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49)화 (49/200)

49화

“…매일 아침.”

하고 정우현이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짧아 채 2분이 안 됐지만, 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라는 것을 넘어 감동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아아아….”

심지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정우현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있었다.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던 것이다.

“…웃어 보자!”

하고, 급기야 노래가 끝났고 홀에 있는 모든 팬이 일어나서 열화와 같은 손뼉을 쳤다.

팬클럽 회장 윤수정 또한 넋을 잃고 정우현의 노래를 듣고 그를 보고 있다가는 뒤늦게 사람들의 환호성에 정신을 차리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노래를 마친 정우현은 다시 한번 머리를 꾸벅 숙였다.

* * *

그날 정우현이 한국 영재 학교 정문 앞에서 윤수정을 만나고 팬클럽 모임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하고서, 그는 며칠을 고심했다.

처음으로 함께하는 팬들을 위해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원래는 작은 선물 예컨대 정우현의 이름을 수놓은 기념품 같은 걸 팬들에게 일일이 나눠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정우현은 그와 같은 경험을 팬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음악이었다. 음악은 물론 화성학, 대위법 등 더 어렸을 때 이론적으로는 미리 학습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직접 작곡을 하거나 진지하게 노래를 불러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정우현네 집에는 그 흔한 피아노도 한 대 없었다.

이에 정우현이 과연 내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조금 회의하다가는, 고민할 시간에 일단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전자 키보드를 하나 장만했다. 그러고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론에 맞춰 건반 위에 손을 올려 연습을 하니, 음악 역시 그의 수많은 재능 중 하나에 불과함을 금세 깨달았다.

그러고서는 며칠간 집중해, 오늘 팬들 앞에서 부를 노래를 뚝딱 작곡하고 편곡까지 마친 것이다.

심지어 그에 맞춰 가사를 쓰고 노래까지 부르고서는, 드디어 평가를 받았다.

바로 집에 있는 두 여성, 어머니와 여동생으로부터였다.

“…와아.”

어머니가 입을 크게 벌리고서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들, 목소리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노래로 들으니 또 다르네?”

“…하하, 정말요?”

“응!”

하고서는 어머니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체 왜 여태 노래를 안 부른 거지?”

“하하….”

딱히 제대로 불러 볼 기회가 없었다.

또한 정우현의 성격이 무척 밝기는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오빠가 직접 만든 노래야…?”

이번엔 잠자코 있었던 동생 정다현이 말했다.

“응…! 어때?”

“…좋아.”

하고 짧게 답하는 동생이다.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내성적이어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표정으로 마음이 잘 드러났는데, 오빠 정우현이 전자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마치기까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정말? 어떻게, 어떻게 좋은데?”

“…그냥, 좋아….”

하고 역시 말을 않는 동생이다. 심지어 괜히 부끄러워하며.

“하하하, 그래! 잘됐다! 그럼 엄마! 그리고 다현아! 저 이거 팬들 앞에서 부를 건데 괜찮겠죠?”

“아, 그래?”

어머니가 바로 되묻고는 곧장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그럼! 최고야, 우리 아들! 가사도 참 좋고! 모두 좋아할 거야!”

동생은 조용히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근데 아들.”

어머니가 조금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네?”

“…엄마는 아들 노래 들어 보니까, 좀 아쉽네. 더 많이 더 다양한 노래를 들어 보고 싶어서.”

“…아.”

“응? 우현이가 좋으면, 음악에 더 집중해 봐. 마치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처럼 말이야.”

“아, 하하… 알겠습니다, 엄마!”

하고서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 * *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자신의 팬들을 단체로 대면하는, 오직 이 순간 이 장소를 위해 노래를 하나 만들어 와 직접 부른 것이다.

팬들의 반응은 그칠 줄 몰랐고, 함성은 좀처럼 작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벌써부터 누군가는 이 순간이 금세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정우현 뒤에 있던 악단이 순간, 아까 전 연주했던 서정적인 음악과는 다른 느낌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쿵짝쿵짝 하니 반주만으로 벌써 신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우현을 비추던 고정된 조명이, 울긋불긋 다양한 색깔로 물들더니 무대가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그러고서 정우현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화려한 춤을.

