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74)화 (74/200)

74화

이 설계 및 개발한 엔진은 예혼합 압축착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일명 HCCI(Homogeneous-Charge Compression-Ignition Engine) 엔진이다.

이 엔진의 핵심은 휘발유를 연료로 해도 경유처럼 점화 플러그 없이 압축하여 착화(着火) 즉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휘발유도 경유만큼의 열 효율을 내는 등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의 강점만을 취합할 수 있다.

사실 자동차 업계는 1970년대부터 이 엔진을 연구했다. 하지만 엔진의 회전과 부하(負荷) 등이 가변적인, 실제 주행과 같은 조건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일쑤였고, 결국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한데 정우현이 모든 조건에서 실험을 통과한 완벽한 HCCI 엔진을 만든 것이다. 엔진 제어와 분사(噴射)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이룩한 결과였다.

사실 전생에서 HCCI 엔진은 2007년에 독일의 한 자동차 회사가 콘셉트 카에 탑재해 처음으로 선보인다. 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오랫동안 상업적인 판매에는 이르지 못하다가, 시간이 흘러 2020년에야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가 양산형으로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다.

한데 정우현이 무려 2004년에 HCCI 엔진을 완벽하게 개발해 낸 것이다.

즉 그는 전생에 비해 대략 15년이나 기술의 진보를 앞당겼다.

* * *

정우현의 작업장.

작업장 안에는 에이치 자동차 사장과 그의 딸 권유라 부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엔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권유라가 정우현을 불렀다.

“우현아.”

“응?”

“이 엔진. 이름 붙였어?”

“아, 아니.”

정우현은 오랫동안 엔진 개발에만 집중했기에 이름 같은 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하나 제안해도 될까?”

“좋아.”

딱히 이름 같은 것에 큰 의미도 두지 않았으니, 괜찮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좋을 것 같았다.

이에 권유라가 얼른 한마디 했다.

“WH-X.”

“…그게 뭐지?”

“WH는 우현. 네 이름의 이니셜이야.”

“아. 그럼 X는?”

“X는 그냥 X야. 뭔가 좀 있어 보이잖아. 새롭고.”

“음, 그런가.”

이렇게 해서 정우현이 만든 엔진은 졸지에 이름을 갖게 됐다. WH-X로.

“…정말 이게 가능했군.”

잠자코 있던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엔진을 탑재한 차량의 모델을 빠르게 만들어서.”

“예.”

“다가오는 서울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거다. 그리고.”

하고서 사장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곧장 양산에 들어가야지. 이 엔진으로 에이치 자동차는 세계 일류 자동차 회사로 거듭난다!”

“하하하, 좋네요.”

정우현이 맞장구치며 동의했다.

그럼에도 사실 그는 에이치 자동차의 성장보다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엔진을 자신이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에이치 자동차의 대주주이자 임원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회사는 자신이 만든 회사는 아니니까.

“우현아!”

사장이 몸을 홱 돌려 정우현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예?”

“고맙다! 네가 우리 회사의 보물이다!”

그러고서 그는 정우현을 와락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 하하….”

정우현은 사장에게 안긴 채로 조금 멋쩍게 웃었다.

“…아빠!”

권유라가 그런 아버지의 상의를 양손으로 잡고 말했다.

“얼른 놓아! 우현이 답답해하잖아!”

“아니야, 아니!”

그럼에도 사장은 정우현을 계속 끌어안았다.

“어떻게 놓아줄 수 있겠니! 보물도 이런 보물이 없는데!”

“…아빠아아!”

* * *

서울 모터쇼에 선보일, 정우현의 엔진을 탑재할 새 차는 순조롭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장은 이번에 해당 차를 세계적인 모델로 확고히 하기 위해, 더욱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엔진뿐만 아니라 차체, 조향장치, 현가장치 등 차량 내부 그리고 외부의 디자인까지 모두 세계적인 엔지니어 및 디자이너를 섭외해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는 엔진 팀을 영입할 때와 달리 해외 인재들을 비교적 쉽게 영입할 수 있었다.

