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1)화 (11/200)

11화

영화 <겨울 방학>의 시사회가 막이 올랐다.

정우현 또한 자신이 찍은 작품을 한 편의 영화로 보는 건 처음이어서 기대가 많이 됐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스크린에 집중했다.

아직 어린 여동생조차 스크린에 오빠의 모습이 커다랗게 나오자 눈을 크게 뜨고 말없이 바라봤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정우현의 손을 꼭 잡았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손이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상영되고 있는 가운데, 스크린 속 정우현이 삼촌 김도진을 보고 화가 나 표정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 삼촌 너무 싫어요!”

그러자 깡패 삼촌은 별일 아니라는 듯 건성으로 한마디 한다.

“야, 나도 내가 싫어.”

“하하하하!”

조카 정우현과 삼촌 김도진이 집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씬에서 사람들이 마구 폭소를 터뜨렸다.

장필도 감독은 역시 명 감독이었다. 한 씬 한 씬 의도한 대로 반응을 이끌며 애초 씬마다 설정한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있었다.

초중반 사람들을 웃게 하고 두 주연의 서사와 관계를 탄탄히 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허문다. 그러는 가운데 관객들은 인물에게, 특히 조카 정우현의 관점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물론 모두 정우현의 연기가 빛을 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 감독의 판단은 옳았다. 화려한 액션이나 특수 효과, 그리고 자극적인 소재나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와 담백한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 한가운데에는 바로 주인공 정우현이 있었다.

애초 정우현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영화니까.

확실히 그는 모든 씬에서 스크린을 압도하고 있었고, 이미 대중 스타의 반열에 오른 김도진보다도 더 강렬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정우현 본인 또한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자, 괜히 부끄럽고 어색한 건 잠시뿐이었다. 금세 그는 영화에 흠뻑 빠질 수 있었고, 후반으로 접어들며 스크린의 자기자신을 보는 가운데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순간 헷갈릴 때도 있었다.

촬영하는 내내 연기에 완전히 몰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시간 가까이 흘러 영화가 종반에 접어들었다.

“…삼촌, 삼촌!”

정우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경찰에 체포되어 멀어지고 있는 삼촌 김도진을 바라본다. 정우현의 시점에서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고 화면이 페이드 아웃으로 어두워진다.

모두 그가 감독에게 말한 카메라 움직임 및 연출 방식이었다.

“하아….”

정우현이 고개를 아주 잠시 돌려, 시사회장 좌석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역시나 사람들이 스크린 속 정우현보다도 더 방울진 눈물을 마구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곳은 일반 개봉 영화관이 아닌 시사회장이다. 즉 기자, 평론가, 제작과 관련된 관계자, 영화광 등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일반 영화관에 비해 훨씬 어렵다.

그들은 단순히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라, 평가하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명백히 성공한다는 것의 징조였다.

그러고서 씬이 바뀌고, 드디어 마지막 엔딩 씬이 펼쳐졌다.

세월이 흘러 새가 지저귀는 어느 봄 날, 김도진이 과거의 죗값을 모두 치르고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문 밖으로 나와 그냥 앞만 보고 가려는데 화면 밖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촌.”

조카였다, 조카 정우현이 출소한 그를 기다렸다가 부른 것이다.

삼촌 김도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화면 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는 끝내 천천히 미소를 짓는다. 봄 잎새처럼 푸르고 따뜻한 기운이 그의 얼굴 위에 끝끝내 감돌며.

그러고서 엔딩 크레딧.

완벽한 엔딩 씬이었다. 기쁨과 슬픔, 상반된 양 감정이 짧은 씬 안에 모두 조화롭게 녹아들었다.

이미 눈물을 잔뜩 흘린 관객들이 재차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김도진의 미소를 따라 웃게 되는, 즉 울며 웃게 되는 놀랍도록 깊고 강렬한 엔딩 씬이 성공적으로 실현됐다.

물론 이 모두 정우현의 머릿속에서 나온 씬이었다.

…짝짝짝.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기립 박수였다. 기자, 평론가, 제작 관계자, 영화광 등 소위 영화 전문가라고 불리는 모든 이들이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뜨겁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

시사회장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어떠한 계산적인 의도 없이 오로지 순수하게 영화를 관람한 끝에, 마음이 요동치는 극적인 감상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방학>은 해냈다. 물론 그 중심엔 정우현이 있었다.

