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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64)화 (64/200)

64화

“당연하지!”

권유라의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모스크바에서의 일 이후 놀러 간 권유라네 집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정우현을 꼭 끌어안으며 고맙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만간 큰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한데 이렇게 권유라가 할아버지의 초대라며 아예 에이치 그룹 대주주 겸 경영진 모임에 오라고 한 것이다.

그간 정우현은 구태호네 아버지를 포함해 한국 영재 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및 심지어 선생들로부터 보답의 의미로 크고 작은 선물을 받았다.

처음엔 몇 번 거절했지만, 이내 때로는 선물을 거절하는 게 선물을 준비한 이에게 오히려 결례일 수 있음을 깨닫고는 모두 감사히 받았다.

그래서 권유라의 말을 곧장 따른 것이다.

“좋아, 잘됐다!”

하고서 그녀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알려 줬다.

장소는 무려 종로에 있는 에이치 그룹 본사였다.

“우현아, 나 그날 거기 먼저 가 있어야 하거든?”

“응.”

“그러니까 네가 시간 맞춰서 잘 와. 알았지?”

“알았어!”

“…헤헤.”

정우현의 시원시원한 긍정의 대답에 권유라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 갑자기 말했는데, 응해 줘서.”

“아니야, 유라야. 어차피 방학이잖아. 뭐, 딱히 할 것도 없었는데. 그리고 춥다고 너무 집에만 있어서, 어딘가 좀 나가 보고 싶기도 했어.”

“…그래? 그럼 진짜 잘됐다! 우현아, 우리 그날 모임 끝나면 저녁에 같이 밥 먹자! 응?”

“하하, 그래.”

하고선 몇 마디 더 나누고서 친구와 전화를 끊었다.

권유라 할아버지의 초대라지만, 어디까지나 대기업의 경영진 모임.

그로서는 처음 가 보는 모임이라 조금 긴장됐지만, 한편으로는 또 재미있을 것 같았다.

* * *

약속 당일 종로 에이치 그룹 본사로 향하는 정우현의 차량 안.

엄규환이 운전을 하며, 정장 차림의 정우현에게 말을 붙였다.

“도련님, 왜 부른 걸까요?”

“…음, 잘 모르겠어요.”

“…히야.”

하고서 엄규환이 탄성을 내지르며 말을 이었다.

“에이치 그룹의 회장이라니. 도련님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에이치 그룹은 참 대단했습니다. 그,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창업주 있죠?”

“아, 예.”

권유라의 증조할아버지, 그러니까 지금 회장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분 엄청났잖아요. 강원도 시골 땅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나와서 막노동으로 시작해 우리나라 최고의 사업가가 됐잖아요. 조선소도 없는데 배를 뚝딱 만드는 등 성공 일화도 한두 개가 아니죠.”

정우현은 자서전 등 역시 책을 통해 에이치 그룹 창업주의 일생을 간략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기억나는데, 말년엔 막 북한에 소 떼도 보내고. 언제는 또 평양에 방문해서 그쪽 사람들까지 만나던데, 하하하! 솔직히 전 그때 통일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고서 엄규환이 당시 1998년도의 일을 말했다.

그것은 정우현도 티브이를 통해 직접 봐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그런 사람의 증손주와 자신이 엄청 가까운 친구가 되리라고는.

그리고 오늘 그 사람의 아들 즉 에이치 그룹 회장의 초대로 그룹 경영진 모임에 가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근데 그런 대단한 회사의 회장이 우리 도련님을 초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 엄청나요, 엄청나. 전 솔직히 대통령 초대보다 더 대단한 것 같네요!”

“…하하하, 그래도 친구의 할아버지니까요.”

하고서 정우현은 더 이상 말을 않았다.

엄규환은 자신이 모시고 경호하는 정우현이 대단한 사람의 초대를 받았다는 것에 한껏 들떠 있었지만, 정작 정우현은 그런 사람이니만큼 처신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이윽고 에이치 그룹 본사 앞.

