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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26)화 (26/200)

26화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홍보회는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정우현 덕분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에 잠자코 있던 여타 기자들도 자유롭게 불어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통역이 따로 필요 없어졌기에, 훨씬 소통이 원활해진 것이다.

“우현 군! 영화 얘기 좀 더 상세하게 해 주세요!”

“할리우드에서의 촬영은 처음일 텐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스티븐 감독은 어떻던가요? 옆에 있는 브래드는요?”

등등에 모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하는 정우현이었다.

졸지에 한쪽에 있던 통역인이 할 일이 없게 됐다.

“하하하하하!”

브래드는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듯 호탕하게 웃고서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제대로 돌아가는군!”

하고선 사회자를 보고 크게 말을 이었다.

“사회자님.”

이에 이번엔 통역인이 아니라 정우현이 영어를 불어로 바꿔 말해 줬다.

“…예?”

“다시, 이 포스터 말입니다.”

브래드가 몸을 돌려 아까 전 인물의 크기를 지적했던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또 가리켰다.

“예.”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화 줄거리로 보나, 지금 홍보회 분위기로 보나 우리 우가 주인공인 건 확실해 보이는데!”

“…아.”

자신을 또다시 칭찬하고 띄우는 브래드의 말에 정우현이 조금 민망해 통역을 잠깐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원래 있던 통역인이 곧장 브래드의 말을 받아 온전하게 통역했다.

이에 사회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게요. 음, 한번 국내 수입 영화사 측에 문의해 보겠습니다.”

“예, 꼭 문의하세요!”

하며 한 번 더 강조하는 브래드였다.

* * *

그런 식으로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유럽 프로모션이 계속됐다.

독일 베를린에서의 홍보회에서도 정우현은 유창한 독일어를 해 사람들을 또 놀라게 했다.

“Es ist ein wirklich lustiger Film, also viel Spaß beim Anschauen! (무지무지하게 재밌는 영화니 즐겁게 관람해 주세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도 그는 이탈리아어를 하고 있었다.

“Sono sicuro che sarà un film che renderà più viva questa bellissima città di Venezia! (이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를 더 활기차게 할 영화라고 확신합니다!)”

급기야 줄곧 함께하던 브래드가 어느 날 넌지시 물었다.

“…우. 대체 넌 몇 개의 언어를 하는 거지…?”

“…아, 모르겠어요. 세 보지는 않았는데.”

그러자 브래드가 곧장 되물었다.

“10개, 아니다, 20개 이상 할 줄 알아?”

“네!”

딱히 생각도 않고 답하는 정우현이었다.

“What the fuck….”

설마 하고 물었는데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한 정우현의 모습에, 브래드 퍼트는 또 거친 언어를 내뱉으며 말을 잃고 말았다.

1906년, 하버드 대학교 입학시험을 8살에 통과한, 인류 역사상 가장 IQ가 높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William James Sidis)는 약 40개의 언어를 했다고 전해진다.

한데 정우현은 표현은 안 했지만 이미 그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우, 넌 대체 어떤 아이… 아니, 사람이니?”

브래드의 물음에 정우현이 빙긋 웃고는 대답했다.

“…저는 그저 행복한 사람이죠!”

“하하….”

브래드가 조금 허탈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구나.”

* * *

마지막 유럽 홍보회.

체코의 프라하였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도시를 보며, 정우현은 이곳이 퍽 마음에 들었다.

모처럼 프라하성도 구경하고, 카를교도 건너보며 약간의 자유 시간을 가지고서는, 드디어 구시가지 광장에서 마지막 홍보회를 하게 됐다.

홍보회가 거듭될수록 유럽의 언론 및 사람들은 정우현에게 열광하게 됐다.

유럽 각국의 모든 언어를, 심지어 소수 언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천재 소년 정우현.

그가 할리우드에서 세계 최고의 감독인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신작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주인공으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브래드 퍼트와 함께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정우현은 전 세계 홍보 투어를 한다기에 곧장 영화사 측에 문의해 방문 국가를 미리 파악했다.