정우현이 엔진을 즉 차량의 심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완벽하게 개발했다는 소식이 업계에 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모두 WH-X라는 첨단 엔진을 탑재한 첫 차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고 싶어 에이치 자동차에 새로 합류한 것이다.

이윽고 개최된 서울 모터쇼.

대중 및 기자들은 일반적인 모터쇼와 달리 국내의 한 자동차 회사 부스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에이치 자동차였다. 지난 모터쇼와 달리 해외 유수의 자동차 회사 부스가 아닌 에이치 자동차에 몰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우현이 제작한 엔진 WH-X를 탑재한 승용차 HX를 보기 위함이다.

HX는 사장이 붙인 이름으로, 기존 회사 이름인 H에 정우현의 엔진 WH-X의 X를 붙여 탄생했다.

사장은 장차 정우현의 엔진을 탑재한 HX를 시리즈로 개발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는 야심 찬 계획도 있었다.

이에 맞춰 큰돈을 투자한 덕에 디자인까지 세계 어느 자동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즉 에이치 자동차의 HX는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명품 차였다.

정우현을 중심으로 세계 1류 인재들이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최고의 차였다.

“How was it possible to achieve such a leap in technology? (어떻게 이렇게 비약적인 기술 진보를 이룰 수 있었죠?)”

해외 기자가 에이치 자동차 사장에게 물었다.

“하하하, 누구 덕분이겠습니까?”

이에 사장이 곧장 투박하지만 거침없는 영어로 답했다.

“우리, 정 이사 덕분이죠!”

하고서 옆에 있는 정우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그렇군요!”

이에 기자가 쾌활하게 답하며, 정우현을 향해 물었다.

“정우현 이사님. 배우에서 수학자,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 엔지니어까지. 정말,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이 인크레더블한 변신의 끝은 어디인가요?”

“하하하하.”

정우현이 자신의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표현을 빌려 재치 있게 말하는 기자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때그때 제 마음을 이끄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지금은 그게 자동차일 뿐이고요. 음.”

그러고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엔진이 탑재된 HX를 미소를 띤 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자동차에 빠져 있을 것 같네요.”

하고 다시 기자를 보고 활짝 웃었다.

“재밌거든요, 엄청 재밌어요.”

“하하하하!”

기자가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한국이 자동차 강국이 되는 건 시간문제군요!”

* * *

해가 바뀌어 2005년 초.

드디어 정우현의 엔진 WH-X가 탑재된 에이치 자동차 HX의 대량 생산 및 판매가 시작됐다.

그리고 첫 달, HX는 해외에서만 15만 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쳤다.

이에 해외 언론이 곧장 정우현과 그의 엔진을 조명했다.

“What happens when Jung Woo-hyun becomes an engineer. (정우현이 엔지니어가 되면 벌어지는 일.)”

“WH-X。内燃機関の圧倒的な進歩。性能は高め、環境は生かし. (WH-X. 내연 기관의 압도적인 진보. 성능은 높이고 환경은 살리고.)”

“H Motor Company mit einem Genie auf dem Rücken. Bist du die Nummer 1 der Welt? (천재를 등에 업은 에이치 자동차. 세계 일류 되나?)”

이와 함께 에이치 자동차의 주가는 폭등했고, 정우현의 주식 가치는 무려 4조 원이 되었다.

* * *

한편 한국영재학교 강당 안.

새 학년이 시작된 가운데 김민정 교장이 정우현이 속한 상급생들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방학 때 모두 잘 지냈나요?”

교장의 물음에 학생들이 일제히 답했다.

“예!”

“다행이네요.”

그러고서 교장이 학생들을 둘러봤다.

“여러분, 올해는 뜻깊은 해입니다.”

“….”

