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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30)화 (30/200)

30화

약 500억 원.

믿기 힘든 액수였지만, 사실이었다.

전 세계 상영관에서 장기간 부동의 1위를 점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 박스오피스에선 무려 17주 연속 1위를 함으로써 스티븐 감독의 1982년 전작 <예티>의 16주 1위라는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2022년을 기준으로 해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특히 수입 면에서 보자면, 1997년, 정우현의 <겨울 방학>이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할 때 2위에 머물렀던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 호>와 비교해 볼 만했다.

당시 <타이타닉 호>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는데, 그때 주인공이었던 레오나르도 데카프리오(Leonardo DeCaprio) 역시 약 500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인크레더블 킹 보이>는 <타이타닉 호>를 능가하는 전 세계적 흥행을 자랑했고, 정우현은 무려 영화의 주인공이었기에 그처럼 비슷한 금액을 벌 수 있었다.

심지어 정우현이, 만약 레오나르도와 비슷한 개런티를 보장받았다면, 더 많은 금액이 통장에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할리우드에서는 첫 영화였기에 비교적 개런티가 적었고, 이에 들어온 수입이 약 500억 원이라는 금액이었다.

“…엄마, 엄마아!”

즉각 정우현은 부엌에 있는 어머니를 불렀다.

“…으응, 왜?”

평소 다급히 자신을 찾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들이기에 어머니가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저, 돈 들어왔어요, 돈!”

“…아, 그래? 잘됐네.”

하고 빙긋 웃어 보이는 어머니다.

실상 돈이야 부족함 없었고, 근사한 집에서 온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등 어머니로서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아들 정우현이 영화를, 그것도 무려 미국에 가 영화를 한 편 찍었고, 더군다나 세계적으로 무척 성공해 또다시 큰 수입이 들어오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지금 느껴지는 단단한 행복과 가정이 이대로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 그 이상의 욕망은 딱히 있지 않았다.

“얼마 들어왔는지 아세요?”

“글쎄, 얼마일까?”

솔직히 크게 궁금하지 않은 어머니였지만, 흥분한 아들의 모습을 따라 웃으며 물었다.

“…500억 원이요! 500억!”

“…뭐?”

어머니는 막연히 큰돈이겠다 생각은 했지만, 액수를 들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500억 원이 들어왔다고요! 제 통장에!”

하고서 정우현이 반쯤 얼어붙은 어머니의 얼굴에 자신의 통장을 펼쳐 보여 줬다.

“….”

믿을 수 없다는 듯 통장을 바라본 어머니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끝내 탄성을 내질렀다.

“…세상에.”

“아빠! 아빠는 어디 있어요?”

“…아, 다현이 어린이집 끝나는 거 데리러 갔지.”

여동생 정다현은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정우현도 다녔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찌감치 배우가 된 데다, 무엇보다 모든 학습 내용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거실의 시계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착할 시간이 꽤 지났는데….”

하는데 마침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지와 동생이 들어왔다.

근데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보!”

“…응? 왜, 무슨 일 있어?”

남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즉각 알아차린 어머니가 바로 물었다.

“우리 차가….”

“응?”

“퍼졌어.”

“…뭐?”

“퍼졌어. 고장났다고!”

“…아”

그러고는 아버지 옆에 있는 동생이 말했다.

“…아파트 단지 쪽으로 올라올 때요, 갑자기 멈췄어요….”

이에 어머니가 깜짝 놀라 크게 물었다.

“아이고! 괜찮니, 다현이? 여보는? 어디 다친 데 없고?”

돈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가족의 평안과 건강이 가장 중요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어머니 황희진이었다.

“응, 다행히 주위에 차가 거의 없어서, 사고는 나지 않았는데. 보험사 불러서 동네 카센터에 수리 맡기고 오는 길이야.”

“…다행이네요!”

정우현도 안도한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그래, 그래, 불행 중 다행이지!”

순간 정우현이 눈빛을 반짝이더니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럼 아빠!”

“…응?”

“우리 그거 사러 가요!”

“…뭐?”

“차요, 차!”

“…응?”

하고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봤다. 아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하하….”

어머니는 그저 슬며시 웃을 뿐이었다.

* * *

정우현네 가족이 카센터를 향해 걷고 있다.

아들의 놀라운 말에 아버지 역시 어안이 벙벙해서는, 끝내 흥분에 휩싸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동차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수리가 끝났다는 것이다.

“…500억이라고?”

길을 걸으며 아버지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정우현에게 재차 물었다.

“예!”

“…아아….”

하고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동네 자동차 정비소 앞.

“…아, 오셨군요!”

턱수염이 난 사장이 아버지를 알아보고 멀리서부터 크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차를 끌고 계시는 거예요!”

