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정우현과 어머니가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오디션장에 오는 도중 아들에게 긴장되지 않냐고 물었고, 정우현은 이렇게 답했다.
“긴장이요? 하나도 안 돼요. 준비를 완벽히 했거든요.”
오디션장에는 정우현과 같은 남자아이들이 스무 명 남짓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보호자 모두, 정우현이 대기실로 들어오자 사뭇 긴장하는 눈치였다.
외모 면에서 정우현이 압도적으로 잘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아역 배우를 꿈꾸는 어린이답게 한 인물씩 하기는 했지만, 정우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정우현의 등장에 동요하자, 그 중 파마머리를 한 보호자 엄마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다.
“저렇게 얼굴만 반지르르하게 생긴 애는 연기 못 해.”
그것도 다 들으라는 듯 크게.
이에 어머니 황희진이 즉각 받아쳤다.
“저기요, 댁 아드님은 연기라도 잘해야겠어요!”
“하하하하.”
어머니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우현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아들, 저런 사람은 신경 쓰지 마, 그냥 준비한 대로 하면 돼, 알았지?”
“네, 엄마. 있는지도 몰랐어요.”
* * *
대기석에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영화 <겨울 방학>의 오디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러고서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언론에 발표하지 않아 잘 모르시겠지만, 이번 영화는 장필도 감독님의 신작입니다.”
“와아아아!”
“…장필도라고?”
곧장 장내가 술렁였다.
장필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으로 한국 영화의 붐이 일기 시작하고 있는 현 1990년대 충무로의 대표 감독이었다.
“…하하하, 놀라셨죠? 감독님께서 이번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오디션을 보게 된 겁니다.”
“와아아… 우현아.”
어머니도 놀라서는 아들의 이름만 부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우현도 물론 장필도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 영화를 잘 보지는 않았지만, 천만 관객을 달성한 대작들은 가끔 사람들 분위기에 휩쓸려 봤고, 그 중 장필도 감독의 영화도 당연히 있었다.
다만, 겨울 방학이라는 영화가 있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늘 여기 오게 된 아이들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겁니다. 감독님께서는 일찌감치 이미 데뷔한 국내의 모든 남자아이의 프로필과 커리어를 살펴보셨어요. 그런데 자신의 시나리오에 걸맞은 아이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아이를 찾고자 오디션을 열게 된 겁니다.”
“….”
여자의 말이 끊기면 장내에 정적이 돌았다. 모두 긴장한 채 오로지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솔직히 하자면 감독님께서는 이번 오디션에서도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다면, 이번 영화를 만들지 않을 계획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크게 언론에 알리지도 않은 거고요. 하여간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시는 분이세요. 그런 줄 알고 오늘 여기에 온 아이들은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 줘야 할 겁니다.”
정우현이 전생에서 장필도 감독의 <겨울 방학>이라는 영화를 알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도 장필도 감독은 이처럼 일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봤으나, 적합한 아이를 찾지 못해 결국 다른 영화를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하면서 여자는 뒤에 있는 한 문을 가리켰다.
“두 명, 두 명씩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당연히 보호자 분들은 못 들어가고요. 그러면 카메라 한 대와 오직 한 사람이, 즉 장필도 감독님 만이 안에 계시고 책상 위에는 연기를 펼칠 한 씬의 대사가 적혀 있을 거예요. 아이들은 빠르게 그 시나리오를 읽은 뒤 감독님의 신호에 맞춰 연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긴장한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무작위로 둘씩 순번 표를 나눠 줬다.
“감독님은 아이들이 주어진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얼마나 잘 해석하는지, 그것을 토대로 얼마나 자신의 스타일대로 맛깔스러운 연기를 하는지 보실 거예요. 그래서 미리 대사를 드리지 않았으니 양해 바랍니다.”
그러자 한 남자 보호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바로 들어가서 오디션을 본다는 건데, 그럼 시나리오를 보고 연기하나요?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이 시나리오를 외울 수는 없을 텐데요.”
“맞습니다, 안 보고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겠죠. 보고 하셔도 무방합니다. 감독님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의 해석력과 그에 따른 아이들 고유의 개성을 보실 거거든요.”
그러고서는 드디어 정우현에게 순번을 줬다. 3번이었다. 그러고서 모자를 쓴 여자는 아까 전 괜한 소리를 했다가 오히려 망신을 당한 파마머리를 한 여자의 아이에게 3번을 줬다.
둘이 같이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이에 곧장 어머니와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눈에 힘을 주며 서로를 노려봤다.
“…아들, 잘할 수 있지?”
어머니가 정우현에게 물었다.
“코를 납작하게 만들게요, 엄마.”
* * *
본격적으로 오디션이 시작됐다.
