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박수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찬 미국 LA 돌비극장 안.
정우현의 아카데믹 신인상 수상에 가장 기뻐하는 이는, 놀랍게도 정우현 본인이 아닌 브래드 퍼트였다.
“오오오오오오오우! 예에에에에에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짐승처럼 포효하며 격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에 정우현도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약간은 얼이 빠진 기분으로 밖으로 나가려는데, 순간 전신이 공중으로 붕 떴다.
또 브래드였다. 브래드가 그를 번쩍 들어 항상 그랬듯 목말을 태운 것이다.
그러고서는 성큼성큼, 거의 고릴라가 이동하듯 큰 보폭으로 곧장 무대 앞으로 나갔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은 그 모습이 또 놀랍고 재밌어서 마구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우오우오우오우! 하! 하하하!”
브래드는 정우현을 목말 태운 채로 무대에 나가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무대를 한 바퀴 돌며 계속 소리를 지르고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이에 사람들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우, 브래에에에에드!”
물론 정우현도 신나서 연신 소리를 질렀다.
이 모습에 급기야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하하하하, 브래드! 이제 그만 킹 보이를 놓아주세요! 당신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에요!”
그제야 브래드는 정신을 조금 차리고 무대 정중앙으로 와서는 어깨 위에 있는 정우현을 다시 번쩍 들어 살포시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드디어 킹 보이가 풀려났군요!”
다시 재치 넘치는 사회자의 말에 사람들이 웃었고, 정우현은 브래드를 올려보며 신난다는 듯 계속 웃다가는 드디어 마이크 앞에 섰다.
“아, 아, 브래드 덕분에 무대에 편히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하!”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무려 신인상을 받은 데다 영어도 유창한 배우 정우현이지만, 그들이 보기엔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온 작은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기에 마냥 귀여웠다.
“음….”
정우현이 이제 수상 소감을 밝히려는 듯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어 눈을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모든 영화인의 꿈인 이곳 아카데믹 시상식에서 상을, 그것도 생에 한 번뿐인 신인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고는 가슴이 벅찬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이곳에 올라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먼저 제 고국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미국 땅에서 저를 지켜보시고 뽑아 주신 우리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님이 계시고요, 낯선 곳인데도 물심양면 따뜻하게 저를 신경 써 주신 모든 스태프, 사랑하는 우리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까지 전부 그분들의 힘이 있었기에 제가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짝짝짝짝! 짝짝!
겸손한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이분을 꼭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하고서 정우현이 다시 환히 웃으며 몸을 돌려 브래드 퍼트를 바라봤다.
브래드는 정우현을 무대에 내려 주고, 그가 수상 소감을 얘기하자 언제 마구 몸을 흔들었냐는 듯 점잖게 서 있었다. 물론 한껏 미소를 띠며 정우현을 내려보고 있는 채로.
“…브래드! 내 친구 브래드가 아니었다면 상을 받아도 이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았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브래드! 당신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어요!”
“하하하하하!”
브래드가 드디어 다시 웃더니 한순간 정우현을 다시 번쩍 들어 이번에는 한팔로 그를 안고 섰다. 그러더니 마이크 앞으로 가 말했다.
“우! 내가 조금 말해도 될까?”
“하하하하! 그럼요!”
“고맙다, 고마워.”
하고는 여전히 우를 안고 선 채로 객석을 한번 둘러보는 브래드다.
그러더니 그가 한마디 했다.
“여러분.”
사람들이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전설의 배우, 아니, 아니… 장차, 배우를 넘어 전설의 위인으로 우뚝 솟을 한 사람의 어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그가 더 큰 목소리로 확신에 가득 차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해 두십시오! 그리고 우리 인크레더블 우의 이름 정! 우! 현을 절대 잊지 마세요! 언젠가 어떻게든! 또다시 놀라운 소식과 함께 듣게 될 이름이니까요!”
그러고서는 그가 슬며시 정우현을 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다시 짓더니 한마디 더 했다.
“물론 브래드의 친구라는 것도요!”
“하하하하!”
브래드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이 웃으며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애초 정우현과 브래드가 가까운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아예 수상 이후 둘이 무대로 함께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고는 감격스러운 마음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결국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스타와 감독, 그리고 제작자 등 할리우드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뜨거운 기립 박수였다.
짝짝짝짝! 짝짝!
인종과 나이를 초월한 둘의 우정에 사람들이 보내는 갈채였다.
* * *
이것으로 영화제는 모두 끝이 났고, 정우현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됐다.
그렇게 돌아가는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에 수신 이력이 있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정우현 군, 아카데믹 신인상을 축하드립니다!”
일전에 정우현에게 광고 촬영을 제의했던, 프레즈노에서 포도를 생산해 판매하는 여성 사업가였다.
그녀는 수상과 관련해 몇 마디 얘기를 더 하며 정우현을 기쁘게 하고서는, 본격적으로 용무를 밝혔다.
“그럼, 아직 LA에 있는 건가요?”
“…예!”
“…아, 그럼 다시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리 식품 모델이요! LA에 있으시니 여기 프레즈노까지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응해 주시면, 당연히 교통편은 저희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 함께 속하는 LA와 프레즈노는 221마일 즉 355km 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로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는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그리 오래 걸리는 시간도 아니다.
“…음.”
하고 정우현이 잠시 생각하다가는 끝내 짧게 답했다.
“…알았습니다!”
“와아!”
이에 사업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이 광고 촬영을 위해 이곳 캘리포니아까지 오는 게 부담스러웠다.
한데 이번엔 시상식 참석차 오게 된 김에 가서 잠깐 촬영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 광고는 아직 한 번도 촬영해 보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 * *
그렇게 정우현은 포도 사업체가 제공하는 차량을 어머니 황희진과 함께 타고 편히 프레즈노 촬영장까지 갈 수 있었다.
