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5)화 (15/200)

15화

“아빠!”

“응?”

“오늘 환율 확인하셨어요?”

영화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가운데 정우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환율? 아니?”

아버지는 정우현의 예상대로,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들이 계획한 일이기에 손을 놓기도 했거니와, 봐도 실질적으로 그게 어떻게 득이 되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

“1,700원이에요!”

“1,700원?”

“예!”

역시나 아버지는 환율이 이전보다 꽤 높아진 것 같다고만 생각할 뿐,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우리 가족이 외환 은행에서 환전했을 때 환율 기억나세요? 850원이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무려 1,700원이 된 거예요!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요!”

“아아….”

“우리가 집에 갖고 있는 달러 있잖아요! 달러가 원화 대비 2배나 가치가 올랐다는 거예요!”

“아아, 그래….”

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 정우현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 얼굴을 살며시 찡그렸다.

“아이고, 답답해, 여보!”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던 어머니 황희진이 거실에 있는 부자지간의 대화를 듣고 크게 소리쳤다.

“…응?”

“우현이 말 못 알아듣겠어? 환율이 2배나 올랐다고! 즉 우리 현금 자산이 2배가 됐다고!”

“아….”

이제 조금 알겠다는 듯 아버지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정우현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아빠. 환전하기 전에 제 통장에 1억 원이 조금 넘게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 돈이 두 배로 불어서 2억 원을 넘겼다는 거예요!”

“아아아!”

그제야 아버지가 크게 소리쳤다.

1억 원. 1억 원을 1년도 안 돼서 벌었다니.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받는 박봉으로는 5년을 다녀도 벌 수 없는 돈을 불과 1년도 안 돼서, 그것도 가만히 집에 앉아 벌어 버린 것이다.

“…그럼! 그럼! 얼른 당장 다시 환전하러 가자고!”

아버지가 의기양양해져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하지만 정우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에요, 아빠!”

“…왜?”

“환율이 좀 더 오를 것 같아요! 좀 더 지켜보고 있다 가요.”

역시나 아쉽게도 정우현은 전생에서 IMF 외환 위기 당시 환율이 얼마까지 치솟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경제 흐름 상 분명 조금이나마 더 오를 것 같았기에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간 매일 같이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과 환율 시장을 면밀히 분석한 정우현의 판단과 일종의 감이 함께 빚은 결과였다. 즉, 정우현은 감도 좋았다.

* * *

환율이 1,950원을 넘긴 어느 날.

정우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거실에 나왔다.

“…오빠?”

이제 동생 정다현은 걷기도 잘 걷고, 말도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소통이 얼추 되는 등 영아에서 유아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 어디 있어?”

“…방에서 자고 있어….”

혼자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던 동생이 답했다. 필시 동생도 부모님 품에서 자고 있다가 혼자 거실로 나왔을 터였다.

대낮에 방에서 자는 부부. 그들은 그 정도로 최근 예전에 비해 평온한 나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집 앞에서 정우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영화가 막을 내린 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사라졌다. 그래서 신경을 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우현이 곧장 안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외쳤다.

“엄마! 아빠!”

“…으응?”

부모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지금 당장 가야 해요! 은행이요!”

“아아…!”

아버지는 잠이 덜 깼으면서도 정우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았다.

돈, 돈을 벌러 가자는 것이었다.

* * *

근 1년 만에 온 은행은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객들이 별로 없었고, 있어도 어딘가 하나같이 절박해 보였다.

“…고객님 안 된다니까요.”

이전에 정우현네 가족에게 달러를 바꿔 줬던 여직원이 60대 남성을 응대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없어요, 저희도 없어요, 달러. 1달러든 10달러든 한 장도 없다고요!”

“…아니, 은행에, 그것도 외환 은행에 달러가 한 장도 없는 게 말이 돼요! 얼른 바꿔 주세요! 우리나라 지폐는 들고 있으면 매일이 손해니, 원…!”

“하, 정말 없어요….”

“잠시만요.”

하고서 어머니 황희진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희 환전할게요.”

“…고객님… 달러 없다니까요….”

