화 (81/200)

81화

“수학만큼.”

정우현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명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든, 우리는 수(數)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며 진실을 추구할 수 있죠. 이런 측면에서 저는 가끔 재밌는 상상을 하는데요.”

하고서 그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말을 이었다.

“만약 언젠가 우주에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인류는, 수를 통해 인사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사람들이 정우현의 엉뚱한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빠르게 상대 종의 수학적 업적을 살필 것입니다. 즉 수학이 얼만큼 진보했는지 파악하는 것이죠.”

“….”

정우현의 말이 마냥 농담이 아님을 깨닫고는 사람들이 다시 말없이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 수학의 진보 단계가, 문명 발달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학이야말로 모든 과학 기술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하고 정우현이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전력을 다해 수를 연구해, 미지의 영역을 밝혀내는 것. 이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정우현이 수상 소감을 끝내고 머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뜨겁게 손뼉을 쳤다.

이에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 * *

그러고서 정우현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우현으로 인해 뜨거워졌는데, 그가 무려 짧은 시간 세 개의 드높은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각각 자동차 엔진과 단편 영화, 그리고 수학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었다.

모두 정우현이 이룩한 놀라운 결과였다. 동시에 그간 오랫동안 몸담았던 한국 영재 학교에서의 시간을 결산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제 새롭게 진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거야?”

KGI 하교 후 인근 분식점.

정우현과 권유라, 그리고 구태호가 어울리지 않게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그들은 진로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에 구태호가 한 입 가득 음식을 씹어 먹고서는 먼저 입을 열었다.

“학교에 남으려고.”

“정말?”

권유라가 곧장 되물었다.

“응.”

“그렇구나.”

“뭐, 해외에 딱히 연 있는 데도 없고. 아버지도 그냥 고등학생 때까지 KGI에 계속 다니라고 하시거든.”

그러면서 떡볶이를 하나 더 집어 입 안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국내에선 우리 학교가 최고잖아.”

이에 다시 권유라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직 중고등학생은 한 명도 없는데 뭐!”

“내가 그렇게 만들면 되지.”

구태호가 자신 있게 말을 받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KGI에 남아 우리 학교를 최고의 명문 학교로 만들겠어.”

“…오, 너 좀 멋있다. 구태호?”

짝! 짝! 짝!

하고서 권유라가 손뼉까지 쳤다.

“하하, 유라, 넌 어떻게 할 건데?”

“음… 나는….”

그녀가 잠깐 고심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해외로 갈 거야.”

“아….”

“응, 아직 뭐,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데, 해외에서 학교를 다녀 보고 싶어. 엄마, 아빠도 될 수 있으면 그러라고 하고.”

재벌 집 딸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실상 다른 재벌 가문에서는 애초에 아이를 낳을 때부터 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가 원정 출산을 해 이중 국적을 취득게 하기도 하지만 권유라의 부모는 그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이는 오로지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

이는 권유라의 아버지 등 에이치 그룹을 이끄는 사람들이, 기업을 성장시켜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창업주 즉 권유라의 증조 할아버지 뜻을 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그렇구나….”

구태호가 조금은 놀라며 답했다.

그러고서 구태호와 권유라는 자연스레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우현이었다. 정우현이 잠자코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우현이, 너는?”

도통 먼저 말할 기미가 없어 보이자, 구태호가 결국 말을 붙였다.

“어떻게 할 거야? 다른 학교로 갈 거야?”

이에 정우현이 살며시 미소를 띠고는 답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

그에게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구태호처럼 KGI에 남는 길, 권유라처럼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길, 아니면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는 길.

세 번째 길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그가 소속된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더 이상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니는 것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분야에서 그는 이미 일반적인 대학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고, 심지어 그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수학과 자동차 공학, 그리고 외국어와 영화 등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학생의 신분으로 누군가에게서 학문을 배운다는 게 오히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나이 때문이다.

여전히 미성년인 그가 학생의 신분을 완전히 버려도 되는지, 아직은 명확히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래?”

정우현의 대답에 구태호가 곧장 되물었다.

“그럼, 우현아! 나랑 같이 우리 학교에 남자. 너랑 나랑 KGI 최후의 쌍두마차가 되는 거야!”

“하하하하하!”

구태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유라가 크게 웃었다.

“야, 쌍두마차가 뭐냐? 쌍두마차가! 하하하하!”

“왜.”

구태호가 눈을 작게 뜨고 권유라를 노려봤다.

“이제 KGI를 떠나실 분은 끼어들지 마시고.”

“흥!”

권유라가 코웃음을 치더니 정우현을 보고 순간 표정을 바꿔 살살 웃었다.

“우현아.”

“응?”

“그럼 나랑 같이 학교 알아보자.”

“….”

“미국이든 어디든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거야. 나랑 같이. 어때?”

“음….”

하고서 정우현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볼게.”

“정말?”

“응, 근데 진짜 모르겠어. 이래 놓고 내년에 태호랑 같이 계속 열심히 KGI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정우현의 말에 구태호가 흥분하며 말했다.

“제발. 제발, 우현아! 그럼 내가 너 한 달 내내 치킨 사 준다!”

“흥!”

권유라가 다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현아, 나는 너, 집 한 채 사 줄게.”

