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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66)화 (66/200)

66화

회장실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급기야 다섯 명만 있게 됐다.

바로 정우현과 엄규환 그리고 권유라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권 씨 삼대였다.

“우현아!”

사람들이 나가자, 그간 애써 얌전한 척 잠자코 있던 권유라가 본색을 드러냈다.

“정우현!”

오랫동안 참았다는 듯 할아버지 품에서 폴짝 하고 뛰어 내리더니 정우현에게 무진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다.

“하하하.”

정우현은 그 모습이 재밌어서 웃었다.

“완전 지루했지? 고모는 또 완전 별로고?”

“아니야, 재밌었어. 배울 점도 많고.”

“그으래?”

하고 권유라가 입술을 샐쭉대다가는 생긋 웃어 보였다.

“다행이다!”

정우현은 일어서 발걸음을 옮겨 에이치 자동차 사장 즉 권유라의 아버지 앞으로 갔다.

그러고선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정우현입니다.”

“하하하하하, 그래!”

권유라의 아버지가 경영진들이 다 모여 있을 때보다 훨씬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갑다! 아까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따로 반겨 줄 수가 없었구나.”

“우현이는!”

권유라가 아빠 앞으로 쪼르르 와 힘차게 말했다.

“내 친구야!”

“하하하, 그래.”

권유라의 아버지가 그런 딸을 보고 웃으며 답했다.

“내 친구라구!”

“아이고, 그래, 그래, 알았다!”

이제는 못 말리겠다는 듯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는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다.

“유라야.”

순간 그들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권유라의 할아버지였다. 에이치그룹 회장이 손녀를 부르는 것이다.

“예, 할아버지?”

권유라가 얼른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비한테도 소개시켜 주렴.”

하고서는 그가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우리 손녀딸 남자 친구.”

“….”

그냥 친구가 아니고, 남자 친구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권유라가 조금 당황하더니 크게 외쳤다.

“할아버지!”

그러고서는 정우현을 괜히 한 번 슬쩍 봤다가 부끄러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남자 친구 아니에요!”

“하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에 권유라의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도 즐거워하며 크게 웃었다.

정우현이 권유라의 소개로 에이치 자동차 회장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얘기를 더 나눴다.

그러고서 회장은 작별을 하는 정우현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현아, 고맙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한다. 우리 유라가 씩씩한 것을 넘어 말괄량이지만, 속은 여린 아이다.”

“…할아버지!”

권유라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할아버지를 봤다.

“하하하, 덤벙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흥!”

하고서 아예 고개를 돌리는 권유라다.

이러나저러나 회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친구라니, 내심 마음이 놓이는구나. 친구들 사이에서 부족함은, 오히려 서로를 가깝게 할 수 있지. 그만큼 또 서로를 채워 줄 수 있거든. 네가 유라를 지켜 내고, 내가 유라를 대신해 너에게 작지 않은 선물을 준 것처럼 말이야. 하여간 지금처럼, 우리 유라와 잘 지내 다오. 그게 이 아이의 할아버지로서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 * *

“하하하,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나조차도 예상 못 했는데.”

에이치 그룹 본사 엘리베이터 안.

권유라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내려봤다.

“우현아, 우리는 다음에 좀 더 얘기하자. 내가 아까 회장실에서 말했다시피 급히 가 봐야 할 곳이 있거든.”

“알겠습니다.”

“여기 온 김에 유라랑 같이 회사 좀 더 둘러보다 가도 되고. 하여간 내가 조만간 연락하마. 비록 유라의 할아버지가 네게 보답을 했지만, 정작 유라의 아빠인 나는 너에게 해 준 게 없잖니. 아니, 오히려 내가 부탁을 해야 하나. 하하. 하여간, 오늘 잘 놀다가렴.”

하고서 그가 딸인 권유라와도 몇 마디를 하고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걸어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권유라가 한껏 웃는 얼굴로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고는,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크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그러고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제 지루한 어른들이랑은 다 빠이빠이다! 하하하, 우현아!”

“…응?”

“우리, 신나게 놀자! 모처럼 밖에 나왔으니까!”

“하하하, 그래.”

정우현은, 평소 큰 고민 없이 항상 에너지 넘치는 권유라가 친근하니 편했다.

* * *

이것으로 정우현은 에이치 자동차 내 그룹 회장인 권유라의 할아버지 주식 전량을 증여 받았다. 그것도 무상으로.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바로 증여일 이후 정확히 2년간 주식을 단 한 주도 처분하지 않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주식이 대량으로 매도되면 회사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며, 회장이 이와 같은 조건을 달았다.

물론 정우현에게는 그다지 대수로울 것도 없는 조건이었다. 이미 자신 명의의 빌딩 및 빌딩 임대료와 국내 에스 전자 주식, 그리고 미국 피치사 주식 등으로 자산은 물론 당장 생활에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었으니까. 즉 주식을 당장 처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증여받은 주식의 현금 가치를 따지면 대략 2조 원이 됐는데, 액수가 큰 만큼 이에 대한 세금 즉 증여세 또한 과세 표준에 따라 세율이 최대치인 50%에 달했다.

한데 회장은 이 세금 또한 바로 납부했다. 즉 2조 원 가치의 주식을 정우현에게 증여하고, 세금으로 또 약 1조 원을 납부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 특히 회사 경영진은 회장이 나이가 들어 이제 미쳐 버린 것 같다는 등 질투를 넘어 분개했지만, 회장은 전혀 미치지 않았다.

하나뿐인 손주 권유라의 목숨값으로 정우현을 위해 3조 원을 썼을 뿐.