직원이 어머니를 보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답하고선 뒤늦게 그녀를 쳐다봤다.

“…아아!”

하고 끝내 놀라고서는 옆에 있는 아버지와 그리고 아래 유명 아역 배우인 정우현을 보고선 즉각 태도를 바꿨다.

“…그때 오셨던 <겨울 방학> 주인공 가족이시구나…!”

“예, 누나! 안녕하세요!”

곧장 정우현이 밝고 크게 답했다.

“…안녕! 그새 키가 더 컸네! …아, 좀 늦었지만 수상 축하해!”

“감사합니다!”

“…하하.”

하고 웃으면서도 직원이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는 돈 가방을 봤다. 약 1년 전 달러를 잔뜩 집어넣은 가방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환전하신다고요?”

“네.”

“…그러니까 달러를 우리나라 돈으로요?”

“예!”

이번엔 정우현이 크게 답했다.

그러자 직원이 또 웃어 보이며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하고서 뒤를 돌아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시려는 고객님이 오셨습니다!”

“…뭐어?”

“정말?”

즉각 모든 직원뿐만 아니라 고객들까지 전부 웅성대며 그들 정우현네 가족을 바라봤다. 고객들 대부분이 애타게 달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있던 60대 남성은 즉각 옆으로 비켰다. 정우현네 가족이 달러로 원화를 바꿔야, 자기가 원화로 달러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전 업무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직원들이 기계를 이용해 정우현네 가족이 넘긴 달러를 신속하게 세고서, 모두 환전을 한 뒤 통장에 입금 처리를 했다. 심지어 그들 가족은 약 1년 전 달러 가방을 챙길 때 이후로 그 안에 있던 지폐는 단 한 장도 손을 대지 않았기에 더 빨랐다.

즉 지난날 은행에서 받았던 달러 뭉치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정우현이 그러자고 했다. 돈이 없다고, 당장 집에 있는 달러에 손을 대면 애써 환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그간 부모가 적금한 돈을 조금씩 까먹고 있었는데 오늘로써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한편 달러와 달리 원화는 인출 불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지폐로 들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여직원은 물론, 고급 정장을 갖춰 입은 은행의 지점장까지 나와 그들 가족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시다시피 달러가 귀한 시대인데, 이렇게 환전해 주시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건에 한해 특별히 우리 외환 은행은 수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크게 답했다.

“거기에 우대 환율까지 적용했어요. 실제 환율보다 조금 더 높게, 2,000원에 환전을 수행했습니다.”

“와아아아!”

어머니가 순간 기분이 좋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마음을 흩트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나저나.”

지점장이 시선을 아래로 하며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참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모든 면에서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아 크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우현도 밝게 답했다.

* * *

1998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자산을 잃던 시기, 정우현은 환차익으로 1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려 약 2억 5천만 원의 자산을 갖게 됐다.

정우현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무려 아홉 자리의 숫자가 찍힌 통장을 거실 바닥에 놓고서 머리를 맞대고 드러누워 그 금액을 푸근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와아아!”

심지어 아직 어린 동생 정다현도 그 통장이 무언가 대단한 것임을 직감한 듯 연신 소리를 지르며 가족을 따라 그것을 바라봤다.

“…이야, 이게 대체 얼마야.”

아버지가 꿈을 꾸고 있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여보. 솔직히 좀 믿기지 않네….”

어머니도 생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마치 보석처럼 감상하며 말끝을 흐렸다.

“…으음.”

정우현 또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그쳐서 안 됐다. 이 자본금을 바탕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자산을 불려야 할 때였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있었다.

“이제.”

“…으응?”

부모가 정우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아들의 말이라면 이제 군말 없이 따르는 게 좋다는 것을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사를 가야 할 때예요.”

“…그래! 이사!”

아버지가 강하게 동의했다.

정우현은 경제 신문을 통해 매일 서울 집값도 확인했다. 역시나 대한민국 이름표가 달린 모든 자산이 그랬던 것처럼, 집값마저 연일 폭락하고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집 중 그가 집중한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서초, 강남, 송파 즉 강남 3구였다.

