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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0)화 (10/200)

10화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지막 회차에 이르렀다. 그것도 마지막 씬 촬영이었다.

한데 장필도 감독이 이 마지막 씬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깡패 삼촌이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조카인 주인공 눈앞에서 연행되는 씬이었는데, 감독이 욕심이 생겨 기존 연출 의도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카메라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심하고 있는 감독에게, 정우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감독님.”

“…으음?”

갑작스럽게 말을 붙여 신경이 쓰일 만했으나, 감독은 이내 정우현임을 확인하고 자애롭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 영화에서 정우현이 나오는 모든 씬은 NG는 하나 없이 완벽에 가깝게 촬영했다.

심지어 감독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씬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우현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울고 있는 저를 클로즈업 한 다음에요.”

감독이 갑작스레 촬영에 관해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곧장 귀를 기울였다. 마침 그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컷을 바꿔 카메라를 저의 시점에서 삼촌을 바라보는 식으로, 삼촌을 가까이 잡은 다음 천천히 미디엄 숏에서 롱 숏으로 멀어지게 하면 두 인물 간의 멀어질 수밖에 없는 아득한 거리감을 표현하는 데 좋지 않을까요.”

“…으음.”

“거기에 음향까지 처음엔 제가 우는 소리를 선명하게 입힌 다음 원경으로 멀어지는 카메라와 함께 서서히 작아지게 하면 슬픔과 애틋함까지 잘 나타날 것 같아요.”

“…아아!”

감독이 끝내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막혔던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 그렇게 하지!”

하면서 촬영 감독을 부르고서는 정우현이 말한 그대로 카메라 움직임을 설명한 뒤 연출 의도를 덧붙였다. 촬영 감독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좋은데요.”

“아, 그리고 감독님.”

“…으응?”

정우현이 다시 장 감독을 불렀다.

“지금 결말 씬도 나쁘지 않은데요.”

“….”

감독이 말없이 정우현을 보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정우현은 어느새 촬영장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더 많은 관객을 고려하면 이대로 끝나는 건 너무 쓸쓸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씬을 짧게 추가하는 게 어떨까요?”

“…어떤?”

“수년이 지나, 화창한 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삼촌이 드디어 출소하는 거예요. 삼촌은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교도소 문밖으로 나오죠, 그때 제가 기다렸다는 듯 ‘삼촌’ 하고 부르는 거예요. 그럼 삼촌이 깜짝 놀라서는 저를 보고서 천천히 미소 지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거죠. 그럼 관객들이 훨씬 좋아할 것 같아요.”

“아아….”

장 감독이 곧장 정우현이 말한 씬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즉각적으로 가슴에 와닿는 씬이었고, 결정적으로 관객들이 훨씬 더 좋아할 것 같은 결말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서 집에 가는 길, 원래 시나리오대로 헤어지는 씬에서 끝났다면 개운하지 않았을 가슴이, 정우현의 말대로 마무리 씬을 지으면 벅차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끝내, 미소를 짓게 될 것 같았다.

즉 사람들이 더 사랑하고 두고두고 곱씹을 결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수년 후라면, 네가 성장해야 하잖니. 하지만 지금으로선….”

하고 정우현의 위아래를 봤다. 어쨌거나 당장 그의 키를 늘리거나 할 수는 없으니 맞는 얘기였다.

“예, 물론 그렇죠.”

하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정우현이 답했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요. 화면에 제가 등장하지 않으면 돼요.”

“…으응?”

“엔딩 씬에 오로지 삼촌만 나오는 거예요. 거기에 저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거죠. 그러면 카메라는 고정된 채로 오로지 삼촌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인물의 극적인 변화와 감동을 더 잘 포착할 수 있을 거예요. 즉 감독님의 연출 의도를 여전히 살릴 수 있어요.”

“….”

이쯤에서 장필도는 놀라서 말을 잃게 됐다. 촬영장에서 이렇게나 자신의 마음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다.

정우현은 계속해서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러면서 관객에게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결말을 제시하니 따뜻한 만족감까지 줄 수 있죠. 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오!”

옆에 있던 촬영 감독이 곧장 소리쳤다. 그러더니 장 감독을 보고 말했다.

“정말,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하고서는 조금 흥분한 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제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일반 관객이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우현이가 말한 대로 마지막 씬을 보고 나면, 훨씬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엔딩 씬을 바꾼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하는 감독에게 보통 일이 아니다. 때에 따라선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필도는 잠깐 촬영을 중지시킨 뒤, 혼자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서는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정우현의 말대로 씬 하나를 더 찍기로.