지난날 영화를 촬영하겠답시고 LA로 가 스티븐 스틸버그와 브래드 퍼트 앞에서 아주 잠깐 춤을 췄었다.

그 후 수년 만에 춤을 추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능숙하고 안정적인 춤사위였다.

사실 정우현은 아주 어릴 때 달리기를 하며 자신의 놀라운 신체 능력을 깨닫고는, 호기심에 남몰래 춤을 춰 봤다. 그러고서는 역시 곧장 알게 됐다. 자신이 춤 또한 누구 못지않게 잘 출 수 있음을.

하지만 역시 기회가 없어 잠자코 있었는데, 이번 팬 미팅 때 작정하고 춤을 추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정우현의 마음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홀은 다시 한번 더 뜨겁게 달아올랐고, 사람들은 목이 쉬어라 함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약 10분에 가까운 정우현의 댄스가 끝이 났고, 팬들은 거의 이성을 반쯤 잃고 정우현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정우현! 정우현! 정우현! 정우현!”

완벽한 첫 팬미팅이었다.

동시에 우현수호단은 이로써 정우현과 함께하게 되며 공식적인 그의 팬클럽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 * *

한편 KGI 교실 안.

일부 학생들의 얼굴이 이전과 달리 조금씩 무거워 보였다.

김민정 교장이 연초에 내준 과제, 연구 성과를 내라는 숙제를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숙제를 완료한 사람은, 무려 인류의 오랜 수학적 난제를 해결한 정우현과 몇몇 소수의 아이였다.

물론 숙제를 마친 다른 아이들은, 정우현처럼 엄청나게 위대한 연구 성과를 낸 건 아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곳곳의 양달과 음달 즉 빛의 분포와 온도 그리고 습도 등을 일정 기간 파악하며 그에 따른 잡초의 생태를 정리한 동네 잡초생태학, 또래 여자아이들이 선호하는 대중가요의 공통점과 히트 요소, 그리고 보완점 등을 분석하고 전망한 초등 소녀 가요학, 학교 즉 KGI 근처 분식점의 각종 분식 요리의 가격과 맛 나아가 성분과 영양 요소까지 몽땅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KGI 분식 일람표 등이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였다.

아기자기한 소재였지만 다들 나름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 연구한 과제였고, 심지어 그 안에는 어른들이 봐도 유의미하고 새로운 사실들도 있었다.

사실 애초 김민정 교장이 연초 과제를 내준 의도도, 이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엄청 대단하고 심오한 연구 결과가 아닌, 그저 아이들답게 소소하지만 참신한 무언가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혀 기대치 않게 정우현이 믿을 수 없는 일을 해 버렸다.

이에 교장은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정우현이 대단하면 또 대단한 대로 고민이 생겨 버렸다.

‘…야심 차게 문을 연 우리 KGI이지만, 우현이를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좀 해 봐야겠다.’

하고 교장실 창문 넘어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를 잠자코 바라보는 김민정 교장이었다.

* * *

한편 교실에서 누군가가 책상 앞에 앉아 양손으로 자신의 긴 머리를 헝클이며 소리를 질렀다.

“아아!”

권유라였다.

그녀가 자신의 책상 위에 복잡한 자동차 엔진 설계도를 놓고 들여다보면서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왜?”

이에 정우현이 슬쩍 와 물었다.

자신은 일찌감치 과제를 다해 최근 여유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에 반해 친한 친구인 권유라가 과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한편으로 엔진 도면을 보니 다소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즉 재미있을 것 같았다.

권유라가 곁에 온 정우현을 보고서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성능을 높이고 싶으면 연비가 떨어지고, 연비를 높이고 싶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하하, 그건 어쩔 수 없지!”

