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51)화 (51/200)

51화

정우현은 미국의 다가올 9.11 테러를 막기 위해, 처음엔 단순한 방법부터 생각했다.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거나, 브래드 퍼트 등 가까운 미국인을 통해 미국 정부와 어떻게든 직접 연락을 취해 보거나.

하다못해 무작정 미국으로 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방법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2022년 기준 다가올 4월에 대한민국의 한 커다란 빌딩을 포함해 각종 중요 건물에 비행기 납치 테러가 일어날 테니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리 없다.

즉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익명으로 전한다 해도 금세 무시해버릴 게 분명하고.

이는 정우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간 쌓은 국제적인 명성 즉 배우의 커리어와 최근 이룬 위대한 업적인 수학적 성과까지 한순간에 폄하될 게 뻔했다.

그래서 그가 준비한 게 있었다. 컴퓨터였다.

집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지만,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한 대 더 사서 두 컴퓨터를 이었다.

그러는 한편 두꺼운 책도 몇 권 새로 들였다.

프로그래밍에 관한 책이었다. 해당 분야의 도서는 원래 집에도 있었지만, 이번에 새로 들인 책은 학계 및 산업을 선도하는 최신의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그러고서는 두꺼운 책을 순식간에 독파하고,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집중한 결과, 드디어 해냈다.

정우현은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즉 CIA의 내부망을 해킹했다.

물론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 각고의 노력으로 탄탄히 한 보안 사이트답게, 해킹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순조로웠으나, 마지막 보안 관문에서 그 또한 조금 애를 먹었다.

도무지 현존하는 해킹 방식으로는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아예 하나 만들어 냈다. 자신만의 해킹 툴을.

그러고는 해당 툴을 사용해 CIA의 내부망 전면에 이와 같은 글을 띄웠다.

‘You're bound to be surprised, but don't be surprised. I am Anonymous who wishes for peace in America and the world. (놀랄 수밖에 없겠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미국과 세계의 평화를 소망하는 어나니머스입니다.)’

전생에서 언젠가 한 번 들어 봤던 익명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의 이름을 스스로 붙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만, 불가피한 상황이니 양해 바랍니다. 저는 소속이 따로 없는 익명의 국제 해커이자 정보 요원으로서, 최근 미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무수한 인명 사상을 초래할 중대한 테러에 관해 극비리에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해당 정보를 간략하게 언급할 테니, 부디 그 끔찍한 테러를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서 정우현은 그가 9.11 테러에 관해 알고 있는 모두를 적시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미국 내에서 이륙한 여객기 네 대가 이슬람 테러 조직에 의해 공중에서 납치되어 각각 제1, 2 월드 트레이더 센터와 펜타곤, 그리고 백악관으로 날아가 자폭할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이들이 몇 시 몇 분에 어디서 어떻게 왜 그와 같은 일을 했는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간략히 언급한 것이다.

사실 네 대 중 한 대는, 비행기 내 승객들의 저항으로 비행 중 그저 한 광산 근처 들판에 추락했다.

다만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해당 비행기는 백악관 또는 국회 의사당으로 향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전생에 경제나 사회 현실은 잘 몰랐어도, 해당 사건이 워낙 극적인 데다 티브이에서 끊임없이 조명해 해당 정보를 기억할 수 있었던 정우현이다. 이 기억을 토대로 CIA 내부망에 백악관이라고 언급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여기까지가 정우현이 알고 있는 정보였고, 더 이상의 추가적인 해킹은 하지 않았다.

물론 워낙 앞선 해킹 기술을 사용했기에 추적될 일은 전혀 없었다.

* * *

CIA 나아가 미 정부는 곧 혼란에 빠졌다.

일단 공식적으로 CIA의 내부망이 완전히 해킹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사실 해킹의 기원은 전화와 모뎀을 통해 전자 기기 조작이 가능했던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 즉 PC가 보급화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90년대 후반부터 해킹 기술이 급격히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2001년, CIA로서는 해킹을 당한 일이 처음인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실 전생을 기준으로 해도 CIA가 해킹당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했다.

먼저 조롱거리가 된 사람을 비웃을 때 사용하는 인터넷 은어 '룰즈(lulz)'와 '보안(security)'의 합성어인 룰즈섹(LulzSec)이라는 해커집단이 2011년 CIA를 해킹한 적 있다. 그리고 중국 등 미국의 적대 국가가 CIA가 운영하는 기밀 통신망 코브콤(covcom) 등을 해킹해 미국 정보원의 신원을 밝혀낸 뒤 처형했다는 사실이 2021년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CIA, 그리고 미 정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의 비밀스러운 정보망이 해킹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해킹을 성공한 해커가, 무려 엄청난 비행기 납치 즉 하이재킹 테러의 정보를 알려 줬다는 게 중요했다.

이에 곧장 열린 미국 백악관의 국가 안전 보장 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 대통령이 CIA 국장을 보고 물었다.

“…What the hell happened?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에 CIA 국장이 짧게 상황을 브리핑하고서는,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해킹한 자를 찾아서….”

