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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43)화 (43/200)

43화

정우현이 한국 영재 학교 모든 과목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게 다른 영재 아이들과 차이가 나는 시간이 따로 있었다.

바로 체육 시간이었다.

사실 일반 학교와 달리, KGI에는 공식적으로 체육 수업이 의무가 아니었다. 즉 외국어나 수학처럼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었다.

다만 영재 학교 특성상 그때그때에 맞춰 학생별로 여러 과목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학생들이 체육 과목 역시 자율적으로 선택해 참여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한데 의외로 모든 학생이 체육 활동을 했다.

지능이 무척 높은 학생들이라 해도 아직 나이가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나 강당에서 뛰어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물론 이로써, 정우현의 놀라운 신체 능력은 단박에 드러났다.

“…와아.”

기본적으로 달리기는 물론이요, 멀리뛰기, 높이뛰기, 오래달리기 등 단순 기초 체력과 힘, 그리고 속도 등에서 일단 월등히 차이가 났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거야?”

권유라가 거칠게 호흡하며, 일찌감치 결승선에 들어온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하하하하! 그냥 열심히 하면 돼!”

“…농담이지?”

심지어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는 정우현이었다.

이번엔 잔디가 깔린 운동장.

남녀 혼성으로 10:10 축구를 하는데, 필드를 누비다 못해 거의 혼자 공을 차는 소년이 있었다.

역시, 정우현이었다.

“…아…!”

“나 안 할래!”

급기야 경기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도무지 정우현이 공을 잡으면 뺏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정우현의 득점 포인트는 22득점 12도움.

무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한 기록이다.

그것도 나중에는 아이들이 재미없어하자, 일부러 공을 주며 슬슬 뛰었음에도 이와 같았다.

“우현아, 넌 다음부터 오른발로 공 차지 마!”

급기야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음, 알았어.”

그렇게 답하고서 시간이 흘러 며칠 후, 다시 축구 시합.

정우현의 득점 포인트는 21득점 8도움이었다.

한 아이의 말대로 오른발로는 일절 공을 차지 않고, 오로지 왼발로 슈팅을 하고 패스를 한 끝에 달성한 포인트였다.

사실 정우현은 양손잡이에 양발잡이였다.

아기일 때부터 왼쪽 신체를 쓰는데, 오른쪽 신체를 쓸 때와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급기야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 다음부터 우현이랑은 축구 안 해!”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니야, 좋은 방법이 있어!”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구태호였다.

구태호도 축구를 잘했다. 하지만 정우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아이들 가운데 서서는 크게 말한 것이다.

“…뭐?”

아이들이 궁금해서 그에게 집중했다.

“정우현은 앞으로 뭘 하든 깍두기를 하면 돼! 여기저기 오가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깍두기! 어때, 그럼 공평하지?”

“…오.”

일제히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들이었다.

“좋다!”

“맞아, 맞아!”

법조인 아들다운 명쾌한 판단이었다.

“우현아, 괜찮지?”

구태호가 곧장 정우현을 보고 물었다.

“응, 난 상관없어!”

정우현이 환히 웃으며 답했다.

실상 그는 승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실력이 비등한 상대가 있었다면, 경쟁심이 조금이라도 생겼을 텐데 그런 아이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구태호의 말대로 체육 시간에 깍두기 역할을 했다.

한데 아무 편에도 속하지 않는 깍두기 정우현은, 곧 아이들에게 일종의 체육 선생이 되었다.

무슨 동작을, 무슨 운동을 하든 정확하면서도 부족함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완벽한 본보기가 된 것이다.

비록 영재 혹은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학생들이지만, 신체 활동이라면 다른 초등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무척 씩씩하고 튼튼한, 권유라 같은 여학생이 다른 남학생들보다 빨리 달릴 때도 있었다.

이에 체육 시간의 정우현은 그야말로 별종 중 별종이었다.

“우현아! 넌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어느 날, 역시 아이들에게 멀리뛰기를 잘하는 법을 가르친 정우현에게 권유라가 느닷없이 말했다.

“응? 공부고, 운동이고, 그리고 연기고! 대체 못 하는 게 뭐냐구!”

“…하하하하….”

“…그리고 솔직히 너.”

“…응?”