정문 앞에 나와 있던 남성 안내인이, 정우현이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그러고서 안내인은 곧장 발레파킹을 하겠다며 정우현 그리고 엄규환에게도 내릴 것을 청했다.

“아니요.”

이에 엄규환이 즉각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자 안내인이 답했다.

“아닙니다, 선생님도 정우현 군과 함께 올라가시지요.”

“…아.”

엄규환이 의외의 대답에 짧게 소리를 냈다.

청와대 오찬 때처럼 따로 정우현을 따라가지는 못할 수도 있겠다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법률상 보안 시설이 아닌, 대기업 본사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자신 또한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하하.”

정우현이 웃으며 말했다.

“실장님, 얼른 가요!”

이에 엄규환이 차에서 내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 * *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내 여성 안내인이 정우현을 알아보고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내인은 곧장 정우현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한데 회사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아니고, 조금 따로 떨어진 곳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회사 임원진 및 귀빈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였던 것이다.

정우현과 엄규환이 안에 탑승하자, 안내인이 인사를 꾸벅 하고는 말했다.

“21층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러고서 그녀는 이어폰 스피커에 입을 대고 말을 했다.

“정우현 군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이제 올라갑니다.”

그리고 21층. 에이치 그룹 회장실 앞.

정우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장실의 커다란 여닫이 양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문 옆에는 회장의 여비서가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정우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라봤다.

비서의 안내에 들어선 회장실 안에는 족히 20명은 되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커다란 타원형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우현아!”

그중 오직 편안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 딱 두 명 있었는데, 바로 권유라와 그의 할아버지 즉 에이치 그룹 회장이었다.

권유라는 평소보다 옷을 더 갖춰 입기는 했지만,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보통 날에도 워낙 드레스에 가까운 원피스에 팔찌는 물론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 여러 액세서리를 하고 있어 말 그대로 공주에 가까운 옷차림이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작정한 듯 더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권유라를 거의 매일 보는 정우현에게는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한편 그녀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는 한복, 정확히 하면 개량 한복 차림이었다. 그것도 맞춤 제작되어 부드러운 원단에 신축성이 있고 크기는 커, 마치 트레이닝복처럼 편히 입을 수 있었다.

“하하.”

이윽고 권유라의 할아버지가 정우현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우현이구나.”

“예, 반갑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하고서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여비서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비서가 정우현을 기다란 타원형의 테이블 한끝에 앉히고는, 엄규환에게 따로 말해 그는 문 앞 좌석에 앉혔다.

그러고서 그녀는 회장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정우현을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모든 사람이 참석한 것을 회장이 확인하고서는, 그가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우현이 너를 직접 찾아가 만나고 싶었지만 말이다.”

“예.”

“이번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 있을 때 할 말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너에게 여기까지 오라고 한 것이다. 이해하렴.”

“알겠습니다. 저도 이렇게 큰 회사를 방문한 건 처음이라 즐거워요!”

“하하하, 그래.”

하고서 회장이 정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유라 말이 맞구나.”

“….”

회장의 말에 정우현이 잠자코 있었다.

회장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손녀 권유라를 보고 한껏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유라가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아.”

“한데 실제로 보니 정말 그렇구나, 하하하하.”

그러고서 그가 주위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이 점은 우리 기업인들이 꼭 잊지 말아야 할 자세지. 그렇지 않은가?”

“…예.”

회장의 물음에 사람들이 눈치를 보더니 짧게 답했다.

“하여간 우현아.”

할아버지가 다시 정우현을 보고 물었다.

회장은 타원형의 테이블 안쪽 끝에 앉아 있었고, 정우현은 바깥쪽 끝에 앉아 있었으니 둘 사이 거리가 좀 있었다. 다만 서로가 몸을 돌리지 않고서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예.”

“이번에 네가 아주 대단한 일을 했다.”

“….”

그러고서 회장은 품에 있는 권유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서 말을 이었다.

