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수개월 만에 온 LA 공항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만 지난번 처음 왔을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으니,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리무진이 있던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차가 정우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와우, 와우, 와우. 우우우우우!”
브래드 퍼트였다. 그가 커다란 SUV 차량을 타고 정우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어머!”
어머니가 아들 정우현을 보고 놀랐다.
옆에 있다가는 브래드를 보자마자 무진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 폴짝 하고 그에게 뛰어오른 것이다.
“…브래드!”
브래드는 그런 정우현을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태웠다.
“그새 더 무거워졌구나!”
“하하하! 그래요?”
“그럼!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우, 너의 몸무게만큼은 내가 정확히 알고 있지! 여러 번 들어 봤으니 말이야! 하하하!”
그러면서 브래드가 정우현을 목말 태운 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정우현은 그게 또 재밌어서 마구 웃었다.
“하하하하!”
어머니가 이내 살며시 웃으며 그들 곁으로 왔다.
정우현과 브래드 둘 다 선글라스를 끼고, 심지어 같은 모자를 쓰고 있어 자연스레 눈길이 더 가기도 했다.
브래드가 롱비치 해변에서 정우현에게 자신이 쓰던 풋볼 팀 모자를 주고서는, 똑같은 걸 또 하나 장만한 것이다.
다만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수염이 덥수룩해졌다는 것이다. 브래드는 영화 촬영을 한 뒤 모든 공식 활동이 끝나면,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면도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오우?”
브래드가 어머니 황희진을 보고 뒤늦게 놀랐다.
그러고서는 정우현을 즉각 땅에 내려주고 인사를 했다.
“…어머님이 오셨군요!”
정우현이 즉각 어머니에게 통역해 줬다.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는데 브래드의 표정이 조금 경직됐다.
어머니가 올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가 정우현을 보고 즉각 물었다.
“우! 당구 마스터인 아버님은 안 오셨니?”
“예! 이번엔 엄마랑만 왔어요!”
“…아아.”
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브래드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당황하는 게 틀림없었다.
“왜요, 브래드!”
“…음, 실은 말이다.”
그러면서 그가 정우현과 어머니의 짐을 자신의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우가 묵을 호텔을 따로 안 잡았다는 거지. 나는 너희 아버지가 오는 줄 알고, 너와 함께 내 별장에 데려가려고 했거든…!”
“…아아!”
한국에서 브래드와 통화하며, 이번 미국 방문의 대략적인 일정을 맞췄다.
그때 브래드가 강조한 게 하나 있었으니, 정우현더러 숙박은 걱정하지 말고 그저 오라고 한 것이다.
이에 정우현은 영화를 촬영할 때 스티븐 감독처럼, 브래드가 호텔을 하나 잡아 주는 줄 알고 있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정우현과 아버지를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으음, 어쩌지.”
브래드가 정우현 모자(母子)의 짐을 다 차에 넣고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이라지만, 여자를, 그것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를 남자인 자신이 거하는 곳에 데려가 묵게 한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이 곧장 말했다.
“괜찮아요, 브래드! 그냥 호텔 앞에 내려주세요! 엄마랑 바로 체크인하면 되니까요!”
“…잠깐, 기다려 보렴, 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브래드는 정우현의 이번 짧은 미국 방문 기간 동안, 그를 어떻게든 자신의 별장에서 묵게 하고 싶었다. 그만큼 정우현을 아끼는 브래드였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곧장 크게 말했다.
“…뭐요?”
정우현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브래드는 곧장 자신의 핸드폰으로 누구와 통화를 했다.
“…오케이!”
그러더니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금방 끊고 정우현에게 크게 말했다.
“어머님한테! 내 별장으로 가자고 얘기해 봐!”
“…아.”
브래드의 말에 정우현이 조금 난감해했다. 일반적인 일곱 살 소년이면, 별다른 생각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신나서 바로 얘기했겠지만, 그는 실상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이와 같은 제의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정우현이 머뭇거리자 브래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
“내 별장에 레이디 한 분이 또 계시니까!”
“…숙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정우현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 * *
도로 위 브래드 퍼트의 SUV 차량 안.
브래드가 운전하고 있고, 뒷좌석에 정우현과 어머니가 나란히 앉았다.
원래 정우현은 친구 브래드 옆 조수석에 앉고는 하지만, 이번엔 어머니가 있어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정말 브래드 집에 여자가 있다는 거지?”
