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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32)화 (32/200)

32화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섰다.

어머니 황희진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듯 주저하기에 정우현이 앞장서 이곳으로 왔다.

“…여긴 비싼 데 아냐?”

아버지가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 주눅 든 모습으로 말했다.

“…맞아.”

이에 어머니가 괜히 눈치를 보며 답했다.

“하지만 당신 차값에 비할 바는 아니라구….”

“…하하하, 그건 그렇지!”

그러면서 어머니가 정우현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엄마, 이렇게 좋은 데서 안 사 줘도 되는데.”

“아녜요, 엄마! 제가 사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요!”

“…하하, 그래.”

수 시간 전 남편 정기석이 새 차를 에이치 자동차에서 사겠다고 고집을 부려, 아들 정우현이 조금 토라졌었던 걸 선명히 기억하는 어머니였다.

그녀 또한 남편처럼 물건에 관해 별 욕심이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잠자코 정우현의 말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파마머리를 한 명품 매장 직원이 정우현네 부모를 보자 인사를 건성으로 했다.

평범한 차림새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명품을 거리낌 없이 살, 구매력 있는 고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

그러다가는 한 사람을 보고 시선이 멈추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우현 군?”

“안녕하세요!”

“…와, 정말 정우현이네!”

하고선 매장 직원이 화들짝 놀라고서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아아!”

그러고서는 뒤늦게 정우현의 부모를 보고서 크게 말했다.

“어머! 우현이 아버님 어머님이시구나! 어쩐지! 부티가 좔좔 흐르더라! …하하! 사장님 사모님! 물건 보여 드릴게요, 이번에 저희 신상 나와서…!”

하는데 어머니가 정우현을 보고 불쑥 말했다.

“아들.”

“네?”

“다른 데 가자.”

그러고서는 파마머리의 직원을 슬며시 보고 말을 이었다.

“여긴 별로야.”

직원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 * *

“감사합니다!”

긴 생머리의 직원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정우현이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을 사 준 것이다.

무려 천만 원이 넘는 가방이었다.

어머니가 설레는 표정으로, 손에 든 쇼핑 봉투 안에 있는 자신의 가방을 보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근데 엄마가 진짜 이렇게 비싼 가방을 써도 될까?”

“그럼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엄마니까 써야죠!”

“…하하, 그래.”

하면서 불현듯 어머니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아파트 이웃들이었다.

이웃 주민 중 어떤 이들은, 어머니 황희진의 아들이 아역 스타 정우현임을 알고서 무척 놀라고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어머니를 깔봤다.

순전히 아들 덕에 좋은 동네로 이사 왔다는 것이다.

“우현이 엄마! 가방이 이게 뭐야!”

한번은 함께 카페에 가게 된 날이 있었는데, 명품 가방을 든 갈색 머리의 여자가 어머니의 가방을 보고 말했다.

“…왜요?”

“이 동네 살면서 이런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은 우현이 엄마밖에 없어!”

당시 어머니가 들고 있었던 가방은 오래전 아버지가 사 준 가방이었다.

그것도 선물로 받아서 꽤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방이었다.

가격은 20만 원 정도 했는데, 선물을 받을 때만 해도 꽤나 비싸다고 생각했었다.

“….”

“남편한테 좋은 거 하나 사 달라고 해!”

하고서는 여자가 표정을 슬며시 바꾸며 말을 이었다.

“아, 우현이 아빠 하는 일 없지?”

이에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갈색 머리 여자의 말을 끊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하하하, 뭘 그런 말을 해? …아, 근데 여기 카페라떼 진짜 맛있다, 원두 좋은 거 쓰나 봐?”

카페에 있는 애 엄마들 대부분, 남편이 법조인이거나 의사 혹은 회계사 등 소위 사 자 들어가는 전문직이었다. 

크고 작게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저기요.”

순간 어머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갈색 머리 여자를 내려다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가방 하나 들고 있으면 사람이 좀 달라 보이는 줄 아나요?”

하고서 그녀의 두 눈을 노려보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가방이 좋으면 뭐 해요? 사람이 별론데.”

“….”

“그리고 지금 우리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줌마 남편이나 걱정하세요.”

그러고서 어머니가 카페 밖으로 나갔다.

당시 남편 정기석은 미국 LA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아들 정우현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옳은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촬영하고 개봉한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세계적인 히트를 침으로써, 어머니는 이제 아파트 부녀회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축하해, 우현 엄마!”