이로 인해 약 10조 원에 가까웠던 회장의 자산이 3분의 1가량 줄기는 했지만, 그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생전 가장 잘 쓴 돈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권유라를 끔찍이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회장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내심 다른 생각도 했다.

단순히 뛰어나다는 표현을 넘어 거의 독보적인 인재로 발돋움한 정우현을, 이번 주식 증여로 일찌감치 에이치 그룹의 인재로 발탁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그래서 2년 간 주식을 처분할 수 없다는 증여 조건을 단 것이기도 하다.

정우현을 무조건 2년은 에이치 자동차의 최대 주주로 남게 해, 어떻게든 경영에 관여시키는 한편 회사를 애착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즉 하나뿐인 손녀를 지켜 낸 고마움과 앞으로도 그녀를 잘 봐달라는 부탁 그리고 정우현이 장차 회사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결단한 행위가, 바로 이번 주식 증여였다.

* * *

그리고 며칠 후 한 호텔 양식점.

정우현이 권유라네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 약속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현에게 연락해 식사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하하, 축하한다, 축하해!”

권유라의 아버지가 스테이크를 자르며 정우현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 축하할 게 아닌가. 당연히 받을 걸 받은 것뿐이니.”

하고 그가 작게 자른 스테이크를 포크로 집어 입 안에 넣고는 고기 맛을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우현아. 너는 이제 우리 회사 즉 에이치 자동차의 최대 주주다.”

역시 사장에게도, 이 점이 중요했다. 물론 단순히 대한민국 사상 유례가 없는 주식 증여, 약 2조 원 가치의 주식을 친인척도 아닌 타인에게 증여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세간의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데 정우현이 어린 나이에 국내 1위 그리고 세계 20위 권의 자동차 회사인 에이치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됐다는 게 놀랍다면 더 놀라운 일일 수 있었다.

“대단하구나, 하하.”

사실 권유라의 아버지는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된 정우현을 대하기가 껄끄러울 수 있었다.

엄연히 소유와 경영은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유로움을 넘어 오히려 기쁘게 정우현이 최대 주주가 된 것을 반기는 이유는 단순히 에이치 자동차를 넘어, 장차 자신의 그룹 후계자 확정에 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그간 에이치 자동차 최대 주주였던 그룹 회장인 아버지가 또 어떤 심경의 변화로 그의 지분을 어느 날 에이치 호텔 사장인 자신의 여동생에게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으로써 에이치 자동차 2대 주주이자 사장인 자신의 그룹 내 입지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한데 아버지 회장이 그의 지분을 그룹 후계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정우현에게 줌으로써 그와 같은 일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또한 굳이 이런 셈법을 하지 않더라도, 역시 권유라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딸을 지켜 낸 정우현에게 보답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회장이 정우현에게 주식을 증여한 것에 관해, 놀라움은 잠시 회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마음이 되었다. 진심으로 기쁘고 고마운 것이다.

옆에 있던 그의 아내 즉 권유라의 어머니가 정우현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현아. 네가 대성할 줄, 아줌마는 알고 있었어. 한데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우리 회사와 함께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네. 하하하.”

그녀는 평소 집에 있을 때와는 달리 한껏 치장해, 그야말로 재벌 가문의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하지, 우현이는 최고라구!”

정우현 옆에 앉은 권유라가 신나는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그나저나 우현아.”

권유라의 아버지가 표정을 조금 고치고 입을 열었다.

“예.”

“그건 그거고, 내가 또 다른 얘기를 할 게 있다.”

“…뭐요?”

“우현이 네가 가능하다면.”

“예.”

“우리 회사의 이사가 되어 줄 수 있겠니?”

“….”

정우현은 물론 권유라, 그리고 그의 어머니조차 생각지도 못한 말에 테이블 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하, 원래 기술 부문으로 이사 한 분이 계셨는데, 최근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자리를 내려놓으셨거든. 그래서 공석이 됐단 말이지. 또 네가 워낙 일찌감치 뛰어난 업적을 보이기도 해서 이렇게 너한테 자리를 제안, 아, 아니, 부탁하는 거지.”

“으음.”

놀라움도 잠시, 정우현이 빠르게 생각해 보고는 되물었다.

“근데 저는 아직 미성년자인데요?”

“하하하, 상관없다. 회사 정관에 금지 규정만 없으면 돼. 물론 우리 회사 정관에 미성년은 이사가 될 수 없다는 규정 같은 건 없다. 실상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뛰어난 사람이라면, 회사가 항상 아쉬울 따름이지.”

그러면서 그가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마. 난 원래 너에게 사외 이사 자리를 제안하려고 했다. 한데 놀랍게도 회장님이 너에게 우리 회사 내 자신의 지분을 모두 증여하셨지. 즉 너는 우리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됐어. 근데 최대 주주는 상법상 사외 이사가 될 수 없거든.”

“예, 맞아요.”

정우현도 과거 상법을 학습했기에 해당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성년인 자신이 이사가 될 수 있냐고 물었던 이유는, 회사 정관의 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기업의 정관까지는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했는데, 마침 이사 한 분이 사임하게 된 거야.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하게 된 거다.”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정우현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좀 더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이런저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정우현이라 한들, 아직 어린 나이였다. 즉 그는 좀 더 학교를 다니며, 여유로운 학창 시절을 즐기고 싶었다.

“으음,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또 생각한 게 있지.”

하고서는 사장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상무이사로 있으면 돼. 학교도 다니고, 자유롭게 네 생활을 하면서 이사 활동을 하는 거다. 어떻냐? 이게 바로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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