“예!”
처음 정우현이 어머니에게 브래드의 별장에서 머무르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당연히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이내 정우현이 브래드 혼자 있는 별장이 아니라, 브래드의 표현대로 숙녀(Lady)가 한 분 있다고 했고, 이에 어머니는 브래드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 아직 어린 아들이 브래드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몹시도 느껴져, 어머니로서 아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집에서도 한껏 웃으며 브래드 얘기를 곧잘 했던 아들이니까.
또한 브래드도 아들 정우현을 몹시나 아끼는 게 느껴졌고, 지난 정우현의 미국 촬영 중 그가 얼마나 아들을 보살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 믿음이 가기도 했다.
“와아.”
이윽고 브래드의 별장에 도착했다. 브래드의 별장은 스티븐 감독의 별장과 또 달랐는데, 정원은 좀 작았지만 건물이 훨씬 크고 세련됐다.
특히 작은 호텔처럼 층수가 다섯 개나 됐는데, 브래드가 신나는 얼굴로 자신의 별장을 올려보며 크게 말했다.
“우! 어머님이랑 아무 층이나 골라잡아라! 거기를 몽땅 쓰면 돼!”
“정말요?”
“그럼! …음, 음, 아니다, 그냥 전부 다 써! 1층! 2층! 3층! 4층! 5층! 모두 다 맘껏 이용하라고!”
“하하하하!”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차고 한쪽에 또 다른 차량이 보였다.
작고 아담한 핑크빛의 차량이었다.
아무리 브래드가 자동차를 좋아한다지만, 그의 차일 리는 없어 보였다.
과연 이내 별장 정문에서 한 금발의 백인 여자가 나오더니 브래드를 부르며 말했다.
“왔어, 허니?”
브래드의 애인이었다. 브래드가 어머니 황희진을 모시기 위해, 자신의 애인더러 별장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한데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자가 그들 곁으로 천천히 오더니, 조금은 어설프지만 분명하게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인이라고 합니다….”
“와우….”
정우현이 놀라서 탄성을 내질렀다.
“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보며 브래드가 마치 자신이 한국어를 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웃었다.
* * *
브래드 퍼트는 할리우드 톱스타답게 여자가 끊이지 않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신과 같은 유명 배우들과도 교제하는 등 공개적으로 밝혀진 연애만 적지 않았으니, 공개되지 않은 일반인과의 만남은 더 많았다.
다만 그가 숱한 여자를 만나는 가운데 변치 않는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상대는 언제나 금발의 미녀라는 것.
제인이 딱 그랬다. 금발의 아리따운 27세. 하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무려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는 것이다.
“하하하하! 우와 함께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찍으면서 말이야!”
브래드 퍼트와 제인, 그리고 정우현과 어머니 등 총 네 명이 있는 별장의 널찍한 거실.
브래드가 껄껄 웃으며 자신이 제인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설명했다.
“우리의 킹 보이가 너무 대단하잖아! 그래서 자연스레 우의 나라인 코리아에 관심이 생겼다는 거지. 그리고 우는 그야말로 영어는 물론 온갖 언어를 다 하거든! 그래서 나도 우처럼 이참에 외국어나 하나 배워 볼까 하다가, 우의 모국어인 코리안 랭귀지를 배우게 됐다는 거지! 하하하하!”
“와아….”
입을 벌리고 놀라는 정우현이다. 아무리 브래드가 자기랑 친하다지만, 자신의 모국어인 한국어까지 배우게 됐다는 건 또 전혀 다른 얘기니까.
콧대 높은 미국 할리우드의 스타가 외국어를, 그것도 그들로서는 소수 언어인 한국어를 배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 선생을 한 명 두게 됐다!”
하고서 브래드가 제인을 슬쩍 보고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로… 하하하하하!”
“오우, 브래드.”
제인이 뭐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눈을 찡긋 뜨고 말했다.
이에 브래드가 더 신나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하, 아니, 근데 처음엔 진짜 생각 없었다고! 한데 남녀 사이란 참 이상하지. 단 둘이 가까이 오래 지내다보니까, 하하! 어느 날 보니 선생이 아니라 애인이 되어 있는 게 아니겠어? 하하하!”
가뜩이나 잘 웃는데, 옆에 있는 애인 얘기만 하면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그였다.
