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정우현과 어머니 황희진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러고서는 어머니가 잠시 몸을 떼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리 아들, 더 잘생겨졌네?”
“…하하하, 엄마….”
“키도 훨씬 커지고 말이야.”
“…오빠.”
동생이었다. 동생 정다현이 살며시 웃으며 정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순간 달려들어 살포시 그를 끌어안았다.
“와아!”
정우현이 동생을 위아래로 보고 말을 이었다.
“다현이도 키 많이 컸다!”
“…정말?”
“와우!”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브래드 퍼트였다. 브래드가 아버지 정기석과 함께 뒤늦게 걸어 나와, 가족 간의 극적인 만남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 것이다.
“…여보!”
어머니는 남편을 보고선 즉각 소리 질렀다.
“여보오!”
아버지도 무척이나 기뻐 아내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좋구나, 좋아! 우의 가족들!”
브래드가 행복하고 단란하기 그지 없는 정우현네 가족을 보며 크게 말했다.
“…어머!”
어머니가 뒤늦게 브래드를 보고 약간의 경계심을 보이면서 놀랐다. 브래드는 일행이 아닌 줄 알았기에 그랬다. 그저 커다란 백인 남자가 공항에서 나오는 줄 알고만 있었다.
브래드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선글라스까지 껴 알아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야?”
어머니가 곁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 하하….”
아버지가 대답은 않고 그저 웃고 있는데, 브래드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얼굴을 보이며 인사했다.
“Hello! Woo's mother, I'm Brad Putt.”
“…아아아!”
깜짝 놀라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봤던 브래드 퍼트가, 세계 최고의 톱스타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하하하,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이에 아버지가 웃으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진짜, 브래드 퍼트예요?”
“그럼, 가짜 브래드 퍼트겠어.”
옆에서 또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
“하하하하!”
브래드가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어머니야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브래드는 이런 일들이 익숙했다.
자신을 직접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사람들.
“엄마! 우리, 브래드의 전용기를 타고 왔어요!”
“정말?”
“네! 근데 다들 피곤할 거예요! 유럽에서 바로 와서 시차가 안 맞거든요! 그러니까 얼른 이동해요!”
“아아, 알았어!”
* * *
정우현네 가족과 브래드가 차를 타러 갔다.
여전히 낡은 자가용을 오랜만에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과 아버지다.
“…와우.”
정작 그 차를 보고 놀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브래드였다.
“…이게 너희 집 차야?”
“예!”
정우현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비록 낡아빠진 차지만, 더군다나 브래드의 온갖 슈퍼카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이 차를 타고 정우현네 가족이 여기까지 잘 헤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살린답시고 꾀병을 부려 병원에 갈 때나,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시사회를 보러 갈 때나, 달러를 바꾸겠다고 은행에 갈 때나, 아파트를 알아보겠다고 강남에 갈 때나 모두 이 차를 탔다.
그것도 가족 모두와 함께.
“하하, 브래드! 이게 이래 보여도 잘만 달리거든요!”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브래드 퍼트가 그런 부자지간을 보고서는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마디 했다.
“Yeah, this is a really real supercar…! (그렇지, 이런 게 진짜 진짜 슈퍼카거든…!)”
“하하하하하하!”
브래드의 말에 가족이 모두 웃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타기에는 무리였다.
5인승 승용 차량이기는 했지만, 차가 작아 정우현네 네 가족과 브래드가 타기엔 다소 비좁았던 것이다.
이에 정우현네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음, 경호 차량을 타야 하나.’
브래드가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뒤를 따라오고 있는 자신의 경호원 둘을 보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에 경호원에게는 따로 따라오라며 크게 한마디 하고서 다시 정우현네 가족을 보고 말했다.
“자, 얼른 갑시다!”
그러면서 그가 정우현을 번쩍 안았다.
“와아아!”
“킹 보이 우는 내가 안고 타면 되니까!”
낡고 작은 차든 상관없었다.
정우현을 따라 그들 가족과 더 함께하고 싶은 브래드였다.
* * *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차를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어머니가 앉고, 뒷좌석에는 동생과 한쪽에는 정우현을 무릎에 앉힌 브래드가 탔다.