“와아…. 우리 남편이랑 아들은, 그 영화 너무 재밌다고 영화관에 세 번이나 갔어…!”

이렇게 축하와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녀에게 어느 날 일전의 갈색 머리 여자가 찾아와 말했다.

“…우현 엄마, 그날은 미안했어….”

심지어 그날 카페에서의 일 이후, 그 여자는 여기저기 어머니 황희진 흉을 보고 다녔다. 한데 이제는 사람들이, 반대로 그 여자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우현은 부정할 수 없는 글로벌 스타가 됐고, 어머니 황희진은 무려 그런 아이의 엄마이니까.

심지어 평상시 올곧은 성격의 어머니를, 원래부터 좋아하는 이웃들이 있기도 했다.

“…내가 정말 생각이 짧았어….”

갈색 머리 여자가 어머니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어머니 황희진에게 사과를 하고 끝내 화해를 해야 다른 이웃들과도 다시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심 형편없기를 바라며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그녀조차도 소년 왕 정우현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더 그럴 만했다.

“….”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한번 차갑게 바라보고 말았다.

한번 잃은 신뢰를 다시 얻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더군다나 사람의 본성이란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여길 때 곧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즉 갈색 머리 여자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다른 소리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갈색 머리 여자는 그 이후 동네에서 계속 겉돌다가 어느 날 사라지고 말았다. 이사를 가 버린 것이다.

* * *

하지만 이제 그 비싸다는 명품 가방까지 갖게 됐으니, 혹시 모를 괜한 시선으로부터도 해방된 어머니였다.

실상 사람들의 시선 따위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더군다나 겉치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의연한 그녀지만, 막상 좋은 가방을 갖게 되니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들, 아까 엄마 잘 어울렸니?”

어머니가 정우현을 보고 환히 웃으며 물었다.

명품 매장에서 가방을 어깨에 걸어보고 거울을 비춰 본 스스로가 퍽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예, 엄마! 왕비가 눈앞에 있는 줄 알았어요!”

“…어머! 정말?”

그러고서 그녀가 기분이 좋아 마구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우현이.”

아버지가 정우현을 보고 슬며시 말했다.

“…너, 많이 늘었다?”

“하하하하! 다 아빠한테 배운 거죠!”

“…나는 그런 거 가르쳐 준 적 없는 것 같은데….”

사실 아버지보단, 미국에서 브래드 퍼트와 함께하며 슬쩍 배운 대화 방식이었다.

브래드는 어디에서든 어떤 여자 앞에서든 온갖 표현으로 상대를 기쁘게 하는 데 도가 텄던 것이다.

“다현아!”

한편 정우현이 여동생을 불렀다.

“…응?”

아버지에게 비싼 외제 차를 사 주고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을 사 주기까지 별다른 말은 없이 그저 잠자코 있었던 동생이었다.

동생은 그저 가족들의 대화를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듣다가, 무언가 재미있다고 느끼면 또 홀로 살포시 웃는 등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부모님의 새 차나 가방 또한 역시 말없이 잠자코, 다만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아.”

여동생은 별생각 않고 있었다는 듯 소리만 냈다.

“응? 오빠가 다 사 줄게!”

“그래, 다현아! 오빠가 사 준다잖니! 한번 얘기해 봐!”

아버지는 마치 자기가 사 주는 것처럼 신나서 말했다.

“….”

그럼에도 여동생이 말이 없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 뭐 없어? 평소 갖고 싶었던 거!”

어머니는 여동생을 아기라고 곧잘 불렀다. 막내인 데다 성격도 온화하고 말수가 없어 그저 아기 같은 것이다.

“…젤….”

“…응?”

“뭐?”

가족들이 잘 안 들린다는 듯 되물었다.

“…젤리. 젤리요….”

“…젤리?”

“…하하하하하!”

아버지가 마구 웃었고 정우현은 곧장 크게 말했다.

“아니! 오빠가 무엇이든 다 사 주겠다는데, 고작 젤리가 먹고 싶어?”

“…응. 먹고 싶어.”

“하하하하!”

정우현이 마구 웃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알았어! 오빠가 젤리 백 개, 아니다, 천 개 만 개 사 줄게!”

“…와아, 정말…?”

“그럼, 그럼!”

하고서는 정우현이 여동생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었다.

“근데 다현아! 그런 거 말고 좀 더 좋은 거 사자! 하다못해 장난감이라든가…!”

여동생 정다현 또한, 물건에 관해 소유욕이 거의 없었다.

