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이로써 정우현은 명동의 빌딩주가 되었다.
물론 중개 수수료와 취득세 등으로 약 2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는 했다.
해당 빌딩은 대지 면적만 1,986제곱미터 정도였고, 층수는 주차장이 있는 지하 3층부터 해서 위로는 16층까지 있었다.
대지가 넓은 만큼 일반 빌딩에 비해 실 평수 즉 연면적이 넓었고 층고 또한 높았기에, 층수는 비록 16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더 높은 빌딩이나 다름없었다.
건물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마도 임대료, 즉 월세 수입일 것이다.
첫 달 정우현의 통장에 들어온 월세가 약 2억 원 정도 했다. 즉 정우현은 이제 빌딩의 건물주로서 매달 2억 원 정도의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물론 때는 1999년이기에, 2022년 기준으로 하면 훨씬 더한 가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벌 수 있는 돈은 결코 아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사업체와 소통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등 건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책임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이었다.
즉 일일이 그 모두를 신경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관리인을 고용했다.
바로 부모였다.
“…이제 바빠지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정우현이 조금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부모에게 물었다.
“아니다, 아니야! 솔직히 그동안 조금 심심했었는데 이참에 잘됐지! 아주 잘됐어!”
아버지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동안 아들 정우현을 뒷바라지한답시고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계속 함께했던 아버지였다. 다만 엄밀히 하면 그것은 자신의 일이라기보다는 아들의 일을 보조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그것도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할 일이 생겨 의욕이 충만해진 것이다.
“아빠, 아직 젊다! 하하! 마흔도 안 됐어! 한창 일할 나이지! 그러니까 걱정 마!”
“그래, 아들. 엄마도 같이할 거니까.”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건물을 관리하기로 했다. 역시 아들이나 남편의 일을 단순히 돕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다현이도 이제 좀 컸으니까, 괜찮아!”
빌딩 관리인의 근로 방식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즉 관리인이라고 해서 항상 건물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건물에 상주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고용된 경비와 주차장 관리자, 청소부 등이다.
이에 반해 관리인들은 사업체 사장 즉 세입자들과 소통하며 그들 임차인을 관리하는 게 주 업무다. 따라서 관리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융통성 있게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기도 하다.
“당신이….”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주로 밖에서 일 보고, 나는 집에서 다현이 유치원 다녀오고 그러는 거 돌보다가 필요하면 내가 또 나가는 식으로 하면 되지!”
“그래, 그래!”
상기된 표정의 부모였다. 아버지는 퇴사 후 드디어 처음으로 자기 일이 생겨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또 결혼 이후 처음으로 밖에서 할 일이 생겨서 그럴 만했다.
“…예, 그럼 부탁드려요!”
사실 정우현은 처음엔 관리인도 따로 고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서 굳이 그럴 필요 있겠냐며 강력히 일을 자처한 것이다.
“…근데 우현아, 진짜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야?”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에요! 원래 매달 집 생활비 하고 이것저것 용돈 삼아 드리려고 했는데 더 잘됐죠!”
“…그래도 2천만 원은… 엄청 큰돈인데….”
이번엔 어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정우현은 매달 들어오는 월세의 정확히 10%를 부모에게 관리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주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하하하하! 괜찮아요, 괜찮아! 엄마, 아빠! 아들이 주는 돈인데 뭘 그렇게 어려워하세요!”
“…아니, 네가 힘들게 번 돈이니까 하는 말이지. 또 우리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은 거 알잖니.”
“에이, 아니에요! 이제는 그냥 있는 만큼 쓰세요! 하고 싶은 거 하시고!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 사고 싶은 거 다 사시란 말이에요!”
하고 다시 부모에게 씀씀이 좀 키우라고 타이르는 정우현이었다.
정우현은 그들의 아들이기에, 그리고 부모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두 번째 삶이 시작된 이래, 비록 그가 아무리 아기일 때부터 일찌감치 걸어 다니고 말을 하는 천재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시엔 어쨌든 아기였음을 더군다나 잊어서도 안 됐다.
