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23)화 (23/200)

23화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홍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우현의 데뷔작 <겨울 방학>에서는 그가 홍보에 나서지 않았다. 아직은 완전한 무명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홍보도 감독인 장필도 그리고 다른 주연인 김도진이 주로 했다. 물론 그 둘이 가는 곳마다 주인공인 아역 배우 정우현을 봐 달라고 호소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정우현은 이제 한국의 스타 배우로서, 영화제 수상 소감과 기존 작품에서의 열연 등으로 타국의 영화 팬들에게까지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었다. 특히 아시아권 국가의 흥행을 고려하면 정우현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홍보 효과가 있었다.

더군다나 워낙 이번 영화에 투입된 제작비가 막대했고, 거기에는 물론 홍보 비용도 포함되다 보니 배우들로서는 어떻게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영화를 널리 알려야 했다. 즉 자신의 이름이 걸린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조금이라도 더 흥행시켜야 하는 것이다.

“브래드!”

첫 홍보가 시작됐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인 팍스사의 여자 기자가 정우현과 브래드 퍼트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브래드! 우리 대체 얼마 만인 거죠?”

기다란 금발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묻는 그녀에게 브래드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 몰라요. 전 금발의 미녀와는 매일처럼 함께해서, 그쪽을 언제 봤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하하! 뭐예요! 하여간 브래드! 이번에 신작 얘기 좀 해 줘요! 먼저 옆에 있는 이 아시아의 꼬마 왕자 소개부터!”

하고서 기자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정우현을 봤다. 방송사 카메라가 정우현을 가까이 잡았다.

그러자 브래드 퍼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오우, 기자님. 이 친구, 정우현은 꼬마 왕자가 아닙니다. 바로, 왕입니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왕이죠! (incredible giant king!)”

그 말에 여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와우, 브래드. 어마어마한 표현인데요. 지금 영화 제목을 홍보하는 거죠? 제목이 <인크레더블 킹 보이>잖아요!”

“하하하! 들켰군요! 하지만 말 그대로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 한국에서 온 이 아이는 정말로 천재적인 배우거든요!”

“와우….”

여자가 감탄하면서 말을 잃었다.

브래드 퍼트의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디 공식적인 자리에서 누군가를 무진장 칭찬하는 건 도무지 처음 봤기 때문이다.

톱스타들은 자신이 톱스타임을 물론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스타를 치켜세우지 않는다. 그 모두가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래드는 그러지 않았다. 촬영할 때 스티븐 감독을 직접 찾아가 정우현에게 힘을 더 실어 달라고 말했을 때처럼, 애초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는 정우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동시에 비록 어린 나이지만 동료 배우로서 완벽한 모습에 내심 존경까지 해서 이와 같은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렇게 되기까지 정우현이 거의 모든 액션을 직접 해냈다는 게 주효했다. 그런 배우는 정말이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이제 정우현을 보고 입을 열었다.

“직접 소개 좀 해 주세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대왕님! (incredible giant king!)”

하며 브래드가 말한 표현 그대로 정우현에게 말을 붙였다.

“하하!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정우현이라고 합니다!”

하고는 정우현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말했다.

“와우, 한국식 인사인가요? 하여간 자이언트 킹이 무지 귀엽네요!”

정우현이 머리를 들고 곧장 말했다.

“이번에 스티븐 감독님. 그리고 여기 있는 브래드와 함께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인크레더블 킹 보이>는 다른 것 없이 시종일관 무지무지 재밌고 긴박감이 넘치는 영화니,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하! 말을 참 잘하네요! 애 같지가 않아요!”

“기자님.”

브래드가 모처럼 묵직한 목소리로 여자를 불렀다.

“예?”

“말뿐이 아닙니다. 우, 아, 우리는 우현이를 우라고 부릅니다만, 하여간 이 친구는 연기 그리고 액션, 아니, 모든 게 다 상상 초월이에요.”

하면서 브래드가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보고 신나게 말을 이었다.

“정말 보통이 아니라니까요? 괴물이에요, 괴물!”

“하하하하!”

여자가 말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기자님도 나중에 직접 영화를 보면 제 말을 십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브래드가 고개를 다시 돌려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 크게 말했다.

“시청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말을, 부디 영화관에 가서 확인하세요! 그때야 제가 이 자리에서 얼마나 인내하며 표현을 절제하고, 또 절제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와우, 더 이상 인터뷰 진행이 안 되겠네요!”

기자가 뒤로 돌아 카메라를 보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

“브래드 퍼트가 그의 동료 배우, 정우현을 칭찬하느라 밤을 새울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이제 저와 그리고 시청자분들이 할 일은, 곧 개봉할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고, 그의 말이 사실인지 판단하는 일뿐이겠죠!”

하고서 금발의 여자가 인터뷰를 마쳤다.

정우현은 정작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옆에 있는 브래드 퍼트가 영화는 물론 정우현 본인을 향한 홍보까지 전부 도맡아 하는 것이다.