“우리 유라. 하나뿐인 나의 손주를, 네가 살렸어.”

회장의 말에 정우현보다는 그룹 경영인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그의 말을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겠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내가 유라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 기쁨이란….”

하고 회장은 잠시 감상에 젖은 듯 과거를 추억하며 조금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놀랐지. 놀라웠어. 우리 회사를 책임진 이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 유라가 태어난 날보다 더 기억에 남는 날은 없을 거다. 유라는 기억 안 나겠지만, 이 아이가 아직 아기일 때 말이다. 나는 우리 손녀가 자고 있으면 일부러 깨웠어요. 그럼 아기가 칭얼칭얼하고 울기도 하는데, 그럼 이 할아비가 곧장 달래 주고 그랬지. 그게 또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하하하!”

권유라는 처음 들어 본 얘기인 듯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안고 있는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왜 그랬어요!”

“하하하, 너도 나중에 너처럼 귀여운 손녀가 있어 봐라. 내 마음을 알게 될 거다.”

하고서 그는 조금은 따지는 듯 묻는 권유라가 더 예쁘다는 듯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아이, 참!”

이에 권유라가 툴툴대며 말했다.

“그랬지 않나, 권 사장?”

아랑곳하지 않고 회장은 순간 고개를 돌려 한 중년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이곳에 모인 다른 경영인들과 달리 유독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맞습니다, 회장님. 유라만 보면 금이야 옥이야 항상 손에 쥐시고, 자고 있을 때는 한참을 또 귀엽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시다가 결국 깨워서 함께하곤 하셨죠.”

“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회장이 신난다는 듯 크게 웃자 이제는 권유라가 고개를 돌려 중년의 남자를 보고 소리쳤다.

“…아빠!”

중년의 남자는, 권유라의 아버지 즉 에이치 자동차 사장이었다. 에이치 그룹 회장과 에이치 자동차 사장은 물론 아버지와 아들 관계였으나, 회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직함으로 칭했다.

“하하하하하! 아아, 음.”

회장은 즐거운 듯 웃다가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나 소중한 내 손녀를 말이야.”

하고서 그가 정우현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이번에 살린 거다, 러시아에서.”

“….”

정우현은 잠자코 있었다. 친구 권유라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말고도 워낙 다른 사람들이, 그것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있어 마냥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회장은 잠깐 품에 있던 권유라를 옆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회장을 따라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

하고는 회장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즉 환갑을 훌쩍 넘긴, 우리나라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그룹의 회장이 정우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허리를 숙였다.

이에 권유라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룹의 모든 경영인이 회장을 따라 허리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오직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은 정우현 그리고 권유라밖에 없었다.

“으음….”

회장은 고개를 들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사람들도 그를 따라 역시 자리에 앉았다.

“권 사장.

그러고는 회장이 자신의 아들 에이치 자동차 사장을 불렀다.

“예, 회장님.”

“내가 말한 거 갖고 왔나?”

“예.”

“그럼 말해 봐.”

하고서 회장이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이치 자동자에서 내 지분이 몇 퍼센트인지.”

회장의 말에 그룹 경영진들이 웅성거렸다.

다만 권유라의 아버지인 에이치 자동차 사장만큼은 역시 또 편안한 모습으로 가져온 자료를 보고 답을 했다.

“우리 회사 발행 주식 수, 약 2억 주 중 회장님께서는 근 4천만 주 즉 약 20%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

“그리고 회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법인 및 저를 포함한 등기 임원들 지분은 모두 합치면 약 30%가 됩니다.”

“그래, 그래.”

하고서 회장이 테이블 둘레를 따라 앉은 사람들을 한번 쓱 둘러보고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다들 내 말을 똑똑히 듣게나. 나는, 내 하나뿐인 손주 권유라의 목숨을 구한 정우현 군에게.”

그러고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에이치 자동차의, 내 주식 전량을 증여하겠네.”

“아니…!”

“회장님!”

이내 잠자코 있던 경영진들이 소리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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