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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62)화 (62/200)

62화

한편 우현수호단의 소송 건은 곧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우선 해외 언론이 곧장 기사화했다. 정우현의 팬클럽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다가 정우현의 만류로 결국 취소했다고.

이에 단순히 정우현의 팬으로만 있었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그의 공식적인 팬클럽 우현수호단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고서는 놀랍게도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나아가 이번 인질극이 벌어졌던 러시아 등 각국에서 자체적으로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Woohyun's Guardian.'

줄여서 WG로 지칭되는 이 이름은, 우현수호단의 국제 팬클럽이다.

이로써 2002년 말부터 해서, 정우현은 각국에 팬클럽을 갖게 됐다.

각국의 우현수호단 단장은 곧 한국의 공식 팬카페 및 팬클럽 회장인 변호사 윤수정과 온라인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윤수정의 도움으로 해외 팬클럽은 이른 시간 내에 체계를 갖췄다.

물론 윤수정은 현직 변호사로서 바쁘기는 했지만, 정우현에 관한 일이라면 쉬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전념했다.

사실 그녀가 정우현의 팬클럽 회장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법률 사무소가 더 잘된 것도 있었다. 팬카페는 물론, 정우현의 선한 이미지에 일반 국민에게도 긍정적인 홍보 효과가 있던 것이다.

‘…애초 우현 군 덕분에 사법 시험에 붙었고.’

그녀가 컴퓨터 모니터 속, 온갖 다양한 언어로 쓰인 이메일을 보며 생각했다. 모두 해외 우현수호단 활동과 관련된 이메일이었다.

‘이제는 그 덕분에 사무실도 잘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현 군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고 해외에서 온 이메일에, 도움이 될까 짧게라도 일일이 답을 하는 그녀였다.

모두 정우현을 위하고, 팬클럽 우현수호단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 *

시간이 조금 흘러 학년 말 초겨울.

다행히 한국 영재 학교 학생 및 선생은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태호가 학교에서 정우현에게 다가왔다.

“우현아!”

“응?”

“…이번 주말에 시간 돼?”

구태호가 평소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우현은 곧장 답했다.

“시간? 당연히 되지!”

친한 친구이니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 따로 있지 않고서야 언제든 함께하고픈 정우현이었다.

“…아, 그럼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응!”

한데 조금 이상했다. 구태호는 평소 자신의 집에서 놀자고 할 때,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정우현과 함께 놀 생각에 마구 신나서는 웃는 낯으로 치킨 얘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유라도 가는 거지?”

정우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교실 안, 권유라를 찾는 것이다.

한데 그녀는 잠시 다른 곳에 있는지, 현재로선 없었다.

“아니.”

“응?”

“유라한테는 말하지 말고, 너만 와.”

처음이었다. 구태호가 권유라는 빼고 정우현에게만 자기 집에 오라고 하는 것은.

“…왜?”

이에 정우현이 곧장 물었다.

“아, 사실은….”

하고 구태호가 주위를 다시 한번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가.”

“…응?”

“우현이 너, 보고 싶대.”

“아….”

“고맙다고, 여행에서의 일로.”

즉 구태호의 아버지, 그러니까 현직 검찰 총장이 아들의 은인인 친구 정우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그간 숱하게 구태호네 집에 놀러 간 정우현이었지만, 여태 한 번도 그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검찰 총장이라는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산적한 업무 등에 바빠, 좀처럼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정우현이 아직 아이라서 애초 밤늦게까지 구태호네 집에서 놀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올 수 있지?”

구태호가 다시 한번 확인 차 정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응!”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고맙다며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거니까.

그리고 정우현 또한 구태호네 아버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 * *

주말, 서초동 구태호네 집.

딩동.

정우현이 도어 벨을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구태호가 문을 단숨에 열고 크게 소리쳤다.

“우현이 왔다아아아아!”

“하하하, 안녕!”

하고서 정우현이 구태호네 집에 들어오고서는 곧장 그의 부모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고는 준비했던 선물을 구태호네 어머니에게 드렸다.

최고급 한우 세트였다. 원래는 전통 차 세트 같은 걸 준비하려 했는데, 구태호가 고기를 좋아하는 걸 떠올리고 한우로 바꾼 것이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하면서 구태호네 어머니가 정우현의 선물을 받아들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우현이구나.”

한편 가만히 미소를 띤 채 정우현을 바라보고 있던 구태호네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뉴스 등 티브이에서 본 대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다만 항시 미간에 힘을 주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것과 달리, 이곳 그의 집에서는 사뭇 너그러워 보였다.

실상 이 모습이 검찰 총장이 아닌 아버지인 그의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그를 보고 씩씩하게 말했다.

대통령 등 청와대에서 여러 고위 공직자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 기관의 장을 그것도 권력 기관의 장을 사석에서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아.”

한데 구태호네 아버지가 탄성을 내뱉더니 순간 정우현에게 다가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 고맙다….”

하고서는 복받친 감정에 다소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을 지켜 줘서….”

* * *

구태호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

한데 구태호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

메뉴가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이 아니라 삼계탕이기 때문이다.

“태호야, 왜 안 먹어?”

구태호의 어머니가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아들이 왜 그러는지 뻔히 알면서도 슬쩍 묻는 것이다.

