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41)화 (41/200)

41화

“…응?”

정우현이 고개를 돌려 구태호를 바라봤다.

또한 권유라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도 그를 봤다.

그간 구태호는 다른 아이들과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기에, 아이들 입장에서도 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

“응.”

“…라틴어 가르쳐 줄 수 있어?”

“하하!”

정우현이 구태호의 부탁에 환히 웃었다.

“당연하지!”

“…고마워.”

그러고선 뒤늦게 자신이 통성명도 안 했음을 깨닫고 급히 말을 이었다.

“아, 난 구태호라고 해.”

“알아!”

선생들이 이미 몇 번 학생들의 출석을 불렀기에 정우현은 모든 학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

“난 정우현이야!”

“응, 나도 알아.”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오른손을 내밀었다.

구태호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다.

구태호는 잠시 정우현의 손을 보다가는,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러자 입학식 날 정우현과 이미 악수를 한 권유라가 곧장 힘차게 그들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이렇게 KGI 입학생 중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아이가 처음으로 함께하게 됐다.

* * *

구태호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고시의 전설로 불리는, 현직 유력 검사의 아들로 태어나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심지어 어릴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뛰어난 모습을 보이니 더 그랬다.

하지만 그만큼 압박감도 컸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압박, 아버지의 명예를 떨어트려선 안 된다는 압박. 때로는 그로 인해 괜한 불안감을 느끼고 지칠 때도 있었다.

한데 난생처음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아이, 즉 정우현을 눈앞에 두게 됐다.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도 잠시, 그래도 똑똑한 아이답게 그는 중요한 하나를 깨달았다. 정우현 앞에서 자신이 완벽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완벽할 필요도 없음을.

‘…나 따위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난 애가 있었어….’

구태호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해맑게 웃고 있는 정우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다행이야. …나는 나대로 그저 즐겁게 공부를 하면 되니까.’

만약 구태호가 보기에 정우현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의 차이로 앞섰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를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을 테니까.

하지만 수업 시간에 본 그의 외국어 실력은 정말 무지막지해서, 구태호로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우현아!”

구태호가 정우현을 크게 불렀다.

“응?”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정우현이 조금 생각하더니 곧장 외쳤다.

“…그래!”

그러고는 구태호가 고개를 돌려 권유라를 보고 말했다.

“유라도 가자!”

“…나도?”

“응!”

“…좋아!”

권유라가 이미 정우현을 내심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도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좋아, 좋아! 오늘 다 같이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거 먹자! 우리 엄마, 케이크도 직접 만들어 주셔! 하지만….”

하고 말끝을 흐리는 구태호에게 권유라가 곧장 되물었다.

“…응?”

“난 치킨이 제일 좋아! 우리, 치킨도 시켜 먹자!”

구태호의 의외의 모습에 정우현이 환히 웃었다.

“하하하!”

그 모습에 구태호는, 더 안도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아이, 정우현으로 인해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 * *

며칠 후 다시 KGI 수업 시간.

이번엔 수학이었다.

수학 선생은 박주희라는 국내 출신의 수학자였다. 수학 쪽으로 세계 제1위인 네바다 공과 대학교(Nevada Institute of Technology) 즉 NIT를 조기 졸업하고 해당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다.

그녀는 수학의 각 개념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문제들을 알기 쉽고 빠르게 학생들에게 설명한 뒤,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그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곤 했다.

수학만큼 직접 문제를 풀고 궁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학문은 없다, 이것이 평소 그녀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

한데 어디선가 힘겨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태호였다. 구태호가 외국어 수업 시간과 달리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식(數式)을 마구 적다가는 한순간 막혀 잠자코 노트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재로서 수학적 재능은 비교적 평범했다.

물론 여덟 살인 그가 현재 풀고 있는 문제는 대학 입시 수준에서도 난도가 높은 것이어서, 아무리 영재라지만 애를 먹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에 잠시 손을 놓게 된 것이다.

“…으.”

“…왜, 태호야?”

구태호가 연신 앓는 소리를 내자 정우현이 뒤를 돌아 물었다.

그는 물론 모든 문제를 일찌감치 다 푼 상태였다.

“…어렵네, 이거.”

“…어디?”

하고서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태호 곁에 다가왔다.

박주희 선생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 태도를 존중해, 공부와 관련된 일이라면 수업 시간에도 얼마든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용했다. 학생들끼리 힘을 뭉쳐 학습하거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은, 수학, 아니,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태호가 애를 먹고 있는 문제는 무한등비급수의 도형 파트였다.