그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관객 그리고 제작자와 투자자까지 모든 이들에게 더 이로운 결과를 안겨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 예정되지 않은 씬을 하나 더 촬영해야 하기에 일정 조정과 제작비 증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자신이 강력히 단행하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였다. 그간 쌓아 온 탄탄한 그의 커리어는 이런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하니까.

마침내 장 감독이 촬영 재개를 알리고서는 정우현을 보고 당찬 모습으로 말했다.

“네 뜻대로 하자.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 * *

촬영이 모두 끝났다.

장 감독은 정우현을 따로 불러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올해 가장 큰 복이 뭔 줄 아니?”

“….”

정우현은 살며시 웃으며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널 만난 거란다.”

“…감사합니다.”

“아니다, 내가 고맙지. 이 영화는 네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존재치 않을 영화였다.”

맞는 얘기였다. 전생에서 <겨울 방학>이란 영화는 애초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럼 촬영도 다 마쳤으니, 이제 아이답게 재미나게 놀고 푹 쉬어라. 이다음부터는 어른들이 다 하겠다. 영상 편집부터 해서 하나의 온전한 영화를 만들고 영화관에 걸기까지, 아직 해야 할 작업이 꽤 많이 남아 있단다.”

“예, 감독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영화는 내게 어릴 때부터 장난감이자 놀이였다. 우현이도 이제 막 카메라 앞에 서게 됐지만, 이 과정을 즐겼으면 한다.”

대답은 안 했지만 정우현도 그랬다. 대본을 읽고 그에 맞춰 연기하는 내내, 한 번도 힘든 일을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아니, 애초 새롭게 살게 된 그의 삶이 그랬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하고 두꺼운 책을 마구 읽으면서, 그는 한 번도 어떤 의무감 속에 어떤 특정한 목표를 위해 고난을 감내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염라대왕의 말처럼 두 번째 삶은 그야말로 선물처럼 달콤하고 즐겁기만 했다.

“예, 감독님,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정우현은 예의 바른 아이로 돌아가 공손하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러자 장필도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시사회 날이 되었다.

영화에 출연한 주·조연과 감독이 시사회에 참석하는 가운데, 주인공인 정우현은 어린 나이로서 보호자인 부모님과 여동생 등 모든 가족과 함께 시사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우현아.”

아버지 정기석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아빠는 너무 신기하다. 우리 아들이 나온 영화를 보러 간다니.”

“저도, 신기해요. 제가 영화에 나온다니까요.”

하면서 정우현 또한 설렌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하하! 뭐, 우리 아들이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잘 나왔겠지!”

어머니가 웃으며 크게 말했다.

“…까아!”

옆에 카시트에 앉아 있는 여동생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 소리 질렀다.

“다현아.”

“…네에!”

어머니가 아직 어린 막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린 이제 오빠 보러 갈 거야!”

“…옵빠요?”

“응!”

“…옵빠, 여기이… 이져요!”

하며 동생이 옆에 있는 정우현을 포동포동한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

하고선 어머니가 양손으로 네모나게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다현이, 티브이 알지? 티브이?”

“…네에!”

“그 티브이 안에 있는 오빠 보러 갈 거야! 엄청 큰 티브이!”

“…아아.”

동생이 잠깐 생각하고선 대강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티비!”

“그렇지, 티브이!”

“…옵빠 나와요!”

“그렇지, 그렇지!”

“와아… 옵빠 체고!”

“하하, 그럼, 그럼. 다현이 오빠는 최고지!”

“하하하!”

아버지도 신이 나서 크게 웃었다.

정우현은 한껏 즐거운 가족 모두를 둘러보며 홀로 지그시 웃었다.

지난 삶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자신과 그리고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전생에서의 이맘때라면 세상에 존재치 않았던 아버지가 운행하는 차를 온 가족이 함께 타고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그것도 국내 최고의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보러 가고 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하지만 정우현은 생각했다.

‘이제,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러면서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와 미소 짓고 있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눈빛과, 그리고 신나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는 여동생의 오목한 보조개를 보며 생각을 이었다.

‘힘들고 비참하기만 했던 지난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아직 한참이나 부족해. 내가, 내가 더 잘해서 더 성공하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나의 바람이다.’

* * *

마침내 시사회장에 도착했다.

행사 관계자들이 정우현의 가족이 도착하자마자 에스코트를 하며 그들을 영화관의 앞자리에까지 안내했다.

엄연히 주연, 그것도 주인공인 정우현과 그의 가족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옆에는 장필도 감독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장 감독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가만히 있다가는, 한순간 곁에 다가온 정우현과 그의 가족을 보자 벌떡 일어섰다.

“오셨군요.”

그러고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영광입니다, 천재 배우 가족과 함께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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