그러고서는 체코어 같은,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비교적 소수 언어의 다이얼로그를 구해 곧장 말하기 및 듣기 연습에 몰두했다. 전부 미국이기에 구할 수 있었던 자료였다.

물론 애초 한국에서 언어 공부를 할 때, 책으로 문자 즉 읽기와 쓰기는 학습한 언어였기에 금방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체코어와 덴마크어 같은 비교적 소수만 사용하는 언어도 맘껏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Rád tě poznávám, Woohyun Jung! (정우현 군, 반갑습니다!)”

프라하 홍보회를 진행하는 남성 사회자가 말했다.

이에 정우현이 곧장 크게 답했다.

“Rád vás poznávám! (반갑습니다!)”

행사 관계자들은, 이제 브래드보다 먼저 정우현에게 말을 붙이기 일쑤였다.

“와아! 역시 언어가 유창하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체코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모두 정우현 군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유럽이 좋아요! 특히 이 아름다운 프라하가 너무 좋네요!”

“하하하, 좋네요! 말도 예쁘게 잘하는군요!”

홍보회의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프랑스 파리에서만큼은 거의 무명 배우와 다를 바 없이 홍보회를 시작했던 정우현이었다. 한데 이제 유럽에서 체코의 프라하를 마지막으로 세계적 톱스타인 브래드 퍼트 못지않은, 아니 그가 현지어를 쓰는 순간만큼은 브래드 이상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특히 체코는 1990년 소련군이 주둔할 때까지 사회주의 국가였기에,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구 문명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며 브래드 퍼트며 서유럽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동아시아 출신의 정우현이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얻는 데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와우, 와우, 사회자님!”

이러나저러나 브래드가 웃으며 불쑥 말했다.

이에 정우현이 곧장 영어를 체코어로 통역했다.

“아, 예?”

“저도 있어요, 저도 있다고요, 이 브래드 퍼트가!”

“하하하하, 예! 당연히 알고 있죠, 브래드 퍼트!”

“아, 섭섭한데요!”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브래드가 뒤로 돌았다.

“그나저나 사회자님.”

“예?”

브래드가 뒷면에 붙여져 있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체코용 포스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긴 아주 제대로 해 놨군요!”

“뭐가요?”

“포스터 말입니다, 포스터!”

“아.”

하면서도 사회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인물 보세요. 우리의 인크레더블 우가 정중앙에, 가장 크게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게 맞죠!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니까!”

정말이었다. 소년 왕 정우현이 포스터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나와 있었고, 그 옆에 고고학자 브래드가 조금 작은 모습으로 나란히 있었다.

모두 유럽 투어 홍보회 기간 동안, 정우현이 각국의 언어를 구사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지명도를 크게 높인 덕이었다.

물론 브래드가 계속해서 지적한 것을, 각국의 수입 영화사들이 받아들인 것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정우현이 어디까지나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바뀌지 않을 포스터였다.

“좋군요, 좋아!”

짝! 짝! 짝!

브래드가 이제는 손뼉까지 치면서 크게 말했다.

“우의 말대로 프라하는 아주 좋은 도시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것으로 정우현의 유럽 투어가 성황리에 끝이 났다.

* * *

다음 홍보 지역은 아시아였다.

아시아 투어에 정우현은 남다른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자신의 고국인 한국 방문도 일정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잡혀 있었다. 정우현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니만큼, 한국에서의 홍보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며, 효과 또한 가장 클 것으로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사가 판단한 것이다.

“우! 좋겠다! 좀 있으면 집에 들를 수 있고!”

유라시아 대륙 위, 다시 브래드 퍼트의 전용기 안.

창밖을 보고 있는 정우현에게 브래드가 쾌활하게 말했다.

“예, 기대돼요!”

설렜다. 한국 땅에서 한국 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역시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됐다.