사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정우현네 가족의 낡은 차를 보고 말을 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부품 몇 개 바꾸고 손보기는 했지만, 조만간 차를 아예 바꾸셔야 할 거예요.”

아버지가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 그래요?”

그러자 사장이 크게 답했다.

“예! 이대로는 위험해요.”

사실 사장은 의아했다.

못 해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만 사는 이 동네에서 이렇게나 낡은 국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자동차 정비소에 있는 차량만 봐도 절반은 최신 국산 중대형 승용차였고 절반은 외제 차였다. 즉 모두 고가의 차였다.

“절약하는 차원에서 오래오래 아껴 타시는 것도 좋지만, 자동차는 어쨌든 도로 위 탑승자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이기에….”

하고 뒤늦게 사장이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뒤에 있는 가족들을 봤는데, 그만 한 사람을 보고 시선이 멈춰 버렸다.

“…어, 근데 혹시. …그, 아역 배우 정우현 군?”

“아, 하하, 맞습니다….”

정작 앞에 있는 아버지가 괜히 멋쩍어하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정우현은 물론 씩씩하게 인사했다.

“…아….”

하고서 사장이 말을 잇지 못하더니, 수염이 난 턱을 괜히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정우현 군 아버지 되세요? 가족들이랑?”

“…예, 맞아요.”

“아!”

사장이 이에 즉각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했다.

“…반갑습니다! 와, 여기 사셨구나! 저, 우현 군 팬이에요! 이번에 브래드 퍼트랑 나온 영화도 무지 재밌게 봤고요!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이에 정우현이 또 크게 답했다.

“아이고, 우리 아내가 있어야 하는데! 아내가, 우현 군 엄청 좋아하거든요, 진짜! <겨울 방학>에서부터 왕 팬이 되어가지고, 하하하하하!”

그러고서는 그가 주저리주저리 계속 정우현과 그가 출연한 영화에 관해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끊임없이 말할 것 같았다.

“…근데 저기.”

이에 어머니가 불쑥 말했다.

“…예?”

신나게 말하고 있던 사장이 드디어 말을 멈췄다.

“…저희 차, 찾아갈게요. 수리비 얼마죠…?”

“…아, 하하하하하!”

사장이 뒤늦게 자신의 말이 길었음을 깨닫고 어색하게 웃으며 크게 말했다.

“…수리비! 얼마 안 해요! 한 이삼십 되는데! 에이…! 그냥 무료로 해 드릴게요! 얼른 그냥 찾아가세요!”

“…그럼 안 되죠…!”

어머니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드려야죠!”

하고선 얼른 돈을 지불하라고 남편을 채근했다.

“…아이고, 아이고, 아닙니다! 무려 국민 배우 정우현 군, 아니, 아니, 글로벌 스타 정우현 군 가족의 차를 수리했는데, 제가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돈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냥 이대로 차 가져가시고, 어디 가서 우리 카센터 참 좋다고 한마디만 해 주시면….”

하는데 아버지가 곧장 지갑을 꺼내 현금을 잔뜩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사장의 손에 거의 강제로 쥐여 주었다.

“…아닙니다, 사장님. 마음은 참 감사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가 면목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돈 받으세요.”

“예, 사장님! 참 감사합니다!”

정우현도 아버지를 따라 고맙다고 크게 말했다.

“…아이고. …그래, 그래….”

그런 정우현을 보며 사장이, 손에 쥐어진 지폐를 결국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어느덧 아버지는 낡아빠진 슈퍼카에 탑승해 시동을 걸었다.

“자, 모두 타!”

이에 정우현과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곧장 차에 탔다.

그 모습을 보고 사장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작정한 듯 다시 크게 말했다.

“…근데, 저기 우현 군 아버님!”

“…예?”

“…명색에 그래도 글로벌 스타를 아드님으로 두셨는데…. 차 좀 한 대 좋은 거로 뽑으시죠!”

“아….”

이에 정우현이 차창 너머로 사장에게 곧장 말했다.

“예, 그럴 거예요! 지금 바로, 새 차 사러 갈 거예요!”

“아하, 하하하하!”

그러자 마치 자기 일처럼 즐겁게 웃는 사장이었고, 그대로 정우현네 가족은 자동차 정비소를 빠져나왔다.

* * *

그렇게 아버지는 얼떨결에 정우현에게 설득당해 새 차를 사러 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바로 에이치 자동차 대리점이었다.

에이치 자동차는, 현재 정우현네 가족이 타고 있는 낡아빠진 차의 생산 업체이자 현재로서 국내 1위의 자동차 생산 회사다.

“…아빠!”

한데 정우현이 눈앞에 있는 에이치 자동차 대리점을 보고서 크게 아버지를 불렀다.

