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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67)화 (67/200)

67화

비상무이사(非常務理事). 한자 그대로 항상 업무에 종사하지는 않는 이사.

일반 사내이사와 다른 점은 역시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사외 이사와 다른 점은 회사 정관에서 정하지 않는 한 임명에 딱히 자격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사외 이사는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전문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회사를 투명하게 감독하는 역할을 주로 하기에 법률상 자격 제한이 있다.

결국, 현재 대주주이자 학생인 정우현에게는 비상무이사가 제격인 셈이다.

“…으음.”

하지만 정우현은 무언가를 더 찬찬히 생각하는 듯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장님. 제가 응한다고 해도, 이사는 상법상 주주 총회의 의결에 의해 선임되잖아요.”

“그렇지.”

“그렇다면 저나 사장님의 뜻과 관계없이 임명이 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더군다나 이번 총회에 한해 저는 애초 의결권이 없잖아요. 저의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의 결의이니만큼 역시 법을 따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에 해당하니까요.”

정우현의 말에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 슬며시 미소 짓더니, 급기야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하하! 우현아, 네 말이 맞다. 당연히 네가 이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너의 의결 수를 제외하고 과반수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고 그가 정우현을 보고 넌지시 되물었다.

“우리 회사 2대 주주가 누구더라?”

“…아.”

“하하하하! 바로 나지. 2대 주주이자 대표 이사인 내가 약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에이 치금속 등 내가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계열사 법인 지분에 나랑 가까운 임원 등 주요 주주들의 의결권까지 합치면 이미 30%는 확보하고 시작한다.”

“맞아!”

그러자 잠자코 있던 권유라가 밝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리고 일반 주주들도 정우현 네가 이사로 선임된다면 다들 찬성할 거야! 네가 얼마나 인기 짱인데!”

“그럼, 그럼.”

권유라의 어머니까지 정우현에게 힘을 실어 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우현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아무리 비상무이사라지만, 이제까지 이렇다 할 소속 없이 자유롭게 지낸 것과 달리, 특정 회사 소속원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

즉 그가 이사로 취임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일반 주주들로서는 좀 뜬금없을 수도 있어요. 비록 제가 유명인이고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일 수는 있어도, 갑자기 이사로 임명된다고 하면 충분히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죠.”

하고서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친구인 권유라를 보고 말을 이었다.

“순전히 사장님의 딸인 유라와 친해서, 그리고 어쨌든 지난 여행에서 유라에게 또 큰 도움을 줬기에, 마냥 선심성으로 한자리를 꿰차는 등 낙하산 이사로 임명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죠. 심지어 저는 에이치 자동차에 딱히 공헌한 것도 없고요.”

“아니다.”

정우현의 말에 권유라의 아버지가 생각도 않고 바로 아니라고 답했다.

“예?”

“아니라고 했다.”

“…뭐가요?”

“네가 왜 우리 회사에 공헌한 게 없니.”

“….”

정우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잠자코 있었다.

“재작년에, 우현이 네가 말이다.”

“예.”

“특허를 하나 냈지.”

“아….”

정우현이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연속 가변 밸브의 제어와 적용.”

하고 사장이 고개를 돌려 씨익 웃으며 권유라를 바라봤다.

“너랑, 우리 딸 권유라가 공동으로 출원한 특허지.”

“맞아!”

권유라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작년부터 해서, 우리는 그 공법을 적용한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우리 연구원들이 실제 모델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하기는 했지만, 애초 너희들의 특허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존재치 않을 엔진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성과도 있었지. 올해부터 양산할 수 있게 됐거든.”

“오오오!”

정우현 또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도 평이 아주 좋아요. 해외에만 나가면 이류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던 우리 회사가, 이번 엔진만큼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간 결과나 평이 어떠할지 몰라 아직 언론에 발표하지 않은 내용인데, 뭐, 좋게 나왔으니 이제 밝혀도 상관없을 것 같구나.”

“…아아, 잘됐네요!”

정우현이 기뻐하며 답했다.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떠올린 아이디어가, 세상에 선보이며 기술을 진보시키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실로 처음 겪는 경험이기에 무척이나 기뻤다.

“그래, 그래. 사실 내가 애초 너를 사외 이사로 생각했던 것도, 너의 이름으로 된 특허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본격 양산에 앞서 로열티에 관해서 얘기도 나누려 했고. 한데, 뭐, 회장님이 내 선물 따위는 비교도 안 될 훨씬 큰 걸 준비해서, 하하. 얘기가 이렇게 됐구나.”

그러고서 사장은 와인을 한 모금 또 마시고 말을 이었다.

“즉 너는 벌써부터, 우리 회사에 작지 않은 공헌을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 걱정되니? 음?”

“우현아, 걱정하지 말렴.”

이때 권유라의 어머니도 한마디 하고 나섰다.

“솔직히 나는, 유라 아빠처럼 이것저것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밝지는 못해.”

그러고서 고개를 돌려 그녀는 자신의 딸 권유라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내 딸 유라처럼 어려운 수학 문제 같은 걸 풀 줄도 모르고. 그런데 아줌마가 남보다 뛰어난 게 하나 있거든?”

하고 그녀가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바로 감. 감이 좋아, 내가. 일단 가장 먼저 1990년에 유라 아빠를 남편으로 골랐다는 것에서 입증이 되고.”

“하하하, 여보!”