“…아냐.”

구태호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의 아버지는 딱히 아들을 엄하게 훈육하지도 않았는데, 구태호는 아버지를 어려워했다. 그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랬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그냥 법조인 아버지였다면, 지금은 이런저런 굵직한 직함이 달린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다.

구태호가 성장하는 가운데, 그런 아버지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것을 깨닫는 만큼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또 어려워졌다.

“하하하.”

구태호의 아버지가 삼계탕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들을 보고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봤다.

정우현은 닭은 물론, 아이들이 보통 좋아하지 않는 대추에 심지어 황기까지 무지 맛있게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태호야, 우현이 봐라. 편식 없이 얼마나 잘 먹냐.”

“…네.”

이번에는 구태호의 어머니가 역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얘는 치킨은 사족을 못 쓰는데, 어떻게 같은 닭인 삼계탕은 안 좋아해!”

“…엄마.”

구태호가 어머니를 부르며 눈짓을 했다.

아버지 앞에서 괜한 소리는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랑곳하지 않고 정우현을 부르며 말을 이었다.

“우현아, 태호, 어디서든 맨날 치킨만 찾지?”

“…하하.”

정우현은 답은 않고 그저 멋쩍게 조금 웃었다.

“그치? 아줌마는 다 알아. 애가 이렇게 편식해서 어쩌지!”

“아, 아니에요.”

정우현이 구태호와 잠깐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했다.

“태호,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채소도 잘 먹고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지만, 정우현은 이 순간 기가 죽은 친구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래?”

구태호의 어머니가 눈을 살며시 뜨고 다시 자기 아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또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왜 몸에 좋은 삼계탕은 이리 안 드실까요, 우리 왕자님이?”

“하하하하.”

그녀의 말에 구태호의 아버지가 다시 웃었다.

“그래도 우리 태호가….”

하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 건강히 있는 것만으로 아빠는 참 감사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정우현을 바라봤다.

“모두 우현이 덕분이지.”

“그래.”

구태호의 어머니도 말했다.

“정말 고맙다, 우현아.”

* * *

식사를 다 하고 서재 안.

방 안에는 정우현과 구태호네 아버지 단둘이 있었다.

“우현아.”

구태호의 아버지가 정우현과 따로 얘기하자고 한 것이다.

“예.”

“고맙다.”

그는, 정우현이 집에 오자마자 밥을 먹고 이곳 서재에서도 수없이 고맙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호의 아버지는,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우현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살려 낸 은인이니까.

“내가 생각을 해 봤다.”

“….”

갑작스러운 친구 아버지의 말에, 정우현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너에게 어떤 보답을 해야 할까 말이야.”

“…아아.”

정우현은 이제야 그의 뜻을 알겠다는 듯 소리를 내고 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구태호의 아버지가 말을 잘랐다.

“그런 말 마라.”

그러고선 예의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할 일이라니. 너는 총을 든 괴한들 앞에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지켜 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모든 사람이 무사할 때까지 끝까지 남았지.”

하고는 눈을 부릅뜨고 말을 이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이게 어떻게 당연히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니?”

“….”

“솔직히 나는, 그 자식들을 어떻게든 추적해서라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다. 내 아들의 목숨을 위협한 그놈들을 말이다.”

그러고서 구태호의 아버지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멈춰야만 했다. 숨이 가빠진 것이다.

결국, 이내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하고 그는 큼지막한 손을 뻗어, 아직은 작고 여린 정우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아들의 목숨을 살린 너에게 보답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거절하지 마라. 아니.”

구태호의 아버지가 정우현의 두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무척이나 강렬한 눈빛이었다.

“거절해선 안 된다. 그게 나와 내 아들 태호를 위하고, 또 존중하는 것이다.”

정우현이 말없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예, 그럼 알겠습니다.”

하고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

이에 구태호의 아버지 표정이 즉각 환해졌다.

그러고는 곧장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정우현에게 건넸다.

쪽지였다. 특별히 다를 것도 없이, 흰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무언가를 적어 놓은, 그저 평범한 쪽지였다.

정우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 쪽지를 바라봤다.

“…하하, 내가 말이다.”

하고 구태호의 아버지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대체 뭘 줘야 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물론, 돈을 떠올렸지. 하지만 우현이 너는 이미 세계적 유명 배우. 어쩌면 자산이, 그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나보다 벌써 더 많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니?”

“아, 하하하….”

정우현 또한 뭐라고 답하기가 어려워 그냥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구태호의 아버지는 보답의 의미로 정우현에게 돈을 줘 봤자 그리 특별할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줘 봤자 아주 큰 액수도 아니라서, 유명 배우이기도 한 정우현에게 그리 득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준비한 게 이거다.”

하고 그가 쪽지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개인 핸드폰 번호와 개인 이메일 주소. 우현아, 앞으로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여기로 연락하렴. 내 힘이 닿는 대로 너를 도와주겠다. 이게 바로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인 것 같다.”

“아아.”

구태호의 아버지가, 그러니까 현직 검찰 총장이 자신의 모든 경력과 사회적 힘, 그리고 인맥 등 전 인생을 걸고 앞으로 정우현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그가 수십 년간 쌓아 온 모든 것을 다해 정우현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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