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실 정우현은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단순히 꾀병이 아니라 그간 자신이 배운 지식을 활용해 정말 아파 버릴까 생각했었다.
예컨대 몸에 해로운 미량의 약과 곧장 해독하는 약을 어떻게든 만들어 먹으려 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곧장 의문이 들었다.
꾀병을 부려도 아버지가 등산에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어쨌든 아무리 몸에 덜 해로운 약을 먹는다고 해도, 그것은 일종의 자해와 다름없었다. 선뜻 마음이 내키지도 않았다.
“…하하, 엄청 한 소리 들었지 뭐야. 어떻게 혼자 안 올 수 있냐고.”
다음 날 아버지가 퇴근해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머니가 곧장 반문했다.
“아들 데리고 병원에 가서 못 갔다고 해도 뭐라고 해?”
“뭐라고 하지, 누구는 자식새끼 안 아파 봤냐고….”
“…참나, 고생했어. 여보.”
“…그래도 뭐, 집에 있는 우리 우현이 생각하니까 욕먹어도 기분이 하나도 안 나쁘더라고. 하하.”
그러고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우현아!”
“예?”
“안 아프지? 그렇지?”
“네! 하나도 안 아파요! 오히려 더 튼튼해진 것 같아요!”
하고 정우현은 일어서서 오른팔을 굽히고 알통을 보여 주는 자세를 취했다.
“어이쿠, 우리 아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하하하!”
“하하하하.”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리 내어 웃었다.
* * *
우현이가 나날이 성장하는 가운데 거울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얼굴이 다르잖아.’
그러니까 전생의 자신의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엔 잘나지도 그리 못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한 얼굴이었다.
한데 이번엔 콧대가 높고 눈도 힘이 있는 가운데 크고 눈썹은 짙고 턱선은 또 날렵했다. 거기에 또 피부는 맑고 희었다.
한마디로, 잘생겼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확 눈에 띌 정도였다.
“…엄마.”
정우현이 동생을 돌보고 있는 어머니를 불렀다. 조금 민망하지만 이에 관해 확인받고 싶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으응?”
“…저.”
하고 정우현은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혹시 잘생겼나요…?”
“어머!”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지!”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진짜 잘생겼냐고요.”
“응?”
하고 어머니는 정우현의 양 볼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럼, 우리 아들이 최고라니까.”
“옵빠….”
품에 있던 동생 정다현도 정우현을 보며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체고….”
“아.”
정우현이 두 모녀에게 한껏 사랑받으며 생각했다.
‘…이래선 내 얼굴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알 수 없어.’
하고선 전생에서의 한 기억이 떠오르는 그였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우리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했었어. 그래서 난 내가 정말 잘생긴 줄 알았는데, 나이를 좀 더 먹고 보니 전혀 아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밤 정우현은 엄마와 잠깐 동네 마트에 가게 됐다.
동생은 집에서 아버지가 보고 있었다.
마트에 가는 길 동네 여자 고등학교를 지나가는데 마침 여고생들이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하교하는 시간이었다.
‘아, 나도 고딩 때 야자 하던 거 생각나네….’
정우현은 학생들을 보며 전생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이 떠올라 조금 감상에 빠져 있었다.
“어머, 얘 봐!”
순간 정문에서 나온 한 여학생이 정우현을 보고 소리쳤다.
‘…뭐지?’
정우현이 살짝 긴장했다.
‘내 눈빛이 너무 아저씨 같았나.’
“대박! 엄청 귀여워!”
“와, 진짜….”
순간 여학생들이 몰려와 정우현을 둘러쌌다.
“…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도 놀랐다.
그중 포니테일을 한 활달해 보이는 여학생이 나와 물었다.
“와, 아주머니! 얘 너무 이쁘고 잘생겼어요!”
“…아, 그래? 하하, 고맙다.”
“아,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는데. 혹시… 어디 티브이에 나오거나 그러는 애 아니에요? 맞죠?”
“…응? 하하, 아니, 아니야.”
어머니는 당황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그저 웃었다.
“에이! 맞는 것 같은데!”
하고서는 여학생이 정우현에게 다가갔다.
“안녕, 애기야! 이름이 뭐야?”
“…정우현이요.”
“와아! 목소리도 귀여워!”
“…근데 저….”
정우현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기 아니에요….”
“와아아아! 얘 말하는 것 봐!”
“…아, 너무 귀여워!”
여학생들이 꺅꺅대며 열광했다.
“진짜 연예인 아니야? 혹은 모델이라든지?”
“…아니에요.”
“대박! 말도 안 돼!”
하고서는 포니테일 여학생이 다시 어머니 황희진을 보고 크게 말했다.
“아주머니! 얘, 연예인 시켜요! 백퍼 대박이에요!”
그러자 뒤에 있던 여학생들도 소리쳤다.
“맞아요!”
“쟤보다 못생긴 애들도 잘만 티브이에 나오던데!”
“…아, 저런 동생 있었으면!”
그러자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고마워. 그래도 우리 우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생각하기엔 이르거든.”
하고서는 여학생들 무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우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아들에게 속삭였다.
“얼른 누나들한테 인사하고.”
그러자 정우현이 뒤늦게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 모습에 여학생들은 또 소리를 질렀다.
“아아! 인형 같아!”
“애기야! 너 데뷔하면 누나가 1호 팬이다!”
