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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5)화 (5/200)

5화

그렇게 부모는 정우현에 대한 지원만큼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에 관해 먹는 것, 입는 것 등 아끼지 말라는 의미로 매달 백만 원이 한국대학교 심리 센터의 이름으로 입금되었고, 곧 어마어마한 양의 교육용 도서가 택배로 도착했다.

이외에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걱정하지 말고 연락하라며 김은정 박사의 연구실 번호도 알게 되었다.

김은정 박사가 아동에 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이자 한국대학교 내에서도 입지가 탄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보.”

아버지가 수십 권에 달하는 책을 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김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책들은 앞으로 정우현이 읽게 될 책들의 극히 일부였다.

“…이게 맞는 걸까?”

“응?”

“당신 어릴 때 생각해 봐. 뭐 하고 놀았어?”

“…밖에서 애들이랑 공기놀이하고 놀았지.”

“그래, 나는 딱지치고 놀았어. 근데 우리 애한테….”

하고 아들을 보는데, 정우현이 말없이 책을 펼치고 있었다.

아직 택배 상자를 완전히 뜯지도 않았는데 한 권을 어떻게든 꺼내더니 무진장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고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니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소리 없이 지그시 미소 지었다.

* * *

수 개월이 지나는 가운데 정우현은 엄청난 속도로 학습을 했다.

순식간에 초등 및 중등은 물론이요. 고등학생 수준의 공부까지 나아갔는데, 중간 단 한 번 스스로 의아하기는 했다.

‘…원래 내가 이렇게나 공부를 열심히, 그것도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하며 보던 책장을 계속 넘기고 생각을 이었다.

‘…이 또한 선물인가보다. 책이 이렇게나 재밌는 건 처음이야.’

심지어 전생에서는 낯선 외국어처럼 보였던 수학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그를 괴롭혔던 삼각 함수와 도형 파트가 이렇게나 재미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흔한 노트에 제대로 된 필기나 문제 풀이도 않고서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이해가 다 됐다.

“아들.”

엄마였다. 엄마가 사과와 쿠키를 접시에 담아서는 옆으로 왔다.

“좀 쉬엄쉬엄하지 않고.”

“괜찮아요, 엄마. 저는 책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정우현은 어느새 발음마저 정확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즉 언어 구사라면 이제 모든 면에서 성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엄마는 슬쩍 정우현이 보던 책을 봤다.

“…어머. 벌써 고등학교 수학이야?”

“아, 예. 이것도 거의 끝났어요.”

“…으응.”

솔직히 자기 아들이지만 이럴 땐 조금 낯설었다. 대체 커서 뭐가 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신과 남편이 든든히 받쳐 주면 별 탈 없이 잘 크겠거니 생각했다.

“그럼 책 더 볼 거야?”

“예.”

“그럼 엄마는 이제 좀 쉴게, 피곤하네.”

하면서 불룩 나온 배를 어루만지는 어머니였다.

동생이었다. 정우현의 여동생이 배 속에 있었다.

정우현 또한 어머니의 배를 보고 생각했다.

‘내년 4월.’

하고 아이답게 쿠키를 하나 집어 입에 가져가 오물오물 먹었다.

‘4월 14일이면 여동생이 태어난다. 그럼 집안도 조금 시끄러워지고 더 생기가 돌겠지. 그리고 나에게 쏠린 관심이 동생에게 가니 오히려 좋다. 난 좀 맘껏 책을 읽고 싶은데 어머니나 아버지나 이런 날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하니.’

그러면서 보던 책을 계속 읽어 나갔다.

* * *

시간이 더 흘러 어느덧 정우현은 두꺼운 전공 서적들을 보고 있었다. 분야도 가리지 않았다.

수학과 천문학부터 해서 화학 등 자연 과학 부문은 물론 역사와 법률, 경제, 문학과 철학 등 닥치는 대로 서적을 독파해 나갔다. 심지어 외국어와 의학 그리고 예술과 각종 공학 기술 등 인간이 책으로 기록한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모들도 처음에만 놀랄 뿐, 이제 그런 정우현을 보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우현은 그저 천재인 아들일 뿐이었다. 부모에게만큼은 정우현이 천재라는 것보다 그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그보다 가정의 모든 시선은 어머니의 배에 가 있었다.

때는 꽃 피는 4월, 어머니가 드디어 만삭에 이르렀다.

13일 밤 정우현은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서 아버지를 불렀다.

“응, 우현아?”

“아빠! 내일 직장 가지 마세요.”

“…왜?”

“동생이 태어날 것 같아요!”

“…그래?”

“예! 엄마 배를 보면 살짝 아래로 내려가 있어요, 그리고 산통도 점점 더 불규칙적으로 찾아오고 있잖아요? 모두 이제 동생이 나올 준비가 됐다는 걸 가리키는 표시예요.”

“…으음, 그래? 그러잖아도 의사 선생님이 이번 주에 준비하라고 했는데….”

하고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정우현을 보고 밝게 답했다.