“아, 브래드!”

순간 정우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브래드를 불렀다.

“으응?”

“짜잔!”

카메라였다. 그것도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정우현이 프라하 여기저기를 산책할 때 하벨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우리 사진 찍어요, 사진!”

“사진?”

하면서 브래드가 굳이 뭐 이런 것까지 하냐는 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우! 우리 할리우드에서 수십, 아니, 수백 시간을 함께 카메라 앞에 있었어! 근데 또 무슨 카메라야!”

“아니, 이건 좀 다르잖아요! 바로 사진으로 뽑아서 간직할 수 있고!”

“…오오.”

가만히 쉬고 있던 아버지 정기석도 정우현이 카메라를 들고 브래드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그래, 브래드 퍼트랑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 아내가 엄청 좋아할 거야!’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크게 말했다.

“좋아요, 좋아! 브래드, 우리 얼른 함께 한 장 찍읍시다!”

“…하하하.”

브래드는 두 아버지와 아들의 설득에 결국 자세를 잡아야만 했다.

아버지가 먼저 카메라를 들고 정우현과 브래드를 앵글에 담았다.

“…자, 자. 브래드! 좀 웃어요! 김치!”

이에 브래드가 곧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킴취가 뭐야?”

“하하하!”

이에 정우현이 웃고는 곧장 설명해줬다.

“김치는 한국의 전통 음식이에요! 배추에 각종 양념과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서 먹는 음식이죠!”

“…그렇구나. …근데 그게 사진 찍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브래드였다.

“하하! 한국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 김치! 하면 미소 지으라는 뜻이에요! 미국에서의 치즈와 같죠!”

“…아하!”

“예! 김치와 치즈 모두 똑같이 ‘이’ 발음이 나잖아요! 이 하면, 자연스레 미소 지을 수 있죠!”

“오우…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 봤는데, 우! 역시 똑똑해!”

이에 한참을 카메라를 들고 있던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어이, 브래드! 언제까지 말만 할 거예요? 김치 하라니까!”

아버지는 정우현 덕에 브래드와 오래 함께하면서 서로 가끔 농담할 정도로 꽤나 가까워졌다.

“아, 아, 알겠어요! 하하!”

하고서 브래드 퍼트가 드디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킴-취!”

찰칵.

그러고서 몇 장 더 찍었다.

찰칵찰칵.

“와우!”

정우현이 놀라서 소리를 냈다.

브래드가 그를 또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목말을 태우고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좋아, 좋아, 그럼 이 정도면 됐고.”

하고서 아버지가 정우현을 불렀다.

“예?”

“아빠도 찍어 줘라.”

“하하, 알겠습니다!”

“마나님이 열광하시는 우리 브래드 양반이랑 나도 한번 찍어야지.”

그러고서 아버지가 브래드 퍼트 옆에 섰다.

한데 아버지가 브래드를 힐끗 보더니 슬며시 까치발을 세웠다.

브래드 퍼트는 키가 180센치미터고 아버지는 174.6센치미터였다. 다만 평소 아버지는 175라며 자신의 키를 조금 높여 말하고 다니기는 했다.

하여간 둘의 키 차이가 좀 있어서, 한눈에도 아버지가 더 작아 보였다.

“우현아.”

아버지가 까치발을 세우고서 말했다.

“예?”

“무릎 아래는 찍지 마라!”

“…하하하, 알겠습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아버지의 말대로 상체만 한 번 찍고서, 슬며시 둘의 전신이 다 나오게 한 번 더 찍었다.

까치발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게 말이다.

* * *

전용기가 한국의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정우현과 아버지 그리고 브래드는, 역시 또 일반 여객기와 달리 언론에 도착 시간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조용하게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들!”

어머니였다. 어머니 황희진이 그들로부터 따로 연락을 받고서 막내 정다현과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우현아!”

정우현은 곧장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고 있는 어머니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고는 무진장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았다.

“…엄마!”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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