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학교 숙제로 인류의 오랜 수학적 난제를 해결한 정우현.
그가 해결한 문제는 다름 아닌 푸앵카레 추측(Poincaré Conjecture)이었다.
푸앵카레 추측은 앙리 푸앵카레라는 프랑스 수학자가 1904년 제기한 수학적 난제로, 간단히 하자면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 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다’라는 추측을 말한다.
이를 정우현이 마침내 수학적으로 참임을 증명한 것이다.
사실 푸앵카레 추측은 3차원보다 높은 4차원과 5차원 이상에서는 이미 각각 1985년, 그리고 1966년에 다른 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하지만 오직 추측 그대로 3차원에서의 해결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는데, 이를 무려 정우현이 해낸 것이다.
“…아들, 그럼 이제 숙제 끝낸 거야?”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예! 끝났어요!”
“…그럼, 더 이상 이렇게 방에만 안 있어도 돼?”
“네에에에에!”
다행이었다. 정우현이 어떤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것에 놀란 것도 잠시, 무엇보다 당장 이제 아들이 더 이상 수학 문제랑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어머니였다.
“…와아, 오빠.”
올해 일곱 살이 된 동생 정다현은 그간 제법 커서 벌써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축하해….”
“하하하, 고마워!”
“대단한 일을 해냈네….”
가족 중 유일하게 오빠 정우현이 이룬 위대한 성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녀 역시 오래전부터 정우현의 보살핌과 지도 아래, 오빠를 따라 이런저런 책을 즐겨 읽곤 했던 것이다.
정우현 덕분에 집에 온갖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하하하하하하하!”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크게 웃는 정우현이었다.
* * *
다음 날 한국 영재 학교 수학 시간.
수학 선생인 박주희가 교실에서 과제를 건네받았다.
정우현이 박주희 선생에게 얇은 종이를 수십 장 제출한 것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히 종이라기보다는 세 부분으로 나눠진 논문이었다.
“…이게 뭐니?”
선생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정우현에게 물었다.
“숙제요, 숙제! 다 해서 제출하는 거예요!”
“…아직 기한은 많이 남았는데….”
하면서도 천천히 논문의 첫 장을 넘기는 선생이었다.
사실 박주희 선생은 정우현이 올해 KGI 연구 과제로 수학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우현이 학교에서도 틈만 나면 알쏭달쏭한 수식을 자신의 노트에 적고는 했기에, 아이들이 곧장 알아차려 끝내 수학 선생인 그녀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그녀는 언젠가 정우현을 따로 불러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원한다면 선생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때 정우현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서 시간이 흘러 오늘날, 정우현이 자신의 손에 한 수학 논문을 가져온 것이다.
첫 장을 펼쳐보자마자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
본인의 판단이 맞다면, 아니, 미국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 실력을 자랑하는 NIT 출신의 본인 판단이 분명 맞을진대, 지금 정우현이, 그러니까 아홉 살짜리 소년이, 세계적 난제 중 난제로 꼽히는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 것이었다.
“…너, 이게 무엇인지 아니…?”
박주희 선생이 정우현의 논문을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한 장씩 넘기는 가운데 역시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 눈으로 직접 무지막지한 수식을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마음으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 푸앵카레의 추측이요!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 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다.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해 보자면! 어떤 하나의 닫힌 3차원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되어서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원구로 변형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비유하자면 만약 우주 한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던진 밧줄이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밧줄의 양 끝을 당겨 중간에 무언가가 걸리지 않는다면, 우주는 당구공처럼 대강 원구와 같은 모형일 것이라는 추측이죠! 만약 무언가에 걸린다면, 원구와 같은 모형이 아닌 거고요!”
“그래, 그래… 근데 네가 이걸….”
하고서 박주희 선생이 잠시 눈을 감고서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네가 증명했다는 거니? 이 수식들로…?”
“예에에에!”
어지러웠다.
1904년 푸앵카레가 제기한 이래 약 100년 동안이나 풀리지 않고 희대의 천재란 천재들은 좌절케 한 문제를 이 어린아이가 해결했다는 것이니까.
그녀는 한참이나 심호흡을 하고서, 다시 천천히 눈을 뜨고 말했다.
“…그래, 일단 알았다. …하여간, 고생했다. 이 논문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너는 참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인류의 오랜 수학적 난제를, 전력을 다해 매달려 풀어 보는 것은 말이야….”
하고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에게 말했다.
“…다들 오늘은 이대로 자습하렴. 나는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러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박주희 선생이다.
정우현이 제출한 논문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엄청난 수식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국수학회에 제출해 다수의 학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교육 기관과 수학자들로부터 모두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모든 검증 과정을 마쳐야만 공식적으로 수학의 난제를 해결한 사람으로 즉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것이었다.
그러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최대 몇 년도 걸렸다. 다양한 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 검증하기 때문이다.
“…정우혀어어어어어언!”
선생이 나가자마자 크게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권유라였다.
“…대단해!”
그녀 또한 친구 정우현이 그간 한 수학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몰라 궁금했었다.
워낙 거기에만 집중해 혹시나 방해가 될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정우현 본인도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색이었고.
“정말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거야?”
“응!”
“…와아.”
권유라는 과학 영재다. 즉 수학은 그의 전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정우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누구 못지않게 이해하고 있었다.
“대박….”