한편 제인은 어머니 옆에 앉아서 브래드의 말을 끊임없이 한국어로 통역해 줬다.
커다란 별장에, 그것도 톱스타 브래드 퍼트의 별장에 와 긴장하게 된 것도 잠시, 어머니는 성별이 같은 제인이 다정하고 알기 쉽게 이것저것을 설명하고 챙겨 주자 금세 이곳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브래드! 그럼 브래드의 한국어 실력은 언제 보여 줄 거죠!”
“오, 오우….”
정우현의 질문에 브래드가 조금 당황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인이 슬며시 웃으며 불쑥 말했다.
“하하하, 이 사람은!”
“노우, 노우….”
브래드가 제인더러 말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국어라면 정말 형편 없어요! 내 평생 이렇게 학습이 느린 사람은 처음이야!”
“…제인!”
브래드가 부끄럽다는 듯 제인을 크게 불렀다.
“하하하하하하!”
정우현은 천하의 브래드 퍼트를 만난 이래,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처음 보니 재밌어서 마구 웃었다.
브래드가 그런 정우현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는 거야…?”
“하하하하! 브래드, 계속 하면 돼요! 브래드가 저한테 파리에서 그랬잖아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응, 그렇지. 하지만 한국어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 걸…?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너무 어려워!”
“하하하하하!”
“난 그냥 지금처럼 영어로 헛소리나 지껄이며 계속 연기를 해야겠어.”
* * *
이래저래 즐겁기만 한 저녁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어머니는 어느새 누구못지 않게 많이 웃고 심지어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저기!”
그러기를 한창, 그녀가 갑자기 크게 말했다.
“…우리도 같이 사진 찍어요!”
이에 제인이 얼른 어머니의 말을 통역해 브래드에게 알려 줬다.
“오우, 사진이요?”
브래드가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예! 이렇게 넷이 또 언제 함께하겠어요? 그러니까 찍어요, 얼른. 사진!”
아들 정우현과 남편 정기석 그리고 브래드 퍼트가 그의 전용기에서 정답게 찍은 사진을 그간 즐겨 보던 어머니였다.
이에 자신 또한 다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어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하, 좋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브래드가 즉각 카메라를 하나 가져왔고, 타이머를 맞춰 넷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플래시가 터지기 직전, 브래드 퍼트가 잊지 않고 외쳤다.
“…킴취!”
찰칵.
이로써 환히 웃고 있는 정우현과 브래드 그리고 김치를 외친 할리우드 톱스타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두 여성, 즉 어머니 황희진과 제인의 모습까지 생생한 사진이 하나 완성됐다.
* * *
늦은 밤.
정우현은 브래드의 침대 위에서 그의 곁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제인과 함께 다른 방에서 잤다. 한국어를 전공한 사람답게 제인은 한국에 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제인 덕분에 이곳 미국이라는 나라가 친숙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기까지 어머니가 평소 낯을 가리지 않고 활달하며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 내 새 애인 어떤 것 같니?”
브래드가 정우현과 함께 누워 커다란 창밖 밤하늘의 별을 보며 물었다.
그는 이 별장을 건축할 시, 자신의 침실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를 가장 중요시했는데, 모두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밤하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좋아요! 굉장히 친절하고요! 선량한 사람 같아요!”
“…그래. 함께할수록 사람이 깊고 매력적이야. 무엇보다 인간미가 있지.”
“하하, 브래드가 제인이랑 계속 만났으면 좋겠어요!”
정우현은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가 어떤 여자를 만나, 2022년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어쩌다가 본 짤막한 할리우드 연예 뉴스를 기억하는 것이다.
전생에서 브래드는 한 유명 여배우와 결혼해 아이도 잔뜩 입양하고 잘 살다가는, 어느 날 무슨 일인지 이혼을 결정한다. 그러고는 전 아내인 그녀와 송사에까지 휘말리는 등, 다소 피곤한 삶을 살았었다.
“그래? 하하,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오래오래, 함께해야지….”
하고서 둘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잠자코 반짝거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이다.
롱비치 해변에서 에메랄드빛의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침묵이었다.
해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즐겁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둘이, 영영 친구 사이로 함께하리라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브래드.”
“…으응?”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다 정우현이 불쑥 브래드를 불렀다.
“…저, 사실 그동안 말 안 한 게 있어요….”
