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영화 <겨울 방학>이 개봉했다.
대형 제작사의 배급에 힘입어 영화가 전국의 모든 영화관에 일제히 걸렸다.
영화사는 우선 장필도 감독과 배우 김도진의 이름을 크게 걸고 홍보했다.
주인공인 정우현은 아직 대중들이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사회를 통해 기자들이 천재 아역 배우의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지만, 대중들에게는 기사의 제목보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 즉 감독과 다른 주연 배우의 이름이 더 크게 와닿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내 입소문이 났다.
영화가 무지막지하게 재밌고 감동적이라고.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비록 처음 보지만 엄청난 연기를 펼치는 아역 배우가 있다고.
이와 함께 영화표가 연일 매진되기 시작했다.
아직 스마트폰은커녕 단순 통화 및 문자 기능만 있는 피처폰과 인터넷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정보의 확산 속도가 느리기는 했지만, 동서고금 입소문은 무시 못 할 정보의 원천이자 전달 경로다.
이에 사람들이 어디서든 <겨울 방학> 얘기를 나눴고, 급기야 티브이 브라운관에서도 이 영화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예능과 콘텐츠가 나오기 시작했다.
“야, 너 <겨울 방학> 알아?”
“이제 곧 여름인데 무슨 겨울 방학이야?”
“하하! 애들아! 얘 영화 안 봤다, 안 봤어! 얘랑 놀지 마!”
“하하하하!”
이처럼 한 인기 개그 프로에서 겨울 방학을 소재로 하는 콩트까지 나오고 있었다.
급기야 어느 날 저녁 뉴스 때였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가슴 따뜻한 소식 하나 전하겠습니다.”
여자 앵커가 모처럼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새 소식을 전했다.
“요즘 이 영화 안 보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죠. 바로 <겨울 방학>입니다. 국내 최고 감독으로 꼽히는 장필도 감독의 신작인 이번 영화가 압도적인 흥행 중인데요. 개봉 나흘 만에 500만 관객을 달성하며 기염을 토하는 것은 물론, 현재 750만 관객을 넘기면서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달성이라는 상징적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보! 우현아!”
아버지 정기석이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혼자 뉴스를 보다가 가족들을 부른 것이다.
어머니 황희진은 화장실에서 동생 정다현을 씻기고 있었고, 정우현은 자기 방에서 또 두꺼운 책을 보고 있었다.
“나와 봐! 우리 아들 뉴스야!”
“…정말?”
이에 아내는 얼른 막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고, 정우현은 나오지 않았다.
정우현은 자신의 영화가 히트 친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이 끝났고,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 역시 한 편의 영화처럼 끝나 버린 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영화 한 편의 성공에 만족한 채, 팔짱을 끼며 휘파람이나 불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됐다.
일단 배우가 되었으니 그는 영화를 좀 더 깊게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최초의 영화를 찍었다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를 시작으로 영화사를 공부하며, 현대 영화 산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까지 빠르게 학습했다.
그러고서 영어도 다시 공부했다. 이미 예전에 한 번 마쳤지만, 확인차 단순히 읽기뿐만 아니라, 듣기, 쓰기, 심지어 말하기까지 복습했다. 물론 모두 부족함이 없었다.
“정우현!”
“…네!”
“나와 봐!”
아버지의 외침에 결국 그가 거실로 나왔다. 티브이에선 영화 속 자신의 얼굴이 크게 나오고 있었다.
“아들이잖아, 아들!”
“하하, 진짜네요.”
정우현이 웃어 보였다.
자신 때문에 가족이 행복해졌다. 두 눈으로 이 같은 모습을 보는 건 언제 봐도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정우현이라는 아역 배우의 출현으로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는데요. 일찍이 장필도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그 누구도 아닌 정우현 군의 영화라며 해당 배우를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앵커가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더 기뻐서는 껄껄 웃으며 크게 말했다.
“그럼, 그럼! 누구 아들인데! 하하하하하!”
“여보, 좀 조용히 해 봐. 뉴스가 하나도 안 들려!”
어머니가 남편을 타박하면서도 한껏 미소 짓고 있었다.
뉴스 화면이 바뀌더니 곧 일반 관객들의 인터뷰가 방영됐다.
한 20대 여성이었다. 그녀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 너무 재밌고 또 감동적이었어요…. 엄청 울었어요….”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또래 여성인 친구가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펑펑 울었는데요! 그래도 결말이 따뜻해서 더 좋았어요! 아, 그리고! 그 아역 배우 이름 뭐지?”