“그래, 알았다. 아들 말은 들어야지. 엄마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는 믿음이 갔다. 아들의 천재적인 능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또 최근 우현이가 엄마의 출산을 앞두고 Obstetrics, 즉 출산에 관한 전공 서적을 그것도 영어 원문으로 읽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잘됐다.’

곧장 회사에 전화해 아내가 출산할 것 같아 휴가를 내겠다는 아버지를 보고 정우현이 안심을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전생에 엄마가 동생을 낳았을 때 아빠가 회사에 있어서 무척 힘들어했어. 뒤늦게 오긴 왔지만, 이미 병원에 왔을 때는 동생을 다 출산하고 진이 빠져 있었다며 두고두고 하소연하셨지. 이번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아아아!”

정우현의 말대로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바동댔다.

그러고서는 곧장 남편을 찾았다.

“여보오오오!”

“응!”

“…배가, 배가!”

“걱정하지 마! 119 불렀어!”

“…119?”

“응!”

정우현은 동생의 출산 시간을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출산을 마친 어머니를 보고서 뒤늦게 간호사가 사 준 김밥, 즉 점심을 먹었으니 늦어도 정오, 즉 낮 12시였다.

현재 시각은 오전 9시 50분. 아버지를 시켜 119에 전화해 10시까지 집에 와 달라고 했었다.

아버지는 물론 정우현의 말을 믿고 그의 뜻대로 했다. 실제 9시가 넘어서 본 아내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기에, 119를 미리 부를 수 있다면 부르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소방대원입니다!”

이윽고 여 소방관이 포함된 119 요원들이 도착했고, 즉각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배 속의 양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적절한 시간에 맞춰 올 수는 없었다.

“…얼른 병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소방대원들이 긴장하는 가운데 외쳤다.

* * *

대원들의 간호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무사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 황희진에게 있어 이 순간 가장 기쁜 점은 곁에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자니 두려움이나 통증이 덜 느껴졌다. 모두 아들 정우현이 아버지 정기석을 출근시키지 않은 덕이었다.

“…으아아앙, 으앙!”

드디어 동생, 정다현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동생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히 아버지도 있었다. 전생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둘째의 출산 순간을 함께하며, 아버지도 감격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을 모두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우현이었다. 정우현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전생에선 좀처럼 느껴 볼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 가족. 우리, 네 가족의 진짜 행복이야.’

* * *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동생 정다현을 돌보는 한편, 하던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머니 이상으로 동생을 효율적으로 돌봐 공부할 시간이 그리 줄어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동생을 위해 아기에 관한 도서까지 읽고 있었다. 아직 정우현 본인조차 아이면서.

“습도가 중요해요. 배도 부르고, 기저귀도 깨끗하고, 졸리지도 않은데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너무 습하진 않은지 혹은 건조하지 않은 지 실내 습도를 체크해야 해요.”

“아이쿠, 그래?”

어머니는 동생을 돌보는 가운데 옆에서 맏이인 우현이가 이러쿵저러쿵 아기에 관해 말하면 기특하고 귀엽기도 해서 웃으며 답했다.

다른 집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면 질투가 나서 괜히 심술을 부린다는데, 정우현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 신기하기도 했다.

“아들.”

“네?”

“동생 있으니까 좋아?”

“그럼요!”

“엄마가 이제 종일 아들이랑 못 놀아 주는데?”

“…하하하, 괜찮아요. 동생은 아직 아기잖아요!”

하면서도 정우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더 편하다. 그간 어머니가 날 너무 아기 취급해서 답답한 점도 꽤 있었어. 하지만 이제 동생 덕분에 조금 자유로워졌으니.’

그러고선 어머니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전 다시 책 읽으러 갈게요.”

“…아, 요즘엔 무슨 책을 읽니?”

“대수학이요. 갈루아(Galois) 이론을 공부하고 있는데, 체와 군의 대응이 흥미로워요.”

“…그게 무슨 말이니?”

“아, 하하. 그냥 재밌다는 뜻이에요.”

하고서 그가 자기 방으로 왔다.

서재였다. 원래 거실에서 책을 봤는데 동생이 태어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책이 워낙 많아 거실과 정우현의 방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정우현은 자신의 이 좁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김은정 박사는 정우현에게 발송해 주는 도서 목록을 보고, 그의 학습 과정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책만큼은 돈을 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사서 발송해 주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사실 정우현의 학습 과정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기대 이상이야.’

김은정이 이번 달 택배 발송된 도서명을 보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대학원 수준의 서적들을 읽고 있어. 그것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직 다섯 살도 채 안 된 아이가 말이야….’

하고서 그녀가 창밖의 푸르른 나무를 보며 생각을 이었다.

‘…대체 그 아이는 뭐가 되려고 하는 걸까….’

* * *

한편 어느 날 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아들 정우현에게 한 적이 있었다.

“…뭐가 되고 싶냐고요?”

“그래!”

“음….”

하고서 정우현이 환히 웃으며 답했다.

“행복한 사람이요. 주어진 모든 것을 다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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