권유라의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또 97년도에 한 아이가 크게 되리란 걸 내가 일찌감치 알아봤거든?”

그러면서 그녀는 팔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있는 정우현의 손을 잡았다.

“그게 바로 너란다, 우현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라가 널 우리 집에 데려왔지. 그때 내 감이 맞았음을 한 번 더 확신했고. 근데 아줌마가 지금 또 느낌이 오네? 우현이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하하하하하!”

사장은 아내의 재치 있는 말에 크게 웃고선 강하게 동의했다.

“그래, 그래!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암!”

“….”

정우현이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슬며시 돌려 권유라를 바라봤다.

권유라는 말만 안 할 뿐, 친구 정우현이 얼른 아빠의 제안을 승낙하기를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져서는, 흥분한 기색인 것이다.

“좋아요.”

결국, 정우현이 입을 열었다.

“뭐, 해 보죠. 자동차 회사 직원.”

“아싸아아아아아!”

마침내 권유라가 크게 소리쳤다.

“역시 정우현!”

“하하하하.”

권유라의 아버지도 웃었다.

그러다가는 농담처럼 한마디 했다.

“근데 우현아. 단순 직원이 아니라, 임원이다, 임원.”

“…하하하, 알겠습니다!”

“하여간 잘됐다. 이제 나도 좀, 유라의 아빠로서 네 앞에서 체면이 서는구나.”

하고서 그가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는 전자 기기가 발달한 21세기 초에도 여태 수기로 메모를 하곤 했다.

“그러면 얼른 총회를 소집해야지. 2주 전까지 미리 통지해야 하니까….”

하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응?”

“아직 식사 안 끝났어. 귀한 손님이 앞에 있다고.”

“아아, 그렇지, 그래. 하하.”

“일은 좀 나중에 해요.”

그러고서 정우현과 권유라네 가족은 다시 일상적인 얘기로 돌아가 만찬을 즐겼다.

* * *

그렇게 약 한 달 후, 서초구 에이치 자동차 본사.

드디어 주주 총회가 열렸다.

주 안건은 역시 정우현의 신임 비상무이사 임명 건이었고, 그 외 회사 일과 관련한 작은 안건들이 몇 개 더 있기는 했다.

단상 앞에는 대표 이사인 권유라의 아버지가 섰고, 그 뒤에는 정우현이 앉아 있었다.

사실 주주들은 신임 이사 임명 건으로 총회 소집 통지를 받았을 때, 정우현이라는 이름 석 자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아는 아역 배우 출신의 정우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것이다.

한데 곧 회사에서, 새 이사 후보인 정우현에 관해 간략히 약력을 소개했고, 주주들은 곧장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진짜네.”

“대단하군.”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정우현이라고는 해도, 회사 이사로 있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아?”

“비상무이사래. 기술 부문. 그럼 상관없을 것 같은데.”

“상관없다뇨? 이건 대박입니다! 만약에 부결됐다가, 우현 군을 다른 회사에 뺏기면 어떡합니까? 그가 더 성장하기 전에 영입한 겁니다. 회사에서 머리를 엄청 쓴 거죠! 그러니까 무조건 찬성해요, 찬성!”

이런 식으로 주주들은 정우현에 관해 얘기하며 웅성대고 있었다.

“아아.”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총회 안건과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통지문으로 미리 알려 드렸으니 그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간단히 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미래가 촉망되는 한 사람을, 이번에 우리 회사에 모셔 올 수 있게 되어 참 기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러고서 그는 주주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만약 정우현 군을 이사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우리 회사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겁니다. 현명하신 주주 여러분들이, 그처럼 바보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우리 회사의 대표 이사이자 2대 주주입니다. 그런 제가 정우현 군을 신임 이사에 임명하기 위해 찬성표를 던질 것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거기에 제가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계열사 법인 및 임원 등 주요 주주도 모두 찬성할 것임을 또한 밝힙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그러자 한 여성 주주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에 사장이 곧장 말했다.

“예, 말씀해 보세요.”

“저 또한 정우현 군을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입니다. 다만, 여기는 어디까지나 에이치 자동차의 주주로서 모인 자리이지, 정우현 군의 팬클럽 미팅 장소가 아닙니다.”

“음,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주로서 묻습니다. 정우현 군이 우리 회사의 이사가 된다면, 회사가 장기적으로 득을 볼까요? 동시에 주주로서, 주식 가치의 증대를 꾀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하!”

여성의 당돌한 물음에 권유라의 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잘 물어보셨습니다, 잘 물어보셨어요! 가장 중요한 물음을 하셨군요, 그럼 한번! 답변해 보겠습니다. 저야말로 이에 관해 가장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자, 주주 여러분. 여기, 제 뒤에 있는 정우현 군을 한번 봐주십시오.”

하고서 그가 주주들이 정우현을 더 잘 볼 수 있게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바로 서서 말을 이었다.

“어때요? 생각했던 대로 아직은 좀 어려 보이죠? 근데 어떻게 우현 군이 저기에 앉아, 국내 최고의 자동차 회사인 우리 에이치 자동차의 신임 이사 후보가 됐을까요?”

“….”

사람들이 조용했다.

이에 사장이 곧장 말했다.

“여러분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천재, 예, 정우현 이사 후보가 천재라서 그렇죠. 즉 저는 천재를 일찌감치 우리 회사로 모신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발전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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