“브래드!”

둘만 있게 된 가운데 정우현이 브래드에게 말을 붙였다.

“으흠?”

“왜 그렇게 제 얘기만 하세요! 저는 우리 영화와 그리고 브래드 퍼트 당신의 얘기도 더 많이 하고 싶다고요!”

“하하하하, 우. 그럴 필요 없다. 저들은 이 영화가 누가 만든 영화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오히려 어떤 이들은 내가 나오기만 하면, 맨날 봐서 질린다며 티브이 채널을 돌릴지도 모른다.”

하고서 그가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봐라, 우현. 너는 아직 몰라. 아쉽게도 사람들이 잘 몰라. 그래서 너 위주로 홍보를 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브래드가 모처럼 정우현을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어깨 위에 태웠다.

“사실이잖냐. 내가 말한 것 중에 거짓말이 단 1%라도 있어? 없지? 없다. 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괜히 그런 소리 말라고!”

하면서 그가 정우현을 목말 태운 그대로 빠르게 달렸다.

“…와아아아!”

정우현은 놀라면서도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그러는 가운데 신나서 한껏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하! 더 빨리요, 빨리!”

브래드 퍼트도 더 신나서는 힘차게 말했다.

“오케이, 간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했던 것처럼 가까운 사이의 정우현과 브래드 퍼트였다.

* * *

어딜 가나 홍보는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정우현이 짧게 인사를 하고 영화에 관해서 한두 마디를 하면, 브래드 퍼트가 앞장서서 껄껄 웃으며 분위기를 만들고 무엇보다 정우현을 대중에게 띄워 주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미국은 물론 캐나다에까지 가 홍보를 마치고서는 드디어 유럽 투어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이윽고 정우현 부자와 브래드가 함께 출국하기로 한 날.

커다란 고급 SUV 차 안, 브래드 퍼트가 운전하고 있었다.

그는 고가의 슈퍼카가 수십 대 있어서, 그날그날의 분위기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차를 골라 탔다.

옆의 조수석에는 정우현이 앉아 있고, 뒷좌석에는 그의 아버지 정기석이 있었다.

“생각도 안 했던 유럽을 간다니, 신기하구나….”

아버지가 차창 밖을 보며 말했다.

“근데 우현아. 우리 항공권은 준비된 거지?”

“예! 그러잖아도 제가 물어봤는데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고 했어요!”

“하기야 영화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뭐, 그렇겠죠!”

하고서 정우현이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아빠. 심심하셨죠? 내내 거의 항상 혼자 계시고!”

“심심하긴 뭐, 내 시절 이렇게나 즐거웠던 때가 있었나 했다, 하하하!”

정우현과 아버지는 스티븐 스틸버그가 잡아 준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자리를 잡았다. 무려 그 일대에서 가장 좋은 고급 호텔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몇 달은 정우현을 따라 촬영장에 갔지만, 이내 자기가 그곳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스태프들이 정우현을 잘 챙겨줬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이 애초 별다른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른스럽기도 했고.

결국, 어느 날부터 스태프가 호텔로 정우현을 데리러 오면, 아버지는 아들만 보내고 홀로 호텔에 남게 됐다. 그러고서 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관광이었다. 말 그대로 수 개월간 남 부러울 것 없는 LA 휴가였다.

경비는 매달 넉넉하게 스티븐 감독을 통해 지원되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로서는 그저 어디든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구경을 하고, 어쩌다가 날씨가 안 좋으면 호텔에 틀어박혀 최고급 시설을 누리며 또 근사한 호텔식을 먹고 라운지를 누비는 등 즐거운 생활을 했다.

‘…아들 잘 둔 덕에, 팔자에도 없는 호강을 했네….’

가끔 한국에 있는 아내와 막내딸이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통화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멀리 타국까지 온 아들 정우현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억누를 수 있는 그리움이었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자, 자, 갑시다!”

브래드 퍼트가 앞장서 걸어갔다.

이에 정우현 부자 역시 그를 따라 출국 수속을 밟는데 조금 이상했다.

일반적인 여객기를 탑승할 때와 달리, 과정이 무척 간소화된 것이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국할 때도, 일반 승객에 비해 대기 시간이 무척 짧아 빨리 탑승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우선 탑승 게이트 자체가 완전히 달라 일반 승객들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대면하게 된 공항 직원들 또한 오직 정우현 부자와 브래드를 위해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한 듯 단 1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온 활주로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일반 여객기가 아닌, 제트기와 다를 바 없는 비행기가 한 대 있었던 것이다.

“와우! 저게 뭔가요? 브래드!”

“커다란 독수리지. (Big eagle.)”

브래드가 하얀 치아를 반짝거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내 전용기다, 우.”

“와아아!”

“얼른 가서 타자고. 우는 특별히 주인공이니만큼 유럽까지 내가 직접 모시고 간다!”

정우현이 신나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오오!”

아버지도 대강 상황을 눈치채고는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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