“찾긴 뭘 찾아요! 당장 9월 11일이 눈앞인데, 그와 관련해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

그럼에도 국장이 잠자코 있자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테러요, 테러! 하이재킹 테러!”

“…음, 대통령님.”

낮은 음성의 국방부 장관이 말을 했다.

대통령이 곧장 그를 바라봤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하고서 국방부 장관이 말을 이었다.

“일단 웬 괴짜 해커가 자신의 해킹 실력을 뽐내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일 수 있죠. 한마디로 그저 헛소리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자 안경을 쓴, 날카로운 표정의 국무부 장관이 곧장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어나니머스라는 해커가 알려 준 정보가 참으로 간략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습니다.”

하고서는 기가 죽어 잠자코 있는 CIA 국장에게 힘을 실어 주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국내, 아니, 세계 최고의 사이버 보안 실력자들이 탄탄히 방비한 CIA의 내부망을 뚫었다는 것에서 해당 정보에 오히려 믿음이 가는군요.”

사실 정우현이 이처럼 CIA 해킹을 계획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현시점 지극히 탄탄한 사이버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CIA 내부망을 해킹했다면, 그 보안 시스템이 탄탄한 만큼 정우현의 해킹은 가치를 띠고 그의 정보는 미국으로서는 더욱더 신뢰가 가게 된다.

CIA의 모든 보안 전문가를 뛰어넘는 엄청난 실력의 해커가 허튼소리를 할 가능성은 아무래도 작으니까.

미 대통령이 국무부 장관의 말을 듣고 짧게 말을 덧붙였다.

“…그건 그래요. 저도 해커가 남긴 글을 읽어 봤지만, 뭐랄까… 우리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진심이 사뭇 느껴졌달까. 정말 긴박해 보이기도 했고요, 으음….”

이에 스포츠머리의 합동참모의장이 불안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뭐가 됐든 빨리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동을 취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국무부 장관이 다시 말했다.

“그럼, 국방부 장관의 말대로 다시 경우의 수를 따져 보죠. 대통령께서는 두 가지 선택 사항이 있습니다. 해커의 정보를 믿고 테러를 대비하느냐, 아니면 믿지 않고 무시해 버리느냐. 둘 중 하나.”

하면서 그가 안경을 고쳐 쓰고 말을 이었다.

“그럼, 각각의 결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해커의 말을 믿고 테러를 대비했을 때는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정말 계획된 테러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전자면 말 그대로 신께서 우리 미국을 살린 것이요, 후자면 괜한 돈과 시간의 낭비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로서는 그리 큰 손해는 없어요. 그저 실전 같은 테러 방지 훈련을 한 것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죠.”

“…으음.”

미 대통령이 국무부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무부 장관이 계속 의견을 피력했다.

“나머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봅시다. 해커의 말을 믿지 않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이죠. 이 역시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평온히 하루가 지나가거나, 아니면 테러가 일어남에도 가만히 있다가 막지 못하거나. 전자면 사실 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습니다. 애초 해커의 정보가 없을 때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후자인데….”

“아아아.”

국무부 장관의 말에 안보 회의에 참석한 거의 모든 이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만 싶은 최악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인명 및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심지어 분명 해커에 의해 정보가 주어졌음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게 행여 언론과 대중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후폭풍이 일 것입니다.”

이 말에 국방부 장관이 즉각 반문했다.

“…만약 그럴 경우, 은폐하면 되지 않습니까?”

“…은폐요? 하!”

국무부 장관이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보세요, 장관님. 우리가 은폐하면 뭐합니까. 우리에게 정보를 준 정보원이 버젓이 세상에 있는데! 그것도 미지의 신분으로요!”

그러고는 아예 안경을 벗고 국방부 장관을 맨눈으로 보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테러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 어나니머스라는 자가,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무려 정보국의 내부망을 해킹한 사람이? 아니, 솔직히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세력일지도 모르죠. 하여간 아무리 우리끼리 은폐를 한다 해도, 그 혹은 그들이 또 어떤 대단한 기술 및 정보력을 사용해, 우리를 전방위에서 압박하고 모든 정보를 폭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하고 국무부 장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건국 이래 최악의 정부로 남을 수 있습니다. 즉 단순 테러로 끝날 일이 아니라….”

“미국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대통령이 불쑥 말했다.

그러자 각료들이 모두 숨을 죽인 가운데, 오직 국무부 장관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실내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는 한편 대통령의 머릿속은 명료해졌다.

테러를 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를 감안하면, 대비를 하고 방책을 찾는 게 모든 면에서 옳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으로서 결정하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하고서 각료들을 둘러봤다.

“비상 대비 체제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국장.”

대통령의 부름에 잠자코 있던 CIA 국장이 곧장 대답했다.

“…예!”

“그대는 해커를 추적하는 데 괜한 정보력을 쏟지 말고, 해커가 말해 준 정보, 즉 이슬람 테러 단체가 실제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관해 철저하게 알아보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회의가 끝이 났다.