“잘 가! 안녕!”
소란스러웠던 여학생들과 멀어지고 주위가 잠잠해지자, 그때야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들, 벌써부터 여자들한테 인기가 너무 많아서 엄마가 좀 불안하네. 나중에 엄마 몰라라 할까 봐.”
“…아니에요, 엄마.”
“하하, 엄마가 그랬지? 우리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이에 정우현은 말없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선 싱긋 웃어 보이며 생각했다.
‘전생의 못난 저한테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 * *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들이 잘생긴 건 물론 알고 있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고 했던가. 처음엔 단순히 내 아들이라서 이뻐 보이는 줄 알았는데, 해가 갈수록 아들의 이목구비가 뚜렷해지는 게 느껴졌다.
근데 우연히 여고 앞을 지나가다 여학생들의 소란을 겪고 보니, 아들이 확실히 보통 외모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처음엔 그저 기분이 좋았는데, 생각해 보니 여학생들 말대로 아들이 티브이에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냥 한번 알아나 볼까.’
하고서 어머니가 곧장 각종 방송사와 신문 잡지사의 연락처를 찾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각 방송사 공채 오디션은 시기를 놓쳤으나, 한 영화 전문 잡지사에서 귀띔을 해 주었다.
“…마침 남자 아역 배우 뽑는 오디션이 있긴 있는데, 지원해 보시겠어요?”
“…아, 그런 게 있어요? 네!”
“그럼 주소 알려 드릴 테니, 자녀분 사진이랑 간단한 프로필을 한번 넣어 보세요. 근데….”
하고 잡지사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왜요?”
“…붙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감독님이 좀 까다로워서.”
그럼에도 어머니는 바로 지원서를 작성해 우편에 부쳤다.
‘그래, 뭐, 한번 해 보자. 아니면 말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볍게 생각했다.
이미 아들은 천재였다. 여전히 집에선 무시무시한 책을 잔뜩 읽고 있었고, 동생도 너무 잘 돌보고 부모 말도 잘 듣는 등 어른스럽기까지 했다.
즉 정우현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심 우현이가 천재적인 두뇌를 살려 대단한 학자나 발명가쯤 되리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정우현은 아직 어렸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즉 모든 길이 열려 있었다.
근데 지금부터 아들의 미래를 이거다 딱 정하고서 다른 길은 모조리 막는 방식으로 양육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 입장에서도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게 한편으로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아들.”
“…네?”
변함없는 모습으로 두꺼운 서적을 보고 있는 정우현을 어머니가 불렀다.
“혹시 말이야.”
“네?”
평소답지 않게 에둘러 말하는 어머니를 보고서 정우현은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그때 학교 앞에서 누나들이 말한 대로 티브이나 영화 같은 데 나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뜻밖의 말에 정우현이 곧장 생각 없다고 말하려다가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주어진 소중한 기회. 이번 삶은 오로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고선 환히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생각을 이었다.
‘…전생에서 어머니가 이렇게나 밝게 웃으셨던 적이 있었던가. 항상 고생만 하시고 어쩌다 웃으시면, 삶의 아픔이 묻은, 안쓰러운 미소만 지으셨었지….’
그러고서 그가 드디어 답했다.
“네, 한번 해 보죠, 뭐.”
“아아, 그치? 우리 우현이는 뭐든지 잘하니까, 다 잘될 거야!”
하고 기뻐 웃는 어머니다.
내심 아들이 싫다고 하면 아쉽긴 하겠지만, 지원서 합격 여부에 상관없이 다시는 그쪽 길을 권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정우현이 또 환히 웃는 어머니를 보고 생각했다.
‘…이번 삶은 절대 실패하지 않아. 무얼 하든 눈물 흘릴 일도 찡그릴 일도 없어.’
하고서는 잠깐 카메라 앞에 있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않게 전에 없는 호기심이 가슴 속에서 약동하는 게 느껴졌다.
‘…왠지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 * *
약 보름이 지났다.
정우현네 집 우편함에는 낯선 발신 주소의 편지가 와 있었다.
영화사였다. 영화사 이름으로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어머니는 긴장된 마음으로 우편함 앞에 그대로 선 채 곧장 편지 봉투를 열어 봤다.
-안녕하세요, 이번 오디션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첨부하신 귀한 아드님의 프로필과 사진은 잘 봤습니다. 이에 우리 영화사는 귀하의 아들 정우현 군이, 이번 아역 배우 모집에 1차 합격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래 오디션 일정과 장소를 첨부했으니 꼭 확인하시고 늦지 않게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디션 3일 전 확인차 기입하신 연락처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머니가 편지를 읽자마자 곧장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크게 소리쳤다.
“아드으으으을!”
“…네?”
정우현은 자기 방에 있었다.
“합격했어! 오디션 보러 오래!”
“다행이네요, 엄마.”
하고서 그는 자신의 방에 있는 기다란 거울을 보며 표정 및 발성 연습을 계속했다.
정우현은 그날 어머니로부터 아역 배우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들은 뒤, 곧장 배우와 연기에 관한 책을 잔뜩 들여왔다. 그러고선 평소처럼 순식간에 몽땅 독파하고서 거울을 보며 실전 연습까지 했다.
그 결과 몇 번 해 보지도 않고 알게 됐다.
지난날 꾀병으로 아버지를 쉽게 속일 수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정우현은 연기에 있어서도 천재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