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59)화 (59/200)

59화

후속 조치는 빠르게 진행됐다.

러시아군은 극장 안,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을 즉각 해체 및 수거했다. 또한 극장 창고에 포박되어 있던 안전 요원들도 발견해 무사히 구출했다.

그러는 한편 테러리스트들을 심문 후 그들의 처리를 놓고 잠시 고심했으나, 결국 약속대로 제삼국 망명을 주선하기로 했다. 제삼국은 러시아와 체첸 등 유럽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동남아시아 국가 즉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이 점쳐지고 있었다.

물론 러시아 내에선 약속을 파기해서라도 그들을 형벌에 처해 체첸 반군 및 테러리스트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우선 인질범들이 먼저 약속대로 단 한 사람의 민간인도 해치지 않고 풀어 주었고, 결정적으로 이번 사건을 해외 언론이 모두 주시하는 까닭에 말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물론 수많은 언론이 정우현에게 집중했다.

이번 인질극이 평화롭게 해결되는 데 있어, 다른 누구도 아닌 정우현이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했음을 곧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정우현은 오직 두 언론, 러시아가 아닌 한국과 미국 공영 방송의 인터뷰 요청에만 응했다.

한국 언론은 당연히 정우현 본인이 한국인이기에, 그리고 미국 언론은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언론 가운데 그저 익숙하기에 그리 택했다. 미국에서 배우 활동을 할 때 몇 번 함께한 언론이었던 것이다.

“What an amazing job you have done! (참 놀랍고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미국 공영 방송인 팍스사의 한 남성 기자가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이에 정우현은 짧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죠? 무섭지 않았나요?”

“…무섭지 않았다면 아마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네!”

“제 친구들과 선생님은 물론, 이번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 모두 훨씬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마냥 겁을 먹기보다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이 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예, 그 결과, 이렇게 사건이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하면서 기자는 표정을 조금 바꿔 물었다.

“그런데 우현 군. 러시아 언론은 물론 러시아 정부와도 개별적인 접촉은 한사코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나요?”

“…아.”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딱히 없습니다. 그냥 저는 제 고국인 한국의 언론과, 그리고 미국 최고의 글로벌 방송사인 팍스사가 친숙해 이렇게 함께할 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낯설어서요.”

“…하하하, 정말입니까?”

농담하는 정우현의 말에 기자 역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우현은 애초 마음을 정했다.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를 제외하면, 이 일과 관련해 러시아와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기로.

물론 러시아 정부는 자국민 수십 명 중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인질극을 종결한 정우현을 극찬하며 일찌감치 자리를 함께하길 원했다.

그것도 무려 대통령이 말이다.

실로 러시아 최정예 특수 부대나 여러 대의 탱크도 일절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사건을 해결한 정우현이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정우현은 즉각 거절했다. 그가 러시아 대통령의 환대를 받거나 러시아 언론과 웃는 낯으로 인터뷰를 한다면,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 대 체첸의 갈등에 있어, 괜스레 한쪽 일방인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뜻을 표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우현은 오랜 세월 얽히고설킨 두 세력 간의 다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물론 체첸 테러리스트들은 명백히 잘못을 범했지만, 애초 체첸을 무력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러시아 또한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심지어 전생을 떠올려 봐도, 2002년 현재 러시아의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독재자와 다름없기에, 그와 같은 사람과 친하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저는….”

정우현이 결국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일과 관련해 짧게 말을 남겼다.

“더 이상의 무고한 인명 피해가 없기만을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체첸인이든 러시아인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서 그는 마침내 KGI 학생 및 교사들과 함께 한국 영사관과 접촉 후 비행기를 타고 안전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 * *

정우현이 이번에 수십 명의 인질과 심지어 인질범들까지 단 한 명의 사상 없이 평화롭게 해결한 이번 모스크바 사건은, 사실 전생에서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었다.

양 측의 협상이 난항을 겪다가는, 러시아군이 결국 테러리스트 소탕을 위해 극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한데 그 과정이 문제였다. 다행히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일이 일어났다.

러시아군이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을 진압하기 위해, 극장의 환기구와 배관을 통해 가스 공격을 감행했는데 그게 무려 펜타닐이라는 치사율 높은 마취제였다. 해당 약물은 청산가리보다도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군은 테러리스트 40명을 전원 사살하거나 생포할 수 있었지만, 인질 700여 명 중 무려 81명이 또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공식적인 숫자이니, 비공식적으로 하면 실제 사상자는 더 많을 것이다.