그러고서 미 정부는 정우현의 정보를 토대로 세부적인 테러 대비 방책을 짰다.

2001년 9월 10일부터 단 이틀 동안만, 미국 내 모든 공항의 보안을 강화하기로. 그리고 특히, 이슬람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큰 사람들 즉 아랍 인종 및 중동 국가의 국적인은 불가피하게 검문 및 검색을 철저히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9월 11일 밤, 대한민국의 정우현네 집.

정우현은 평소와 달리 늦은 시각까지, 긴장한 모습으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티브이를 봤다.

시차를 감안하면 미국은 지금 오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기준,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정우현이 한 뉴스를 보게 됐다.

“해외 뉴스입니다. 오늘 미국에서, 사상 초유의 테러가 일어날 뻔했습니다.”

하고서 이어지는 공항의 모습과 앵커의 말에 다행히 그의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경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FBI와 공항 경찰 등 당국의 안보 기관이 총출동해 열 명의 테러리스트를 현장에서 체포했습니다. 그들 모두 몸에서 무기가 발견됐는데, 나이프와 박스 커터 등 작은 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공항이 화면에 비쳤다.

“또한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다섯 명, 뉴어크 국제공항에서도 네 명이 추가로 적발되어 체포됐습니다. 이들은 처음, 단순 나이프 반입에 미 정부가 과잉 반응을 한다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여러 정보를 토대로 한 당국의 압박 수사에, 하나둘 범행을 모두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무려 항공기 납치 테러를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생에서도 그들 테러리스트의 작은 나이프는 미국 공항의 금속 검지기에 적발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법으로 4인치 즉 약 10cm가 안 되는 작은 칼은 항공기 탑승 시 휴대가 가능해 그냥 통과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CIA 내부망을 해킹한 어나니머스 즉 정우현의 정보 덕에 미 정부가 국력을 테러 방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CIA의 자체적인 정보 활동을 통해 중동의 한 이슬람 테러 조직이 미국을 상대로 항공기 테러를 꾀하고 있다는 정보를, 결국 실제 입수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미 당국은 9월 11일 당일, 작은 칼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아랍인들을 테러 방지 차원에서 예방적으로 체포한 뒤, 추가로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그들을 압박해 실제 범행마저 자백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상 테러와 관련 없는 아랍인들이 다수 일시 구금되기는 했지만, 마침내 거대한 테러 시도를 사전에 완벽하게 차단하고 범행도 입증함으로써 이와 같은 과정이 결과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이로써 3,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고 400m가 넘는 높은 빌딩들이 무력하게 무너진 참혹한 9.11 테러가, 이제는 존재치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모두 정우현이 준 정보로 이룩한 놀라운 결과였다.

뉴스 화면이 바뀌고, 백악관 단상에 서 있는 미국 대통령이 화면에 비쳤다.

“Today we are blessed by God. (오늘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고 그의 연설이 이어졌다.

시종일관 노심초사했던 국가 안전 보장 회의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룩한 위대한 이 나라를 공격하려는 적들의 시도를, 놀라운 손길에 의해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국민 여러분. 며칠 전, 우리 정부는 한 익명의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았습니다. 9월 11일 오늘, 네 대의 항공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에서 납치되어 국가의 주요 시설에 자폭한다는 끔찍한 음모였습니다.”

그러면서 미 대통령은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테러리스트를 모두 체포해 여전히 평화로운 나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천사와 다를 바 없는 익명의 정보원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합니다.”

정우현이 티브이를 보며 지그시 미소 지었다.

테러를 결국 막아 냈다는 것에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그저 익명의 정보원으로만 언급하는 게 재밌기도 했다.

물론 한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으로서는 자국의 정보기관인 CIA의 내부망이 해킹을 당해 정보를 알게 됐다고는 차마 국민에게 밝힐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당신을 위해 우리 모든 미국인이,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위대한 선의를 따라 우리 또한 당신의 앞길이 무한히 밝게 빛나고 번영하기를, 또한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도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하고 뉴스가 끝났다.

이에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말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 있네. 미국 정부에 정보도 주고.”

그러자 옆에 있던 어머니도 곧장 답했다.

“그러게.”

“으음.”

하고서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아들 정우현을 바라봤다.

“우현아.”

“네?”

“우현이는 지금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예.”

“나중에 저런 일도 하면 좋겠구나. 단순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 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

“여보는 참.”

어머니가 바로 말했다.

“무슨 우현이더러 그런 일을 하라고 해! 당신 씻었어?”

“…아니, 아직.”

“아이고 서방님. 본인 몸도 안 씻는 분이 무슨 국가를 구하고 말고 하세요.”

“당신은 하여튼…! 아빠가 아들한테 모처럼 진지한 얘기하는데….”

“하하하하!”

당연히, 티브이 속 위대한 일을 자신의 아들 정우현이 했으리라고 상상도 못 하는 부모였다.

하지만 정우현은 그런 부모의 모습이 또 좋아서 환히 웃었다.

무척이나 즐겁고 뜻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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