“응, 하지만 조금이라도 향상시켜 보고 싶단 말이야…!”

에이치 자동차 사장 딸답게, 더군다나 과학 영재답게 일찌감치 공학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녀다. 그녀는 이번 과제로 자동차 엔진을 연구해, 내심 과제는 과제대로 칭찬을 받고, 자동차 회사 사장인 아빠는 물론 아빠 회사 사람들에게도 잔뜩 칭찬을 받고 싶었다.

“…으음, 밸브를 제어하면 되지 않을까?”

“밸브?”

정우현의 말에 권유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응, 결국 엔진은 실린더 내 연소 과정으로 작동하잖아.”

“맞아.”

“그러니까 흡기와 배기 밸브를 잘 조절하면 이론적으로는 성능과 연비 모두를 향상시킬 수 있겠지.”

“…그으래?”

그러고서 둘은 자동차 엔진에 관해 긴밀하게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몇 주 후, 권유라가 드디어 과제를 완료하고 제출했다.

이름하여 ‘연속가변밸브의 제어와 적용’이라는 제목의 연구 결과였다.

과제의 핵심은 자동차 주행 가속 성능과 연비에 따라 엔진 밸브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심지어 설계도로 시각화까지 한 내용이었다.

물론 아직 이론뿐이어서 실제 엔진 설계에 적용하고 생산하기까지는 많은 관문이 있겠지만, 연구 과제로는 무척 탁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그것만으로 대단한 과제임은 틀림없었다.

“고마워, 우현아!”

과제를 제출하고 수업을 마친 뒤 하교하는 길.

권유라가 활짝 웃으며 정우현에게 말했다.

정우현은 권유라의 과제를 도와줬다. 애초 김민정 교장이 과제를 서로 도울 수 있다고 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선뜻 나선 것이다.

하지만 엄청 많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저 밸브를 주행 상황에 따라 제어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슬쩍 권유라에게 알려 줬을 뿐이다. 해당 아이디어들은 구체화되기까지, 각각 성공할 수도, 물론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권유라는 정우현의 말을 다 듣고 무언가 크게 깨달은 듯 곧장 나름의 엔진 설계에 매달렸다. 그간 그녀가 흥미를 갖고 더욱더 매진한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기계 공학 지식 등은 설계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서는 오늘 드디어 과제를 제출한 것이다.

“아니야, 유라야. 네가 다 한 거지.”

정우현이 슬며시 웃으며 답했다.

“에이, 무슨! 우현이 네가 애초에 나한테 아이디어를 준 거잖아! 나, 처음에 기억 안 나? 도면만 펼쳐 놓고 손도 못 대고 있었다구!”

“하하하, 그래, 유라야. 그렇지만 그 몇 마디 아이디어들을 네가 진지하게 열의를 갖고 한 편의 과제로 탄생시킨 거잖아. 심지어 수식까지 완성하고 설계도까지 그리면서. 누가 뭐라 해도, 그건 너의 몫이지.”

“….”

정우현의 말에 권유라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는 한순간 특유의 생글생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밝게 말했다.

“…그으런가?”

“하하, 그렇다니까!”

“…음….”

하고서 그녀가 입술을 잠시 오므렸다가는 크게 벌리며 말했다

“그으럼!”

“응?”

“우리 둘 다 잘한 거로 하자!”

“…하하!”

“그렇지? 너랑 내가 다 잘해서! 완성할 수 있었던 거야! 어때?”

“그래, 그래, 맞아.”

“하하, 기분 좋네!”

하고선 권유라가 느닷없이 전방으로 뛰어가다가는 한순간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 권유라느으으으은!”

정우현은 조금 먼발치에서 그런 권유라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친구 정우현이라아아아앙! 과제를 하나 멋지게 해냈어요오오오오!”

“…하하하!”

“우리는 짱이다아아아아아아아! 짱짱짜아아앙!”

정우현의 웃음소리와 권유라의 들뜬 목소리가 KGI 운동장 위로 크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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