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서산 공장에 가 보니 라인 하나는 주말에 특근도 하는 등 쉼 없이 돌아가는데, 다른 하나는 일이 없어서 멈춰 있더라고요!”
“으음….”
사장이 정우현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서산이면… 아마 H5랑 H2를 얘기하는 것 같구나. 맞지?”
“예!”
“…하하. 그건 어쩔 수 없다. 시장의 반응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거든. 우리가 자체적으로 아무리 분석한다 한들, 고객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지.”
하고선 사장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H5가 이렇게나 히트 치고, 반대로 H2는 이렇게나 판매가 저조할지 누가 알았겠니? 심지어 H2는 오랜 시간 선보여, 매니아 층도 두터운 모델인데….”
“예, 당연히 시장의 수요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죠.”
하고서 정우현이 재차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응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혼류 생산 시스템!”
“…응?”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부품을 쌓아 놓고 오직 하나의 차종만 제조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다양한 부품을 적시에 조달하는 방식으로 설비를 전환하면 여러 차종을 유연성 있게 맞춤 생산할 수 있을 거예요!”
“….”
사장이 곧장 생각에 빠졌다.
정우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생산 과정에 있어 낭비 요소는 피할 수 있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서 사장이 곧장 반론을 제시했다.
“그렇게 되면 말이다. 이번에 수요가 폭발적인 H5 같은 모델은 공급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그에 맞춰 생산 라인이 24시간 내내 돌아가고 있는데도 모자라서 차량 인도가 늦어지고 있는데, 다른 모델이랑 섞어서 생산한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니?”
“괜찮아요!”
사장의 반문에 정우현이 오히려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혼류 시스템을 적용하면, 현재 작업량이 없는 H2 생산 라인에서도 H5를 제조할 수 있으니까요!”
“…아.”
사장이 생각지 못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면 근로자들의 근무 강도와 수당이 상이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죠. 즉 작업의 생산성이 전체적으로 향상될 겁니다!”
“으음….”
사장이 계속 입을 다문 채 정우현의 얘기를 고심했다.
그러고서는 한순간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나쁘지 않은 생각 같구나.”
하고서 짐짓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임직원들이랑 한번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
* * *
이것으로 에이치 자동차는 우선 시범적으로 서산 공장에만 혼류 생산(混流 生産)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사장이 정우현의 주장을 납득했고, 이내 정우현과 사장이 나서서 다른 임원들을 설득했다.
물론 정우현이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게 좀 더 자료를 확충하고 연구하는 등 더욱더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리고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어느 날 서산 에이치 자동차 공장.
혼류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설비 기공식이 열렸다.
자리엔 정우현은 물론 에이치 자동차 사장도 있었다.
사장이 직원들 앞에 서서 몇 마디 얘기를 하고는 옆에 서 있는 정우현을 언급했다.
“이번 시스템 도입은 모두 우리 정우현 이사가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짝! 짝! 짝!
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장 근로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직원이 뜨겁게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단순히 정우현을 소개한 것뿐인데,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직원들은 지난날, 정우현이 공장 방문 시 사비로 선물 세트를 돌린 것을 기억하며 그를 열렬히 지지하게 된 것이다.
“하하, 아직 성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반응이 좋군요.”
물론 사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새 시스템을 도입한 정우현 이사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하고 사장이 단상에서 물러선 뒤 정우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정우현이 앞에 서자 직원들의 얼굴에 더 생기가 돌았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좀 더 전문화되고,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새 생산 방식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직원들 한 분 한 분 모두 금세 익숙해지시리라 확신합니다.”
하고서 그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좀 더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차량 생산성은 물론 직원 여러분도 한결 더 나은 작업 환경에서 근무하시게 될 겁니다.”
