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시간이 더 흘러 마침내 정우현이 엔진 설계도를 완성했다.
사장을 포함해 기술 관련 임원들이 모인 어느 날.
“….”
사람들이 정우현의 설계도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는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걸 정말 정 이사가 설계했다고?”
“아, 예, 하하. 유라가 많이 도와줬어요.”
“무슨 소리!”
한편에 있던 권유라가 곧장 말했다.
정우현이 완성된 설계도를 회사에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하자, 모처럼 아버지 에이치 자동차 사장을 설득해 함께 참석한 것이다.
“우현이 네가 혼자 다 설계해 놓고 마지막에 뭐 잘못된 거 없는지만 봐 달라고 한 거잖아!”
“하하, 그랬나.”
“응! 내가 이럴 줄 알고 오늘 따라 나온 거야. 너 딴말 할 것 같아서!”
“하하하하.”
오직 정우현만 마음 편히 웃는 가운데,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도면만 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기술 관련 임원들. 정우현의 도면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는 놀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장 또한 명색에 자동차 회사 사장답게 도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계속 한참을 면밀히 살피다가는 시선을 돌려 다른 임원들을 보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할 수 있을까?”
“….”
“우리 회사가 이 엔진을 만들 수 있을지.”
사장의 물음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는 투명한 테의 안경을 쓴, 또 다른 기술 이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솔직히.”
“응?”
“힘듭니다.”
“아아….”
사장이 조금은 예상했다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의.”
안경 쓴 이사가 계속 말을 이었다.
“놀라운 설계도임은 틀림없지만, 우리 기술력으로 이 도면을 실제 엔진으로 만들 수 있을지, 아니, 이 엔진이 현시점 세상에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엔진 제조 공정이 지금보다 훨씬 진보하면 모를까요….”
“…이런, 이런.”
사장이 안타깝다는 듯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도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봤다.
애써 지그시 웃으면서도 살짝 눈꼬리가 내려가 있는 등,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정 이사.”
“예.”
“…어쩌지? 오랜 시간 여기에 집중했을 텐데 말이야.”
“….”
“…하하, 이거 원 너무 앞선 도면이라 우리 기술로는 따라가지를 못하네… 하하….”
하고 멋쩍어서는 계속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빠!”
권유라가 안타까워서는 사장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으응?”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야지! 우현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하고는 임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보세요, 이런 엔진 어디서 보신 분 있어요? 솔직히 저는, 우현이가 가끔 미래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번에 제일 그래요! 이건 미래의 엔진이에요, 미래의 엔진!”
이에 사장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아아, 그래, 그래. 아빠도 놀랐다. 근데 유라야, 기술이란 게 모든 게 갖춰져서 발전하기까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서 말이야….”
아빠의 말에 권유라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런 게 어딨어! 언제는 국내 최고는 물론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될 거라며! 우리 에이치 자동차가 세계 1위의 자동차를 만들 거라며!”
“…그래, 그렇지. 하지만 유라야….”
“방법이 있어요.”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
사람들이 즉각 입을 다물고 조용히 정우현만을 바라봤다.
“엔진을 만들, 방법이 있다고요.”
엔진을 두고 사람들이 난색을 표하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동안 정우현은 입을 다물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무슨?”
“해외 최정상급의 엔진 기술자들을 포섭해 오면 돼요.”
“….”
정우현의 말에 여전히 사람들이 가만히 있다가는 한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정우현은 잠자코 그들을 바라봤다.
이에 아까 전, 엔진 제작이 힘들 것 같다고 한 기술 이사가 안경을 한번 고쳐 쓰고 말을 했다.
“정 이사, 우리가 그런 노력 이미 한번 안 해 봤겠어? 일찌감치 실력 있는 해외 엔지니어들 가운데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접촉해 봤다. 한데 아쉽게도 꿈쩍도 하지 않아. 우리의 스카우팅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에이치 자동차가 대한민국에서야 1등이지만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과 경쟁하면 한 단계 아래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즉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들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보다 처지는 에이치 자동차에 올 이유가 없었다.
이에 정우현이 즉각 말했다.
“연봉이나 복지 등 대우를 후하게 해 준다고 얘기해보셨어요?”
“….”
정우현의 말에 임원들이 답은 않고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직원의 복리후생 관련해서는, 기술 관련 임원들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사장이 답했다.
“당연하지. 해외 어느 회사 못지않게 연봉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용이 없더구나.”
“안 돼요.”
“…응?”
갑작스러운 정우현의 부정의 말에 사장이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고작 그 정도로는 그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우리 회사에 데려올 수 없을 거예요.”
하고서 검지와 중지 등 V자처럼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최소 두 배. 지금 그들이 받고 있는 연봉보다 두 배는 준다고 해야 조금이라도 이직을 생각해 볼 겁니다.”
“…아아.”
사장이 난감하다는 듯 신음을 토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사업의 세계는 냉혹한 정글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기존 연봉보다 두 배 이상을 줘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현재 속해 있는 세계 일류의 회사 브랜드 프리미엄이 우리의 브랜드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높다는 거지요.”
“….”
