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정우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무척이나 즐거웠다. 하지만 이곳은, 너의 집이 아니지.”
하고선 정우현과 악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겠구나, 그렇지?”
“예!”
하고 다시 밝게 답하는 정우현이었다.
한데 정우현이 곧장 또 말했다.
“하지만!”
“…응?”
“그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누구?”
하고서 스티븐 감독이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소리를 냈다.
“…아! 브래드.”
그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브래드구나, 네 친구 브래드 퍼트.”
“맞아요!”
이에 정우현이 신나서는 크게 소리쳤다.
“제 친구 브래드요!”
빵빵!
이때 별장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들렸다.
“…오.”
그러자 스티븐 감독이 밖을 보며 말했다.
“그가 온 거니?”
“예!”
과연 집 앞에는 2인승 연두색 오픈 슈퍼카를 타고 선글라스를 낀 채 금발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브래드가 씨익 웃으며 별장 쪽을 보고 있었다.
“Wooooooo! (우우우우우우!)”
그가 몹시도 큰 목소리로 정우현을 불렀다.
“What are you doing! go, go, gooooooo! (뭐 해! 어서 가즈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
정우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신나서 마구 웃었다.
* * *
태평양을 면하는 미국 서쪽 연안 즉 워싱턴, 오레곤, 그리고 할리우드의 LA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를 관통하는 US101 고속도로 위.
정우현은 연두색 오픈 슈퍼카를 운전하는 브래드 퍼트 옆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헤이, 우!”
“예!”
“오늘은 생각 없이 신나게 놀자고!”
“하하하, 좋아요!”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렸으나, 당장은 이 순간을 만끽할 때였다.
맑고 화창한 하늘 아래 브래드의 오픈카를 함께 타고, LA의 고속도로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언제 또 이런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좋구만, 좋아!”
“저도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브래드 퍼트가 웃다가는 잠깐 멈추고서, 정우현을 슬쩍 봤다.
그러자 정우현도 웃음을 멈추고 그를 슬쩍 봤다.
“하하하하하하!”
순간 브래드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우현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이에 브래드가 다시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는 못 웃을걸?”
하더니 그가 무진장 큰 소리로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마구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러자 정우현도 눈을 살며시 뜨고,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역시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둘이 미친 듯이 웃다가는 브래드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오우, 오우, 이제 그만….”
그제야 정우현도 웃는 걸 잠시 멈췄다.
“내가 졌다, 우.”
“하하하!”
“…도무지 너란 아이는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 거니?”
“이길 필요 없어요!”
정우현이 밝게 말했다.
“우린 친구잖아요!”
그러자 브래드가 씨익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렇지!”
하고선 액셀을 더 강하게 밟으며 예의 거친 말을 내뱉었다.
“We are friends, friends! And absolutely fucking close friends! (우린 친구지, 친구야! 그것도 겁나 압도적으로 친한 친구!)”
“하하하하!”
* * *
LA 남쪽 롱비치 해변.
신나게 달려 한 시간도 안 돼서 해변에 도착했다.
브래드는 차를 몰며 사람들이 잔뜩 있는 해변을 슬쩍 보기만 할 뿐 금세 지나치고 말았다.
“브래드!”
“으응?”
“해변으로 놀러 온 거 아닌가요?”
“그렇지!”
“근데 왜 지나쳐요?”
“하하하, 있어 봐!”
하고선 그가 이번에는 동쪽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그러자 해변이 계속 펼쳐지는 가운데 점차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게 됐다.
항구 가까이 해양 보호 구역이 있어서, 일종의 통제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LA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알래스카 다음으로 어획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 해양 보호 구역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윽고 해변 도로 한 쪽 끝이 가까워지자, 차량 출입을 막는 차단봉이 눈에 띄었다.
한데 브래드가 곧장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오오, 브래드!”
덩치가 커다란 흑인이 브래드를 곧장 알아보고서 쾌활하게 인사했다.
“오우, 잘 있었습니까!”
“그럼요, 그럼!”
하고선 즉각 차단봉을 올리는 흑인이었다.
“근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군요?”
“아! 하하! 그렇습니다, 내 친구 킹 보이와 함께 왔죠!”
“…킹 보이?”
그러고는 흑인이 조수석에 앉은 정우현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아아!”
하고는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았다는 듯 신나게 말했다.
“그 꼬마군요! 영화 속 소년 왕!”
“맞아요!”
“하하하하! 실제로 보니 훨씬 잘생겼군요!”
이에 정우현이 즉각 답했다.
“감사합니다!”
브래드가 씨익 웃고서 말했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만 나오면 되죠? 언제나처럼?”
“그래요!”
하고서 둘이 몇 마디를 더하더니, 브래드가 한순간 다시 액셀을 밟아 해변 깊숙이 들어갔다.
* * *
“…와아.”
놀라웠다.
아까 전 사람이 많았던 해변의 바다도 예뻤지만, 이곳 통제된 지역의 바다는 그야말로 천혜의 푸른 바다였다.
