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한국에서의 홍보회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기자들이 온갖 질문을 정우현에게 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의 생활, 힘들지는 않았나요?”
“한국에서의 촬영 환경과는 많이 다를 텐데, 얘기 좀 해 주세요!”
“브래드 퍼트가 잘해 주던가요? 스티븐 감독은요?”
이에 정우현은 막힘 없이 술술 대답했다.
북미와 유럽에서의 온갖 질문으로 이미 답변에 능숙해진 그이기도 했다. 심지어 질문 중 상당수는 중복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꼿꼿이 선 채 질문했다.
정우현에게는 낯익은 여자였다. 지난날 <겨울 방학> 시사회에 있었던, 차가운 인상의 곽유정 평론가였다.
“오랜만입니다, 우현 군.”
“…아! 안녕하세요, 평론가님!”
“네, 안녕하세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새 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쳤군요.”
“감사합니다!”
“…음,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저는 한 가지 조금 다른 논의를 하고 싶은데요.”
하고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현 군이 할리우드에, 그것도 어린 나이에 빨리 진출한 건 좋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너무 과중한 일을, 그것도 집을 떠나 먼 타국에서 시키는 게 아니냐고요.”
그런 시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한국의 아역 배우 정우현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기에, 그것도 세계 최고의 감독 및 배우와 함께 영화를 촬영한다기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역시 어린 나이를 생각하자면 조금 어려운 얘기일 수 있지만, 우현 군이라면 충분히 제 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네.”
거짓 없이 담담하게 답하는 정우현이었다.
“예, 그렇다면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먼저 저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우현이 공손하게 답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씀드려요. 1분 1초가 즐거웠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거예요! 우선 외국에 있는 내내 든든한 아버지가 제 곁에 있었고요! 그리고 여기 옆에 있는 브래드 퍼트는 물론 스티븐 감독님과 그 외 수많은 스태프 모두 하나같이 다 잘해 주셨어요!”
그러고는 그가 한껏 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루하루 매일 재밌는 놀이를 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조금 섭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또 유럽 홍보회는! 아아, 얼마나 즐거웠는지, 파리, 프라하 등 제가 방문한 도시들 모두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 것 같아요!”
“….”
정우현이 진심을 다해 무진장 좋았다는 말만 하자 곽유정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서는 짧게 한마디 했다.
“…그렇군요.”
“…우.”
한편 옆에 있던 브래드 퍼트가 정우현을 조용히 불렀다.
정우현과 곽유정의 대화에서 조금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예?”
“…지금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다른 기자들이랑 달리 표정이 굳어 있군?”
“…아.”
이에 정우현이 빠르게 곽유정의 말을 통역하고, 자신이 어떻게 답했는지도 말해줬다.
그러자 브래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쪽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오우, 오우, 오우. 평론가님?”
자신을 부르는 말에 곽유정이 즉각 브래드를 바라봤다. 곽유정 또한 국내 최고 대학인 한국대학교 미학(美學)과 출신에 뛰어난 외국어 능력으로 영어 정도는 소통할 수 있었다.
“…예?”
“하하하하!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
“평론가님은 우리 우, 그러니까 정우현을 잘 모르는 것 같군요! 하지만 저는 알아요, 그것도 아주 잘 알아요. 그런 제가, 제 이름 브래드 퍼트를 걸고, 한번 진실만을 말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런 무시무시한 아이, 아니 배우는 처음 봤습니다!”
그러고서 그가 자신을 보고 환히 웃고 있는 정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저 브래드, 벌써 배우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연기하며 밥 벌어먹고 산 지 10년이 넘었다는 겁니다. 근데 정말, 이런 애는 처음 봐요. 한마디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우는, 그냥 천재입니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어요.”
“….”
“그 어떤 배우들보다도 예컨대 오즈카(Ozcar) 상을 받은 배우라거나 경력이 30년이 넘은 베테랑들보다도 더 촬영을 즐기면서, 연기는 또 쉽게 동시에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오직 이 정우현밖에 못 봤습니다.”
하고는 그가 자신의 푸른 눈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겁니다!”
“아아….”
브래드 퍼트의 칭찬이 무척이나 강렬해서 곽유정은 그저 말없이 들을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평론가님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킹 보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더욱더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천재가 본인의 천재적인 능력을 더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지 그걸 고민하시는 게 훨씬 좋을 겁니다. 모르겠어요? 우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보물이라고요! 나아가 온 세상의 보물이기도 하고요!”
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브래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이 정우현에 관해 생각했던 모든 걸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곽유정은 잠시 생각하다가는, 서서히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서는 끝내 조금 부드러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브래드 퍼트 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와 일부 팬들이 우려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아역 배우 정우현 군이 앞으로 더 잘되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브래드 님과 저의 얘기가 같은 곳을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브래드도 이제 좀 만족스럽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더 이상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우현 군?”
하고 곽유정이 다시 정우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제야 곽유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우리가 고맙죠. 우리 같은 영화 팬들이야, 언제든 우현 군의 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기도 하니까요. 하여간, 먼 나라에서 영화를 찍고 이렇게 별 탈 없이 돌아와 줘서 감사합니다. 이 이상의 얘기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어 가겠습니다.”
“예, 평론가님! 꼭 보세요! 이왕이면 가족, 친구분들 모두 다 데리고 보세요!”
“하하하하하!”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웃었다.
“그만큼 재밌고, 스펙타클한 영화예요! 절대 후회 안 하실 거예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우현 군.”