“…피타고라스 정리까지는 했는데 그 다음은 모르겠어….”

“…으음, 이거는.”

하고 정우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수선의 발 알지? 수선과 일정한 직선이나 평면이 만나는 점.”

“…응.”

“피타고라스 정리대로 하면 이건 정삼각형이 되거든. 그럼, 점 C는 당연히 수선의 발이니까 선분 BC의 길이는 4루트3 이잖아.”

“…와아.”

구태호가 정우현의 문제 풀이에 놀라기 시작했다.

정우현은 직접 수식까지 써 가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설명은 약 3분간 계속됐다.

그러자 구태호가 한순간 이제 거의 알았다는 듯 정우현을 거의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단해!”

하지만 정우현은 아직 안 끝났다는 듯 흔들림 없이 문제 풀이를 계속했다.

“…그렇게 공비(公比)를 구하면 다 끝난 거야. 봐봐, 마지막으로 간단히 번분수 계산을 하면, 자, 4번이지.”

“…응!”

“어때, 쉽지?”

“하하하하하! 네가 풀어 주니까 쉬운 것 같은데, 나중에 내가 직접 하면 또 다르지 않을까!”

“음, 무한등비급수 문제는 공비, 공비를 찾는 게 핵심이야. 아무리 문제가 어렵고 복잡해 보여도, 패턴이 있다는 거지. 그걸 찾으면 술술 풀리고.”

“…고마워, 우현아!”

이젠 정우현이라면 언제든 좋은 구태호였다.

“고맙긴, 아, 태호야.”

하고선 정우현이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너 치킨 좋아하지?”

“…어? 어? 응!”

아직 다른 아이들은 문제를 풀고 있는 만큼, 공부 외의 대화로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오늘 직접 닭 튀긴다고 했거든? 가자, 우리 집. 유라도 같이.”

이전에 구태호네 집을 권유라와 셋이 갔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함께하자고 한 것이다.

구태호도 정우현이 목소리를 낮췄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역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아. 응, 좋아.”

하는데 누군가가 교실 한편에서 크게 말했다.

“…아싸아!”

권유라였다. 권유라가 그들의 대화를 용케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재밌겠다!”

“…조용, 조용!”

권유라가 수업과 관련 없는 소리를 크게 하자 급기야 선생이 주의를 줬다.

“조용해야지, 권유라.”

“…예, 알겠어요….”

이에 그녀가 선생의 꾸중에 이내 조금 기가 죽었다.

“너 문제 다 풀었니?”

“…예!”

하고 권유라가 금세 또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가져와 봐!”

선생은 아무리 뛰어난 아이들이라지만 이렇게나 빨리 문제를 다 풀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 한 학생, 정우현은 빼고.

박주희 선생도 정우현이 KGI를 수석으로 입학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를 주의 깊게 봤고, 아니나 다를까, 믿기 힘든 수준의 실력이었다.

무슨 문제를 주든 단숨에 풀어 버리고 조용히 연필을 책상에 내려놓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작년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수리 영역을 바탕으로 다소 변형한 문제지를 가져와 나눠 줬더니 정우현이 무려 순식간에 다 풀어 버렸다.

한데 그보다 늦기는 했지만 권유라도 다 풀었다면서 결정적으로 떠들기까지 하니, 선생으로서 그녀의 답안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권유라가 자신의 답안지를 선생님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넸다.

아무리 씩씩한 그녀라지만 이 순간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나 실수해서 문제를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으음.”

하고 박주희 선생이 그녀의 답안지를 보다가는 금세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

권유라는 여전히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선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 맞았구나.”

“와아!”

“…잘했다.”

“감사합니다!”

권유라가 무진장 기쁜 표정으로 크게 답하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수학이라면 항상 자신 있어요!”

“…그래?”

하고 박주희 선생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예!”

“…그럼, 한 문제만 더 풀어 볼래?”

그러면서 선생이 자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에 권유라가 바로 답했다.

“…좋아요!”

“그럼 잠깐 있어 봐.”

하고 선생이 즉석에서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짧지만, 쉽지 않은 미분방정식이었다. 물론 미분방정식에선 기초적인 수준의 일계 미분방정식이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미분방정식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으음!”

권유라가 문제를 보고 바로 연필을 들고 풀이를 시작했다.

여느 영재들처럼 그녀는 더 어린 나이부터 일찌감치 선행 학습을 해 왔다. 그리고 특히 수학 및 과학 쪽으로 머리가 발달한 그녀는, 여덟 살의 나이에 미분방정식을 알고 있었다.