파스텔을 칠한 듯한 해 질 녘 붉은 석양 아래로, 넘실거리는 바다가 끊임없이 펼쳐졌고, 물결은 하나같이 총천연의 에메랄드빛이었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어우러진 붉은 빛과 푸른 빛의 압도적인 광경에, 둘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정우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름답네요.”
“그래.”
그러면서도 정우현이 이곳에 오기까지 걱정되는 한 가지를 물었다.
“그런데, 브래드. 여긴 원래 들어오면 안 되는 곳 아닌가요?”
“그렇지.”
하면서 브래드가 손을 뻗어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서 말이다.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자라고 있거든. 그래서 사람은 들어오면 안 돼.”
“…하지만 우리는 들어왔잖아요?”
하고 정우현이 아이답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하하하, 그래, 들어왔지. 하지만 괜찮아, 나, 브래드 퍼트와 함께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정우현이 집요하게 물었다. 그는 아무리 멋진 바다라지만 무리해서, 즉 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풍경을 즐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브래드도 정우현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좀 더 상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하, 걱정할 필요 없어, 우! 내가 막무가내로 이런 곳에 드나들 것 같니? 스타라는 명성을 이용해서 말이야? 그럼 안 되지!”
하고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브래드는 해양 환경 보호 단체의 후원인이다. 그것도 막대한 후원인이다. 그래서, 이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드나든다고 해봤자 이따금 단체를 점검하고, 지금처럼 멀리 해변 한쪽에서 차를 탄 채 말없이 바다를 감상하다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아, 그렇군요.”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정우현이 괜히 미안해졌다.
“하하, 우! 너도 이번 영화로써 더욱더 큰 사람이 될 거다! 즉, 큰 힘을 갖게 된단 말이지! 뭐, 그러고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만, 이왕이면 그 힘을 좋은 일을 위해 쓰기도 하면 좋겠구나!”
브래드는 실제로 약 40개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예,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하고서 둘은 또다시 잠시 입을 다물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정우현은, 이곳에 오기까지 마음 한구석을 짓눌렀던 괜한 걱정도 사라져 원 없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제 정우현과 브래드는, 떨어져 지내야 했다.
서로 표현은 안 했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작별하면 꽤 오래 볼 수 없게 되리란 것을.
이에 정우현은 한국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떠나올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와 떨어질 때는 언제든 다시 돌아가 영영 함께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 이별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브래드는 달랐다. 이제 멀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니까.
해가 지고 있었다. 해변이 점점 어두워지는 가운데, 이제 곧 돌아가야만 했다.
“우.”
브래드가 나지막하게 정우현을 불렀다.
“예?”
“너는, 잘할 거다.”
“….”
정우현이 고개를 돌려 말없이 브래드를 바라봤다.
“너는, 뭐든지 잘할 거다. 나는, 믿는다.”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하는데 놀랍게도 어린 정우현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단순히 몸이 아이가 되어서 그런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끝내 멈출 수 없었다.
슬펐다, 너무 슬펐다. 브래드와 이제 떨어져야 한다는 게.
“…하하하.”
브래드가 그 모습을 보고 따뜻하게 웃었다.
“이제 좀 아이 같구나.”
하고선 그가 울고 있는 정우현을 와락 안았다.
그러자 정우현은 이제 완전한 아이가 되어,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스티븐 감독의 별장에서 웃고 있는 그를 처음 만나 다정하게 브래드라고 부르게 된 이래,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촬영장에서 항상 챙겨 주고 때론 사람들 보란 듯이 자신을 목말까지 태우며 크게 웃던 모습, 커다란 독수리라며 전용기를 소개하고 씨익 웃는 모습, 세계 방방곡곡의 도시에서 영화 홍보회를 열며 누구보다 열띠게 자신을 알리고 때론 화까지 내던 모습, 누가 봐도 낡아빠진 가족의 차를 슈퍼카라고 치켜세우고는 그 비좁은 차 안에 자신을 안고 탄 모습, 그리고 지금 여기 롱비치 해변에서까지.
전부 보석 같이 반짝거리는 순간이었다.
비록 아버지 정기석이 곁에 있긴 했지만, 실상 브래드는 정우현이 미국에 온 이래 함께한 시간이 가장 많았던 친구이자 조력자였고 때론 보호자였다.
그런 그와 이제 작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헤이, 헤이.”
자신의 품에서 연신 울고 있는 어린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브래드가 말했다.
“울지 마.”
그러고서 그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영웅은 울지 않는 법이다.”
“….”
브래드의 말에 정우현이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그러고는 자신의 작은 팔로 눈물을 쓱쓱 훔쳤다.
이때 브래드가 조수석 앞에 있는 차량의 수납함에서 무언가를 꺼내 정우현의 머리에 씌웠다.
모자였다. 그가 사람들이 있는 밖에 다닐 때 항상 쓰고 다녔던 검은색 풋볼 팀 모자였다.
“이제 너도 어딜 가든 이걸 써야 할 거야.”
그러면서 모자의 끈을 최대한 당겨 아직은 어린 정우현의 머리에 맞게 줄였다.
“꼭 쓰고 다니라고, 네 거니까.”
“아아.”
