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대체…!”
종로 에이치 그룹 본사 회장실 회의장.
에이치 자동차 내 자신의 모든 주식을 정우현에게 주겠다는 회장의 말에 그룹 경영진들이 강하게 들고일어섰다.
“흐음….”
회장은 예상했다는 듯 오히려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경영진들을 둘러봤다.
“회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농담이시죠?”
경영진 중 한 중년 여성이 애써 침착해 보이려는 듯 다소 경직된 표정에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되물었다.
“네? 그렇죠?”
그녀는 답변을 기다린다는 듯 재차 물었다.
“아니.”
그러자 회장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고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이런 자리에서 허튼소리를 왜 하겠나?”
“아아….”
회장의 말에 중년 여성이 탄식을 내뱉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권 사장? 내가 무슨 호텔 지분을 준다고 했어? 자동차 지분 준다는 거잖아. 그대랑 상관없는.”
“….”
중년 여성은 에이치 호텔의 사장으로, 권유라의 고모였다. 즉 권유라의 아버지인 에이치 자동차 사장의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회장님.”
이윽고 다른 사장이 입을 열었다.
“에이치 그룹은, 선대 회장님부터 해서 엄연히 우리가 직접 피땀 흘려 일군 거대한 기업입니다.”
해당 사장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등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더 많았다. 심지어 회장이랑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그런데 우리 그룹의 일부를, 이렇게나 쉽게, 그것도 한순간에 이 작은 아이에게 준다고 하시니… 저로서는 참 앞날이 걱정됩니다.”
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정우현을 흘긋 보는 흰 머리의 사장이다.
“음, 음.”
하지만 회장이 아랑곳 않고 그를 바라보며 답변했다.
“장 사장. 그대의 노고는 알지만 말이야.”
흰 머리의 사장은 창업주, 즉 현재 회장의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시던 사람이었다.
“이번 일로 어째서 우리 그룹의 미래가 걱정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군.”
하고서 불만에 찬 경영진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어디 그대들이 이끌고 있는 회사의 지분을 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 그룹의 여러 계열사 중 하나에 불과한 자동차 지분을 좀 준다는 것뿐인데, 이게 그렇게도 큰일인가?”
“큰일이죠!”
다시, 에이치 호텔의 여 사장이 말했다.
“에이치 자동차가 우리 그룹 중 가장 큰 회사잖아요! 근데 거기서 회장님 지분을 다 준다니… 말이 좋아 20%지, 자동차의 20%면 작은 계열사의 시총을 웃돌 겁니다!”
“어허, 권 사장.”
회장이 자신의 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어쨌든 내 주식이고, 더군다나 그대와는 상관없는 자동차 회사의 지분인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
여사장이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있었다.
회장이 그런 그녀를 잠시 보다가는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내 마음대로 주겠다는 건 아니네.”
“…아아!”
의외의 말에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으며 다소 안도했다.
“원칙적으로 내 주식이기에,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건 변함 없지. 다만, 그래도 해당 회사를 이끄는 사람의 의견은 들어 보겠다는 거다.”
하고 회장은 이제까지와 달리 조금은 미소를 띤 채 자신의 아들, 에이치 자동차 사장을 바라봤다.
“어때, 권 사장. 권 사장이 반대하면, 나도 한번 다시 생각해 보겠네. 그대가 회사 사장이자 대표 이사인 만큼, 그대의 뜻을 존중할 터이니.”
“오오, 사장님!”
그러자 다른 경영인들이 즉각 권유라의 아버지를 보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연히 반대하셔야죠! 이게 말이 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그중 오직 에이치 호텔 여 사장만 여전히 입술을 깨물며 긴장한 표정으로 말 없이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하지만 권유라의 아버지는 회장 못지않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야 당연히….”
하고서 그가 사람들을 둘러보고 보란 듯이 말했다.
“찬성이죠. 반론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러고선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유라를 지켜 낸 사람이 바로 이 아이입니다. 마음 같아선 제 지분까지 모두 주고 싶군요. 하지만 그럼 실직자가 될 것 같으니….”
“하하하하!”
아들의 농담에 오직 회장만 껄껄대고 웃었다.
“그럴 수는 없고, 회장님의 뜻을 그저 따를 뿐입니다.”
“아아아아아!”
회장 이상으로 단호한 에이치 자동차 사장의 말에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됐구먼.”
회장이 말했다.
“대표 이사이자, 회사 내 2대 주주인 권 사장이 찬성하니 모두 그런지 알게. 이번 주 안으로, 내 주식을 정우현 군에게 증여하겠네. 자, 그럼 이만 해산하지.”
“…아빠!”
순간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고 일어났다.
에이치 호텔 사장이었다. 여 사장이 참다못해 직함도 아니고 아버지를 직접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는 게 진짜 어딨어요! 생판 처음 보는, 한낱 코흘리개 애한테 뭐요? 지분의 전부를 준다고요? 하! 그게 얼마나 큰 액수인지 알고 그러시는 거예요? 에이치 자동차가 지금 시총이 자그마치 대략 10조. 10조 원이라고요! 근데 거기의 20%면….”
하고 그녀가 마지막엔 정우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2조 원을 저 애한테 그냥 주겠다는 거잖아요!”
이에 회장실 문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엄규환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우현의 표정은 일절 변화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태평한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심지어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엄규환에게 괜찮다며 눈짓으로 안심시켰다.