거대한 포도 농장 한가운데에 역시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포도 생산 및 판매와 관련한 모든 일이 이뤄졌다. 촬영장도 건물 한편에 마련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하고 정우현을 맞이하는 마른 체형의 중년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그에게 전화했던 사업가였다.
사업가는 정우현과 인사차 몇 마디 더 나누고서는 물었다.
“…혹시 머무를 곳은 정하셨나요? 그래도 촬영하려면 최소 반나절은 걸릴 텐데, 오늘은 프레즈노에서 하루 묵고 가세요. 아직 안 정하셨다면, 제가 숙박도 전부 다….”
하고 말을 잇는 그녀에게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아니요!”
“…예?”
“촬영은 30분!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시간이면 끝나요!”
“…30분이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사업가가 묻는 가운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셨습니까?”
목에 이런저런 문신을 한 광고 촬영 감독이었다.
그 역시 정우현과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다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띠고 말했다.
“하하하, 우현 군. 광고라고 해서 쉬워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요! 광고야말로 상업 영상의 모든 기술이 응축된 작업이기에,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즉 완벽해야 한다는 얘기죠!”
이에 정우현이 곧장 답했다.
“그렇다면!”
그가 세트장에 앞장서 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포도가 여러 바구니에 담겨 있는 등 이미 식품 및 소품 배치가 완료된 상태였다.
“일단 해 보겠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니까요!”
* * *
“….”
약 15분이 지난 가운데, 프레즈노의 포도 사업가는 물론 광고 촬영 감독 및 모든 스태프가 말을 잃었다.
정말 정우현의 말대로 모든 촬영이 끝난 것이다.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실상 한국에서 광고 촬영을 하며, 아무리 길어도 20분을 넘겨 본 적 없는 정우현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촬영한 광고는 티브이에만 방영되면 워낙 반응이 좋아 제품의 매출이 급격히 오르는 등 어김없이 재계약 제의가 들어오고는 했다. 물론 정우현이 다달이 임대료 수입을 얻게 되면서부터 거의 다 거절한 상태이긴 하지만.
“…하하하.”
촬영 감독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리우드에서 나온 말이 정말이군요…!”
“…뭐가요?”
정우현이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 솔직히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 관련해서 정우현 군을 언급하는 기사를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면, 아무리 잘해도 그렇지 과장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하하….”
“….”
“하늘이 내린 배우라거나,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이 일상생활 이상으로 자연스럽다거나 등등. 그런 말들이요. 한데 제가 직접 보니… 와우, 오히려 많이 절제한 표현이었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모든 촬영은 끝이 났고, 정우현은 다시 업체가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편히 LA로 향했다.
“…아들, 잘했어.”
어머니가 푹신푹신한 좌석에 몸을 기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하하하!”
“말은 안 했지만, 촬영할 때 사람들이 엄마한테 와서 아들 칭찬을 얼마나 했는데! 부끄럽지만 엄마가 영어를 잘 모르니까 막 엄지손가락 올리면서 계속 우현이 네 이름 대고 베스트, 베스트라고, 하하, 브라보라고도 하고 그랬어!”
“하하하, 엄마!”
“…응?”
“엄마가 최고니까 제가 베스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거죠!”
“…어머!”
“하하하하!
하고는 정우현을 따라 깔깔 웃는 어머니였다.
해당 광고는 곧 미국 전역은 물론, 포도가 수출되는 해외에까지 방영되어 세계인들이 정우현을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됐다.
물론 여성 사업가는 치솟는 매출에 연일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나 기뻐, 끝내 정우현에게 광고 계약금보다 더 많은 웃돈 즉 프리미엄을 수차례 더 입금할 정도였다. 정우현이 한사코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 * *
한편 광고 촬영을 마치고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하하하하! 우! 대단해! 그새 또 여기서 일을 후딱 하나 해치우고 가다니!”
“하하,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브래드와 또 작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롱비치에서처럼 그리 먹먹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또 볼 수 있음을, 이제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하, 우! 잘 지내고 있어!”
“예, 브래드도요!”
“문자 하자고, 문자!”
“네!”
브래드가 공항에서 정우현과 어머니를 바래다주고는 말했다. 옆에는 제인도 있었다.
“…우현이 안녕!”
이번엔 그녀가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다! 엄마랑!”
하고 제인이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와 제인은 며칠간 함께하며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어머니는 곧장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요, 한국으로! 제가 한국 구경도 시켜 주고, 맛있는 한국 음식도 해 줄게요!”
“와아, 정말요?”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제인이었기에 정말 기회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한국에 가 보고 싶은 그녀였다.
순간 정우현이 무언가 뒤늦게 생각난 듯 갑작스레 제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고자 자신의 입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제인!”
“…응?”
하면서 제인은 제인 대로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아 정우현의 키에 맞춰, 고개를 돌려 귀를 댔다.
“…브래드를 꼭 잡고 있으세요…!”
“…하하….”
“절대 헤어지지 마세요, 알겠죠?”
“…응, 알았어!”
이미 브래드에게는 별장에서 함께 지내며 따로 한 말이기도 했다. 제인과 헤어지지 말라고.
브래드가 전생에서처럼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며 마음고생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와우, 와우, 우! 벌써부터 나는 쏙 빼놓고 제인이랑만 비밀이 생긴 거야?”
브래드가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정우현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크게 말했다.
아들 정우현과 브래드가 너무 친해서, 이대로 놓아두면 예약한 여객기를 놓칠 것만 같았다.
“하하하!”
이에 정우현과 브래드가 크게 웃으며 진짜 작별했다.
* * *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청담동 정우현의 집.
정우현이 자신의 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서는 무언가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발신음이 들리고 이윽고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