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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73)화 (73/200)

73화

정우현의 새 엔진 제작 과정이 중반에 이르렀다.

한데 처음으로 문제에 봉착했다. 엔진이 워낙 정교하다 보니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를 구성하는 작은 부품 및 그에 따른 이음새 등을 정확하게 주조해야 했다. 한데 현재로서 국내엔 그처럼 극도로 정교한 금형(金型) 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어딘가에선 가능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해당 기술이 가능한 금속 업체를 찾고 나아가 생산을 맡기기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또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심지어 부품 생산을 성공적으로 위탁한다 해도, 기술 자체를 에이치 자동차가 습득하지 못하는 한 장차 위탁 업체의 수급 상황에 따라 엔진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으음.”

엔진 팀의 가장 고참 격인 이탈리아 출신의 엔지니어가 불량 처리가 된 여러 부품을 손에 들고 말을 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아주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군.”

당연한 얘기였다. 과거 그가 수작업을 했던 업체의 엔진 부품은 거의 완벽하게 주조가 됐으니까.

하지만 해당 회사가 글로벌 경쟁 업체인 에이치 자동차에게 해당 기술을 전수할 리는 만무했다. 심지어 엔지니어까지 뺏긴 마당에.

“….”

정우현이 말없이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고철 신세가 되어 버린 작은 부품들을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새 엔진이고 뭐고 전부 작업이 중단될 판이었다. 즉 위기였다.

“잠시!”

이에 곧장 주위를 둘러보고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며칠만 쉬죠! 모두 오랜만에 개인 시간을 가져 보세요!”

“어이, 보스. 이대로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고.”

엔지니어들은 도면의 설계자이자 팀장인 정우현을 보스라고 불렀다.

“예, 알아요. 하지만 불가피하게 작업이 교착 상태니 모처럼 푹 쉬고 오라는 말입니다. 한국에 왔으니 이것저것 둘러보시고요!”

“….”

사람들이 말이 없었다.

살던 터전과 모든 경력을 뒤로하고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온 엔지니어들.

정우현의 엔진 제작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커리어 또한 단절되고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정우현이 즉각 분위기를 파악하고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모든 것을 걸고 방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러니 정확히 일주일, 일주일 후에 여기서 다시 보겠습니다!”

하고서 그는 애써 엔지니어들을 달랠 수 있었다.

* * *

금형이 문제였다. 현재의 주조 방식으로는 금속 부품에 기공(氣孔) 결함이 생겨 내구성 및 정확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정우현의 최첨단 엔진 설계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무리였다.

이에 그는 곧장 전력을 다해 주조 기술에 매달렸다.

그러고서 드디어 또 하나의 도면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진공 다이 캐스팅’이었다.

다이 캐스팅은 다이(Die)라고 칭하는 기계 가공된 금형에다가 아연이나 알루미늄 등의 합금을 주조해 금형과 똑같은 주물(鑄物)을 얻는 방식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금속은 보통 품질이 우수해 따로 다듬을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게 큰 강점이다.

사실 불량 처리가 된 이번 엔진 부품도 다이 캐스팅 공법으로 제작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해당 공법을 알고 있었다. 엔진과 관련된 모든 건 일찌감치 학습하고 실전에 들어갔으니.

하지만 새 엔진을 만드는 데는 이마저도 부족했다. 그래서 정우현은 금형 내부를 진공으로 유지해 주물 내 기공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한 뒤 도면으로까지 완성한 것이다.

그러고서 해당 도면을 들고 얼른 한 곳을 찾았다.

바로 에이치 자동차 계열사인 에이치 금속 즉 자동차의 부품을 만드는 그룹 내 회사였다.

“…정 이사가 여긴 웬일로? 지금 엔진 만들고 있지 않아?”

머리가 반쯤 벗어진 금속 사장이, 사장실에 올라온 정우현을 보자마자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정우현을 일찌감치 한번 봤었다. 지난날 정우현의 신임 이사 임명 건으로 에이치 자동차에서 주주총회를 열었을 때 계열사 법인의 임원으로 해당 총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해당 법인은 물론 정우현의 임명에 찬성표를 던졌다. 에이치 금속의 사장이 권유라의 아버지 즉 에이치 자동차 사장의 심복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한데 워낙 상황이 급해서요.”