정우현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다수 사람이 새 생산 방식을 아직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정우현을 향한 호감과 신뢰로 나쁘지 않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소수의 사람은 해당 시스템을 면밀히 공부한 뒤, 확실히 지금보다 더 나은 근무 방식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현재의 고정 생산 방식은 라인에 따라 작업량이 들쑥날쑥해 업무의 피로감은 더하고 생활이 불규칙해지는 것은 물론 수당에 있어서도 계획을 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해가 바뀌어 2004년.
서산 공장의 새 생산 시스템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고객의 수요에 맞춰 모든 공장 라인을 다해 유연성 있게 생산을 조절할 수 있다 보니, 차량 인도가 늦어지는 일 없이 효율성이 극에 달했다.
나아가 서산 공장 덕에 차량 판매량이 늘어 매출이 급증한 결과, 회사는 공장 전 직원에게 보너스 성과급까지 안겨 줬다.
물론 이러기까지 모두 정우현 덕분이었다.
에이치 자동차 임원 회의실 안.
“하하하하, 대단합니다, 대단해!”
사장을 포함한 회사 임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사장이 정우현을 두고 크게 말했다.
“아주 혁신적이에요, 생산성이 높아진 건 이루 말할 수도 없고요! 이게 다, 모두 정 이사 덕분이죠, 하하!”
“감사합니다.”
사장은 공석에서 정우현을 정 이사라고 칭했다.
“사장님.”
순간 옆에 있던 회사 전무가 입을 열었다.
“으음?”
“혼류 생산 시스템을 모든 공장에 도입해야 합니다.”
하고서 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고객의 니즈는 더 다양화되고, 그에 맞춰 차종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 이사가 이번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새 시스템을 얼른 확장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요, 그래!”
사장이 큰소리로 답했다.
“그럼 이참에 중국 및 브라질에 건설 예정인 현지 공장도 아예 처음부터 해당 시스템을 적용합시다!”
“좋은 방법입니다.”
“하하하, 그리고 정 이사!”
“예?”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있던 정우현이 사장의 부름에 답했다.
“이번 시스템 도입의 성공적인 결과로, 회사는 그대에게 특별 성과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아아.”
정우현은 성과급 등 추가 인센티브를 딱히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또 안 받는다느니 삭감해서 달라느니 그런 소리 말고.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으니까 기쁘게 받으면 돼. 일을 잘했으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건 당연하고.”
사장의 말에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현이 이번 일로 성과급을 많이 받아야, 추후에 자신들도 큰 액수의 성과급을 기대할 수 있기에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그럼.”
정우현이 임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정우현은 10억 원을 특별 성과급으로 받게 됐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우현은 에이치 자동차의 대주주.
가뜩이나 정우현의 합류로 상승 국면이었던 에이치 자동차 주가가, 이번에 그가 도입한 새 생산 시스템의 성공으로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이것으로 그의 주식 가치는 기존의 2조 원에서 50% 오른 3조 원에 달했다.
* * *
혼류 시스템은 정우현이 자동차 산업에 관해 학습할 때 공부한 내용이다.
정우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건 아니고, 미국의 대량 양산 시스템에 맞서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가 만들어 낸 생산 시스템이다.
그것을 정우현이 한국에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이사 취임 후 처음으로 혁혁한 성과를 내며 입지를 탄탄히 하게 됐다.
그러는 한편 주위 사람들의 은근한 의심을 모두 불식시켰다.
사업에 있어서 딱히 경력이 없고, 나이도 어린 그를 여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정우현이라는 이름 앞에 이사라는 직함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 * *
“으음….”
청담동 정우현의 집 그의 방 안.
공장에 새 설비와 근무 방식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며 기술 이사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지만, 본격적인 그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었다.
정우현의 방 안이 수년 전, 수학의 난제를 해결할 때처럼 각종 종이와 도서 등 자료, 그리고 수식들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이렇게 하면 돼? 우현아?”
그리고 방 안에는 정우현과 그의 친구 권유라가 있었다.
“응. 좋아.”
둘은 약 한 달 전부터 함께 도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엔진을 설계하는 것이다.