당시 아기 정우현은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따뜻한 집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알맞은 음식을 먹으며 자라날 수 있었다. 즉, 말 그대로 부모가 그를 키웠다. 지금의 부모 정기석과 황희진이 없었다면, 아무리 정우현이라지만 어떤 고난을 겪을지 모를 일이었다. 따라서 보은을 하고 효도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의 비참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우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더 그렇다. 아버지는 일찍 생을 다하시고, 어머니는 맨손으로 나와 동생을 어떻게든 키워 내셨지. 그때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 그에 비하면 현재 나의 보답은, 오히려 작은 것일지도 몰라.’
심지어 아무리 많은 돈을 손에 쥐여줘도, 좀처럼 낭비하지 않고 그저 알뜰하게 저축할 부모임을 알고 있기도 해서 더 그런 소리를 하는 정우현이었다.
“…그래, 알았어.”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하는 정우현을 보고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그저 고맙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할게.”
“예, 엄마! 근데 그렇게 열심히 하실 필요도 없어요. 쉬엄쉬엄하시고요, 혹시나 일하시다 뭐 막히는 부분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여차하면 변호사나 세무사 같은 분들과 함께하면 되니까요!”
그랬다, 정우현은 이제 얼마든지 그런 전문가들도 고용할 수 있는 위치이자 능력도 충분했다.
물론 방대한 지식을 습득한 정우현 본인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때로는 또 오직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에 전문가들의 도움은 어쨌든 필요할 터였다.
“하여간 억지로 하지 마세요! 힘드시면 언제든지 관두시고 집에서 쉬셔도 돼요! 다른 관리인을 고용하면 되니까요!”
하는데 아버지가 즉각 큰 소리로 말했다.
“…안 되지, 안 돼! 우리가…. 아니, 아니, 엄마는 피곤하면 집에서 쉬라고 해라. 내가 할 거다, 내가! 무조건 내가!”
“하, 여보!”
“아파도 무조건 빌딩 가서 아프고, 힘들어도 무조건 빌딩 가서 힘들 거니까, 우현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알겠지?”
아버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모처럼 전념하게 된 자신만의 일이 생긴 데다, 결정적으로 무려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아들 정우현이 건물주라서 받을 수 있는 큰돈이긴 하지만.
그런데도 이 일을 힘들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아니, 그저 한 사람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조금은 절박하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한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정우현은 아버지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공손하게 답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래. 근데, 우리가 할 소리를 네가 하는구나, 하하!”
이것으로 빌딩주 정우현은 건물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 *
그러고서 정우현은 이번 영화 수입과 관련해 마지막 지출을 단행했다.
바로 기부였다.
지난 1997년, 천만 원을 사회에 기부한 때와 마음이 같았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번 돈이기에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위해 사회에 환원한다.
아버지에게는 새 외제 차,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 동생에게는 각종 장난감 그리고 무엇보다 정우현 본인은 명동의 값비싼 빌딩을 사 매달 2억 원이라는 현금 흐름까지 창출했다.
즉 자신도 행복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한껏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좀 베풀어도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우선 총 2억, 2억 원을 기부했다.
일단 1억 원은 국내에, 1억 원은 해외에 기부했다.
그리고 추가로 1억 원을 한 기관에, 다만 언론에 알려지지 않게 익명으로 또 기부할 참이었다.
먼저 해외에까지 기부한 이유는, 이번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국내도 국내지만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에 즉각 언론이 앞다퉈 정우현의 선행을 보도했다.
‘기부 천사의 날개는 더 크고 단단해졌다.’
‘아역 배우에서 소년 영웅으로.’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도 정우현을 조명했다.
‘Korean Treasure, Becomes World Treasure. (한국의 보물, 세계의 보물 되다).’
‘Linternas brillantes de Asia oriental, Woohyun Jung. (동아시아의 밝은 등불, 정우현)’
이에 한동안 그는 핸드폰을 거의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엄청난 러브 콜이 온 것이다.
실상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흥행 후 정우현은 벌써 국내에서 CF를 두 편 찍었다.
한데 계속해서 오는 CF 제의에, 결국 그 모두를 거절했다.
워낙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우현은 이제 솔직히 돈이라면, 충분하게 느껴졌다. 물론 CF 한 편을 찍고 받는 수천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실상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매달 2억 원의 임대료 수입이 들어오는 것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이로써 당장 생업에 전념할 필요가 없는 등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게 됐으니.
