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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44)화 (44/200)

44화

피치 38만 주 소유.

물론 단일 거래로 38만 주 모두를 소유하게 된 건 아니다.

10달러에 지정가 매수를 걸어, 계획한 투자금으로 여러 번에 걸쳐 물량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물론 미국 증시 상황이 워낙 안 좋고, 매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에 금방 38만 주 모두를 매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정우현은 전생의 2022년에 피치 사의 주가가 얼마쯤 되는지 심지어 해당 회사가 세계 시가 총액 1위를 달성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당시 에스 전자 핸드폰을 써서 에스 전자 주식을 1997년에 샀던 것처럼, 그와 양대 산맥인 피치 핸드폰을 떠올리며 피치 주식을 산 것이다.

전생의 2022년 상반기, 피치의 주가는 최고 180달러에 달했다.

한데 이 또한 여러 번의 액면 분할 후 주가였다.

정우현이 2001년 샀던 가격 즉 한 주당 10달러의 가치로 계산하면, 2022년 기준 피치의 주가는 약 5,500달러였다.

즉 피치는 2001년 닷컴 버블 때 대폭락 이후 주가가 550배 올랐다.

2001년 IT 기업들의 몰락 속에서,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기 어려워 폭락을 면치 못한 전자 회사가 약 20년 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솟게 됐다.

그 결과, 주가가 550배 상승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얘기는, 정우현 또한 2022년 기준으로 550배의 수익률을 올린다는 뜻이다.

즉 피치에 투자한 그의 5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2022년 무려 3조 원 가까이 불어날 터였다.

* * *

한국 영재 학교 대강당 안.

김민정 교장이 학생들을 앞에 두고 단상에 서서 말을 하고 있었다.

“올해로써 여러분은 우리 KGI에서 2년 차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

학생들은 가만히 교장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작년은 신입생으로서, 특히나 아직 어린 여러분이 학교라는 단체 생활을 거의 처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원활히 적응하라는 뜻으로 별다른 과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릅니다. 입학 당시 제가 이곳에 서서 한 말과 안내문, 그리고 교칙 등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이제 연구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과제를 해야 한다는 말에 학생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장이 이를 눈치채고는 바로 강조했다.

“연구 과제라고 하면 뭐 대단해 보이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작년 한 해, 우리 KGI 소속 우수한 선생님들의 교육을 바탕으로 여러분은 대략적으로나마 자신의 관심 분야를 알게 됐을 것입니다. 연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죠.”

“….”

“자, 그럼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어떤 주제든 간에 자유롭게 테마를 하나 선정해 연구하고 결과를 도출하십시오. 다만 여기엔 조건이 딱 두 개 있는데, 첫째, 새로워야 합니다. 주제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간에, 현재로선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합니다. 둘째, 반사회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무엇이라도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천재가 되느니, 선량한 바보가 되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 학교의 정신이기도 하죠.”

교장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민정 교장이 다시 더 큰 소리로 얘기했다.

“…조용, 조용! 궁금한 점이 있는 학생은 손을 들고 저에게 얘기하세요!”

이에 학생들이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었다.

구태호였다.

“…혹시 협업도 가능한가요? 그러니까 친구들과 한 팀이 되어 공동으로 연구 후 과제를 내는 게 허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안 됩니다.”

교장이 단호하게 답했다.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개별적인 과제가 필요해요. 물론 나중에 팀 과제가 주어질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오직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

“다만 친구들끼리 조금씩 도와주는 건 허용됩니다. 하지만 그 비중도 너무 커서는 안 돼요. 어디까지나 본인의 이름을 달고 내는 과제이니만큼 자기가 직접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또 질문 있는 사람?”

교장의 말에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다.

KGI에 입학한 이래, 제대로 된 첫 과제였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당장은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럼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기한은 올해 말, 겨울 방학 전까지! 연구 과제와 관련해 조언이나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각 과목의 선생님들한테 문의하도록 하십시오!”

* * *

KGI 교실 안.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각자 무슨 주제를 연구하고 과제로 낼지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우현과 권유라 그리고 구태호도 한데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생각해 둔 거 있어?”