이는 실상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근근이라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그만이며, 이와 같은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 정우현의 부모니까.

사실 단순히 욕심이 없는 부모를 닮은 것을 넘어, 남을 돕는 것에 큰 의미를 둔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전생의 정우현이었다. 선의를 베풀다가 일찌감치 생을 다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는 염라대왕의 가르침으로 이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이제는 가족 중 경제를 공부하며 돈, 그리고 재테크의 중요성 또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번 둘러 봐봐!”

정우현이 앞장서서 각종 장난감 매장이 즐비한 층에 들어섰다.

마음 같아선 유아용 비싼 옷이나 이런저런 전자 기기 같은 걸 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로서 그가 보기에 여동생은 그런 물건을 그다지 선호할 것 같지 않았고, 정말 실제로도 그랬다.

“여기 얼마나 으리으리한 장난감이 많은데! 오빠가 다 사 줄 수 있으니깐….”

하는데 동생이 어느 틈엔가 제자리에 멈춰 서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현아?”

“….”

정우현이 곧장 동생 곁으로 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장난감을 봤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런 막내가 신기해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병원 놀이 세트였다.

장난감용 주사와 청진기 그리고 알약 모형 등이 있는 비싼 장난감이었다.

“…이거.”

여동생이 장난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응?”

“주사 아야 하면 아픈 사람 고칠 수 있어…?”

“…하하, 당연하지!”

정우현네 집은 그간 첫째가 아들이기 때문에 각종 로봇이나 자동차 모형 등 남자용 장난감이 많았다. 애초 부모가 샀던 장난감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잔뜩 선물로 받은 장난감들도 거의 다 그랬다.

그래도 여동생 정다현은 딱히 불만 없이 오빠의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았다. 애초 불만을 잘 품지 않는 성미에, 어쩌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도 좀처럼 표현하지 않고 어떻게든 적응해보는 등 인내심이 강했던 것이다.

“…이거 갖고 싶어?”

“…응.”

“좋아!”

하고서 얼른 병원 놀이 장난감을 양손으로 든 정우현이다.

무지 커서 그의 상체를 다 가릴 정도였다.

“동생 선물은 이거로 할게요!”

그러고서 그가 부모를 올려보고 밝게 웃었다.

* * *

“그런데 아들, 우리만 잔뜩 좋은 걸 사서 어떡해?”

아버지의 새 외제 차를 탄 채 집으로 가는 길, 어머니는 명품 가방이 있는 쇼핑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있고, 동생은 자기 신체만 한 장난감 세트를 역시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다니, 우현아. 같이 백화점 간 김에 너도 기분 내면 좋잖아.”

“아, 저는 따로 있어요!”

“…뭐가?”

아버지가 궁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이따 집 가서 말씀드릴게요!”

“…으음….”

정우현의 말에 그게 뭘까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애써 참고 집을 향해 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 * *

며칠 후 아침, 정우현은 아버지와 일찌감치 집을 나왔다.

정우현이나 아버지나 평소보다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러고서 함께 커다란 새 외제 차에 타니, 그야말로 글로벌 스타 정우현과 그의 아버지다운 모습이었다.

“…정말 살 거야?”

“네!”

“…으음, 물론 네 돈이긴 하지만…. 어디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런 엄청 큰돈을…. 너무 갑작스럽게 쓰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

“괜찮아요, 아빠! 좀 느닷없이 말씀드린 것 같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알아봤던 거예요!”

“…그래?”

하고선 말없이 운전대를 잡는 아버지였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명동의 한 빌딩 앞이었다.

정장을 입은 40대의 남성이 빌딩 1층 카페에 있다가 통유리 너머 커다란 외제 차가 한 대 오는 것을 보자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차 안을 빠르게 확인하고서, 정우현을 알아보고 즉각 허리를 곧게 숙여 인사를 했다.

심지어 차를 주차한 뒤 정우현과 아버지가 내려 앞으로 올 때까지 그는 계속 허릴 숙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우현이 그를 보고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정우현 고객님!”

정장을 입은 남자 역시 크게 인사하고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하고서 그가 그의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공인 중개사였다. 그것도 명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공인 중개사였다.

그가 아버지에게도 깍듯이 인사한 뒤 몸을 돌려 높은 빌딩을 올려보고 말을 이었다.

“그럼 한번! 물건을, 둘러보실까요?”

정우현은 건물을,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명동의 빌딩을 사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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