“우리는 이제 강남으로 이사 갈 거예요.”

“…강남?”

아버지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웬 강남이야? 우현아, 아빠는 어릴 때부터 여기 강북에서 잘만 살았어. 너도 잘 알겠지만, 여기가 얼마나 살기가 좋은데? 우리 이번에 우현이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인근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자. 이 돈이면 제일 좋은 아파트도 갈 수 있겠다!”

아버지가 신나서 말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아니에요, 아빠.”

곧장 신문에 나온 아파트 시세를 확인했다.

정우현은 경제 지표와 관련된 주요 신문 기사는 최근 모두 스크랩하고 있었다. 아직 인터넷이 보급화되지 않았기에, 이보다 정확한 정보는 따로 없었다.

30평대 기준 도봉구 아파트가 1억 7천만 원 정도 했다. 물론 이것도 외환 위기로 많이 하락한 가격이었다.

그러고서 그가 곧장 눈길을 돌려 강남 3구의 집값을 확인했다.

역시 30평대 기준 1억7천만 원대였다. 즉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값이 1998년 위환 위기 당시에는 비슷했다.

“앞으로 강남이 뜰 거예요. 대한민국 부동산은 이제 강남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전생에 경제나 돈의 흐름을 잘 몰랐던 정우현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은 게 강남 불패라는 말이었으니까.

“예, 아빠 제 말을 믿으세요. 지금의 선택 하나로 두고두고 큰 차이가 생기게 될 거예요.”

“그래, 여보. 우현이 말 들어.”

어머니가 불쑥 말했다.

“여태까지 우리가 우현이 말 들어서 손해 본 거 있어? 없지? 하나도 없어. 반대로 잘되기만 했잖아! 그리고 나는 왠지 강남에서 살아 보고 싶은걸!”

“…으음, 그래, 그럼.”

금방 수긍하는 아버지였다. 원체 그다지 고집을 부리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고, 아내의 말대로 천재인 아들의 뜻을 따라 집이 잘 풀리고만 있었다. 남들은 힘겨워하는 경제 위기에도 말이다.

정우현이 아이를 구하겠답시고 차에 치여 과거로 돌아갈 시점, 즉 2022년 2월 기준으로 강남구의 30평대 아파트는 35억 원에 달했다. 이에 반해 아버지가 잠깐 주장한 도봉구의 아파트는 10억 원이었다.

물론 10억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둘 다 1998년 1억 7천만 원대 아파트였던 걸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다.

“좋아요, 그럼 엄마 아빠. 당장 가요, 강남으로!”

* * *

정우현네 가족은 강남 공인 중개사 사무소에 도착했다.

각진 안경을 쓴 40대 여성 공인 중개사는 사람이 왔는데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둥 마는 둥 했다.

이에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요, 아파트 때문에 왔는데요.”

그러자 공인 중개사가 또 귀찮다는 듯 답했다.

“…매물 내놓으시려고요? 어느 방면인진 모르겠지만, 어디든 요즘 많이 기다리셔야 해요. 아시다시피 매물이 쌓이고 쌓여서… 최저가보다도 더 대폭 낮추시면 그나마 조금 낫고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놓은 걸 까먹고 계시는 게 마음 편할 거예요….”

“아니요, 팔려고 온 게 아니라 사려고 온 거거든요.”

“…뭐라고요?”

공인 중개사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되물었다.

“매수하려고 왔다고요, 아파트.”

“…정말요?”

하더니 급작스럽게 눈빛이 바뀌며 전에 없는 미소를 짓는 공인 중개사였다.

“아이고, 반가워요, 반가워! 잘 오셨어요! 그렇지! 지금 고수들은 저가에 쓸어 담고 있거든!”

하면서도 그녀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아싸, 오늘 제대로 하나 잡았네!’

공인중개사는 솔직히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경제에 들이닥친 검은 그림자가 짙어지면 더 짙어졌지, 걷힐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대로 한국이 아예 회생 불가능하며 망해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공인중개사 또한 이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건 뭐 있을까요? 몇 군데 좀 돌아다니면서 보고 싶은데.”