순번대로 앞 순번부터 두 명씩 전방에 있는 오디션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다시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많이 걸려 봤자 10분이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오디션을 마친 아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디션이 녹록지 않음을 뜻했다.
드디어 순번 3번 즉 정우현의 차례가 왔다.
정작 정우현보다 어머니가 긴장을 훨씬 많이 해서 아들의 손을 잡으면서도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걱정 마세요, 엄마.”
정우현이 어머니를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선 생각했다.
‘이번 생에 불가능은 없어요.’
룸 안으로 들어갔다. 같이 들어온 파마머리 여자의 아이가 한껏 긴장한 것과 달리 정우현은 침착했다.
“안녕하세요.”
들어가자마자 그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에 반해 포동포동한 아이는 당황하다가, 정우현이 머리를 숙이자 뒤늦게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자, 앞에 앉고.”
장필도 감독이 낮은 음성으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중년의 나이에 인상도 중후해 아이들로서는 겁을 먹을 만했다.
실상 아이가 아닌 성인이었어도 극도로 긴장될, 유명 감독 앞에서의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정우현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주눅 들 이유가 없었고, 주눅 들고 싶지도 않았다. 곧장 감독의 말대로 자리에 앉았다.
“뭐해, 얼른 앉지 않고.”
이에 반해 다른 아이는 여전히 바보처럼 서 있다가 감독의 채근에 마치 벌을 받는 아이마냥 불편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한 씬의 대본이 있었다. 정우현은 앉기가 무섭게 대사를 읽었고 바로 암기했다.
주인공 아이가 겨울 방학에 집에만 있는데 어느 날 깡패 삼촌이 도피하기 위해 조카인 주인공 아이의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였다.
“해 보겠습니다.”
정우현이 당찬 목소리로 바로 얘기했다.
“…아, 지금 해 보겠다고?”
장필도 감독이 놀란 듯 물었다.
“예.”
“다 이해했어?”
“예!”
“…어, 그럼 해 봐.”
그러자 정우현이 한순간 표정이 바뀌며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
“…삼촌, 엄마가 밥 먹으래요.”
하면 삼촌의 대사는 그냥 감독이 대사를 보고 읽는 방식이었다.
“잠깐.”
그런데 장필도 감독이 대사는 읽지 않고 정우현의 연기를 중단시켰다.
“….”
정우현이 조금 의아해서 가만히 있었다.
“…대본 안 보고 연기할 거니?”
“예.”
“…다 외웠어?”
“예!”
“…네가 여기 들어와서 자리에 앉고 대본을 훑어본 지 2분… 아니다, 한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다 외웠다고?”
“예, 다 외웠어요.”
“…허.”
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서는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다시 해 봐.”
정우현은 곧장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삼촌, 엄마가 밥 먹으래요.”
그 순간 그는 정우현이 아니라 겨울 방학이라는 이야기 세계 속의 주인공 아이가 되었다.
갑자기 집에 있게 된 깡패 삼촌이 무섭고 싫지만,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끝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가운데, 마침내 죄를 뉘우쳤으나 경찰에 체포되는 그를 향해 오열하게 되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아이 말이다.
* * *
정우현이 오디션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
어머니는 그런 그를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외쳤다.
“엄마!”
정우현도 밝게 화답했다.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글생글하니 좋았다.
이에 반해 뒤따라 나오는 포동포동한 아이는 울고 있었다.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러고선 놀랍게도 장필도 감독이 밖으로 나왔다.
“여러분.”
하고서 낮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대로 오디션을 마치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즉각 보호자들이 따지고 나섰다. 아직 오디션을 보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았기에, 따지는 목소리로 금세 대기실이 시끄러워졌다.
그럼에도 장필도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오디션을 마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고서 감독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서는, 정우현에게 가 커다란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이 아이가 제 영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와아….”
어머니가 놀라는 가운데 다른 보호자들은 즉각 소리쳤다.
“아니, 우리 애한테는 기회도 안 주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에 장 감독이 다시 보호자들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고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아이 정우현 군이야말로 제가 찾던 아이입니다. 세상에 이 이상으로 제 영화에 적합한 아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오디션은 의미가 없어요. 즉 다른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고선 모처럼 머리를 한 번 숙이는 감독이었다.
“오디션을 보지 못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 분들께는 특별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분들을 포함해, 오디션을 봤든 안 봤든 귀한 시간 내셔서 이곳에 오신 모든 분께 소정의 교통비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디션을 마치겠습니다.”
그러고서 그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말든 정우현과 어머니 황희진만 따로 안쪽으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감독을 따라가면서 고개를 내려 아들에게 속삭였다.
“…아들. 엄마, 너무 기쁘네.”
그녀의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