그래서 그는 가급적 CF는 찍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배우이자 공인으로서 아주 가끔 한 편, 그것도 이미지가 가장 좋은 제품을 골라 오직 딱 한 편씩만 찍기로 홀로 마음을 먹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생활의 안정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이른 나이에 사회적 입지는 더할 나위 없이 탄탄했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빌딩 자산을 갖게 됐다. 즉 남들은 평생 애써도 이룩하기 힘든 일을 일곱 살의 나이에 다 이루게 됐다.
그런 정우현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약간의 휴식과,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 스스로의 존재를 애써 사람들에게 입증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바빠지고 싶지 않았다.
* * *
그러던 어느 날 정우현은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강남의 한 카페, 미팅 룸.
그가 한 중년 여성과 앉아 있었다.
물론 건물주 정우현의 빌딩에도 카페가 있었고, 심지어 카페 사장이 언제든 와서 부담 없이 이용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러면 사장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그곳이 아닌 다른 카페에 온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중년의 여성이 말했다.
김은정 박사였다. 이전보다 주름살이 선명해진 김은정이 정우현을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김은정 박사는 정우현이 한국대학교 심리 센터에서 지능 검사를 한 이후 오랫동안 간간이 만나 왔다. 그러다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출국하기 전에 한 번 만나고서는 오늘의 만남이 처음이었다. 즉 만난 지 1년이 좀 넘었다.
“더 의젓해졌네. 키도 크고….”
“하하하! 박사님도 좋아 보이세요!”
“그래, 내가 뭐 나쁠 게 있겠니, 하하.”
하면서도 김은정이 정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수년 전 아기였던 그를 본 이래, 언제 어디서든 정우현을 생각하며 지원하기를 아끼지 않은 그녀.
처음엔 물론 아동 발달학을 연구하는 그녀의 직업적 신념에 따른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것은, 일종의 애정이었다. 한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본 그녀에게, 더군다나 무척이나 밝고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예상한 것 이상으로 똑똑하고 심지어 때로는 위대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한시도 한눈팔지 않고 지켜본 그녀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감정이었다.
“…그래, 우현아, 요즘은 뭐 힘든 거 없니? 어려운 거라든가. 있으면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하! 고맙습니다, 박사님! 하지만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아, 그래?”
김은정 박사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 슬며시 웃었다.
“예! 특히 요즘은 더 좋아요!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거든요! 하루 종일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고요, 아, 요즘은 건물 관리한다고 바쁘시지만 하여간! 동생도 돌보고요! 무엇보다 제 시간을 가지면서, 보고 싶었던 책이나 영화도 잔뜩 보고! 너무 좋아요!”
“하하하, 그럼 다행이구나. 그래, 이것저것 무얼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게 참으로 중요하단다.”
“예, 박사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하….”
김은정이 그저 푸근하게 미소를 짓고는, 정우현의 눈치를 조금 살피고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웬일로 우리 글로벌 스타께서 이 늙은 아줌마를 만나자고 했을까?”
“아, 박사님!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예전에 뵀을 때 모습 그대로이신데요, 뭐!”
“하하하하! 우현이, 이제 사회생활 좀 했다고 별말을 다 하는구나.”
하는데 정우현이 테이블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 위에 올렸다.
“…이게 뭐니?”
“가방이요, 가방!”
그것은 역시 또 천만 원에 달하는, 명품 가방이었다.
“…어머!”
정우현이 그러고서는 머리를 꾸벅 숙이고 말을 이었다.
“박사님!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대학교 심리 센터 분들께도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아니, 우현아….”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여태 제대로 보답 한 번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모처럼 선물을 준비해 봤습니다.”
“….”
김은정 박사는 감동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박사님이 이런 걸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랑 백화점 가서 같이 골랐어요! 아, 그리고 박사님에게만 말씀드리지만, 오늘 또 한국대학교 심리 센터 앞으로 제가 1억 원을 보냈습니다! 아동 발달 연구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또 보답의 의미입니다!”
“…우현아!”
하고 외치고서는 역시 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김은정 박사였다.
그녀로서는 아직 작은 이 아이 정우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크고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