권유라가 정우현과 구태호를 보고 말했다.

“응, 있어!”

먼저 구태호가 크게 답했다.

“…뭐?”

“고대 동아시아 각국의 법을 비교해 보고 싶어! 이왕이면 원문을 직접 찾아서!”

“와아….”

대한민국 3대 고시를 이른 나이에 패스하고 현직 검찰총장에 이른 법조인의 아들다운 주제였다.

권유라가 놀라며 말을 이었다.

“…대단하다.”

“하하! 유라 넌 뭐 할 건데?”

구태호가 곧장 되물었다.

“…으음.”

권유라가 조금 생각하고서 입을 열었다.

“엔진….”

하고서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동차 엔진에 관해서 연구해 볼까 생각 중이야.”

권유라 또한 국내 제일의 자동차 회사 사장의 딸이자 과학 영재다운 주제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서는 자연스레 시선이 정우현에게로 갔다.

“우현이 너는?”

권유라가 곧장 물었다.

과목 불문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는 그였기에, 누구보다 관심이 가기도 했다.

“….”

하지만 정작 정우현이 말이 없었다.

“응, 우현아?”

이에 구태호 역시 궁금해서 말을 붙였다.

“나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이내 입을 여는 정우현이다.

“세상은 워낙 넓고, 흥미롭고 궁금한 건 또 너무 많으니까 말이야.”

“으음, 그건 그래.”

권유라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내 정우현이 곧장 말을 이었다.

“아직 시간도 많겠다, 찬찬히 생각해 봐야지.”

* * *

정우현의 방 안.

그가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뭘 해야 할까.’

처음 그는 공식적으로 자신이 인정받은 분야 즉 영화와 관련해서 연구해 볼까 생각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제삼 세계의 영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유의미한 무언가를 이끌어 내거나, 상업 영화와 자본, 그리고 경제 체제의 관계를 특정 데이터와 함께 밝혀 보거나, 배우들의 연기 방식과 그것이 작품과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 혹은 영화화된 소설 기반 시나리오와 해당 소설의 표현 형식 및 차이 등 관심을 갖고 보면 흥미롭게 연구할 거리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영화와 관련한 생각을 단념했다.

정우현은 배우다. 그것도 이른 나이에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은 배우다.

즉 현재로서, 영화 쪽으로 그가 무언가를 더 이루고 싶은 마음이 딱히 없었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서 성인이 되어 성인 배역을 하거나 심지어 직접 글을 쓰고 메가폰을 들어 감독이 되면 모를까, 세계적인 아역 배우라는 현실로는 더 이상 마음이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대성공 이후, 계속해서 들어오는 작품 출연 및 시나리오 리딩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있기도 했다.

‘…으음.’

그가 모처럼 눈을 날카롭게 뜨고, 서재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초중등 교육 과정부터 시작해서 책을 여러 차례 읽고 바꾸고 읽고 바꿨다. 그 결과 지금 그의 서재에 꽂힌 책들은 각 분야의 학자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연구하고 있는 도서가 대부분이었다.

즉 지금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등 각국 대학이나 연구 기관의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전념하고 있는 분야의 전공 서적이, 그것도 원어 그대로 그의 커다란 서재에 꽂혀 있는 것이다.

사실 도서가 워낙 많아, 자신의 방 말고도 가족들이 쓰지 않는 남은 방 하나를 모두 책으로 가득 채우고도 공간이 모자랐다.

그리하여 그는 최근 오로지 자신만의 서고를 위한 창고 같은 공간을 집 밖에 따로 하나 마련할까 생각 중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재에 꽂힌 이런저런 서적을 살펴보다가는 한 책에서 시선이 멈췄다.

‘The Problem Of Mathematics.’ 즉, 수학의 난제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어려우면서도, 만약 해결된다면 앞으로의 수학 및 과학의 발전에 가장 기여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몇 가지 문제를 골라서 모아놓은 책이었다.