“이 정도 각오는 해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사장이 말을 않다가는, 가만히 있는 기술 임원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하하, 이거 아예 이사회를 소집해야 하나.”
하고 사장이 농담 반 진담 반 말했지만, 정우현은 오로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일단 그러셔야 할 겁니다, 사장님.”
“으음.”
사장이 좀 더 생각하다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데 정 이사. 업계마다 그에 걸맞은 대우와 수준이란 게 있어. 우리가 그렇게 인재를 영입하는 게, 좀 전체적인 상황이나 산업을 살폈을 때 지나치지 않냐는 거지.”
“그래서.”
정우현이 지지 않고 답했다.
“에이치 자동차가 아직 세계 20위 권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최근 에스 그룹의 전자 회사가 만드는 핸드폰이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고 있는데요. 사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해당 회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거뒀겠습니까? 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으며 올라오는 한편, 공격적으로 세계적 인재를 영입하는 등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서 이룩한 결과겠죠.”
하고서 정우현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라서 우리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미 세계 시장을 오랫동안 선점한 해외 일류 자동차 회사들을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어요.”
이 말을 끝으로 잠시 실내에 정적이 돌았다.
사장을 포함해 사람들이 진심으로 정우현의 말을 곱씹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를 한참, 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 이사의 말대로 하면, 인재를 영입하고.”
하고서 다시 도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가?”
“아니요, 그것만으로는 아직 조금 부족해요.”
“으음?”
의외의 대답에 사장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정우현을 바라봤다.
“한낱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요.”
“….”
“그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자부할 것입니다. 즉 명예심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시점 우리 회사의 평판으로는 아쉽게도, 그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죠. 오로지 돈으로만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들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하나.”
“그래서 제가 손을 쓸 생각입니다.”
“정 이사가 나선다고?”
“예,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단을 다해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끝내 있기는 있을 겁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회
사와 스스로를 거의 동일시해, 어떤 경우에도 다른 회사는 쳐다보지 않는, 즉 애사심이 남다른 사람들이죠. 사람이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면 그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은 법, 그런 경우에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어요.”
하고서 정우현이 짐짓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제 방법이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사장님께서는 세계 어느 자동차 회사도 남부럽지 않은 파격적인 복리후생만 보장해 주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
정우현의 말에 사장이 또다시 고심하다가는 모처럼 살며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일단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러고서는 임원들을 둘러보고서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전체 이사들과 얘기를 나눠보자고.”
그리고 정우현의 사무실.
권유라는 아까부터 말을 않고 잠자코 눈만 크게 뜬 채 친구 정우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는 정우현이 뒤늦게 그녀의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말했다.
“왜, 유라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권유라가 대답했다.
“우현이, 너, 참 대단해서.”
“하하, 왜 또. 엔진 설계 잘했다고?”
“물론 그것도 그거지만. 아까 어른들 다 모여 있는데서….”
하고 그녀가 애써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해? 난 솔직히 내가 아는 우현이 맞나 생각할 정도였어. 세상에,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나도 우현이 네 말을 거들고 싶었는데, 괜히 주눅이 들어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니까?”
“…하하하, 뭐, 회의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하여간 우현아. 정말 잘했어. 이 괴물 같은 설계도를 기껏 완성해 놓고, 실제 만들 수 없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말이 안 돼. 지구가 두 동강 날 일이라고! 만약 아빠를 포함해서 어른들이 절대 불가라는 식으로 회의를 끝냈다면, 나는 이제 자동차고 엔진이고 뭐고 다 정나미가 확 떨어져서 쳐다도 보기 싫어질 뻔했어.”
“하하하하, 뭐야 그게.”
“정말이야. 아빠가 나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우리 에이치 자동차가 최고다,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될 거다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순 거짓말이지 뭐야? 아까는 진짜 여차하면 자동차 때려치우고 고모처럼 호텔 공부나 할까 생각했다니까?”
“에이, 유라야.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사실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도 대단한걸? 너도 알지? 우리가 태어나기 전 예전에는, 세계에서 에이치 자동차는 명함도 못 내밀었대. 해외에선 그런 회사가 있는지도 몰랐던 거지. 근데 이제는 많이들 타고 다니고 그러잖아.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
“…그으래?”
하고 권유라가 예의 모습으로 입술을 샐쭉댔다.
정우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빠와 아빠의 회사에 관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글생글 웃더니, 다시 밝은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정우현에게 말을 붙였다.
“근데 우현아.”
“응?”
“그, 방법이란 게 뭐야?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영입할 수 있는?”
“…아, 그건.”
하고 정우현이 친구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밝힐 수 없어.”
“…뭐?”
“아직 말할 수 없다고.”
“왜?”
“그냥. 내 마음이야.”
“…뭐야!”
“하하.”
“뭐야, 우현아!”
하고는 그녀가 정우현에게 애원하며 말했다.
“알려줘! 나한테만 얼른 알려 줘!”
“하하하하하.”
“얼르으으은!”
정우현은 그런 권유라가 재밌어서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활기차면서도 감정이 풍부한 권유라.
정우현은 가끔 이렇게 그녀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