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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48)화 (48/200)

48화

정우현의 팬클럽 즉 우현수호단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결의를 다졌다.

실상 그들은 나이가 환갑에 가까운 사람들부터, 삼사십 대 중년은 물론 이십 대 나아가 어린 십 대들까지 제각각이었다. 거기에 성별 또한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섞여 있었다.

우현수호단은, 대한민국에서 특정인을 지지하는 단체 중 나이와 성별 하다못해 출신 지역 등 어느 하나로 편중되지 않은 유일한 단체이기도 했다.

* * *

한편 정우현은 자신의 팬클럽이 창단됐다는 소식을 곧 전해 들었다.

“우현아!”

바로 권유라를 통해서였다.

“너, 팬클럽 생겼다며?”

“…응?”

“팬클럽! 우현수호단! 생겼다고!”

“….”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다양한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팬카페가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따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왠지 조금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우현은, 인터넷이 발달해 24시간 온라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전생에서도, 커뮤니티라든가 SNS 등을 즐겨 하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역시 조금 어색하고 부끄럽게 생각됐던 것이다.

그저 가족 및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메신저를 하는 게 다였다.

“…하나도 모르고 있구나!”

권유라가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 한 웹 사이트의 커다란 팬카페에서 사람들이 모여 팬클럽 ‘우현수호단’을 창단했다고 알려 줬다.

“아아….”

그제야 정우현은 알겠다는 듯 소리를 냈다.

“하하하!”

권유라는 마치 자기 팬클럽이 생긴 듯 좋아하며 웃었다.

“…근데 넌 어떻게 알아?”

옆에 있던 구태호가 슬며시 물었다.

“아.”

그러자 권유라가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하하하, 실은.”

“응?”

“나도 가입했거든!”

“우현이 팬클럽에?”

“…아니! 팬클럽은 아니고, 팬카페에!”

“으음, 그랬구나.”

그러자 권유라가, 아예 미주알고주알 말하기 시작했다.

“…응! 우현이를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냥 궁금해서 가입했는데…! 얼마 전 거기서 팬클럽 창단을 한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난 창단식까지는 가지 않았지!”

하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럴 필요가 뭐 있어? 맨날 학교에서 우현이랑 같이 놀 수 있는데! 하하하하! 우현이는 내 친구라구!”

“맞아, 맞아! 내 친구 정우현!”

정우현은, 이렇듯 자신에 관해 자랑스럽게 말하는 권유라와 구태호를 곁에서 보고 기분이 좋아 슬며시 미소 지었다.

물론 팬클럽이 생겼다는 소식은 그도 새로웠다.

그간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팬클럽이 생긴 건 처음이니까.

심지어 팬클럽 이름이 무려 자신의 이름까지 직접 넣어 작명한 우현수호단이니 더 그랬다.

비록 현재는 따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은 그지만, 변함없이 배우이자 공인으로서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찬찬히 생각하게 됐다.

* * *

그리고 며칠 지나 한국 영재 학교 하교 시간.

“안녕!”

“잘 가!”

“내일 보자!”

정우현이 권유라 그리고 구태호와 정문에서 인사하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실장 즉 엄규환을 향해 걸어가려는 찰나.

한 여자가 멀리서 정우현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뭡니까, 지금!”

순간 엄규환이 번개 같은 속도로 정우현에게 달려와 그를 보호하고 섰다.

여자가 정우현에게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 아, 죄송합니다…!”

다행히 가까이서 본 인상으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여자였다. 보통 체형에 정장을 입고, 머리도 평범한 생머리에 얼굴은 환히 드러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최대한 예의를 갖춘 듯 깔끔하고 점잖아 보이기까지 했다.

여자는 자신을 막아선 엄규환에게, 곧장 상의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명함이었다, 그것도 두 장의 명함이었다.

엄규환이 먼저 첫 번째 명함을 통해 그녀의 직함을 살폈다.

‘수호 법률 사무소, 변호사.’

명함을 보는 순간, 일단 마음이 놓였다. 현직 변호사가 정우현을 상대로 허튼짓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어어.”

그리고 이내 본 두 번째 명함에서, 엄규환이 탄성을 내질렀다.

‘정우현 군 팬클럽 우현수호단 단장 윤수정.’

“…하하, 죄송합니다. 우리 우현 군과 연락할 방법이 도통 없어서요… 핸드폰 번호는 물론 모르고, 그리고 인터넷상으로도 접촉할 길이 없으니….”

하고 윤수정이 말하는데 엄규환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그만 극성팬이 달려드는 줄 알고….”

정우현이 KGI에 입학해 학교를 다닌 이래, 물론 그를 보기 위해 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 자체 경비의 방호와 무엇보다 정우현 개인 경호원인 엄규환의 노력으로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은 모두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정우현이 신입생이었던 작년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사람들의 난입이 종종 있었는데,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실상 윤수정의 노력이 컸다.

윤수정이 팬카페 그리고 최근엔 팬클럽을 통해 사람들에게, 정우현의 공부 및 평온한 학교생활을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물론 정우현과 엄규환은, 이런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정우현이 엄규환으로부터 명함을 건네받고 윤수정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즉각 환히 웃으며 인사했다.