정우현 또한 그 책을 학습했다. 다만 더 어렸을 적, 분야를 불문하고 워낙 방대한 지식을 마구 머리에 집어넣다 보니 책에 수록된 난제들을 이해하고, 그 수학적 의미만을 조명하는 식으로만 정리하고 넘어갔다.

한데 이번에 학교에서 연구 과제를 제출해야 하기에 아주 오랜만에 다시 손이 간 것이다.

쿵.

두꺼운 책을 꺼내 책상 위에 폈다.

여전히 매혹적이었으나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물론 아무리 정우현이라지만, 오랜 시간 인류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사람들조차 좌절케 한 악명 높은 문제들답게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고서 그가, 드디어 한 문제를 골랐다.

이내 책만큼이나 두꺼운 노트에 수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우현아!”

어머니 황희진이 아들의 방에 들어와 놀라 소리친 때는 새벽 1시 23분.

정우현이 잠도 자지 않고 온통 수학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다가, 아들 정우현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 본 것이다.

“안 자고, 뭐해?”

“…아, 학교 숙제 중이요.”

“숙제?”

“네!”

하고 답하는 정우현을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봤다.

평소 같았으면 잠을 잘 시간이지만, 어쩐지 아들의 눈빛이 무척이나 강렬했다.

이렇게나 무언가에 흥미를 갖고 몰두하는 모습은 아기 때부터 그를 양육하고 지켜본 이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정우현에게 다가가 그를 품에 안는 어머니였다.

“…아들, 무슨 숙제를 이렇게 새벽까지 해. 일단 자고 내일 하자.”

“….”

“내일 학교도 가야 하잖아, 응?”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당장 학교도 가야 하고, 무엇보다 지금 정우현이 전념하고 있는 수학 문제가 단 하룻밤에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 현재 그의 수식 전개는 찬찬하니 순조로웠지만, 문제가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단시간에 해결될 수는 없었다.

또한 정우현의 수식이 옳아도, 그 옳은 과정을 각각의 단계에서 다른 방법을 사용해 자체적으로 검증하기도 해야 했다. 그게 바로 엄밀하기 짝이 없는, 수학이라는 학문이니까.

“…알겠어요.”

하고선 그가 어머니의 말을 따라 연필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미 한 자루를 다 써서 새로 꺼내 쓴 연필이었으나, 그마저도 잔뜩 닳아 있었다.

그러고는 잠자코 침대에 누워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엄마. 저는, 그럼 잘게요.”

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래, 우리 아들. 자자, 푹 자자.”

그러면서 어머니가 정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푸우, 푸우우….

시간이 지나, 이윽고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은 후에야, 아들의 방에서 나올 수 있었던 어머니다.

* * *

하지만 그와 같은 나날은 반복됐다. 정우현은 학교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

그의 방은 수식이 적힌, 수백 수천 장의 종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심지어 벽면에는 커다란 종이가 덧대어 있었고, 그 위에는 정우현이 어떤 중요한 공리(公理)라고 여기는 듯 유성 펜까지 사용해 크고 굵게 써놓은 수식이 적혀 있었다.

물론 컴퓨터 또한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단순 산술 등 수식 계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컴퓨터 덕분에 꽤나 절약할 수 있었다.

“…아아아.”

어머니가 정우현과 이와 같은 그의 방 모습을 보며 말을 잃었다.

다만 그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 어디까지나 자정 전에는 공부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또한 식사 시간에도 거실로 나와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것뿐, 정우현은 이전과 다르게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밥을 먹는 내내, 물론 학교에서도 내내 자신이 연구하는 수학 문제를 머릿속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여전히 늦은 밤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그의 방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의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생전 큰 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는 정우현이기에, 부모 그리고 여동생까지 놀라서 얼른 그의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벽면이고 종이고 온통 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정우현이 우뚝 서 있었는데, 왼손에는 역시 구겨진 종이가 들려 있고 오른손에는 연필의 검은 자국 즉 흑연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얼굴만은 환한 그가 가족들을 보자 한껏 미소 지으며 소리쳤다.

“저! 드디어 해결했어요!”

이에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숙제요, 숙제! 학교 숙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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