“…헐.”

구태호가 즉각 놀랐다.

“내가 용돈 모아 놓은 게 좀 되거든? 그거로 아파트 한 채 사 줄게. 아주 큰 거는 못 사 줘도, 실속 있게 알짜배기로는 하나 사 줄 수 있을 거야.”

“야, 권유라!”

구태호가 즉각 크게 외쳤다.

“왜?”

“그건 반칙이지!”

“흥, 치킨으로 먼저 우현이 꼬신 게 누구더라.”

“하하하하하.”

정우현은 어이없는 친구들의 말에 크게 웃었다.

어찌 됐든 친구들이 이렇게나 자신과 함께하길 원한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 * *

시간이 조금 지나, 정우현의 고민도 끝이 났다.

아니, 애초 그가 결심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학교에 남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어느 날, 놀랍게도 미국으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정우현 이사님 맞지요?”

“아, 예.”

이에 곧장 상대방이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네바다 공과 대학교의 총장이었다.

즉 KGI의 수학 선생인 박주희가 졸업한, 수학 부문 세계 최고의 대학인 NIT 총장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푸앵카레 추측을 공식적으로 입증하고, 필스 상을 수상하신 것에 관하여.”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을까요?”

“아, 이번에 저희 NIT 수학과에서, 교수직 한자리가 공석이 되어 정우현 이사님을 모시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사실 일찌감치 모시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학계로부터 공식적으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있어, 이렇게 뒤늦게 연락을 드리는 것입니다.”

희대의 천재란 천재는 모두 좌절케 한, 인류의 오랜 수학적 난제를 해결한 정우현.

그가 이룬 수학적 성과는 그야말로 엄청나서, 실상 강단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에 수학 부문에서 가장 탁월한 성과를 자랑하는 NIT가 먼저 정우현에게 접촉했다.

물론 정우현은 아직은 어린 자신에게 교수직을 제의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2006년 새 학기부터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데, 가능하신지요?”

“으음….”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다가는 답했다.

“근데 저는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에이치 자동차 소속이시죠. 한데 저희는 이사님이 비상무로 근무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또한 저희 학교 교수로 근무하시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만약 부임하신다면, 강의보다는 연구 교수로 계실 것이기에 시간을 그리 크게 잡아먹을 일도 없을 거고요.”

그럼에도 정우현이 대답을 하지 않자 NIT 총장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정 상황이 여의치 않으시면 우리 학교에서도 비상임으로 근무하시는 방법이 있고….”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일단.”

“….”

“생각해 볼게요.”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상황이 급하고 아쉬운 사람은 NIT 총장이지, 정우현이 아니었다.

그러고서 정우현은 몇 마디를 더 한 뒤 전화를 끊었다.

* * *

“우현아.”

며칠 뒤 KGI 교실 안.

수학 선생인 박주희가 복도에서 교실로 들어오며 정우현을 불렀다.

“예?”

“교장 선생님이 너 찾는다.”

“저요?”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교무실로 들어오더니 널 데려오라고 하셨다.”

“아, 알겠습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정 교장이 자신을 따로 찾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다.

무려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하는 논문을 제출했을 때도, 잠깐 교실로 와 잘했다며 한마디 말만 하고 갔으니까.

그만큼 교장은 학생들과 개별적으로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다. 사사로운 감정을 갖고 학생들을 대한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소외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항상 공평무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스스로 여겼다.

“교장 선생님, 정우현입니다.”

정우현이 교장실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아, 들어오세요.”

이내 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교장이 인자한 미소를 띠고 정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찾는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예.”

하고서 교장이 양손을 깍지 낀 채 커다란 책상에 올리고는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말했다.

“얘기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요?”

“NIT에서 교수직 스카우팅이 왔다고요?”

“아, 예.”

정우현이 놀라며 답했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민정 교장은 미국의 유명 사립대에서 학장까지 역임했던 사람.

비록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미국 교육계에서 그녀의 평판과 인맥은 여전했기에, 정우현을 향한 스카우팅 소식 또한 모를 리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우리 우현 군은?”

“음….”

하고서 정우현이 답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회사 일도 있고 하니까요.”

“그렇군요.”

이 말을 끝으로 교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잠시간 정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서는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정우현 군.”

“예, 교장 선생님.”

“그동안 고생했어요.”

“….”

정우현은 교장의 말을 얼른 이해할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이로써 정우현 군은 우리 한국 영재 학교를 졸업하게 됐습니다.”

“…예?”

역시나 무슨 뜻인지 몰라 정우현이 바로 되물었다.

“이제 이곳, KGI를 떠나야 한다고요. 우현 군이 NIT 교수직을 수락하든 아니든.”

“…왜요?”

“하하.”

하고서 교장이 즐겁다는 듯 웃고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우현 군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얘기는 우현 군이,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어떻게 KGI에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여기는 대학도 아니고, 초중고 통합 과정의 특별 학교일 뿐인데요.”

“….”

정우현 또한 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한데 이와 관해 교장으로부터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현 군은 KGI를 6년 과정으로, 이제 졸업하게 될 겁니다.”

이 순간, 아직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정우현은 KGI를 떠나야 한다.

오랜, 정든 자신의 학교를 떠나 이제 새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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