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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69)화 (69/200)

69화

정우현의 자동차 산업 학습은 계속됐다.

수개월이 지나 수많은 책과 인터넷 자료를 독파하는 가운데, 이론적으로는 이제 얼추 다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이었다.

즉, 현장에 가서 진짜 일다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이론 학습을 다 마치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다름 아닌 공장이었다.

바로 자동차 생산 공장이었다.

자동차가 직접 만들어지는 현장을 가면, 당장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로써 어느 날 작정하고 찾아간 충청도 서산의 에이치 자동차 생산 공장.

공장의 책임자인 공장장이 정우현이 오는 것을 보고 즉각 밖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물론 본사로부터 오늘 정우현 이사가 공장 현장을 직접 방문할 것이라고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서울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하하하!”

하고는 공장장이 조금은 과장해서 홀로 웃고는 불룩 나온 자신의 배를 만지작대며, 정우현을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려 했다.

“이것저것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일단 드시고 천천히 둘러보시면….”

“아니요.”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일하시는데, 괜히 오래 있으면 폐만 끼치는 거죠. 얼른 현장만 보고 갈게요.”

하고서 엄규환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아아.”

공장장이 즉각 정우현을 따라나섰다.

정우현이 처음 들어선 1공장은 차량 생산이 한창이었다.

근로자들의 표정도 좋아 보였고, 현장도 활기찼다.

이에 정우현이 옆에 있던 공장장에게 말했다.

“H3 생산 라인이군요.”

“예, 맞습니다. 하하하. 국민 준중형 승용차인 H3가 대량 생산되죠. 수요가 폭발적이진 않아도, 신차가 나올 때마다 쏠쏠하게 나가니 오래오래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효자 중 효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 초년생들은 이 H3를 탄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더군요, 하하하.”

정우현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는, 다른 라인 공장으로 향했다. 1공장은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2공장이었다.

시설 면에서는 1공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작업 환경은 명백히 달랐다.

일단 컨베이어 벨트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돌아갔으며, 각종 부품은 수납함은 물론 공장 바닥에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척이나 힘겨워 보이는 것이다.

정우현이 아직 조립되지 않아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차체를 보고 말했다.

“여긴 H5 생산 라인인가요?”

“예, 맞습니다. 이번 2003년 형이 대히트를 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만 무려 만 대, 만 대가 팔렸다는군요, 하하!”

그러고서 그는 자랑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24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라인을 돌려서 어떻게든 차량을 공급하고 있는데, 그래도 모자라요. 정말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이 차를 찾아서, 하하! 우리 매형도 이번에 이 모델로….”

하는데 정우현이 말을 잘랐다.

“근로자들은.”

“…예?”

“근로자들은 그럼 어떻게 근무하고 있죠?”

“…아, 2교대로 하고 있죠. 원래 주말은 번갈아 쉬는데,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특근으로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저렇게들.”

정우현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근로자들을 보고 말을 이었다.

“피곤해 있군요. 쉼 없이 일만 하니.”

“…아, 하하,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차가 많이 팔린다는 것이니, 음. 그리고 또 직원들한테는 일한 만큼 수당을 주면 되고요.”

“수당이야, 당연히 줘야 하지만 그만큼 작업 환경은 나빠질 겁니다.”

“…아… 예.”

그간 쉼 없이 얘기하던 공장장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는 내심 정우현을 조금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그의 놀라운 이력이나 천재성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이사라는 직함을 떡하니 달고 현장에 방문하니 솔직히 그렇게 생각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 들어선 이래 무엇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그는 영락없이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요즘 엄청난 히트를 치고 있는 H5를 생산하는 2공장에서 좋은 소리를 잔뜩 들을 수 있겠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정우현의 표정이 굳어지니 공장장으로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정우현이 2공장에서 나와 3공장으로 향했다.

이 공장이 서산 공장에서의 마지막 생산 라인이었다.

한데 정우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3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멈춰 있는 라인에 그저 놀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히 들어온 것이다.

근로자들은 그러다가, 공장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표정을 고치고는 부품 및 자재들을 애써 정리하는 척했다.

“여기선 무슨 차가 생산되나요?”

“아, H2입니다.”

“….”

“91년도부터 사랑받은, 우리나라 오프로드 형의 선구 차량이죠. 그런데 어쩐지 2000년대 들어와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더니, 이제는 좀처럼 찾지를 않네요, 하하.”

하고서 공장장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정우현이 잠자코 현장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있는 것은 물론, 어떤 부품에는 먼지까지 내려와 앉았다.

무려 국내 1위의 자동차 생산 공장에 먼지가 끼어 있던 것이다.

“그럼, 일단 여기서 공급이 부족한 2공장의 H5를 생산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아, 그건 안 되죠, 이사님.”

공장장이 곧장 답했다.

“여기 3공장은 오직 H2만 생산하도록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까요.”