“…응?”

“지금 저기 대리점 가는 거예요?”

“그럼! …아들이 차 사자며…?”

아버지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들 정우현이 무려 약 500억 원을 벌었고, 이에 가족을 위해 새 차를 한 대 산단다.

물론 그 차는 어디까지나 가족의 차지만, 명의로 하자면 자동차 보험을 들고 운전을 할 아버지 명의였다. 즉 정우현이 아버지를 위해 차를 한 대 사서 준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고맙기만 했는데, 아들이 갑자기 눈앞의 자동차 대리점에 왜 가냐는 식으로 물어 혹시나 뒤늦게 마음이 바뀐 게 아닌가 생각됐다.

“예, 맞아요!”

“…아들, 왜? 무슨 문제 있어?”

이번에는 조수석에 있는 어머니가 물었다.

“…저기는 에이치자동차,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잖아요!”

“…그렇지.”

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차도 저기서 만든 차잖아.”

“…알아요! 제 말은…!”

“…응?”

“훨씬 더 비싼 차! 외국 차를 사러 가지 않냐는 말이에요!”

“…아!”

아버지가 뒤늦게 아들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탄성을 내지르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 우현아! 됐다, 됐어! 아빠는! 에이치 차도 엄청 좋아! 여기로 만족해! 심지어 새 차잖아! 우리나라에도 좋은 차가 얼마나 많은데…!”

“….”

안쓰러웠다.

돈이 무려 500억 원이나 생겨 모처럼 차를 사 준다는데, 국산 차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남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더 비싸고 화려한 차로 바꾸곤 한다는데, 그런 욕심도 부릴 줄 모르는 아버지가 무척 안쓰러웠다.

“…아빠!”

결국, 정우현이 참다못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으응?”

“다른 데 가요! 지금 당장!”

“…아니, 왜… 아빠는 여기가 좋다니까….”

“아니에요! 제발, 제발 다른 데 가요!”

평생 좀처럼 떼를 쓰지 않던 아들 정우현이 큰 소리로 계속 다른 자동차 대리점을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당황스러웠다.

마치 수년 전, 아버지가 등산을 가는 것을 막고자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만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던 때와 비슷했다.

절박한 것이다.

돈만 있으면 남들은 다 즐기는데, 혼자서만 괜찮다며 낡은 옷을 입고 낡은 차를 타고 값싼 음식만 사 먹으면서도 좋다고 껄껄 웃는 아버지.

운전을 하고 있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우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정우현의 눈치를 살피며 몇 마디 소곤소곤 얘기했다.

정우현이 배우가 되기까지, 평생 근근이 살아와 도무지 돈이 있어도 쓸 줄을 모르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그들끼리 얘기하기를 한참,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우현아.”

“…예.”

“알았다, 더, 좋고 비싼 차. 사러 가자.”

“…와!”

“아빠가 미안해, 우현이 마음을 못 알아줘서.”

미안하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에, 잠시나마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정우현이었다.

“…아니에요, 아빠! 어쨌든 돈을 아끼려고 하신 거 잖아요!”

“…그래, 그래. 그렇게 얘기해 주니 고맙다. 하여간, 여기 말고 다른 대리점 가자.”

“좋아요, 좋아!”

금세 정우현이 밝은 목소리로 크게 답했다.

“어디 갈 건데요?”

그러자 아버지가 사뭇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아빠가, 음… 드림카가 하나 있거든…?”

“…드림카요?”

처음 알았다. 아버지에게 무려 꿈의 차가 있었는지는.

“…응. 언제 잡지에서 봤는데 말이야.”

하고선 아버지가 부끄러운 듯 평소와 달리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볼부라고. 스웨덴 차인데… 거기서 만드는 차가 무지 안전하대… 웬만한 사고에도 끄떡 없나 봐. 그래서 거기 차를 갖고 싶었어. 그것도 제일 큰 차로… 튼튼하게 말이야….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그러고는 아버지가 잠시 말을 않았다.

남몰래 마음속에 간직한 나만의 드림카. 그것을 가족 앞에서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애초 그는 가장으로서의 위엄이나 자존심 같은 걸 내세우는 성향도 아니었지만, 이런 소망을 밝혀 보이는 건 또 달라 조금 부끄러웠다.

“…어때, 괜찮겠니?”

하고서 아버지가 은근한 목소리로 아들의 뜻을 물었다.

“네에에에에에!”

그러자 정우현이 무진장 큰 소리로 답했다.

너무 커서 앞 조수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귀를 다 막을 정도였다.

“지금 가요! 당장 가요!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차를 사러! 당장 가요오오오오!”

무지무지하게 신이 난 정우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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