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25)화 (25/200)

25화

브래드 퍼트의 전용기가 드디어 유럽에 도착했다.

먼저, 프랑스 파리였다. 여객기를 타고 왔으면 일정이 널리 알려져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땅을 밟았겠지만, 전용기 덕분에 그런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착륙 후 조용히 짐만 가지고 공항을 빠져나온 것이다. 물론 브래드는 선글라스를 하고 검은색 모자까지 푹 눌러 썼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 팀인, 뉴올리언스를 연고지로 하는 풋볼 팀의 모자였다.

그렇게 그들은 곧장 파리 최고급 호텔의 VIP 룸에 짐을 풀었다. 미국 LA에서 호텔 생활을 오래 한 정우현과 아버지였지만, 파리에서의 호텔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비교적 조용하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 프랑스 언론은 세계적 톱스타인 브래드 퍼트가 자국에 방문해 영화를 홍보할 것이라고 기사를 냈다. 한데 아쉽게도 정우현에 관해선 그저 ‘한국의 아역 배우’라고 짧게 언급하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라, 우.”

브래드가 영어로 발행된 프랑스 신문을 보며 정우현에게 말했다.

“이들은 아직 모를 뿐이야, 너의 진정한 가치를. 누구나 다 시작은 그런 법이지.”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전 힘겨웠던 시절을 말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 됐는 줄 아니? 하하하! 아니다, 절대 아니야. 지금이야 어딜 가든 주목을 받지만, 나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는 거다. 그 시절, 진짜 먹고 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어. 냉장고 배달도 해 보고, 하다못해 스트립 바에 나가는 쇼걸의 운전기사까지 해 봤지! 그에 비해 너는 얼마나 좋은 시작이냐? 그렇지?”

“맞아요, 브래드! 저는 지금 제 삶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 그래.”

하면서 브래드가 모처럼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야. 누가 뭐라 해도, 나 스스로를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앞을 향하면 돼. 물론 때로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것,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렇게 1인치라도, 단 1인치라도 나아간다면 벌써 반은 성공한 거다. 나머지는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일뿐이지. 내가 아는 성공의 비법은 바로 이것, 이것밖에 없다.”

“와아.”

맨날 장난만 치며 껄껄 웃는 브래드가 삶의 조언을 하니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는 정우현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천하 태평함이야말로 어쩌면 내면이 그만큼 단단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멋져요, 브래드!”

“하하하하.”

그러자 금세 다시 호탕하게 웃는 브래드였다.

“그리고 우.”

하고 그가 정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담하는데, 너는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될 거다. 진정, 그렇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브래드도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오우.”

브래드가 정우현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난 이 이상 멋있어질 수 없는 사람인데…?”

“…하하하하!”

하고서 둘은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가 다정하게 함께했다.

* * *

프랑스 파리의 컨벤션센터인 메종 드 라 뮤투알리테 안.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 홍보회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관용 포스터가 크게 걸려있는 가운데 그 앞에서 정우현과 브래드 퍼트가 정장을 입고 나란히 섰다.

한데 포스터가 조금 이상했다. 그러니까 명백히 정우현이 주인공이고 영화 서사상으로도 정우현이 파트너인 브래드보다 비중이 더 컸음에도, 포스터에는 온통 브래드 퍼트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다.

커다란 고고학자 브래드의 형상 옆에, 소년 왕인 정우현이 작게 그것도 악역인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비슷한 크기로 나와 있었다. 누가 봐도 정우현은 작은 조연인 듯 말이다.

포스터는 보통 영화를 수입하는 나라 실정에 맞게 자체적으로 제작된다. 상반된 예로 이미 제작된 미국 현지의 포스터에는 정우현이 브래드 퍼트와 거의 동등한 크기로 나와 있었다. 어디까지나 정우현이 주인공이니만큼 톱스타 브래드와 동일선 상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 유럽 프랑스에서는, 정우현을 아는 사람이 적었기에 이런 모습이었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Bonjour, Brad Putt! (안녕하세요, 브래드 퍼트!)”

본격적으로 홍보회가 시작됐고, 여 사회자가 크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통역인이 곧장 브래드에게 영어로 말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에 그 역시 인사를 하는데 웬일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항상 싱글벙글 웃는 그가 말이다.

“반갑습니다!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프랑스의 수많은 영화 팬들은, 브래드 퍼트, 당신의 이번 신작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어요! 심지어 세계 최고의 감독인 스티븐 스틸버그가 연출한 작품이잖아요? 그렇죠?”