“…여보, 믿기지 않아. 우리 차에 브래드 퍼트가 탔다니….”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곧장 크게 답했다.
“하하하! 그뿐이겠어? 당신한테 해 줄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하고서는 곧장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여보!”
“…으응?”
“나! 브래드 이겼어!”
“…뭐?”
“당구!”
“…정말?”
“그럼! 당신 남편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하하하하!”
하고선 아버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실은 우현이가 좀 도와주기도 했고.”
“하하, 그래? 그래도 잘했어!”
그러면서 아버지가 브래드와 대결했던 당구 게임을 상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
순간 브래드가 자신의 품에 있는 정우현을 불렀다.
“예?”
“아버지가 어머니 만나서 무척 기쁜가보다! 계속 웃으시네!”
“…하하하, 예.”
차마 아버지가, 브래드 당구 이긴 얘기를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정우현이었다.
“아, 아, 그리고 당신 주려고 사진도 찍었고 말이야! 우현아!”
한참을 당구 얘기를 하다가는, 아버지가 정우현을 불렀다.
“엄마, 사진 보여 줘라!”
“예!”
이에 즉각 정우현이 품에 있던 사진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와아, 정말이네….”
놀라웠다. 남편과 아들이 브래트 퍼트와, 그것도 그의 전용기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니. 심지어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서 서로 정말 가까운 게 틀림없었다.
“…어?”
그러더니 갑자기 어머니가 무언가 발견한 듯 소리를 내더니, 마구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하!”
“…왜 그래, 여보?”
운전을 하고 있어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렇게 기뻐? 아들이랑 남편이 브래드랑 사진을 찍은 게?”
“…아니!”
하고서 어머니가 곧장 말을 이었다.
“당신! 브래드랑 키 비슷해 보이려고 까치발 들었잖아!”
“…뭐?”
“여기 사진에 다 보인다고!”
“….”
아버지가 잠시 말을 않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현아.”
“…하하하… 아빠….”
“하하하하하!”
어머니는 재밌다는 듯 계속 웃었다.
* * *
약 30분을 넘게 달리면서 차량이 본격적으로 서울 시내에 진입했다.
이때 계속 조용히 있던 동생 정다현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오빠에게 물었다.
“근데….”
“…응?”
정우현이 곧장 되물었다.
“…좋은 사람이야? 이 아저씨.”
브래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하, 그럼! 엄청 좋은 아저씨야! 너무 좋아서, 심지어 나한테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고, 친구 하재!”
“...정말?”
“응!”
“…그럼, 나도 친구 할래.”
옆에 있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음을 눈치챈 브래드가 곧장 정다현을 보고 말을 걸었다.
“Hey, Cute little girl! (헤이, 귀여운 아가씨!)”
그러자 정작 동생은 수줍어서 고개를 홱 돌리고 그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하하하! 우랑 다르게 부끄럼이 많구나!”
동생은 실제 정우현과 달리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었다. 이는 두 남매의 고유한 개성 이외에도, 부모의 양육 방식이 한몫했다. 첫째인 정우현이 워낙 아기일 때부터 놀라운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 앞에 서서, 부모 특히 어머니 황희진이 둘째만큼은 주로 집 안에서 그것도 얌전히 키운 것이다.
경직된 자세로 앞만 보는 동생에게, 브래드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하, 너는 좋겠다. 오빠가 참 대단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물론 동생은 브래드의 말이 영어이기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
순간 아버지가 차를 정차하고 말했다.
“다 왔습니다, 브래드!”
국내 최고의 호텔 앞이었다.
브래드가 한국에 있으며 묵을 곳이었다. 오늘은 본인 및 경호원들만 먼저 하루 묵고, 홍보회를 함께할 스태프들은 내일 여객기를 통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정우현과 아버지는 물론 집에서 자면 되기에 호텔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미스터 정.”
브래드가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힘드셨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는 브래드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물론 정우현이 즉각 통역했다.
“차가 워낙 볼품없어서. 더군다나 우리 아들을 안기까지 했으니….”
“하하하, 아닙니다!”
브래드가 차에서 내려 엄지를 치켜들고 크게 말했다.