“…으음.”

정우현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공장을 다 둘러봤다는 듯 뒤로 돌며 말을 이었다.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렇게 큰 공장을 혼자 관리하신다니.”

날카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정우현이 한껏 밝은 표정으로 말을 하자, 공장장이 조금 놀라고서는 곧장 화답했다.

“에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다 성실한 덕이죠. 또 멀리 서울에서 오신 이사님이 더 대단합니다.”

하고서는 그가 슬그머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학교에 다니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런데도 이렇게 오시다니. 아아, 우리 아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이사님이랑은….”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농담처럼 하며 함께 3공장 밖으로 나왔는데, 커다란 트럭이 여러 대 공장 정문 안으로 들어왔다.

“…뭐지, 저게?”

이 모습에 공장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보는 차량들인데?”

“아, 하하.”

정우현이 트럭을 보고 말을 이었다.

“선물 세트입니다.”

“…예?”

“과일 박스예요. 제가 이곳 서산 공장 분들께 드리려고 준비해 왔어요.”

“…아니!”

공장장이 깜짝 놀라서는 말했다.

“…4천 명입니다, 이사님. 직원들이 무려 4천 명이라고요. 근데 선물 세트를…?”

“하하, 얼마 안 하는 거예요.”

하면서 그가 엄규환과 함께 자신이 타고 온 차량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

“직원들에게 나눠 주세요!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일 학교에 가 봐야 해서요!”

“….”

어안이 벙벙해서는 공장장이 정우현을 보고 뒤늦게 말했다.

“잠깐 다과라도… 아니, 더 있다가 밖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 좀 하고 가시죠, 이사님! 멀리서 오셨는데.”

“아닙니다!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하고서는 정우현의 차량이 움직이다가 잠시 멈췄다.

정우현이 뒷좌석 차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는 공장장을 향해 한마디 외쳤다.

“2공장! 특히 2공장 근로자분들을 잘 챙겨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서 공장장이 공장을 빠져나가는 정우현의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과일 세트를 잔뜩 실은 트럭들에 시선을 돌렸다.

* * *

3만 원짜리 세트였다. 3만 원이라고는 하지만 직원이 4천 명에 달했기에, 약 1억 2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준비한 선물이었다.

그것도, 정우현의 사비로.

회사는 처음 정우현이 서산 공장을 방문한다기에, 유류비와 식대 그리고 출장비 등의 명목으로 100만 원을 그의 손에 쥐여줬다.

물론 정우현은 불만이 없었다. 잠깐 공장을 둘러보고 온다는데, 100만 원이라는 돈을 받는 것은 어쨌든 적지 않은 소득이었으니까.

근데 문제는 그가 공장에 간 겸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비를 쓰기로 했다. 선물값 1억 2천만 원.

마음 같아선 고생하는 근로자들에게 30만 원이 넘는 고급 한우 선물 세트를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10억 원에 가까운 사비를 써야 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우현이라 해도 10억 원은 작은돈이 아니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사비를 많이 쓸수록 회사에 부담을 주는 일이 될 것이 뻔했기에 3만 원짜리 과일 세트를 공장 직원들에게 격려차 선물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회사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우현아!”

며칠 후 사장이 정우현의 사무실에 찾아와 말했다.

“예?”

“서산 공장에서 사비로 과일 박스 돌렸다며?”

“아, 예.”

“왜 그랬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니요, 제가 주고 싶어서 준 건데요, 뭐.”

“네가 주고 싶어서 준 건 맞지만, 우리 회사의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준 게 중요하다는 거다!”

사장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는 말을 이었다.

“연봉 5천짜리 이사가, 사비를 들여 1억 2천짜리 선물을 뿌리고 오다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

“하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

태평한 정우현과 달리 한껏 굳은 표정으로 잠자코 고심하던 사장이 입을 열었다.

“환급해 줄게.”

“…예?”

“1억 2천. 환급해 준다고. 물론 선물은 그대로 네가 사비를 사용해서 준 것으로 하고.”

“에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장님!”

한사코 거절하는 정우현의 모습에 사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너는 괜찮지만, 내 마음은 무겁단 말이다.”

“하하하, 이래저래 좋은 경험하고 있는데요, 뭐.”

그러자 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우현을 불렀다.

“우현아.”

“네?”

“고맙다.”

“….”

“내가 나서서 챙겨야 할 일을, 네가 해 주니 참 고맙구나.”

그러고서는 정우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을 하고 싶을 때는 나와 좀 상의도 하고 그러자꾸나.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고서 흐뭇한 미소로 정우현을 바라보는 사장이다.

“어때, 공장에 다녀오니까? 뭐 좀, 건질 게 있었어?”

“아, 네, 사장님. 그러잖아도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게 있었는데요! 이렇게 오신 김에 간략하게 먼저 얘기해 볼게요.”

“…응?”

정우현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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