미분방정식은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서나 접할 수 있다. 과학고 같은 과학 및 수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에서는 기초적인 수준에서 미리 가르치기도 한다.

물론 KGI에서도 당연히 배울 수 있으나, 수학 수업이 시작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거기까지는 진도가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오케이…!”

권유라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문제 풀이를 시도하다가는, 마침내 답을 구했다.

그러면서 살짝 웃어 보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 했어요!”

“그래, 그래….”

하고 박주희 선생이 답을 확인했다.

정확했다. 정확한 답이었다.

그러고서는 권유라가 풀이한 수식을 보고서 말을 이었다.

“…변수분리법을 알고 있구나.”

“…예!”

“쉽지 않았을 텐데, 잘했다.”

하고서 선생은 곧장 종이를 더 꺼내 다른 미분방정식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해 볼 수 있겠니?”

그러자 권유라가 흥미를 보이며 곧장 답했다.

“예!”

“…그럼 한번 해 보렴.”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아.”

아니나 다를까, 권유라가 처음으로 수학 시간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였다.

연신 이런저런 방식으로 문제 풀이를 시도했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러고서는 조금 얼굴을 찡그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못 하겠어요.”

“…그래, 그래.”

이에 박주희 선생이 지그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송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아직 못 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니까. 유라가 이전의 문제를 푼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그러면서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교실 앞으로 가 권유라에게 낸 문제를 칠판에 적었다.

그러고서는 학생들을 보고 말했다.

“한번 풀어 볼 사람?”

“….”

조용했다.

아무도 그 문제를 보고, 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학생 중 수학 실력이 최정상에 속하는 권유라가 풀지 못한 문제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없어?”

그럼에도 박주희 선생이 계속 아이들을 둘러보다가는 슬며시 정우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실 그녀는 정우현에게 이 문제를 풀어 보게 하고 싶었다.

이 문제로써 그의 수학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와아.”

아니나 다를까, 정우현이 가만히 주위를 살피더니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런 정우현을 보고 아이들이 놀라서는 탄성을 내질렀다.

“오, 우현이!”

선생이 기다렸다는 듯 크게 말했다.

“예.”

“풀 수 있겠어?”

“해 보겠습니다.”

“그래!”

사실 정우현은 다른 아이들이 먼저 풀기를 바랐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해서, 항상 수업시간에 자신만 문제를 풀거나 발표를 하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가 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뭐든지 혼자 잘났다고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즐거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문제 풀 사람을 찾는 선생의 말에도 손을 들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기에,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서는 자신이 손을 들었다.

“얼른 나오렴!”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우현이 앞으로 나와, 커다란 칠판에 곧장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삭삭삭삭. 삭삭.

교실에는 정우현이 분필로 칠판 위에 빠르게 풀이를 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에 권유라는 물론 모든 학생들이 가만히 정우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모두 말을 잃었다.

칠판에 온갖 복잡한 수식이 가득 찬 것이다. 심지어 정우현은 풀이 중 단 한 번도 막히거나 주저하는 일이 없었고, 기존에 쓴 수식을 지우개로 지우거나 변형하지도 않았다.

“…다 풀었습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마침내 뒤로 돌아 선생을 보고 말했다.

“….”

선생이 놀라운 눈으로 풀이와 답을 바라봤다.

답은 물론 풀이까지, 단 하나의 오류도 없었기 때문이다.

풀이에는 무려 삼각치환과 라플라스 변환까지 사용되었다.

정우현의 풀이를 그대로 기재해 해설로 제시해도 될 정도로 효율적이면서도 탁월했으며 결정적으로 창의성이 있었다. 즉 완벽했다.

실상 박주희 선생은 애초 정우현이 문제 풀기를 기대했지만, 이렇게나 잘 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선생이 그렇게 한참 정우현의 수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는, 끝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 대단하구나.”

* * *

“와아….”

“정우혀어어어어어언!”

수학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교실은 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이들이 다시 정우현에게 몰려든 것이다.

“우현아, 넌 진짜 최고최고야아아아!”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역시 권유라였다.

권유라가 잔뜩 흥분해서는 정우현에게 온갖 찬사의 말을 하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정우현은 권유라의 말에 기분이 좋아서 그저 웃었다.

“…어쩜 그렇게 잘하는 거야! 와! …내 또래 중에서 나보다 수학 잘하는 사람은 진짜 처음 봤어!”

하고서 그녀가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우현 너는 진짜….”

그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외쳤다.

“…킹왕짱! 최고최고! 정우혀어어어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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