“잘생겼잖아… 하긴 그러니까 배우겠지… 하….”

하면서 괜히 허탈감을 느끼는 권유라다.

무려 한국 재계 2위 그룹의 외동딸이 동갑내기 아이인 정우현을 부러워하며, 탄성을 내지르는 것이다.

급기야 권유라가 잠시 고심하더니 한순간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현아.”

“응?”

“…너.”

“왜?”

권유라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파헤치기라도 하는 듯, 커다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무슨 유전자 강화나 돌연변이로 태어난 신인류… 그런 거 아니야?”

“….”

정우현이 잠시 권유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한순간 무진장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게 뭐야!”

과학 영재이자, 상상력이 풍부한 권유라다운 생각이었다.

* * *

시간이 흘러 2001년.

대한민국은 용케도 오랫동안 경제를 짓눌러 왔던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데 정작 해외에서, 특히 소련의 몰락 이후 명실공히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된 미국을 시작으로 심상찮은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닷컴 버블 즉 IT 기업들의 대거 몰락이다.

90년대 말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세계적으로 자본이란 자본은 각종 IT 기업에 쏠리며 버블을 형성했다. 인터넷이라는 파격적인 기술 혁신을 따라 장밋빛 미래를 기대한, 일종의 눈먼 돈이 만든 현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고 이내 부실한 IT 기업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다.

물론 폭등했던 주가는 단숨에 원점으로 돌아갔고, 아예 상장폐지 즉 회사가 사라지는 사례도 속출했다. 심지어 덩치가 큰 회사들도 그랬다.

‘…으음.’

정우현이 집에서 티브이를 보며 미국발 닷컴 버블 보도를 지켜보는 가운데 생각했다.

‘…그렇지, 이런 일이 있었어.’

역시나 아쉽게도 그는 전생에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뒤늦게 티브이를 보고서 닷컴 버블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는 늦지 않았다. 그는 그들 IT 기업의 미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즉 수많은 IT 기업이 무너지는 가운데, 몇몇 기업은 살아남아 21세기를 이끌어가는 대표 빅테크 회사로 거듭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무슨 회사가 있었지.’

그러고선 정우현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 회사도 잘 몰랐던 그가 미국의 회사를 잘 알 리는 없었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피치(Peach). 복숭아를 한 입 베어먹은 모양의 과일 로고로 유명한 전자 회사다.

미국 회사인 피치는 일찍이 컴퓨터와 운영 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다가는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정우현이 투자한 한국의 에스 전자와 핸드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했으나, 명백히 피치는 에스 전자보다 규모가 큰 회사였다.

에스 전자는 전생의 2020년대 기준, 시가 총액이 세계 10위에서 20위 순위를 왔다 갔다 한 반면, 피치는 거의 항상 부동의 1위를 점했으니까.

즉 정우현이 떠올린 회사 피치는 가까운 미래에 세계 1위의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래, 피치. 난 비록 국산 에스 전자 폰을 계속 썼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피치 스마트 폰을 썼지. 즉 피치는 이번 닷컴 버블에 무조건 살아남는 것은 물론, 훗날 엄청나게 성장할 회사야.’

그렇게 기업을 정하고 매일 미국 주식 시장에 집중했다.

과연 피치의 주가는 1997년부터 2000년 초 즉 닷컴 버블이 정점을 찍는 시기에 약 일곱 배에 달하는 엄청난 성장률을 자랑했지만, 2000년 말에 폭락을 시작하더니 올해 2001년에 들어서는 참담한 주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현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최저점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매일 미국 주식 시황을 분석하는 가운데,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어느 봄날.

정우현이 경호원 엄규환에게 말했다.

“실장님, 오늘은 증권사 좀 들러요.”

“…증권사요?”

“예.”

엄규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매일같이 거의 학교만 다녔던 정우현이니 그럴 만했다.

“무슨 일 때문에요?”

“주식을 사려고요.”

“…아.”

정우현은 1997년, 에스 전자의 증권을 살 때처럼 아버지와 함께 증권사에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최근 빌딩 관리에 능숙해진 가운데, 정우현이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준 2천만 원을 차곡차곡 모아 서울의 오피스텔을 추가로 매입했다.

즉 아버지 정기석 또한 그의 명의로 임대 사업자가 된 것이다.