하고서 그는 가져온 도면을 바로 금속 사장 앞에 펼쳐 보였다.

“…으음?”

“새로운 다이 캐스팅 용법입니다. 진공 상태에서 금속을 주조하는 게 핵심이죠.”

“…아아!”

에이치 금속은 물론 에이치 자동차와 파트너 관계로, 이번 정우현의 새 엔진 제작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부품을 이곳 금속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근데 정우현이 어느 날 새로운 금형 설비 즉 다이 캐스팅 모형을, 그것도 진공 기술을 접목시킨 도면을 가져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 확인할 게 있었다.

“…그, 우리가 제작한 부품은?”

“아쉽지만, 미세하게 결함이 있어요.”

“아니, 국내 최고의 기술인데!”

“예, 일반적으로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근데 이번에 제가 만들려는 엔진이 워낙 좀….”

하고 정우현이 말끝을 흐리는데 사장이 곧장 말을 받았다.

“…정교하다는 거군.”

“…예.”

“으음….”

그러고서 사장이 도면을 계속 주시했다.

설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애초 작은 부품을 주조하기 위해 설계한 도면이니 당연했다.

다만 정우현이 고안한 진공 용법을 적용하는 게 조금 까다로워 보였으나 그렇다고 아주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설계도 그대로 본떠 만들면 될 일이니까.

심지어 정우현은 일찌감치 학습한 에이치 금속의 주조 기술을 바탕으로 작정하고 이번 도면을 설계했다. 즉 애초 회사의 기술이었기에, 현재로서 충분히 제작 가능한 설비였다.

“언제쯤 가능할까요? 아직 양산할 필요는 없으니 프로토타입으로 몇 개만 만들어 보면 되는데.”

“…많이 급하지?”

한껏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우현을 보고 사장이 물었다.

“예.”

“그럼 일주일. 그 안으로 어떻게든 일단 하나 만들어 보지.”

“감사합니다만, 더 빨리는 안 될까요?”

“음, 아무리 도면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로서도 처음 만드는 설비라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제가 합류하겠습니다.”

“…뭐?”

의외의 말에 사장이 작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제가, 설비를 만드는 데 함께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도면을 설계했으니, 함께하면 분명 작업 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상관없죠, 사장님?”

정우현의 말에 사장이 슬며시 웃으며 답했다.

“…하하, 뭐, 우리야 나쁠 거 없지. 그러잖아도 에이치 자동차 사장님이 정 이사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협력하라고 했으니.”

에이치 자동차의 매출이 오를수록 자동차 부품 회사인 에이치 금속의 매출 또한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두 회사는 공생 관계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정우현은 모기업(母企業)에 가까운 에이치 자동차의 최대 주주이기도 했기에 금속 사장으로서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 * *

정확히 나흘 후.

정우현은 에이치 금속 팀과 함께 진공 다이 캐스팅 제작을 성공해 냈다.

이틀이 또 지나, 약속대로 다시 엔진 팀과 함께 작업장에 모였다.

그리고 드디어 해당 설비로 만들어진, 작고 정교한 부품을 자동차 엔진에 조립한 순간.

“아아아아!”

정우현의 엔진 팀 기술자들은 물론 금속 사장까지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부품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물론 완벽히 제 기능을 발휘한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금속 사장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정 이사,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이군.”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도와주긴 뭘 도와줘! 내 참, 엔진 만들다가 막혀서, 곧장 부품 설비를 뚝딱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정 이사 그대밖에 없을 거다!”

하고서는 그가 주위를 살피며 숱이 별로 없는 자신의 머리를 괜스레 매만지더니, 한순간 정우현 곁에 가까이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정 이사.”

“예.”

“그 기술. 진공 다이 캐스팅.”

“….”

“우리 회사가 써도 되지?”

“하하하, 당연하죠. 애초 사장님 회사랑 같이 만든 설비인데요!”

그러자 금속 사장이 다시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고맙구먼, 고마워!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횡재를 했어! 이 기술로 국내 업계를 선도하는 것은 물론, 모처럼 세계 시장을 노려 볼 수 있겠군!”

정우현에게 중요한 건 새 금형 기술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는 오직 눈앞에 있는 엔진, 엔진뿐이었다.

“물론.”