사실 정우현은 새 엔진 구상을 준비한 지 꽤 됐다. 자동차에 관한 학습과 함께, 작년 하반기부터 해서 줄곧 준비했으니까.
그러다가 최근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며 세세한 부분에 손이 조금 필요해 권유라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나름의 엔진 설계를 해 본 경험이 있어 적잖은 도움이 됐다.
“와, 대단해. 이런 건 처음 봐….”
거의 완성된 도면을 보며, 권유라가 황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우현아, 넌 진짜 천재야….”
그렇게 꿈을 꾸는 듯 멍하니 도면에 시선을 고정하다가는,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불렀다.
“근데 우현아.”
“응?”
“이걸 우리 회사가… 만들 수 있을까?”
엔진 제조 기술이 설계를 따라갈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하하, 해 봐야지. 안 되면 되게 하라! 뭐, 그런 말도 있잖아.”
“…음, 아빠 회사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엔진보다 최소 10년, 아니 20년? 하여튼 엄청 앞선 것 같은데.”
“하하, 그래?”
“응, 분명한 건 유럽산 엔진보다도 더 뛰어나.”
당연한 얘기였다. 그간 정우현이 개인 작업장에서 가장 우수하기로 소문난 세계 유수의 회사 자동차 엔진들을 수없이 해체하고 분석한 뒤 전력을 다해 연구한 끝에 탄생시킨 설계도니까.
즉 정우현은 기존에 있는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엔진을 독자적으로 설계해 냈다.
“…어떡해.”
권유라가 여전히 도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너무 멋져서… 나 현기증 날 것 같아.”
“뭐야, 하하!”
권유라는, 공학도였다.
어릴 때부터 과학 영재였던 그녀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기계라면 사족을 못 쓰게 됐다.
그런 그녀 앞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첨단의 자동차 엔진 설계도가 한 장 있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 만약 이 엔진 실제로 만들어서 지금 내 눈앞에 있으면.”
“하하, 응.”
정우현이 친구의 흥분 어린 말에 적극적으로 답했다.
자신이 설계한 엔진이니만큼, 직접 옆에서 찬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기절해 버릴지도 몰라. 진심으로.”
“하하하하!”
그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아!”
어머니 황희진이었다.
어머니가 정우현과 친구 권유라를 위해 간식을 준비해 온 것이다.
“이거 먹고 하렴!”
“네!”
하고 정우현이 곧장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어지러운 정우현의 방 안을 둘러보며, 쟁반을 비좁은 책상 한구석에 겨우 올리고 말을 했다.
“아이고,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하고 그녀가 자신의 아들과 친구를 다정한 눈빛으로 보고 말을 이었다.
“무리하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정우현이 씩씩하게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권유라가 자세를 다소곳하게 고쳐 앉더니 얌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전에 없이 부드러운 태도였다.
“어머, 우리 유라.”
어머니가 조금 놀라서는 권유라를 보고 말했다.
“오랜만에 자세히 보니 부쩍 예뻐졌네?”
아까 권유라가 정우현과 함께 집에 왔을 때, 어머니는 빌딩 관리 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권유라가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며시 웃고는 답했다.
“호호호, 아니에요.”
“으음….”
정우현이 그런 그녀를 보며 조금은 낯설어서 말을 잃었다.
최근 권유라가 사뭇 여성스러워지기는 했다. 근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 예전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아주머니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님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심지어 구태호의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아주머니라고 하는데 말이다.
“…응?”
갑자기 어머니가 허공에서 무슨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유라야, 너.”
“예?”
“향수 뿌렸니?”
“…아, 네.”
그러고서 권유라가 괜히 부끄러워했다.
“하하하하! 너 정말, 아가씨 다 됐구나!”
“…우현이가 오늘 같이 작업하자고 해서….”
하며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으음.”
정우현이 순간 헛기침을 하고는 어머니가 가져온 간식을 보며 말했다.
“얼른 먹고, 다시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