“…저야말로 너무 반갑죠. …우현 군.”

하고 윤수정이 정우현을 바라보며 역시 인사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울컥했다.

오랜 시간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녀가, 드디어 정우현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그의 팬클럽 회장이 되어.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내 그녀가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재차 환히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윤수정입니다. 정우현 군의 오랜 팬이고요, 현재는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죠.”

하고서 그녀가 정중하게 허리를 한번 숙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정우현 군의 팬클럽, 우현수호단의 단장이기도 하고요.”

그러고서 윤수정은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하여간 정말 죄송합니다, 느닷없이 이렇게 찾아와서요.”

이에 정우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요즘은 따로 배우로서 활동하지 않고, 또 저를 관리하는 소속사가 따로 있지도 않고, 거기에 연락처라든가 이메일 등 제 개인 정보를 알 수도 없으니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거잖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얘기해 주니 고마워요, 우현 군….”

하고 그녀는 또 울컥해진 감정을 가까스로 다잡고 애써 본론을 꺼냈다.

“아,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요….”

“예!”

“우리 팬클럽 모임에 언제 한번 참석해 주십사 하고….”

“아아….”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또 우현 군이 요즘 학교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정 참석이 힘들다 싶으면, 편지 같은 것이라도 짧게 써 주시면 저희가 참….”

하는데 정우현이 느닷없이 크게 말했다.

“갈게요!”

“…네?”

“가겠다고요! 제 팬클럽 모임…! 저야 너무 고맙죠! 단장님!”

“…아….”

윤수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솔직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우현이 팬들을 위해 팬클럽 모임까지 나오는 건 여러모로 힘들다고 판단했다.

아직 어리고, 무엇보다 최근엔 그가 공부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한데 이렇게 직접 온다고 말을 한 것뿐만 아니라, 지금 그의 입에서 '단장'이라며 자기를 부르는 호칭까지 나왔다.

무려 정우현으로부터, 팬클럽 회장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데, 이렇게나 저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시니,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서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핸드폰이었다. 팬클럽 모임을 하기 위해선 회장인 윤수정과 일정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낸 것이다.

“…으음.”

하지만 이내 엄규환이 먼저 앞으로 나서서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리 팬클럽 회장에 현직 변호사인 윤수정이지만, 정우현이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통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변호사님. 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그럼 도련님과 상의해 일정을 맞춰 보겠습니다.”

윤수정이 건네준 명함에는 변호사 사무실 전화번호만 있고, 그녀의 번호는 나와 있지 않았다.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윤수정은 너무 기뻐서 즉각 엄규환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직접 통화 버튼까지 눌렀다. 그러고는 자신의 핸드폰에 엄규환의 발신 번호가 뜨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뛸 듯이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수정이 재차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하고서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봤다.

“미안해요, 우현 군. 제가 시간을 많이 뺏었죠? 얼른 가 보세요!”

“하하하, 아니에요, 단장님! 반가웠습니다!”

이에 윤수정이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고 끝인사를 하며 몇 마디 덧붙였다.

“…고마워요. 우리 수호단은, 우현 군에게 받은 게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현 군에게 보답하고, 우현 군을 지키기 위해 모였죠. 한데 드디어 함께하게 된다니,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 * *

몇 주가 지나, 서울의 한 대형 아트홀 안.

원래는 더 작은 시설을 대관하려고 했는데, 참석 인원이 너무 많아 이렇게 큰 홀을 빌리게 됐다.

무려 정우현의 팬클럽 우현수호단이 빌린 홀이다.

홀 앞에는 팬클럽 회장 윤수정이 서 있었다.

“여러분!”

“네에에에에!”

“…오늘 특별한 손님을 한 분 모셨습니다!”

“….”

홀 안이 고요했다.

사람들이 오로지 윤수정만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아니나 다를까, 윤수정이 그들이 원하는 단 한 사람의 이름을 크게 호명했다.

“…바로, 정우현 군입니다. 나와 주세요, 우현 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홀 내부가 마치 용광로처럼 들끓는 것 같았다.

이윽고 무대 한편에서 정우현이 등장하더니, 홀 중앙으로 와 사람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정우현이 오랜만에 복장을 갖추고, 드디어 공식적으로 팬들 앞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엄규환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를 위해 한시적으로 고용한 몇몇 사람들이 홀 곳곳에서 정우현을 경호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아!”

“정우현입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팬들의 함성이 잦아들지 않았고, 이에 카리스마 넘치는 윤수정마저 그들의 목소리를 낮추느라 꽤나 애를 먹어야 했다.

이윽고 다시 조용해진 홀 내부.

정우현이 재차 마이크를 들고 말을 이었다.

“정말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를 위해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하고 그가 재차 허리를 숙여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위해 제가 준비를 한 게 있는데요.”

“….”

정우현의 말에 팬들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무려 정우현이 무언가를 준비해 왔다니, 몹시도 궁금해진 것이다.

“…그럼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어두웠던 홀 뒤편에 밝게 조명이 비쳤다.

악단이었다. 피아노부터 해서 드럼 그리고 기타와 첼로까지 다양한 악기를 든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들이 정우현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한순간 일제히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정우현의 입에서 천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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