이에 빌딩 관리 겸 임대 사업까지 할 일이 더욱 늘어만 갔지만, 몹시도 행복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나이 마흔 가까이 돼서 천직을 하나 찾았네, 찾았어! 바로 건물 관리!”

“좋다, 좋아!”

어머니 황희진 또한 좋아했다. 그녀도 남편과 함께 건물 관리에 매진했기에, 이번 오피스텔 매입 시 공동 명의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즉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임대 사업자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바빴다. 또한 정우현이 이번엔 미국 주식을 산다기에, 일찌감치 동의한 상태이기도 했다. 순전히 아들 덕분에 건물주가 됐기에, 정우현의 말이라면 이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였다.

“엄 실장이랑 간다고?”

“예!”

“…으음, 그래. 잘 갔다 오렴!”

아버지는 믿음이 갔다. 면접 때부터 그랬지만, 약 1년을 지켜본 결과, 경호원 엄규환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성실했고, 또한 충직했으니까.

한번은 그의 근면 성실함에, 아버지가 정우현 몰래 그에게 따로 돈을 준 적이 있었다. 정장도 한 벌 장만하는 등 이것저것 쓰라고 일종의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 준 것이다.

한데 정작 엄규환은, 그 돈을 일부만 저축하고 나머지는 모두 정우현네 가족의 선물을 사는 데 써, 아버지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신뢰를 받았다면, 신뢰를 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받은 돈으로 산 홍삼을 아버지에게 선물하며 그가 한 말이었다.

* * *

여의도의 증권사.

이번엔 4년 전과 확연히 달랐다.

즉 낡아 빠진 슈퍼카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에스 전자를 살 때와 달리, 직원들이 경호 차량을 타고 온 정우현을 보자마자 즉각 VIP 고객 상담실로 모셔 간 것이다.

글로벌 스타 정우현. 정확한 자산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무지막지한 세계적 흥행으로 수입이 엄청날 것이라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심지어 97년도에 산 에스 전자가 감쪽같이 반등하기도 해, 이미 그의 이름으로 주식 자산이 꽤 있기도 했다.

“…피치를 사시겠다고요?”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해외 주식 팀장이 정우현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음, 우현 고객님. 물론 주식의 매매야 고객님의 자유의사에 따르지만, 자산 운용사이자 해외 주식 팀장인 제가 보기에는….”

하고서 그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위험해요, 무척 위험하단 말이죠. 당장 뉴스만 봐도 알겠지만, 닷컴 버블이다 해서 연일 IT 기업들이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죠. 근데 피치를 매수한다니요… 제 직함을 걸고,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팀장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피치가 물론 뛰어난 IT 회사이긴 했지만, 다른 IT 회사들을 압도하고 살아남으며 독보적으로 성장하리라고는 당연히 예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바라보면, 다른 유수의 IT 기업들처럼 몰락하고 급기야 사라질 가능성이 더 커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IT 산업 차체가 헛된 꿈이며, 종국적으로는 완전히 무너져 영영 회생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는 극도로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턱대고 고객에게 피치를 추천한다면, 자산 운용사로서의 본분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애초 유력 증권사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을 테다.

“…아니요!”

그럼에도 정우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말했다.

경제나 주식은 잘 모르는 경호원 엄규환은 그런 정우현 뒤에 서서 잠자코 그를 보고 있었다.

“그냥 살게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괜찮아요!”

“…으음.”

하고서 올백머리의 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이 기어코 주식을 매수하겠다는데 반대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산 운용사이자 주식 중개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그저 피력해 볼 뿐이었다.

더군다나 어쨌든 증권사로서는 수수료도 챙기고 득이 되니까.

그렇게 해서 정우현은,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에 따른 IT 기업의 폭락이 절정에 달했을 시, 미국 전자 회사 피치의 주주가 되었다.

당시 피치는 폭락하고 폭락해서 약 10달러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에 정우현은 해당 주식을 정확히 50억 원, 50억 원어치를 샀다.

빌딩을 사고 이것저것 돈을 쓰고, 물론 매달 적지 않은 임대료를 벌어들이는 가운데 통장에 남은 여윳돈이었다.

이로써 그는 피치의 주식을 약 38만 주나 소유하게 됐다.

그것도 헐값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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