그리고 본격적으로 홍보회가 진행됐다.
* * *
김포 공항 앞.
정우현은 다시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과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 이번엔 금방 올 거지?”
이에 정우현이 힘차게 말했다.
“예, 엄마! 걱정 마세요! 이대로 일본에 갔다가요! 곧장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영화가 개봉하고 감독님과 함께 관객들의 반응을 잠깐 살핀 뒤, 이제는 아예 돌아올 거니까요!”
“…그래, 그래. 우리 아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하고서 고개를 돌려 아버지 정기석을 바라봤다.
“여보, 좀만 더 고생해.”
“응. 당신도 다현이 잘 보고.”
동생 정다현은 오빠, 그리고 아빠와 작별하는 이 시간이 조금 슬퍼서 말없이 그들을 보고만 있었다.
“잘 있어, 다현아!”
정우현이 그런 동생을 보고 말했다.
“오빠가 너 좋아하는 젤리 잔뜩 사 올게!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듣고!”
하고서 동생의 얼굴을 보고 싱긋 웃어 보였다.
“알았지?”
“…응!”
“헤이, 우!”
뒤편에서 선글라스를 쓴 브래드 퍼트가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정우현을 불렀다.
“인사도 좋지만, 이제 가야 해! 커다란 독수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하하하! 알겠어요, 브래드!”
그러고서 정우현은 어머니와 동생을 뒤로하고 다시 아버지와 함께 브래드의 전용기에 올라탔다.
* * *
모든 홍보회가 마치고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드디어 개봉했다.
무려 전 세계 동시 개봉이었다.
애초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 배급에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 그리고 브래드 퍼트 주연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중요한 건 흥행 성적이었는데, 결과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었다.
전 세계, 영화관이 있는 모든 국가에서 연일 매진 행렬이었다.
한국에서도 물론 일찌감치 최다 관객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북미 박스오피스는 물론 유럽, 남미, 호주 그리고 일본까지 상업 영화가 제대로 영화관에 걸리는 모든 나라에서는 이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좀처럼 순위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이에 한국과 미국 및 영화가 개봉한 모든 나라의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는데, 뒤늦게 주인공 정우현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기사가 마구 나왔다.
정우현의 연기는 물론 화려한 액션에, 사람들이 단숨에 빠져 버린 것이다.
‘Le miracle de l'incroyable garçon d'Asie de l'Est et du meilleur réalisateur du monde (동아시아의 놀라운 소년과 세계 최고의 감독이 만들어 낸 기적)’
‘トップスターブラッドよりも明るく輝く星があった (톱스타 브래드보다 더 밝게 빛나는 별이 있었다)’
‘The King Boy's Incredible Box Office Performance, How Incredible Will the Revenue Be? (소년 왕의 인크레더블한 흥행 성적, 수익은 또 얼마나 인크레더블할까?)’
이 모두 프랑스의 르 망드, 일본의 아사이, 미국의 뉴욕 포스트 등 각국 주요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한 소녀 팬은 티브이에 나와 정우현의 사진을 들고서 이렇게까지 말했다.
“When I grow up, I will woo Woo! (저는 나중에 커서 우한테 청혼할 거예요!)”
woo가 영어로 청혼하다 라는 뜻이 있기에 가능한 재치 넘치는 표현이었다.
* * *
“…하하하하!”
영화의 대성공을 알리는, 이런저런 신문과 방송을 보며 크게 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이었다.
별장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영화가 성공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그리고 그 옆에는, 정우현이 있었다.
“고맙다, 하지만 모두.”
스티븐 감독이 다정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덕분이다.”
“아니에요! 감독님이 만든 영화잖아요! 저는 그저 연기했을 뿐이고요!”
“아니, 아니야.”
그러고선 그가 자신의 투명한 안경을 한 번 고쳐 쓰고는 말했다.
“잊었니? 애초 너를 보고 쓴 이야기다. 네가 한국의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힘을 준 그 순간을 보고 말이야. 그렇게 해서 한 소년 영웅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그대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거다.”
“예!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성공하지는 않아요! 결국, 감독님이 좋은 글을 쓰고! 또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거죠!”
“하하하하하. 우현. 한국 사람들은 겸손하다고 하는데, 널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구나. 어쨌든 네가 해낸 거다. 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신나고 멋진 모습을 보여 관객들을 만족시킨 끝에,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거야. 나는 그저 오직 네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카메라로 보였을 뿐이고.”
그러고서 스티븐 감독이 정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저 너의 성공을 만끽하고, 이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더군다나 아직 어린 너는, 더 그래도 돼. 매일매일 웃으며 세상이 놀이 공원인 것처럼 마냥 즐겨도 괜찮을 때란 말이다. 알겠지?”
“….”
정우현이 잠시 스티븐 감독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스티븐이 시나리오를 잘 쓰고 연출을 잘해도, 아무리 톱스타 브래드 퍼트가 옆에서 매력을 발산해도, 주인공인 정우현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면 실패했을 영화다.
더군다나 매일 놀기만 해도 아쉬울 나이에, 그는 고국인 한국을 떠나 먼 나라에서 그것도 오랫동안 촬영을 하며 이 위대한 모든 과업을 완벽하게 해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넘어, 조금은 우쭐해도 될 때였다.
“…알겠습니다!”
이내 정우현이 밝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러자 스티븐이 흐뭇하게 웃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야말로 고맙다. 나 역시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하나같이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지. 거기에 결과까지 좋으니, 정말 무척 기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