연신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내지르는 권유라다.
“…이제 널.”
그러고는 정우현을 마치 구세주처럼 바라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응?”
“천우현이라고 부를게.”
“…천우현?”
“응. 천재 우현. 줄여서 천우현. 너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진짜 천재니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천우현.”
“하하하하, 뭐야!”
정우현이가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었다.
“난 정 씨라고!”
“응, 정 씨지. 하지만 천우현이야. 천재 우현.”
“하하하하하!”
“우현아.”
이내 다른 아이가 정우현의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응?”
구태호였다. 구태호가 어느새 다가와 말을 붙인 것이다.
“…축하해!”
하며 존경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정우현을 바라보는 구태호다.
“하하, 축하는 무슨! 아직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도 아닌데!”
라고 말했지만, 이는 겸손의 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수식에는 단 0.0001%의 오류도 없음을.
문제를 해결한 뒤 또 수없이, 그것도 전부 다른 방법으로 자기 검증을 거쳤으니까.
즉 그가 공식적으로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아니야, 내가 아는 너는….”
하고 구태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조건 맞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고마워!”
구태호는 물론 친구들과 달리 수학이나 과학에 엄청난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정우현이 수학의 난제를 해결한 역사적 의미만큼은 잘 알고 있다.
수학은 잘 몰라도 수학사(數學史) 즉 수학의 역사는 그에게도 흥미로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구태호가 순간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오늘 우리 집 가서 놀래?”
“아! 하하하하하!”
“치킨 시켜 먹자!”
그러고서는 곧장 권유라를 보고 말을 이었다.
“유라도 같이!”
이에 셋이 다시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신나게 함께 어울렸다.
* * *
사람들은 가만 있지 않았다.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력 중앙일간지 한 곳이 먼저 크게 보도를 했다.
정우현이 오랜 수학의 난제를 해결했다고.
해당 언론사의 기자는, 이번에 정우현의 논문을 KGI로부터 제출받아 검증하고 있는 한국수학회의 한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제 막 시작한 검증이라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틀렸을 것 같지는 않다’라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소식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곧 퍼져 나갔다.
이와 함께 정우현의 논문 복사본은 세계 곳곳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본격적으로 전세계적인 정우현의 논문 검증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모든 언론이 뜨겁게 그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King Boy's Incredible Achievements Are Ongoing. (킹 보이의 인크레더블한 업적은 현재 진행 중.)’
‘数学強国日本、韓国にタイトルを奪う. (수학 강국 일본, 한국에 타이틀 뺏기나.)’
‘Wer ist der klügste Mensch aller Zeiten in Korea?’ (사상 가장 똑똑한 사람은 한국에?)’
‘100 साल बाद हल हुई गणित की समस्या. (100년 만에 풀린 수학의 난제.)’
각각 미국의 뉴욕 포스트, 일본의 아사이, 독일의 다스 빌트, 인도의 다이니크 힌두스탄 등 각국의 주요 언론 헤드라인이었다.
그 중 인터넷을 통해 웹 상에 올라온, 러시아의 한 기사는 정우현 또한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Математик, потерявший корону из-за короткой задержки. (간발의 차이로 왕관을 잃은 수학자.)’
해당 기사는 한국의 정우현과 그가 오랜 수학의 난제를 해결한 것 같다는 내용을 소개한 다음, 자국의 한 수학자가 역시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할 참이었으나 아쉽게도 때를 놓쳤다고 보도했다.
이에 관해 정우현은 알 수 없었다. 전생에서 수학이라면 중학생 때부터 애를 먹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수학의 난제란 게 있는지 모르니, 누가 그 문제를 언제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사실 전생에서 푸앵카레의 추측은 2002년 그러니까 정우현이 이번 생에 해당 문제를 해결한 현재 2001년으로부터 1년 후, 소련 태생 러시아 국적의 한 괴짜 수학자가 증명하게 된다. 물론 다른 수학자들의 검증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수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즉 원래대로라면 한 러시아 수학자가 36세의 나이로 다가올 2002년에 증명할 수학의 난제를 정우현이 1년 빨리 해결하고 만 것이다.
결국 러시아의 기사는 해당 수학자가, 자신이 입증할 문제를 한국의 한 소년이 일찌감치 발표한 것에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의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아쉽고 참담하지만, 인생에서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우주의 비밀과 수학적 신비에는 하등 관계없이 먼지와 다를 바 없는 놀음에 일희일비하며, 실제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실제로는 대단함을 넘어 경외로운 것을 하찮은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하고 수학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한 소년이, 내 평생의 수학적 연구를 해결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또한 결국은 받아들인다. 심지어 직접 본 그의 논문은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간결하며, 심지어 매혹적이어서 숨이 멎을 뻔했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평생을 오로지 수(數)와 함께 살아온 내게, 그것은 내 존재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형 선고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그의 말이 몇 마디 더 실린 채 기사가 끝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살아간다. 세상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학의 미스테리가 있고, 그것들이 있는 한 내 삶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일말의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한국의 위대한 소년이여. 비록 너로 인해 나는 잠시 혹은 꽤 오래 좌절하겠지만, 인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
한편 세계 곳곳의 저명한 수학자들은, 오랜 수학의 난제를 증명한 정우현의 위대한 수식을 두고, ‘
Woohyun's Theorem.’ 즉 우현의 정리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