눈물을 닦은 정우현의 얼굴이 커다란 모자의 챙 옆으로 살짝 보였다.
다행히도 살며시 미소 짓기 시작했다.
* * *
정우현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여객기를 타고 도착했기에, 공항은 벌써부터 기자 및 팬들로 장사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정우현이 아버지와 함께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소란이 일었다.
“정우현이다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글로벌 스타, 정우혀어어언!”
“인크레더블 킹 보이이이이!”
아이 용 선글라스를 끼고 브래드로부터 선물 받은 모자까지 푹 눌러썼는데도 사람들이 한순간에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언론이, 정우현이 이제 귀국한다며 앞다퉈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우현아아!”
그 와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현은 즉각 그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정우현!”
어머니였다. 어머니 황희진이, 낡아빠진 슈퍼카 옆에서 자신을 향해 크게 팔을 휘젓고 있었다.
옆에는 그새 키가 좀 더 큰 여동생 정다현도 오빠와 아빠를 보고서 좋아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얼른 와!”
정우현과 아버지가 즉각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달려갔다.
다른 아이였으면 이미 캐리어 무게에 지쳤겠지만, 정우현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인인 아버지보다 빠르면 빨랐지, 뒤처지지 않고 빠르게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타악!
미리 열어 놓은 트렁크에 짐을 재빠르게 싣고, 네 가족이 단숨에 차량에 탑승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모두 전날 밤 국제 전화로 통화하며 긴밀하게 짜 놓은 작전이었다.
“하하하, 성공!”
어머니가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아버지가 신나서 크게 웃었다.
어머니가 조수석에서 뒤로 돌아 아들 정우현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우현아!”
“엄마도요!”
“하하하, 어디 한번 아들 얼굴 좀 제대로 보자!”
하고 양손으로 정우현의 얼굴을 살포시 잡았다.
그러자 정우현이 활짝 웃었다.
“기특한 우리 아들…!”
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가족 모두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크게 말했다.
“아, 아, 오늘은!”
정작 정우현보다 더 신나 보이는 어머니였다.
“내 아들 정우현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겠어요!”
“…어,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머니가 눈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맨날 무슨 호텔에서 좋은 거 먹는다고 자랑했잖아!”
“…하하하, 그건 그렇지.”
“아들! 그러니까 말해 봐! 뭐 먹고 싶어?”
이에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더니 한마디 툭 내뱉었다.
“된장찌개요.”
“…응?”
“된장찌개요, 엄마. 된찌 먹고 싶어요.”
“아아, 응….”
된장찌개라니. 아들이 원한다면 소든 랍스타든 잡아서 뭐든 잔뜩 해 주려고 마음먹었더니 고작 된장찌개라니.
조금 김이 빠지는 어머니였다.
사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조금 이상한 게 있었는데, 아들 정우현이 거의 아기 때부터 즉 이유식을 떼고 밥을 조금씩 먹게 된 순간부터 된장찌개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막내 정다현도 그렇고 다른 집 아이들은 특유의 구수한 향 때문에 싫어하거나, 좋아해도 사춘기는 훌쩍 지나서 좋아한다던데 유독 아들 정우현만 이 된장찌개를 아기 때부터 좋아했다는 게 한편으로 신기했다.
“오오, 예스!”
한편 옆에 있던 아버지가 좋아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버지 역시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이다.
사실 된장찌개는 전생에서, 가세가 기운 정우현네 집이 가장 자주 끓여 먹던 일종의 애환(哀歡)의 음식이다.
한 뚝배기 끓이는 데, 재룟값이 얼마 들지 않으니 자연스레 자주 해 먹었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딱히 질리지도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애초 맛있게 잘 끓여 주던 것도 있었다.
정우현은 전생에 자주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선 엄마가 해 주는 만큼 제대로 된 된장찌개가 없어요. 막 달거나, 하여간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죠.”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고기나 해산물 등 좋은 음식은 잔뜩 먹어도, 이 한식, 그것도 한식 중 한식인 된장찌개만큼은 어머니의 손맛만 한 게 없었다.
“…으응, 그래?”
아들이 연신 자신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자 다시 흥이 나기 시작한 어머니였다.
이에 어머니가 크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오늘은 이 황희진 표 된장찌개다!”
“오케이! 베리 굿!”
하고 답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서방님? 미국물 좀 드셨다고 이제 아메리칸 다 되셨네요.”
“…하하하하하!”
이에 아버지가 멋쩍어서 괜히 웃었다.
* * *
저녁을 다 먹고 씻고서 자신의 방 침대에 정우현이 누웠다.
지난번 영화 홍보를 위해 잠깐 집에 묵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길고도 짧았던 미국 생활이 끝나고 이제는 다시 이곳 한국에서, 자신의 집에서 아이 정우현의 삶이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지만, 하나같이 모두 즐겁고 좋은 기억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다니.’
하고 정우현이 생각했다.
'앞으로 내 삶은, 또 얼마나 즐거울까.'
그러고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수개월 후.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가운데 드디어 정우현의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50억… 잠깐… 아니?’
정우현이 통장에 찍힌 숫자를 세며 한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500억! 약 500억 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