“바로 여러분이 6학년이 됐기 때문입니다.”

하고 그녀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우리 KGI가 개교한 이래 처음으로 입학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6학년이 되었죠, 이 얘기는. 여러분 중 누군가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KGI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장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댔다.

“물론 우리 KGI는 초중고 통합 학교입니다. 하지만 올해 6학년을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은, 선택할 수 있어요. 계속 KGI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다른 학교로 진학할 것이냐 등등.”

즉 학생들은 KGI에서 초등학교 과정만 졸업하고, 국내 혹은 해외의 다른 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과정부터는 국내외 영재 학교가 꽤 있었기에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KGI가 개교한 이래 여러분들과 함께하며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요, 특히 크고 작게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여러분을 보며 한국 영재 학교가 그릇되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죠.”

교장의 말마따나 국민은 이제 KGI를 대부분 지지하고 있었다. 과거 개교했을 즈음엔 갑론을박 말이 많았으나, 이제는 학생들의 뛰어난 성과와 딱히 이렇다 할 문제 없는 학교 측의 운영에 찬성의 목소리가 훨씬 강해진 것이다.

이에는 학생들도 학생이지만, 김민정 교장 산하 교직원들의 노력이 컸다. 운영에 잡음이 나오기 쉬운 재정 및 행정 측면에서 조금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으며 공정하면서도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영재 학교 교장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려 합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학생들이 설렌 표정으로 교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바로, 과제입니다.”

“아아!”

교장의 말에 학생들이 즉각 탄식을 내뱉었다.

“조용, 조용!”

하고는 교장이 살며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벌써부터 엄살이 심하네요. 과제가 주어지면 세상 어떤 학생들보다도 놀라운 모습을 보이는 우리 뛰어난 KGI 학생 여러분이.”

교장의 말에 학생들이 툴툴대면서도 말을 줄였다.

“방식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게 있는데요. 팀, 바로 팀을 이뤄 과제를 해야 합니다.”

“와아!”

“최소 두 명에서 최대 세 명까지. 자유롭게 친구들과 함께 팀을 결성해 과제를 제출하세요. 그 외 다른 모든 건 지난번과 같습니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연구하고 결과를 만들 것. 그리고 반사회적이지 않을 것. 역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각 과목 선생님들에게 문의하고요, 기한은 가을, 2학기가 시작되는 날까지입니다!”

그러자 정우현 옆에 있는 구태호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네?”

“어떻게, 과제가 선물일 수 있나요?”

“하하하하!”

이에 학생들은 물론 김민정 교장의 뒤에 있는 선생들까지 모두 웃었다.

“태호 학생.”

교장이 슬며시 미소를 띠고 구태호를 불렀다.

“예?”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녀의 말에 구태호가 즉각 양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왼쪽에는 정우현이, 오른쪽에는 권유라가 있었다.

모두 5년 넘게 함께한 오랜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있죠?”

“예!”

“소중한 친구들이죠?”

“…예.”

“그 친구들과 내년이면 작별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교장의 말에 구태호는 물론 학생들 모두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이곳 KGI를 떠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교장을 봤다. 한데 전과 달리 그들 사이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훗날 제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될 여러분이, 이번 일로 친구들과 평생의 기억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억을 통해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영재학교 교장인 제가, 작별을 앞둔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것으로 김민정 교장의 말은 끝이 났다.

* * *

강당 밖 KGI 교정 한가운데.

정우현과 권유라 그리고 구태호 셋이 한쪽 팔을 뻗어 손을 포갰다.

마치 5년 전, 지금보다 키가 훨씬 작았던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하며 손을 포갰듯이.

“애들아.”

정우현이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권유라가 답했다.

“우리, 잘해 보자.”

“좋았어.”

이번엔 구태호가 답했다.

그들 셋은 과제를 위해 따로 팀을 결성하자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전 함께한 그 순간부터, 이미 한 팀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