하지만 금속 사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거래는 깔끔하게 해야지. 더군다나 우리는 파트너 아닌가.”

“예?”

“특허. 특허를 낼 계획이야. 정 이사의 새 기술.”

“아아.”

“물론 정 이사가 단독 개발한 거니까 정 이사 그대의 이름으로. 그에 따라 설비를 갖추고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지. 로열티를 지급할 테니.”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하고서 그가 고개를 돌려 작업대 위의 새 엔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잘 만들어 봐. 얘기 듣기론, 완성만 된다면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엔진이라고 하던데. 하하하, 나도 기대하겠네. 우리야 부품을 열심히 만들 테니.”

그러고서 그가 밖으로 나갔다.

* * *

두 달 후 정우현의 작업실.

“….”

온몸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은 정우현과 엔진 팀이 모두 말을 잃었다.

드디어, 새 엔진을 완성한 것이다.

부릉, 부르르르르릉.

그리고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즉 완벽했다. 정우현이 애초 설계한 도면 속 그래픽에 불과했던 엔진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È fantastico! (끝내주는군!)”

“ああ、夢だけです. (아아, 꿈만 같습니다.)”

“Besser als jeder Motor, den ich kenne. (제가 접한 그 어떤 엔진보다 뛰어납니다.)”

“Hurray! Boss! Hurray! (만세! 보스! 만세!)”

엔지니어들이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정작 정우현은 두 발로 꼿꼿이 서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워낙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자신의 방안에서 조용히 홀로 수식을 전개하고 도면을 채우던 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는 줄곧 이 엔진 하나만을 생각했었다.

한데 드디어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기계로서 눈앞에 있게 됐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한참이나 엔진을 바라보던 정우현이 몸을 돌려 엔지니어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여러분의 노고가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정우현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엔진이 완성된 이 시점, 그간 함께한 동료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잘만 생활하던 뛰어난 사람들이, 오로지 정우현 본인의 이름 석 자와 그의 말만을 믿고 도면조차 보여 주지 않은 엔진을 만들기 위해 먼 나라 이곳 한국까지 왔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수개월을 이렇다 할 불평 없이 정우현의 말을 따르며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해 끝내 성공까지 했다.

아무리 정우현이라 한들 그 혼자로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기에 그만큼 그들의 믿음과 노력이 뜻깊었다.

“하하하하!”

하지만 이내 엔지니어들이 쾌활하게 웃었다.

“보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우리가 고맙지!”

“하하, 그래. 보스 덕에 세계 최고의 엔진을 만들게 됐잖아.”

“맞습니다, 놀랍고 영광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곳 한국에 와서 보스의 설계도를 처음 본 그날, 모든 우려와 부정적인 생각을 뒤로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을 확신했거든요.”

“그래요! 그리고 그날! 보스는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얼마나 들뜨고 쾌재를 불렀는데요! 행운이라고요. 보스와 함께하고 작업하게 된 건 그야말로 행운이라고요! 그래서 더 전념할 수 있었죠!”

정우현이 고개를 들고서는, 온갖 찬사를 하는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 모두 행복한 모습으로 웃으며 농담을 하고 때론 거친 말까지 섞어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옷은 물론 얼굴에까지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이목구비를 좀처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라?”

순간 이탈리아 엔지니어가 정우현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보스, 지금 우는 거요?”

“…아.”

정우현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한줄기 흘린 것이다.

행복했다. 행복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이거 원! 뭐, 워낙 천재라서 겉모습만 애인 줄 알았는데, 역시 그저 애였구먼!”

“하하하하. 보스. 이렇게 좋은 날에 왜 웁니까.”

“그래요, 그래. 우리 그러지 말고 맥주나 한잔합시다!”

정우현이 옷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한데 그럴수록 기름이 묻어 얼굴은 더 새까매졌다.

“하하하하!”

엔지니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이 눈물을 다 닦고는 끝내 미소 지으며 한마디 했다.

“근데 저는.”

“….”

사람들이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직은 술 먹으면 안 돼요. 그래도 가요, 가. 특별히 오늘은, 우리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특허를 낸, 쌀 음료를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부담 없이 달달하고 맛있어요!”

“하하하, 그게 뭡니까, 보스!”

엔지니어들이 껄껄대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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