이에 엄규환이 잠시 굳은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원래 있던 좌석으로 가 앉았다.
“…으음.”
회장이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그러고서는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곧장 소리쳤다.
“아니에요!”
권유라였다. 회장 품에 안겨 있던 권유라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연 것이다.
“내 친구 우현이는 그냥 코흘리개 애 아니에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 고모, 작년에 제가 자동차 엔진으로 특허 등록한 거 들으셨어요? 그거 다 우현이 아이디어라고요! 그리고 또! 우현이가 수학의 난제. 그러니까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한 건 아세요? 네?”
“….”
어린 조카의 말에 여사장이 권유라보다는 회장의 눈치를 조금 보다가 짧게 답했다.
“…알지.”
“예! 물론 아시겠죠! 하지만 이해는 못 하셨을 거예요! 아니, 여기 있는 누구도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없겠죠!”
하고는 권유라가 자신의 친구 정우현을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직 우현이만 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했으니까요! 근데도 코흘리개 애라뇨! 고모는 우현이 나이일 때 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궁금하네요!”
“아니, 이 쪼그만 게!”
권유라의 앙칼진 말에 여 사장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질렀다.
“어허.”
그때 회장이 여사장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아빠, 이 어린 게 저한테 아주 막말을 하네요!”
권유라의 아버지는 잠자코 앉아, 그런 여동생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회장을 보아하니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네가 먼저!”
회장이 딸을 꾸짖기 시작했다.
“점잖지 못하게 일어서서 소리치지 않았느냐!”
“…아빠!”
“뭐 하는 거냐, 지금? 다른 사람들 다 지켜보고 있는데!”
회장의 말대로 그룹 계열사를 이끄는 각 사장들과 경영진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여사장을 보고 있었다.
회장이 에이치 자동차 내 자신의 지분을 정우현에게 몽땅 증여한다는 건, 몹시도 배가 아픈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경영진들이 다 모인 가운데 채신머리없이 회장을 아빠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말을 지껄이는 에이치 호텔 사장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너는 참,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나. 어릴 때부터 오빠를 질투하고, 오빠 거는 뭐든지 샘을 내고 똑같이 가져야 직성이 풀렸지.”
“….”
여 사장이 부끄러움에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내가 뭐라고 가르쳤느냐! 뭐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고 했지? 그런데 어떻게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래? 응? 유라랑 너를 보고 있으면,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
여사장이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하지만 회장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물어보자. 너, 일은 잘하고 있어? 내가 듣기에 요즘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회사, 호텔 사업을 묻는 것이다. 에이치 호텔은 최근 서비스 및 시설 품질 저하로 대중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업계 내 점유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에이치 그룹이야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이지만, 이 호텔 부문에서만큼은 5위도 간당간당했다.
“….”
사업에 관해 말하자 여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당장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일이나 잘하고, 남 일에 신경 써라. 내가 너였으면 부끄러워서라도 그렇게 소리치지 못한다.”
회장의 말에 여 사장이 다시 입술을 깨물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앉았다.
그 모습을 살며시 미소 지으며 보고 있던 권유라의 아버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음?”
“권 사장도, 사정이 있겠죠. 호텔이야 지금은 비수기이기도 하고, 슬슬 날씨 풀리고 하면 보란 듯이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지, 권 사장?”
“….”
오빠의 말에 여 사장은 오히려 눈에 독기를 품고 그를 바라보다가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하하하, 회장님.”
이러나저러나 권유라의 아버지는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마무리하시죠. 다들 바쁜 일정 중에 여기에 왔으니 말입니다. 저도, 당장 케이 자동차 사장을 만나 봐야 하고요.”
“…그래, 그래.”
하고서 회장이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을 했다.
“하여간 내 뜻대로 하겠네. 여전히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지.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요즘 그런 생각을 해. 돈 그리고 일. 참 좋지, 좋아. 근데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꾸 하게 되거든.”
하고 그는 자신의 품에 있는 손녀 권유라를 다시 한번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데 보니 제일 소중한 건, 돈도 일도 아니고 그런 거더군.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즉 내 건강이 또 그렇고. 그런 생각에 이르니, 우리 유라를 지켜 낸 저 정우현 군에게 그렇게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그러면서 그는 이제 정우현을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짓고 말을 이었다.
“내가 가진 수많은 것 중 그 일부를, 우리 우현 군에게 준다는 것뿐이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묻고 싶을 거야. 아깝지 않냐고. 하지만 전혀. 전혀 그렇지 않아. 오히려 이 같은 선물을 줄 수 있는, 내 삶에 감사하게 될 뿐이지. 그래도 열심히 살아온 게, 헛되지 않았구나. 고마운 사람에게 보답을, 그것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걸세.”
하고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경영진들이 모두 따라 일어났다. 다만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에이치 호텔 여 사장이었다.
사람들이 잠자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것도 한참이나.
그러자 여사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이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보다가는, 이내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고서 말했다.
“그러니 이번 모임은, 이것으로 종료하겠네. 다들 시간 없을 텐데, 오래 잡아 둬서 미안하구먼. 그럼 또, 조만간 좋은 모습으로 보세!”
라는 말을 끝으로 에이치 그룹 경영진 모임이 끝이 났다.
이와 함께 할아버지의 품에 있었던 권유라가 맞은 편의 정우현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