“예, 예, 그러셔야죠!”

하면서 공인 중개사가 정우현네 가족이 타고 온 차를 봤다.

작고 낡아빠진 차였다. 분명 경제도 뭣도 모르는 서민 가족이 어쩌다 복권 당첨 같은 횡재를 만나 거금이 생겨 무작정 아파트를 사겠다고 찾아온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아역 배우 정우현을 알지도 못했다. 생전 영화에 관심이 없어 영화관을 거의 가지도 않았다. 어쩌다가 티브이에서 <겨울 방학>이라는 영화 제목을 듣기는 들었으나 금세 잊고 말았으니 그럴 만했다.

단지 지금 거래량이 거의 없다시피 얼어붙은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 매매를 하나 중개해 복비, 즉 수수료를 벌게 됐다는 게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이에 그녀는 곧장 자신의 검은 세단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자, 얼른 타세요! 제가 직접 모실게요! 고객님!”

* * *

몇 군데 둘러보고 드디어 정우현네 가족이 집을 골랐다.

경비 시설이 잘 갖춰진, 청담동에 있는 40평대 아파트였다. 집주인이 급전이 필요하다며 내놓아서 2억 원밖에 하지 않았다. 물론 공인중개사는 이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했다.

“여기로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가족과 상의한 뒤 공인중개사에게 말했다. 물론 정우현의 의견이 주가 되었다.

“아, 예! 그럼 바로 계약하지요!”

“예, 예.”

공인중개사는 몹시 기쁜 마음을 애써 억누르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계약서를 마련해 사인을 받기까지, 이따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네 가족은 계약서에 사인했고, 이로써 1998년에 강남 아파트를 헐값에 사게 됐다.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은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가 살아나며 본격적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하게 된다. 그것도 강남을 중심으로.

이를 쓰라린 마음으로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날 정우현네 가족의 아파트 매매를 중개한 공인 중개사였다.

그녀는 그 후 부동산 중개업을 아예 정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 채의 아파트마저 몽땅 헐값에 팔아 버리고 모든 자산을 현금화하는 최악의 결정을 했다. 손절도 이런 손절이 없었다.

‘…아이고, 내가 바보지, 바보야.’

특히 오래도록 두고두고 그날 정우현네 아파트를 중개한 거래를 떠올렸는데, 생을 통틀어 그렇게나 혼자 잘난 듯 들떠 있었던 그 순간만큼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기억은 없었다.

그날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며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 * *

아파트를 매수했으니 이제 세금을 내야 할 때였다.

세금이라고 해도 취득세만 수백만 원에 달하기에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물론 이 또한 당연히 정우현이 납부하려 했는데, 어머니가 모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들.”

“…예?”

“세금은, 우리가 낼게.”

“아녜요, 엄마. 저 아직 꽤 남았어요, 돈.”

그러자 어머니 옆에 있던 아버지가 곧장 말했다.

“아니야, 우현아. 이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어.”

“….”

“네가 힘들게 번 돈이잖아. 솔직히 아빠 엄마는 괜히 미안하기도 하단 말이야. 네 또래 다른 아이들은 마냥 놀고 있을 때, 너는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괜찮아요, 저도 카메라 앞에 있는 게 노는 것처럼 즐겁단 말이에요!”

이에 다시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야, 아들. 이번엔 우리 말 들어. 부모로서 부탁하는 거야.”

그러고서는 정우현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우현이는 똑똑하니까, 우리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알 거야. 그러니까 알았지?”

거절할 수 없었다. 부모는 지금 정우현에게, 부모이자 어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끝내 정우현이 천천히 답했다.

“고맙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뭐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긴….”

하고서 쪼그려 앉아 아들 정우현을 살포시 안고 속삭였다.

“…우리가 고맙지.”

아버지도 그런 아내와 아들을 이내 몸을 굽혀 함께 얼싸안았다.

“….”

혼자 가만히 있던 동생 정다현도 조용히 다가와 그런 세 가족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안았다.

단단한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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