정우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서는 눈을 지그시 감아 보았다.

감동적이었다.

지난 삶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에게 이렇게 갈채를 받아 본 적 있던가 생각했다.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염라대왕의 말뜻대로, 그는 항상 다른 이들의 결핍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작 본인의 결핍은 돌아보지 않았다.

한데 이번 삶은 다르다. 전후좌우 열화와 같은 뜨거운 박수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정우현의 가슴을 오로지 뜨겁게 채우고 있었다.

이제 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영화가 끝나고 장필도와 정우현 그리고 김도진이 관객들 앞에 섰다.

기자들 및 평론가는 하나같이 호평 일색이었다.

그중 테가 얇은 안경을 쓴, 작은 눈을 한 여자가 마이크를 손에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 칼럼을 쓰는 평론가 겸 영화 전문 기자 곽유정이었다.

“…아아, 영화 참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장필도 감독이 낮은 음성으로 짧게 답했다.

그녀는 영화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잠시 숨을 고르다가는 애써 본 모습으로 돌아와 말을 잇기 시작했다.

“관객이자 평론가로서 장담합니다만, 이 영화 <겨울 방학>은 대중성으로나 작품성으로나 크게 성공한 영화입니다. 흠잡을 데가 없다는 말이지요.”

“…하하, 평론가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놀랍네요.”

곽유정은 촌철살인을 날리는 평론가로 유명하다. 영화가 안 좋으면 안 좋다고, 가끔은 원색적인 표현을 섞어 가며 직격탄을 날린다. 더군다나 장필도 감독의 전작 중 한 편에도 악평을 남긴 적이 있어, 장 감독으로서는 그녀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런 그녀가 극찬하며 말을 시작한 것이다.

“예, 칭찬받아 마땅한 영화는 칭찬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녀가 장필도와 김도진 사이에 있는 정우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놀랍게도 그 얼음 같은 여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연스레 이 영화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의 주인공 정우현 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정우현 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이답게 명랑하게 인사하는 정우현의 모습에 곽유정이 끝내 눈웃음까지 짓고 말했다.

“…솔직히 하면 수년간, 제가 본 전 세계의 모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연기였는데요. 우현 군 올해 몇 살이지요?”

“아, 칭찬 감사합니다! 다섯 살입니다. 해가 바뀌어, 이제 막 다섯 살이 됐어요!”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댔다.

영화 제목부터 해서 내용이 초등학생의 방학 중 일어난 일이기에, 당연히 아역 배우 또한 초등학생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그새 좀 더 커 120센치미터를 넘은 정우현의 키를 보면 더 그렇게 믿을 만했다.

“…다섯 살이라고요?”

“예!”

평론가 곽유정은 믿을 수 없었다.

정우현이 단순히 키가 크고 초등학생 같아 보여서 그런 게 아니다.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저렇게나 강렬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심지어 경력이 오래되고 나이도 지긋한 성인 배우 이상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깊게 표현해 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진짜 다섯 살이에요?”

“예, 맞습니다.”

“아아….”

그녀가 짧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애써 당황함을 감추려는 듯 천천히 말했다.

“…드디어… 우리 대한민국에도… 세계적인 배우가 나타난 것 같군요….”

“그래요.”

순간 장필도 감독이 관객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게 있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 아이 정우현 군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제 영화입니다. 제가 글을 쓰고 제가 메가폰을 잡은, 감독 장필도의 이름을 단 영화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 우리 정우현 군, 아니 정우현 배우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서 그는 고개를 돌려 정우현과 눈을 맞췄다.

“저 또한 평론가님을 따라 감독으로서 장담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저, 장필도 감독의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이 천재 배우 정우현 군의 첫 작품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요.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이 작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 시사회장에서 감독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의 전부입니다.”

하고서 그는 아예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정우현의 눈높이에서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현아,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탁월한 성과를 낸다면, 물론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건대, 다 너의 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 또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정우현 또한 겸손하게 화답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모두 관객석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정우현의 가족이었다.

어머니 황희진은 터질 것만 같은 가슴에 호흡이 가빠졌고, 둘째 정다현은 그런 어머니 품에 안겨 오빠를 향해 연신 두 손을 뻗고 있었으며, 아버지 정기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러 허벅지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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