“예, 그렇습니다.”

“아, 그럼 영화에 관해서 좀 설명해 주세요!”

하는데 여전히 브래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실상 사회자가 질문할 때 짧게 대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북미에서는, 아무리 어설픈 사회자가 와도 어떻게든 유머러스한 말을 하며 오히려 홍보 분위기를 살렸던 그였기에 더 이상했다.

“…브래드 퍼트?”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여 사회자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러자 끝내 브래드가 말을 했다.

“…그런데요, 사회자님.”

“…예?”

“좀 잘못된 것 같군요.”

“…뭐가요?”

사회자가 되묻기도 전에 브래드가 몸을 돌리더니 뒤편의 커다란 영화 포스터를 가리켰다.

“저거 말입니다. 마치 제가 주인공인 것처럼 나왔는데,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하고서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옆에 서 있는 정우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바로, 이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말 그대로 <인크레더블 킹 보이>, 정우현이죠.”

“…아.”

사회자는 당황하며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자님. 왜 계속 저한테만 말을 거시는 겁니까? 엄연히 저랑 같이 서 있는 우리 영화의 주인공, 정우현에게는 한마디도 말을 않고!”

하자 사회자는 어떻게든 웃어 보이며 말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우린 그저 브래드 퍼트의 신작이라는 얘기만 들어서요!”

그러고선 뒤늦게 정우현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이름이… 정….”

하고 끊기자, 브래드 퍼트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현.”

“…아, 예, 우현…! 반갑습니다! 잠시 소개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러고는 사회자가 다시 브래드의 눈치를 보고 빠르게 한마디 덧붙였다.

“…프랑스 팬들을 위해서요! (Pour les fans français)!”

이에 통역인이 곧장 영어로 통역하려고 하는데 정우현이 바로 대답했다.

“Bonjour, je m'appelle Woohyun Jung et je viens de Corée!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정우현이라고 합니다!)”

“….”

순간 홍보회장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정우현이 불어를, 그것도 원어민과 다를 바 없이 유창하게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이는 브래드 퍼트도 예외가 아니어서, 불어를 하는 정우현을 옆에서 그저 놀란 눈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아.”

사회자가 잠깐 당황하다가는, 어떻게든 말을 이으며 홍보회를 계속 진행했다.

“…하하하! 대단하군요! 한국에서 온 작은 아역 배우가, 우리 프랑스에서의 홍보를 위해 이렇게 불어를 연습해 오다니!”

하는데 정우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

“Non! (아니에요!)”

그러고서 밝은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Je parle français, comme mon coréen! (저는 불어를 할 줄 압니다, 마치 우리나라 말처럼요!)”

홍보회장이 술렁였다.

솔직히 사회자는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년 정우현이 영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애초 한국어가 가능한 통역사는 준비하지도 않았기에, 브래드가 정우현을 소개할 때 무척 난감했었다.

한편 옆에 있는 브래드 퍼트는 정우현이 영어를 완벽하게 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불어까지 하자 어이가 없었다.

이에 그는 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정우현에게 영어로 물었다.

“…헤이, 우. 언제 그렇게 불어를 연습한 거야?”

“하하! 예전에 영어 공부할 때 같이 했지요!”

“…근데 왜 말해 주지 않았던 거지?”

이에 오히려 정우현이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브래드! 물어보지를 않았잖아요!”

옳은 얘기였다. 정우현이 브래드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무슨 언어를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등등 자신의 능력을 모조리 밝힐 이유도 그리고 필요도 없었다.

또한 괜히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와우, 그래도 그렇지… 우, 너는 정말….”

하고서 말을 잇지 못하는 브래드였다.

한편으로 그러면서도 경직된 그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이제 곧 프랑스 사람들의 시선이 불어를 할 줄 아는 정우현에게 쏠리리라 확신한 것이다.

“…대단하군요. 정우현 군.”

곧장 사회자가 놀랍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와 함께 오직 브래드 퍼트만을 향해 있었던 여러 대의 카메라가 한순간 정우현을 가까이서 비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한국에서 온 정우현 군…! 영화 소개 좀 상세히 부탁드려요. 이왕이면 프랑스의 팬들이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불어로요!”

그러자 정우현이 카메라를 보고 한껏 웃으며 답했다.

“Oui!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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