“…뭐?”
“유럽 갈 때요. 브래드의 커다란 독수리에서 브래드랑 우리 아빠가 당구 대결했잖아요.”
“아아, 그렇지.”
“그때 실은 마지막에 몰래 아빠를 도왔어요. 그래서 아빠가 이길 수 있었던 거예요.”
아주 작은, 마음의 짐이었다. 당시 브래드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아버지를 도왔다는 게.
브래드와 단둘이서 이렇게 있자니 순간 비밀을 말하고 싶어진 것이다.
“…물론 아빠가 잘 치기는 했지만요, 어쨌든 제가 도와준 건 도와준 거니까….”
하는데 브래드가 순간 무진장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브래드?”
“하하하하!”
“….”
“오우, 오우, 오우, 리틀 우.”
한참을 웃다가 브래드가 말을 꺼냈다.
“참 대단한 너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직 아이라는 걸 사무치게 느낀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다! 나도 다 알고 있었거든!”
“…알고 있었다고요?”
“그래! 마지막에 너희 아버지가 공을 치기 전에, 네가 곁에서 한국어로 조그맣게 속삭였잖니! 그러자 곧장 아버지가 큐대의 방향을 조금 틀더구나, 그래서 눈치챘지!”
“…아아.”
정우현은 상상도 못 했다. 브래드가 다 알고 있었다니.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죠?”
“…으음, 우! 어린 아들이 아빠 도와주는 게 왜? 뭐 문제 있어? 나 같아도 알려 줬을 텐데, 하하하하!”
그러고는 그가 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 네가 나도 한번 도움을 줬잖니. 그래서 점수를 낼 수 있었고. 그러니까 이래저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어렵게, 잘못한 것처럼 고백할 필요 없다, 하하하.”
마음이 놓였다. 정말 브래드 말대로 괜한 것에 마음을 쓴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근심을 덜어 낸 정우현은 이내 졸음이 몰려왔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한국에서 이곳 미국 LA로 단번에 와 시차가 아직 적응되지 않기도 했다.
푸우, 푸우우….
정우현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브래드는 자신의 팔을 베고 자고 있는 정우현의 작은 머리를 살짝 들어, 베개 위에 누였다.
그러고는 미소를 띤 채 자신의 작은 친구이자 영웅인 그를 한번 보고서, 한참을 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역시 잠이 들었다.
* * *
LA의 돌비 극장 안.
미국 아카데믹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정우현은 다시 꼬마 신사가 되어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과 브래드 퍼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하하하, 우현, 아주 멋지구나.”
정우현을 오랜만에 만난 스티븐 감독이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도 멋지세요!”
“하하, 나는 그저, 올드 맨이란다. 그저 영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늙은 남자일 뿐이지. 하여간 우현, 긴장되니?”
“…아니요!”
“그래, 긴장할 것 없다, 우리는 그저 좋은 영화를 만들었고, 또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거면 된 거야. 우리 영화인들에게, 그거면 전부 족한 거지. 상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일 뿐이다. 물론 받으면 기분 하나는 좋겠지만, 하하, 그리 집착할 이유는 없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데 반대쪽에서 브래드가 앓는 소리를 냈다.
“…으음.”
그러자 정우현이 곧장 그를 보고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브래드? 어디가 좀 불편하세요?”
“…아, 아니.”
하고 말했지만 조금 불안정해 보이는 브래드였다.
신인상 수상 발표를 앞두고, 정작 정우현 본인이 아닌 브래드가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우, 우가 상을 받아야 해. 아니면 이 오즈카는 쓰레기나 다름없어.’
이 같은 생각을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고 있는 그였다.
이러나저러나 신인상 수상이 시작됐고, 전방의 커다란 스크린에는 올해 신인상 수상 후보에 오른 새내기 배우들의 모습이 크게 비쳤다.
둘은 백인이었고 둘은 또 흑인이었으나, 동양인은 오로지 정우현 한 명뿐이었다.
실상, 신인상을 포함한 이 날 모든 수상 후보 중 검은 머리의 외국인은 오로지 정우현밖에 없었다.
“제71회 아카데믹 신인상 수상자는….”
두구두구두구.
무대 효과음이 들리는 가운데, 이윽고 수상자가 발표됐다.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정우현!”
짝! 짝! 짝!
할리우드의 온갖 스타들이 하나같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