즉 러시아로선 절반만 성공한 작전이었다. 테러리스트 인원의 두 배가 넘는 자국의 민간인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 자국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우현 덕분에 그 모두가 목숨을 건지게 됐다.

마치 지난번 9.11 테러를 막아 수만 명을 다치지 않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현아, 고마워….”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공 비행기 안.

조금은 지친 모습의 권유라가 정우현에게 말했다.

이미 러시아에서 수없이 고맙다고 했는데 또다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너도 고생했는데, 뭐.”

그러고서 정우현은 짐짓 웃어 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던 구태호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 우현아.”

“….”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에 권유라가 강하게 동의했다.

“맞아!”

옳은 말이었다. 정우현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즉 어떤 돌발 상황에 의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대단해, 나는 그 무서운 아저씨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겠던데….”

권유라가 말했다.

“음….”

정우현도 잠자코 생각했다. 지금이야 비행기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그때를 떠올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학교 친구와 선생님들만 내보내자고 결심한 마음이 점차 커지더니 끝내는 극장 한구석에 있는 마지막 러시아인 할머니까지 살렸다.

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와아아.”

한참을 비행한 끝에 대한민국 상공.

아이들이 드디어 집에 다 왔다는 생각으로 모처럼 활기차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 * *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데, 계단부터 공항 입구까지 무려 카펫이 깔려 있었다.

KGI 학생들과 선생의 무사 귀환을 기리는 정부 측 행사였다.

과연 카펫 위에는 외교부 장관뿐만 아니라 무려 대통령까지 나와 계단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국내 언론은 정부와 공항 측의 허가 하에 아이들이 귀국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씩 계단으로 내려오는 가운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전에 없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정우현이었다.

무려 국외 테러 사건을 평화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한 정우현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현 군!”

대통령이 정우현을 보고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지난번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한 대통령이었다.

“잘 왔습니다!”

하고서 대통령이 정우현을 마치 손자 다루듯 번쩍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환히 웃어 보였고, 방송사의 카메라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몹시도 플래시를 터뜨렸다.

정우현은 이미, 영웅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소년 영웅이었다.

“고생했어요, 고생했어!”

“…고맙습니다!”

“아니요, 제가 고맙죠!”

무려 대통령이 공항까지 직접 나와 맞이한데다, 자신을 번쩍 들며 칭찬을 하니 고맙기는 했지만, 일단은 조금 정신이 없는 정우현이었다.

그렇게 대통령의 품에 있는 채로 그가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KGI 학생들의 가족들이 공항 안까지 들어와 자신의 어린 자녀들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정부 및 공항 측이 특별히 승인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

정우현이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드디어 발견했다.

“…우현아아아아!”

“…정우혀어어어언!”

너무나 보고 싶은 어머니 황희진 그리고 아버지 정기석이었다.

부모는 정우현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일찌감치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

그리고 옆에서는 여동생 정다현이 소리도 치지 못하고 한껏 긴장한 듯 어머니의 손을 강하게 쥐고 있는 채 역시 오빠인 정우현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다, 필요 없었다.

이 순간 정우현에게 대통령이고 방송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오로지 가족, 가족들뿐이었다.

“…하하하.”

순간 대통령의 품에서 폴짝 하고 땅으로 뛰어 내리며 무진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정우현의 뒷모습을 보며 대통령이 지그시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우현이 가족을 눈앞에 두게 됐다.

“엄마아아아아아!”

“…아들!”

어머니를 와락 안았다.

“엄마… 엄마아아아…!”

정우현은 어머니를 안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아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크게 외쳤다.

“…아들, 우리 아들…!”

어머니 또한 정우현을 안고서 하염없이 그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우현아….”

그러고는 아버지 또한 무릎을 꿇고 정우현을 끌어안았다.

“아아….”

동생 역시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오빠를, 눈물을 흘리며 강하게 끌어안았다.

“…엄마, 아빠, 다현아…!”

정우현 또한 가족 모두를 끌어안고 크게 외쳤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른스러움을 넘어 완전한 영웅이 되어 단단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였던 정우현이, 드디어 가족들 품에서 다시 아이로 돌아가 모든 감정을 쏟아 내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됐다, 됐어.”

어머니가 계속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품에 있으니까 이제 다 됐다.”

그리고 그들 정우현네 가족은 그대로 한참이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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