“제 생을 통틀어 가장 유쾌한 드라이브였어요. 정말입니다, 이런 게 진짜 진짜 슈퍼카죠! 하하하하!”
그러고서 정우현네 차량을 향해 잘 가라는 의미로 팔을 휘휘 흔들고, 호텔로 들어가는 브래드였다.
* * *
그날 밤, 정우현은 집 안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
아버지와 함께 퍼스트 클래스에서 편히 앉아 스튜어디스 누나에게 선물도 받고 LA로 간 것부터 해서, 촬영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았다는 얘기, 유럽에서 브래드와 함께 각국을 방문하며 영화를 홍보하고 한편으로는 통역인이 필요 없었다는 얘기 등 할 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신나서 한참을 떠들고는 드디어 분위기가 조금 차분해졌다.
그러자 어머니가 밝은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너무 기쁘네. 우리 우현이랑 아빠, 얼굴 보고 얘기 잔뜩 들으니.”
“…하하하, 엄마, 저도요!”
“….”
동생은 이 모든 얘기를 말없이 미소 짓고 듣고 있었다.
“…엄마는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엄마 얘기도 해 주세요!”
정우현이 뒤늦게 엄마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엄마는….”
이에 어머니가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을 뿐이지.”
하고서 다시 정우현을 안는 어머니였다.
“그게 전부야.”
“….”
정우현이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말했다.
“…저도요, 엄마.”
발코니 넘어 한강 위로 푸른 달이, 끌어안고 있는 정우현과 어머니 그리고 곁에 있는 아버지와 동생 네 가족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 * *
서울 영등포의 한 백화점 전시관 안.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한국 홍보회가 시작됐다.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대한민국의 국민 아역 배우 정우현 때문이다.
“…와우.”
그 모습을, 또 브래드가 보고 한껏 놀랐다.
“…우, 너 인기가 장난이 아니구나.”
“하하하! 브래드는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최고잖아요!”
“으음? 그새 잊었어? 체코에서는 네가 더 인기가 많았다고!”
“에이, 아니에요!”
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낮은 음성이 들렸다.
“우현아.”
이에 정우현이 곧장 뒤돌아봤고, 거기엔 놀랍게도 장필도 감독이 있었다.
“감독님!”
“하하하! 참 오랜만이구나!”
하고 이내 정우현을 끌어안는 장 감독이었다.
“보고 싶었다.”
“저도요!”
장 감독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브래드 퍼트를 보고서 역시 인사를 했다.
“Hello, I am director Jang Pil-do of . (안녕하십니까, 저는 <겨울 방학>의 장필도 감독이라고 합니다.)”
정우현처럼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대강 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영어 실력이었다.
“…오, 반갑습니다! 저는 브래드 퍼트입니다.”
“하하하, 잘 알고 있지요.”
영화감독과 배우의 만남은 보통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상대를 대하며 많은 것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브래드 퍼트는 세계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할리우드 대표 배우고, 장필도는 대한민국의 대표 감독일 뿐이다.
그럼에도 브래드가 그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무려 <겨울 방학>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영화 무척 감명 깊게 봤습니다!”
브래드가 먼저 장필도를 칭찬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에 장필도 감독도 곧장 화답했다.
“하하. 저도 브래드의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 <흐르는 바다처럼>, <겨울의 전설>, <뱀파이어와의 랑데뷰>, 그리고 최근작 <세븐틴>까지 모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음, 이러고 보니 전부 재밌게 본 것 같군요. 하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영화를 합쳐도 감독님의 <겨울 방학>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고서는 브래드가 정우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을 이었다.
“그 영화로 인해 이 천재 배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요! 즉 감독님이 이 아이를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독님을 존경하기에 충분합니다!”
“아아….”
이에 장필도 감독이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극찬 감사합니다만, 제 덕이 아니라, 단지 그저 우리 우현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날 뿐이라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군요. 즉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 언젠간 세상에 알려질 아이였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니, 우현아?”
“….”
하고 묻는 장 감독의 말에 정우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인 역시 무척이나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들이 면전에서 자신을 마구 칭찬하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이윽고, 그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하하하하!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