“아, 정우현이잖아!”
이에 옆에 있던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 얼른 말했다.
“그래! 우현이! 어머, 너무 잘생겼잖아요! 연기도 잘하고! 어쩜 그런 애가 다 있지. 우현아! 누나가 사랑한다!”
하고서는 양손으로 카메라를 향해 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여자다.
이 화면을 보고 아버지가 정우현을 보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현이, 좋겠다.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서.”
“왜.”
이에 어머니가 따지듯 말했다.
“부러워? 그럼 당신도 영화 찍어! 흥! 누가 찍어 줄지나 모르겠지만!”
“하하하하.”
괜스레 부모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정우현이 재밌어서 웃었다.
그런 식으로 관객들의 인터뷰가 계속됐다. 일흔 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살아생전 가장 재밌게 봤다는 말. 50대 중년 아저씨가 잃어버린 동심을 찾은 것 같다고 한 말.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하고서는 정우현이 열연한 인물에 너무 공감됐다는 말 등등.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아이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나도 깡패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겨울 방학>은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되었다.
* * *
최단기간 천만 관객 달성.
영화가 개봉한 지 단 열흘 만에, 관객이 천만을 넘었다.
이는 정우현의 전생까지 통틀어, 국내서 어떤 영화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이었다. 한국의 히트 배우를 잔뜩 모아 놓은 화려한 액션 영화도,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거대한 할리우드 영화도 전생의 2022년까지 개봉 후 열흘 만에 천만 관객을 달성한 사례는 없다.
한데 정우현이 열연을 펼친 데뷔작 <겨울 방학>이 그와 같은 위업을 달성했다.
동시에 그는 이제 완전한 유명인 즉 공인이 되었다.
유명인이 될수록 팬들의 관심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놀랍게도 그의 집으로 각종 팬레터와 택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한 선물답게 주로 각종 장난감이나 아이들 간식 등 아이들 용품이었는데, 때론 의외의 물건들도 있었다.
정우현을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등, 그들의 부모를 위한 선물이었다. 예컨대 한방 술이나 과일 박스라든가 심지어 고급 구두, 명품 가방 같은 것들이 아주 가끔 있었다. 심지어 갓 잡아 싱싱하다며, 전라남도 완도에서 커다란 조개 박스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아아, 어떡하지.”
어머니가 각종 선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남편도 대책이 안 선다는 듯 답했다.
처음에는 물론 좋았다. 애초 이런 선물을 받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니까.
그러나 좁은 집구석에 정리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당장 쓰지 않는 것들도 마구 도착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동생 정다현만 오빠 덕분에 장난감이 잔뜩 늘어 몹시 좋아했다.
심지어 집 밖에도 일이 있었다.
처음엔 기자들 몇 명이 정우현의 집 앞에 찾아왔다. 정우현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다.
평소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는 다양한 매체의 특성과 스타들의 생활사 등을 학습하며, 작품 이외의 지나친 공적 노출이 때로는 배우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런 데 시간을 많이 뺏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그가 함께하며 이 같은 행복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모습을 감추면 사라질 줄 알았다. 한데 어쩐지 더 늘기 시작했고, 한순간 팬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닫힌 커튼 사이로 집 앞에 있는 사람들을 살짝 보며 짧게 말했다.
“….안 되겠어.”
“….응?”
남편이 옆에서 물었다.
“이사를 가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이사라니, 여보. 이 집 계약 기간 아직 많이 남았잖아. 전세금은 또 거의 대출이고….”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계속 숨다시피 살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사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집도 알아봐야 하고, 무엇보다 돈도 필요하고….”
하는데 정우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거실에 등장했다.
그러고서는 말했다.
“상관없어요.”
“…으응?”
아버지가 정우현의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통장이었다. 이번 영화 촬영 계약을 맺으며, 아들의 이름으로 개설한 통장이었다.
영화 수익과 관련해 보호자인 부모님의 명의 계좌로도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정우현이 특별히 자기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입금할 것을 주장했다.
돈이나 경제를 잘 모르는 평범한 부모님보다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 돈을 갖고 있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물론 아들이 천재임을 알고 있는 데다, 마땅히 아들의 수익이기도 하니 곧장 그에 동의한 상태였다.
“있어요, 돈.”
정우현이 살며시 웃으며, 통장을 높이 들고 말했다.
“그것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